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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빈 Jan 31. 2023

네가 어떠한 아이이든 엄마는 널 사랑해.


며칠 전, 유치원 상담기간이라 선생님께서 전화가 오셨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고,

1학기때의 내용과는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학기 초 상담때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것은

아이의 자기주장 및 표현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이는 자신의 표현을 잘 하지 못한다는 피드백을 들었었다.


평소 우리 부부는 가정에서 아이의 생각이나 감정을

억압하도록 지시하거나,

감정을 표출할때 통제를 한다거나 하는 방법의

육아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이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가족 이 외의 사람들에게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3세 때, 놀이터에서 달려오는 아이에도 얼음이 되어 겁을 집어먹고,

4세때,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표정이 없다며

아이를 문제아로 치부하던 원장님이 기억난다.


그리고 나 역시 문제라 느껴 찾아간 상담센터에서 의외의 말을 들었었다.

아주 예민한 아이라 사소한 자극에도 얼음이 되어 버리는 아이라고.


그러했다.

다른 아이들은 쉬이 넘어갈 법한 사소한 자극도,

공기의 변화, 소리의 변화, 분위기의 변화

다양한 변화에도 아이는 긴장을 하고 불안해하고

얼음이 되어 굳어버리곤 했다.


7세때 웩슬러 검사에서도

임상심리사는 낯선 상황에서 아이의 긴장과 불안이 높아

낯선 상황에서 제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아이

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이는 기질적으로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 어려운 아이였다.


가정에서 우리 아이는 엄마,아빠 앞에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아주 잘 표현한다.

부모에게 화도 잘 내고,

짜증도 잘 내고,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아주 명확하게 자신의 호불호를 표현하곤 한다.

하지만 아이는 밖에 나가면 달라진다.


물론 7세 초반에 비해 아이는 아주 좋아졌다.

왜냐하면 아이에게 낯선 상황이라함은

아이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아이의 행동을 마비시키는

긴장과 불안의 상황이기 때문에

학기 초, 아이에게 이것은 굉장한 스트레스였기에

두세달을 친구들에게 자기표현을 하는 것에

제약이 있었다.


그리고 2학기가 되고,

아이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의 표현을 꽤나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두세번정도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잘 피력하지만,

상대방이 거절하거나 완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밀고 나갈 경우

아이는 금방 자신의 의견을 굽히고

타인에게 맞추어 양보하거나 타인의 뜻대로 따라준다.


그렇기에 유치원에서는 양보 잘하는 아이, 의젓한 아이, 어른스러운 아이

라는 평을 들었고,

엄마들 사이에서는 순한 아이, 착한 아이

라는 평을 들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아이와 놀때

트러블 한번 일으키지 않고

대개 그 아이의 뜻대로 잘 따라와주니

엄마들은 아주 좋아했지만

정작 아이의 엄마인 나는 안타깝운 맘이 들곤 했다.


이번 2학기 상담에서도 선생님은

아이가 양보를 잘 하고,

자기 표현을 하지만 끝까지 주장하지 않고,

강하고 센 친구의 표현에는 당황하고 얼음이 되어 버린다는

피드백을 주시긴 했다.

문제될 정도는 아니지만

참아내는 것이 힘들것 같다하시며.


사실 1학기때와 비슷한 피드백이었지만

이번 2학기 상담은 내게 큰 타격을 가지고 오진 않았다.


1학기때에는 나 역시 불안했고, 아이를 믿지 못했는지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해주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그러하지 못한 아이에게 답답한 마음에 다그치곤 했다.


그리고 2학기 상담에서 나는 한결 여유로워져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런 아이 모습때문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문제가 될 것인지,

소위말해 친구들 사이에서 호구가 될 것인지

친구들의 괴롭힘에 노출되진 않을지

이런 걱정은 더이상 일지 않았다.


아이가 사회를 겪어 나가며

충분히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고

또 그러한 점을 성장시켜 나갈 힘이 있다고

아이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의 욕구를 내려놓고,

자신의 감정을 억압함으로서 생기는

마음의 불편함을 덜어주고

편해질 수 있도록 아이에게 계속해서 불편함 맘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유치원에서 불편한 마음이 든 적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무엇이 불편했는지,

양보를 했다면 어떤 마음으로 양보를 한건지,

원하던 양보였는지,

제대로된 설명을 못하면

엄마인 내가 조금씩 제대로된 설명을 할 수 있게 도와가며

아이가 끝까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기다리고 들어주고 있다.


팔땡아, 네 마음이 불편한게 있는데

꺼내보지 않고 그냥 속에 넣어두면

곪아버려서 큰 상처로 남아버려.

이야기해서 꺼내야 곪지 않아.

친구한테 직접 이야기 못해도

엄마한테 이야기해서 표현하면

니 속에 더이상 남아서 곪지 않을거야.


