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10시. 제이와 나는 집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집 정리를 하고 있다. 나는 며칠째 몸이 좋지 않고 호르몬 때문인지 우울한 상태로 의욕이 없다. 민준이와 서준이는 그들만의 여가생활인 닌텐도 게임을 마치고 소파에서 빈둥거린다. 게임을 열심히 한 덕분에 어깨와 목이 아픈지 고개를 한 바퀴 돌리기도 하고 양손을 마주 잡고 머리 위로 쭈욱 늘리고 나서는 그대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6월 중순, 더운 공기를 빼기 위해 거실의 창을 활짝 열어둔 덕에 바깥의 소음이 그대로 들려왔다. 사람들은 더위를 식히러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분수 앞에 모여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소리와 어우러진 사람들의 소리, 이런 종류의 소리는 그런대로 들을 만하다. 어떨 때는 일부러 이런 ‘사람 사는 소리’를 듣기 위해 창문을 열기도 한다.
그런데 그때 포탄 같은 남녀의 고성이 일상의 소리를 깨뜨리며 찢어질 듯 들려왔다. 처음에는 부부싸움인가 했다. 주말 저녁이면 근처에서 술을 먹고 온 연인이나 부부들이 종종 그런 소리를 낸다.
싸움의 소리는 점점 격해지고 있었다. 격해지는 소리에 맞춰 나는 거실 가운데 창으로 다급히 움직여 밖을 확인하지만 싸움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귀에 신경을 모아 무엇 하나라도 듣기 위해 귀를 방충막에 닿을 듯이 가져간다. 오른쪽 귀를 방충막에 대니 제이가 보인다. 왼쪽 창은 이미 제이가 샷시의 문턱까지 밟고 올라가 방충막도 열여 제친 채 고개까지 밖으로 최대한 내밀고 차지하고 있다.
“보여?”
나는 오른쪽 귀를 방충막에 밀착시킨 체 얘기했다.
“아니. 안 보여.”
제이는 여전히 몸을 창밖으로 내 밀고 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아, 우리 쓰레기 분리수거 해야 하지 않아?.”
제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씨익 웃더니 순순히 나를 따라 나온다. 그럴 줄 알았다. 이런 일에는 호흡이 잘 맞는다.
소파에 드러누운 아이들을 뒤로하고 제이와 나는 분리수거를 하기 위해 현관 앞에 상자를 하나씩 집어 든다. 낮에 분리수거를 한 덕에 상자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상자를 챙긴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는 11층에 잠시 머물다 내려오고 있었다. 다들 분리수거를 하는 모양이군.
“이제 모두 분리수거를 하러 내려올 거야.”
나는 진지한 어조로 중요한 예견을 하듯 말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쓰레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노부부와 손녀로 보이는 사람 셋이 타고 있었다. 우리는 중요한 이벤트를 망쳐버릴 경거망동한 행동은 하지 않기 위해 아무말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세 사람은 싸움이 한참 열리고 있는 분리수거장 앞으로 달려갔다. 나와 제이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무 소리 하지 않은 스스로를 칭찬했다.
속도를 최대한 늦추어 상자를 분리수거함에 넣으며 싸움의 상황을 살폈다. 사건의 당사자로 보이는 부부와 회색 티를 입은 남자가 서 있다. 셋이 사건의 당사자인 모양이고 주변의 2~3 사람 정도는 그들의 관계인이거나 어쩌다 싸움을 근거리에서 지켜보게 된 사람이리라. 셋 중에서도 여자의 언성이 가장 높다. 노부부는 그녀의 부모였다.
남자의 말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궁금증을 더해 가는데 우리는 이미 분리수거를 다 한 상황이다. 역시나 여기저기서 분리수거를 하러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밤 10시에 분리수거를 하러 아파트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갑자기 산책을 결정하고 그 근처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그때 갑자기 고성이 터져 나오고 쌍욕 소리가 아파트 단지를 흔들었다.
나는 분리수거 현장이 우리 집 작은 방 창가에서 바로 보이는 지점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제이에게 눈과 고갯짓으로로 분리수거 현장과 우리 집 작은 방의 위치를 가리켰다.
“여보, 작은 방으로 가자.”
다급히 집으로 복귀할 결정을 내렸다. 그때 여자가 격양된 말투로 말했다.
“어른한테 욕을 해도 되는 거야?”
“누가 어른인데?”
회색티를 입은 남자가 말했다. 나도 어른 누구를 말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저 회색청년이 노부인한테 욕이라도 한 것일까?
“내가 35살이다.”
아, 여자한테 한 욕이군.
“나는 33살이다. 얼마 차이도 안 나네.”
회색티를 입은 남자가 템포를 늦추지 않고 말했다.
와, 대단한 나이들이군.
우리는 올 때보다 속도를 내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곧장 문을 열고 작은 방으로 직행했다.
