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남은 시간 D-9년
부모님이 나의 학교에 온 적은 거의 없다. 나는 창 밖으로 학교에 찾아온 친구들의 부모님을 보며 부러워했다. 우리 엄마도 학교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공부를 꽤나 열심히 해서 모범생이었고 이런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에게 유일한 희망인 공부 잘하는 딸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니까.
엄마가 학교에 온 적은 없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학교에 될 수 있는 데로 가려고 한다. 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을 보며 부러워하지 않도록.
오늘은 아이들 운동회 날이다. 마침 제이가 하루 쉴 수 있어 함께 갔다. 제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아이들 학교에 가 본 적이 없다. 쉴 새 없이 달려온 제이에게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나는 반나절은 햇빛 아래 서 있어야 하는 것에 대비해 선크림을 신중히 발랐다. 모자를 챙겨 쓰고 제이에게도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쓰게 했다. 그리고 혹시 모를 경기 참가를 위해 편한 복장에 운동화를 신었다.
학교 근처는 주차장이며 골목이며 학부모들의 차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겨우 찾은 주차자리에 주차를 하고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넓은 운동장 앞쪽에 그늘막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아래로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학부모 대기석이다. 학생들의 자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맞은편이다. 학부모 대기석에는 할머니와 다른 가족을 대동한 학부모, 구두에 멋스러운 가방을 들고 온 학부모, 나처럼 편하게 입고 온 학부모 등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보인다.
마침 학부모 대기석 앞에 우리 아이들이 달리기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 쪽으로 가서 손을 흔들며 우리가 왔다고 알려줬다. 우리를 발견하고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한다.
민준이 조가 달린다. 민준이는 2등을 했다. 서준이가 달린다. 서준이 역시 2등이다. 피니쉬 라인에 선 우리들은 아이들의 모습을 동영상에 담는다. 그리고 올림픽 선수가 메달이라도 딴 듯 크게 기뻐하며 아이들에게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뿌듯해하는 아들을 보니 행복감이 몰려온다.
운동회 사회자는 전문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보였다. 직원 3명이 같이 와서 한 경기가 끝나면 경기에 쓰인 기구들을 정리하고 신속히 다른 경기를 준비했다. 전문 레크리에이션 강사답게 말을 매우 잘하고 모든 경기가 신속하고 매끄럽다.
학부모와 학생이 교차하여 서서 커다란 공을 머리 위로 굴려 공이 먼저 도착하는 경기를 한다. 민준이 뒤로 내가 내 뒤에 서준이가 서서 머리 위로 커다란 공을 굴린다.
재미있다.
이런 것이 재미있다니, 생각해 보니 20~30대 초반에는 몸으로 하는 종류는 모두 귀찮아했다. 그냥 조용히 얌전히 앉아있는 게 좋았다. 그런데 30대 후반으로 갈수록 이런 놀이들이 점점 더 재미있어진다. 점점 더 애가 되어 가는 모양이다. 그래서 중년 이후의 놀이 문화, 여가생활이 발달하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수록 삶에 재미가 없고 우울함이 많아지니 스스로 재미를 찾는 것일 수도.
이번에도 학부모와 함께 하는 박 터트리기 게임이다. 휘슬이 울리자 나는 엄청난 속도로 공을 주워 박을 향해 던졌다.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전쟁에라도 참전한 듯, 눈에는 레이저가 나오고 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의 공은 박에 잘 도달하지 못했다. 나는 공을 한 번에 두세 개씩 주워서 강속구로 던졌다. 우리 애가 어디 갔는지도 모르겠다. 시작할 때는 분명히 옆에 있었는데 공을 많이 주우려고 움직이다 보니 멀어졌다.
박이 터졌다.
우리가 이겼다. 신이 나서 혼자 점프를 한다. 그러고 나서 아이 생각이 떠올라 아이를 찾고는 껴안고 함께 좋아한다.
다음은 학부모만의 줄다리기 경기다. 사회자가 양 팀의 학부모들만 나오라고 불렀지만 나오는 학부모가 적다. 학부모 대기석에 앉아서 잡담하는 부모들이 많다.(그러고 보니 나는 왜 이렇게 집중한 것일까?)
“여보, 여보가 안 나가면 누가 나가. 덩치값을 해야지.”