라고 하며 아이의 맘을 계속해서 듣고 듣고 또 듣고 있다.



주말인 오늘은 아이친구와 아이친구 엄마와 함께 놀았다.

아이의 친구는 아이에게 어떤 놀이를 하자고 제시했고,

지금 하고 있던 놀이를 계속 하고 싶었던 아이는

그 놀이가 하기 싫다고 거절을 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엄마에게 달려와

"난 계속 양보하는데, 팔땡이는 한번도 양보 안해."

라고 일렀고,

그걸 들은 팔땡이는 얼음이 되어 굳은채로 아무 말도 없이 서 있었다.


그걸 본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어? 말해봐~ 괜찮아~ 엄마가 다 들어줄게.

처음에는 아무 말 없이 굳어 있던 아이가

몇 번을 말해보라고 이야기하자

몸을 베베꼬며 짜증을 내고 눈물을 쏟으며 내 품으로 파고 들기 시작했다.


속상했구나.

속상했구나.

엄마가 뭔지는 몰라도 니가 지금 엄청 속상하구나.


토닥이자 아이는 금세 진정이 되었고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정리를 못하겠다고 했지만

괜찮아, 제대로 말 못해도 괜찮아.

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해주면

엄마가 들을게.

천천히, 생각 정리가 안된채로 엉망으로 말해도 괜찮아.

엄마가 끝까지 들을게.


라고 했더니 더듬더듬 자신의 입장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끝까지 들어봤더니

아이는 그저 그 놀이가 하기 싫어 거절을 한 것인데,

그것을 양보하지 않는다며 친구가 와서 말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양보하지 않는 나쁜 아이가 된 아이는

억울함, 속상함, 죄책감, 섭섭함 다양한 감정들이 엉켜

그대로 굳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팔땡아, 놀이 하지 않겠다고 말한거 너무 잘했어.

네 생각을 잘 표현했네?

너의 생각을 표현하는건 너무 잘한 일이야.

그리고 양보는 꼭 하지 않아도 돼.

양보는 네가 원할때 하는게 양보야.

원치 않는데 억지로 양보하는건

절대 좋은 일이 아니야.

그 놀이가 하기 싫어서 양보하지 않은 건

정말 잘 한 일이야.

네 마음을 존중한거잖아.

참 잘했어.

그럼 이제 너희 둘 다 어떻게 하면

서로 기분 상하지 않고

둘 다에게 좋은 방법으로 놀 수 있을까?

같이 생각해볼까?


그제야 아이는 맘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그리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낸 아이는

(서로가 원하는 놀이를 믹스하는게 좋겠다고)

친구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고,

그것을 받아들인 친구와 다시 사이좋게 놀고 귀가했다.


그리고 자기 전 아이에게 다시 한번 말해주었다.

어때? 아까는 눈물날 것처럼 속상했던 마음을

엄마에게 털어놓고 나니까

이제는 눈물날 만큼 속상한 마음으로

마음 속에 남아있지 않지?

이렇게 불편한 마음은 꺼내놓아야

마음 속에서 곪지 않아~


아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계속해서

엄마의 지지와 격려를 제공한다면

아이는 분명히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생각해주는 마음도 너무 예쁜 마음이지만,

다른 사람이 네 마음을 다치게 했을때

네 마음을 우선적으로 지키는 것도 필요해.

다른 사람 마음만큼 네 마음도 소중한 거야.


아이는 한결 편안해져 잠이 들었다.


아이에게 보여지는 부족한 모습때문에 불안해 하는 것,

아이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했다.

불안해 하지않고,

나는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믿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아이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그리고 나 또한

완벽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아이는 자기주장을 못하는 모습이 있지만,

또 다른 아이에게는 너무나 자기주장적인 모습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또 어떤 아이는 타인을 회피하는 문제가 있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너무나 의존적인 모습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이기에 당연한 것인데

내 아이에게 작은 결함 하나가 발견되면

부모들은 당장에 고쳐주어야 할 문제점이라 생각하고

불안해하며 아이를 다그치기 시작한다.


이제 나는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기 주장이 조금은 부족한 아이임에도

내 아이는 존재 자체로 가치있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이다.

그 모습마저도 사랑하기로 했다.


그저 마음이 다치지 않게,

마음이 다치더라도 상처를 오래 품고 있지 않도록

엄마로서 들어주고 들어주고 또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보듬어주고 감싸주면

아이는 내면의 힘을 가득 채워

스스로의 힘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꼭 그러한 모습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수용하고,

그러한 모습까지도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스스로 느끼길 바란다.



엄마로서 참 많이 성장한것 같다.

더이상 아이에 대한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도,

일희일비하지도 않게 되었다.



팔땡아, 네가 어떠한 아이든 엄만 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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