그곳에 쌍둥이들이 있다. 머리를 미어캣처럼 하고 침대 위의 창을 통해 밖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놈들이 어느새 간 거지? 일인용 침대 위에 자리한 작은 창에 4명이 올라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나는 너무 대놓고 구경하는 것을 보이지 않도록 머리를 반쯤은 벽, 반은 창 쪽으로 하고 창의 왼쪽을 차지했다. 아이들은 눈만 보이도록 아래에서 튀어나와 있다. 제이는 오른쪽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해야 보이지 않지.”
제이는 주도면밀하게 작은 방의 불을 끄며 얘기했다.
우리를 영화관에 영화라도 보는 것처럼 집중했다. 열연하고 있는 배우들의 무대는 작은 창에서 직관하기 딱 좋은 위치였다.
“엄마, 저 사람들 연기하는 거야?”
아이들은 어른들의 실제 싸움구경은 처음 해 본다. 흥미진진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좋지 않을 것 같다.
“너희는 들어가서 자.”
“엄마, 그런데 너무 재미있어. 제발 보게 해 줘.”
서준이가 눈을 반짝이며 얘기한다.
“애들이 잠이 오겠어?”
제이도 아이들 편을 들어준다.
“그래 그럼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보자.”
우리는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 사이 여기저기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와 같은 이유로 산책을 한 것이리라. 어떤 사람은 수레에 분리수거 한 트럭을 쌓아가지고 나왔다.
“저 사람은 아예 집에 있는 쓰레기를 죄다 챙겨 나왔네.”
나는 역시나, 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야,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집에서나 싸워!”
어딘가의 창문에서 경쾌하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싸움에 흥을 더해주는 것 같았다. 싸움은 정점으로 치닫고 관객들은 아닌 척 하지만 산책을 하며 분리수거를 하며 제각각의 방법으로 싸움에 집중했다.
여자는 지금 술에 취한 상태였고 이미 경찰을 불러놓은 상태이다. 대화로 미루어 보아 회색청년이 부부를 동영상으로 촬영한 것이 싸움의 발단이 된 듯 하다. 이를 발견한 부부 중 남자가 회색남자와 시비가 붙었다. 남편을 말리려던 여자가 더욱 흥분하여 싸움의 중심으로 나섰고 그 남자와 쌍욕을 하며 맞붙었던 것이다. 이제 남편이 여자를 말린다. 먼저 집에 들어가 있으라고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는 엉덩이를 바닥에 닿을 듯이 하며 팔을 잡아끄는 반대방향으로 최대한 힘을 쓰며 저항했다. 만만치 않다. 그녀의 엄마도 말려보지만 그녀는 엄마에게도 버럭 화를 냈다. 그녀를 말릴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어 보인다.
“엄마 진짜 연기하는 거야?”
민준이가 다시 한번 묻는다.
“술을 많이 먹으며 저렇게 되는 거야.”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차 2대에 각각 두 명의 경찰이 타고 있다. 2인 1조로 나뉘어 한 팀은 부부 쪽의 이야기를 듣고, 한 팀은 검은색 남자 쪽의 이야기를 듣는다. 자초지종을 들은 경찰은 남자에게 문제의 동영상을 지우기를 요청했다. 남자는 기꺼이 지우겠다고 한다. 우선 동영상부터 확인해야 한다.
“보세요. 맘껏 보셔도 돼요.”
영상의 여주인공은 당당하게 경찰에게 얘기했다.
그때 검은색 티를 입은 남자가 멈추어 섰다. 그 동영상이 너무도 궁금했는지 경찰 뒤로 가서 스마트폰 쪽으로 고개를 슬쩍 내민다. 그 남자 뒤에서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남자 티셔츠를 잡아끈다. 나도 그 남자처럼 동영상이 무척이나 보고 싶다.
경찰은 동영상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지우게 했다.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정리가 되었으니 이대로 정리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요.”
경찰은 이런 일은 흔하게 접하는 일인지 능숙하게 자리를 정리했다. 그러나 싸움의 당사자들은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이대로 먼저 자리를 떠나면 지는 것이다,라는 그런 느낌이다.
“누구 하나 먼저 가셔야 끝납니다. 어서들 돌아가세요.”
여자의 남편과 부모는 여자를 집으로 보내기 위해 손을 잡아 끌었다. 그녀는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뭐라고 계속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제 경찰도 출동했으니 집에 갈 수밖에 없다. 부부 쪽이 먼저 자리를 떠난다. 이제 회색 남자가 자리를 뜬다. 우리도 이제 작은 방을 떠나야 한다.
싸움에 집중하다 보니 우울감이 사라지고 몸에 활력이 느껴졌다. 우울증에는 대판 싸움 구경 해보는 것도 좋겠다. UFC 그런 것을 봐 볼까? 아님 주짓수를 좀 배워보든지 해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