누가 봐도 제이는 줄다리기를 해야 마땅한 몸을 가지고 있다. 제이가 줄다리기 쪽으로 갔다. 그래도 인원이 차지 않은 것 같아서 나도 참가하기로 했다. 제이는 역시 건장한 체격으로 사람들의 무언의 압력에 의해 줄다리기의 맨 앞줄에 섰다. 나는 남자들이 어느 정도 줄을 잡고 나서 그 뒤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은 자신의 줄다리기 팀 바로 옆에 서서 응원을 하려고 대기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 얼굴이 보인다. 이겨야 한다.
“여보, 번호를 붙여야 해!”
나는 맨 앞줄의 제이에게 얘기했다.
“번호를 붙이랍니다. 하나~둘! 이렇게 합시다!”
제이는 자신의 옆에 엇갈려서 줄을 잡은 남자에게 얘기했다. 그 남자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번호 붙이기 작전은 곧장 뒤로 전달됐다. 나도 뒤의 여자들에게 번호를 붙이자고 얘기한다. 모두 번호를 붙이기로 하고 손에 힘을 단단히 쥔다. 몸을 살짝 뒤로 하여 누울 준비를 한다.
“백팀이 남자가 더 많네요. 하지만 청팀에는 남자 못지않은 여자들이 많이 보입니다.”
사회자가 조크를 날린다. 딱 보니 청팀인 우리가 불리하다. 나는 온 힘을 여기서 불사르기로 작정한다. 번호와 단결된 힘과 의지만 있다면 이길 수 있다. 이 순간을 위해 나는 운동을 하고 달리기를 해왔다고 생각하자.
휘슬이 불렸다. 우리는 약속한 대로 번호를 힘차게 불러가며 줄다리기에 온 힘을 실었다. 처음에는 균형을 이루어 가운데에 머물던 줄이 번호를 불러가는 횟수가 늘어가자 점차 우리 쪽으로 움직인다. 우리 쪽으로 힘의 균형이 움직이자 우리는 순간 힘을 더 내어 번호를 짧게 외쳐가며 완전히 줄을 가져왔다.
우리가 이겼다!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또다시 점프를 한다. 점프력이 더 상승한 것 같다. 옆의 아주머니들도 콩콩 뛰며 환호한다. 제이도 아저씨들과 어깨를 휘감고 좋아한다.
거봐. 엄마 아빠 이겼지! 응원하고 있던 쌍둥이들을 쳐다보고 눈으로 말한다. 아이들은 이미 방방 뛰며 좋아하고 있다. 이긴 팀은 상품으로 라면도 받았다. 와, 이기고 라면까지 받다니, 너무 신난다. 전리품인 라면을 가슴에 소중히 안고 대기석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에 대망의 계주다.
서준이가 계주선수다. 나는 학교 다닐 때 한 번도 계주 같은 경기는 나가보지 못했다. 근력이 없어서인지 달리기에 영 재주가 없었다. 우리 아들이 계주선수라는 말은 여기 와서야 알았다. 서준이가 왜 얘기를 안 했지? 계주선수라면 굉장한 영광 아닌가? 나는 어렸을 때 팀의 최종 승리를 쥐고 있는 계주선수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운동 잘하는 아이들은 모두 계주선수다.
서준이는 두 번째 주자로 운동장 맞은편에서 대기하고 있다. 첫 번째 주자가 청색 바통을 쥐고 달린다. 그런데 차이가 벌어진다. 백팀 선수가 먹잇감을 발견한 치타처럼 뛰어가며 차이를 벌리고 있다. 서준이가 청색바통을 전달받아 달린다. 그런데 이미 벌어진 차이는 줄어들지 않는다. 나는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서준이의 각도대로 돌면서 서준이를 응원한다. 서준이는 열심히 달리고 있다. 하지만 다음 주자로 청색 바통을 넘길 때 역시 벌어진 차이 그대로다.
우리가 졌다.
하지만 서준이는 울거나 실망하거나 그런 동요가 없다. 나는 지는 것을 싫어해서 작은 게임에도 열과 성을 다하는 편이다. 내가 지는 것에 익숙해진 것은 삶의 실패를 여러 번 겪고 나서이다. 사람의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많은 상황에 직면하며 깨달은 것. 나와 다르게 서준이는 지면 지는 것이다. 쿨한 서준이를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운동회에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강속구로 박살 냈던 박 터트리기, 열세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학부모들과 번호 붙이기와 단결된 힘으로 쟁취한 줄다리기의 짜릿한 승리, 우리 아들이 지고도 의연한 모습을 현장에서 볼 수 없었겠지, 승리의 라면도 맛보지 못했겠지.
나는 이 모든 감정이 일어난 운동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청색의 손목보호대를 차고 있는 두 아들과 선크림을 잔뜩 바른 제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