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디김 Oct 10. 2024

무좀이 생긴 어린이의 무좀에서 살아남기

아이들과 남은 시간 D-9년  

3개월 전부터 무좀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에게 무좀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물론 원인은 명백하다. 똑같은 외모를 가진 그의 아버지 제이. 이미 무좀 전문가인 제이는 무좀에 관한 다양한 도구들을 가지고 있다.


무좀뿐만 아니라 건조한 날이면 메마른 날의 논두렁처럼 발뒤꿈치가 쩍쩍 갈라진다. 이럴 때는 주로 바셀린과 랩을 이용하는 것 같다. 관찰해 본 결과 습한 계절에는 무좀, 가을과 겨울처럼 건조한 날에는 발이 갈라지는 증세로 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있다. 이런 발의 사정으로 그는 밤마다 발에 뭔가를 바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랩을 칭칭 감고 다니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것이 무좀 치료인지, 발의 건조증 치료인지 분간할 수는 없다. 어쨌든 항상 밤마다 발에 뭔 짓인가를 하고 있다.      


어느 날 주말에 차승원과 김수현 주연의 시리즈물 <어느 날>을 보고 있었다. 극 중 변호사로 나오는 차승원은 지독한 무좀에 걸려 고생하고 있다. 남의 일 같지 않은지 남편은 그의 고통을 누구보다 공감하며 애처롭게 바라본다. 그러다 가끔은 그렇지, 고통스럽지, 승원이 형님이 연기를 실감 나게 잘하네. 하며 추임새를 줬다. 흥, 나는 전혀 알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그런데 극 중에서 차승원이 무좀 치료의 방편으로 우리 집 욕실에 있는 가글제품을 세숫대야에 잔뜩 부어 놓고 발을 담그는 민간요법을 시행하였다. 나는 바로 리모컨을 들고 멈춤 버튼을 누렀다.


“여보, 우리 집에 저거 있어. 내가 대용량으로 많이 사놨거든. 여보도 해보자!”


거침없는 추진력을 발동하여 나는 세숫대야와 욕실에 있는 가장 시원하고 강력하여 눈에 찔끔 눈물까지 맺히는 가글을 두통 꺼내왔다. 750ml 두 통, 1.5L의 가글을 대야에 부으니 약간은 부족해 보였다. 역시 한 통을 더 까는 것이 좋겠다. 나는 한 통을 마주 까려 했으나 제이가 만류했다.


“효과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우선 두 통만 해보자.”


그래, 과연 일리가 있는 의견이군. 거실에는 민트색 가글에서 풍겨져 나오는 시원한 향기가 퍼졌다. 정신이 맑아지고 시원해졌다. 핑크색 세숫대야에 퍼진 에메랄드 색 바다 위로 제이가 발을 담갔다. 두 왕발이 담기자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에 따라 민트색 가글이 더 높게 차올랐다. 그리고 제이는 극 중 차승원과 똑같은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아, 차승원 역시 명배우다. 집에서 리허설을 아주 꼼꼼하게 했어. 저거는 담가봐야 나오는 표정이야.”


나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멈추어 있는 차승원의 표정과 제이의 표정을 비교하며 감탄하며 말했다.


제이는 차승원과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시원하면서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기 위해 얼굴근육을 모조리 사용했다. 표정이 풍성한 제이는 과장하여 기괴한 표정을 더했다. 시간이 지나자 초반의 고통스러워하던 표정은 쾌락이 더해진 평화로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30분간 담그고 빼자 제이의 발은 슈렉과 같이 시퍼레졌다. 발톱은 더 진한 민트색과 어두운 파란색의 중간 단계의 색으로 물들었다. 이런 발을 마주하게 될지는 몰랐다.   


서준이는 며칠 전부터 발가락이 가렵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며칠을 넘겼는데 어느 날 보니 발가락 부분에 수포가 올라오고 아이는 가렵다고 난리다. 무좀이 옮은 것이다. 서준이는 아빠와 함께 거실 욕실을 쓰고 거실화를 공유하고 수건을 공유하기 때문에 옮은 것으로 보인다. 서준이의 탐스러운 앞머리를 들춰 이마를 까보면 여드름이 송송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이제 제법 컸는지 여드름도 나고 어른이 걸리기 쉬운 것들에 점점 걸려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무좀이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거실욕실은 서준이와 제이만 쓰는 것이 아니라 쌍둥이 민준이도 쓰고 있는데 서준이만 무좀이 옮은 것이다.


이상한 점이다.


같은 쌍둥이라도 서준이만 비염이 더 심하고(이것도 아빠에게 물려받은 유전의 소산) 무좀이 생긴 것. 민준이는 비교적 멀쩡하다.      


우리 집은 두 명씩 짝꿍을 이루는데 쉽게 ‘돼지파와 말라깽이파’로 나뉜다. 돼지파에는 제이와 서준이, 말라깽이파에는 나와 민준이다. 물론 돼지파라고 정말 돼지처럼 뚱뚱한 피하지방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보통 체격인데 식성이 돼지들의 수장이라도 된 듯 왕성하다. 이에 반해 민준이와 나는 비교적 입이 짧고 비위도 약하다.


