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의 짐을 풀었다. 베트남 여행에서 돌아와서 보니 새벽 3시쯤 되어 그냥 무작정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음 날 짐 정리를 하려고 보니 침향이 눈에 들어왔다. 침향 3통이 무려 130만 원이다. 3개월에 130만 원, 제이와 나눠 먹으면 고작 1개월 반 분량이다. 노니 6개월 분을 끼워줬지만 그래도 엄청난 비용이다.
침향의 권위자라는 베트남 현지인은 엄청나게 한국말을 잘 구사했고, 60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건강해 보였다. 말발은 어리바리한 한국인보다 더 좋았다. 그것을 듣고 있노라면 절대 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앉았음에도 마음이 점점 흔들렸다. 그리고 마지막 일대일로 설득하는 과정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불면증과 비염, 여러 가지로 몸이 안 좋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 한의사라는 침향 판매원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정적인 것은 앞 테이블에서 2박스를 산 것이다. 나보다 서너 살 위의 언니가 2박스 무려 260만 원어치를 샀다. 그리고 뒤 이어 옆 테이블에서도 한 통을 샀고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나에게 한의사는 마지막 열정을 불살라 사야 되는 당위성에 대해 설명했다.
“20년 동안 쌓인 기름을 제거해 주는 데 왜 망설이세요? 이거 먹기 전과 후에 피검사를 해보세요. 거짓말이면 한국에 가서 환불하면 돼요.”
누가 봐도 한국인보다 더 조리 있게 말을 잘한다. 이쯤 되니 한국인이 베트남인 행세를 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저는 술도 안 하고 반 채식주의자 생활을 해서 피가 이미 깨끗한데요.”
나는 사실 그대로를 얘기 했다.
“피뿐만이 아니에요. 불면증 있다고 했죠. 저녁에 한 알 먹고 자면 숙면을 취할 거예요. 잠을 안 자는 것도 혈액순환이 잘 안돼서 그래요. 내 몸은 남이 챙겨주지 않아요. 스스로 좋은 것을 찾아 먹어야 해요. 이거 여자한테 정말 좋은 약이에요.”
그녀는 좀 전에 내가 불면증이 있다고 한 것을 기억하고 틈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침향은 처음 들어봤다. 아니 인센스 용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것을 오메가 3처럼 먹는 형태도 있는 줄 몰랐다.
그곳에 들어갈 때는 나와는 상관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가서 쓸데없는 꿀을 잔뜩 사 온 것을 기억했다. 싱크대 서랍 깊숙한 곳에 스텔스기처럼 숨어있던 꿀은 몇 년이 흐르고 발견이 되었다. 찜찜한 마음에 버렸는지, 꿀은 행방이 묘연한 체로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이제 나이도 먹을대로 먹었으니 절대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한의사라는 판매원의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자꾸 아픈 부위들이 생각난다. 듣고 있자니 만병통치약이다. 결국 팀원들이 모두 방을 떠나고 마지막까지 남아 5달러를 더 깎은 후에 침향을 구입했다.
엄청난 비용을 카드로 긁고 버스에 올랐다. 내가 뭔짓을 한 것이지? 뭐에 홀렸나? 자리에 앉자마자 멍해졌다. 집에 돌아와 캐리어를 열어 침향을 마주하고는 후회는 쓰나미가 되어 몰려왔다.
며칠 후, 본가에 갔다.
어머님은 바깥에서 볼일이 있으시다며 먼저 점심을 먹고 있으라고 하셨다. 보통 우리가 가면 가벼운 약속은 취소하시는데 뭔가 중요한 일이 있으신 모양이다. 우리는 먼저 점심을 먹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어머님은 오후 3시가 다 되어 돌아오셨다.
“무슨 약속이었어요?”
제이가 어머님께 묻는다. 어머님은 멋쩍어하더니
“앞 집이 무슨 설명회를 들으면 이불도 주고 밥도 사준다고 해서 따라갔다 왔어.”
“네? 무슨 설명회인데요?”
“아니 뭐 다리 아픈데, 허리 아픈데 쓰는 기계도 있고, 약도 있고 그렇더라고. 약장수지 뭐.”
“네? 어머니 그런 거 절대 사면 안 돼요. 같이 가신 친구분 중에 사신 사람 있어요?”
제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약아서 그런 거는 안 사. 설명만 듣고 사은품만 얻어오지. 그런데 새로 온 사람인지 처음 보는 노인이 허리 아픈데 좋다는 기계를 사더라고.”
“얼마인데요?”
“100만 원 정도 했지. 그런데 한 개씩은 안 팔고 이것저것 합해서 100만 원 이런 식이야. 낱개로 팔면 좋을 텐데. 한꺼번에 팔거나 안 살 거 같으면 물건 하나 껴주거나 돈을 조금 깎아주는 그런 식이야.”
나는 집에 있는 침향이 생각났다. 노니를 끼워주고, 마지막까지 흥정하며 5달러를 깎고, 버스는 떠나려고 하고 정신착란 증세가 올 때쯤 급하게 카드결제를 한 기억.
제이를 바라보니 제이의 표정도 심상치 않다. 역시 침향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어머니 그런 거 다 효과 없어요. 다 팔아먹으려는 수작이에요.”
“아휴 안 사. 내가 그런 거 한 두 번 보니?
그런 거는 모르는 노인들이나 사는 거지.”
제이와 나는 얼굴 근육이 제어가 되지 않았다.
카드 고지서가 날아왔다. 나는 이국 땅에서 충동적으로 긁은 카드값의 대가로 당분간 미용실도 가지 않고 외식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카드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