돼지파들은 ‘비위’라는 단어의 존재는 모르는 듯(전혀 언급해 볼 일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맛이라도 먹을 것이라면 모두 먹어치울 수 있는 놀라운 식성을 자랑한다. 나와 민준이는 조금이라도 맛이 이상하면 비위가 뒤틀려 음식을 밀어 두는데 그 밀어둔 것을 이 둘이 다 먹어치운다.      


그런데 이렇게 왕성한 식성이 비염과 무좀 같은 증상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너무 많은 것을 먹으니 안 좋은 것도 많이 먹게 되고 그런 것들이 몸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게 다 많이 먹는 종족들에게 벌어지는 참사라고. 어찌 됐건 서준이에게 무좀이 생겼다.     


전문가라며 제이가 나섰다. 약을 사러 규모가 큰 약국으로 약쇼핑을 하러 갔다. 약국에 들어서자마자 제이는 무좀코너로 당당하게 향했다. 그리고는 뿌리는 약, 바르는 약을 가려운 증상이나 수포의 정도에 따라 고심하여 약을 고르기 시작했다.


약사를 부르더니 진지한 표정이 되어 전문적으로 무좀증상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지켜보는 나로서는 더러운 것에는 역시 잡지식이 풍성하군, 하며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평생 알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놀랍도록 다양하게 진열된 무좀약들을 훑어보고 있다. 무좀 인구가 이리도 많군.

대단해 정말.     


집으로 돌아와 서준이 발가락에 무좀약을 발라주었다. 이런 것을 매일 해주어야 하다니 비위가 약한 나로서는 참으로 힘든 상황이다. 제이에게 약 바르는 일을 비롯하여 서준이 무좀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임무를 맡겼다. 그런데 늦은 퇴근이 많고 저녁 약속도 많은 제이가 규칙적으로 약을 발라주기 어려웠다. 다시 나의 임무가 되었다. 제이는 나에게 서준이 무좀에 대해 맡겨두고는 지금 자기는 말짱한 상태라고 자랑하듯 뽀얀 발을 드러냈다.


무좀도 감기처럼 균을 옮겨주면 원인이 된 사람은 곧 나아버리는 것일까? 불쌍한 어린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왠지 제이가 얄밉다. 제이는 이제 무좀이 생기면 알아서 관리를 하여 깨끗한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심은 금물이다. 곧 재발할 테니 지금 무좀의 비시즌 기간이라 하여 방심할 수 없다.


제이가 서준이에게 무좀균을 옮겨준 덕에 우리 집 약 진열대에는 무좀약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하여 무좀라인을 유지하고 있다. 상시 필요하기에 우리는 약 보관함에 넣어 둘 필요 없이 보이는 곳에 진열해 두어야 한다. 보이는 곳에 두어야 약 바르는 것을 잊지 않으니. 청소기를 돌리다 제이의 공간에서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무좀 라인을 발견한다. 정이 뚝 떨어져 청소기도 돌리고 싶지 않아 그대로 나온다.      


서준이는 좀처럼 무좀이 낫지 않았다. 아이는 가려워하고 약은 효과가 나지 않아 피부과에 들렀다. 신규로 생긴 피부과는 주로 미용시술을 하는 피부과로 무좀 때문에 초등학생 아이가 왔다고 하니 의사 선생님께서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갑자기 두꺼운 책을 펼치면서 그때부터 무좀을 다시 공부하는 것 같아 보였다. 약과 함께 먹으면 효과가 빠른데 소아에게 약 처방을 해 준 적이 없다며 두꺼운 책을 읽어보며 잠시 고민을 했다. 잘못 찾아온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집에 무좀 있으신 분이 있나요?”


의사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애 아빠가 무좀이 있어요.”


“그럼 애가 아니라 원인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의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슬며시 웃으며 얘기했다.


“아버지 먼저 치료를 하셔야 될 것 같아요. 근본을 잘라야 하거든요. 그리고 욕실에서 욕실화나, 수건 등을 함께 쓰시면 안 됩니다.”


나는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나 혼자 안방 욕실을 쓰고 있었는데 무좀균을 피해 아이들이 모두 안방 욕실을 사용하게 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우선 아직 피해를 입지 않고 살아남은 민준이 만이라도 구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는 특별한 해결방법을 얻지 못하고 연고 하나만 처방받아 돌아왔다. 아침저녁으로 성실하게 약을 바르고 무좀 원인자와 분리하여 욕실화와 수건을 사용해야 하며 그것들을 햇볕에 말리는 작업을 함께 해야 한다는 생활습관만을 얻었을 뿐이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욕실화와 수건을 색깔별로 주문했다. 그리고 서준이게 말했다.


“서준아 우선 민준이는 엄마랑 욕실을 써야 할 것 같아. 민준이까지 옮기면 안 되잖아.”


서준이는 진료 때부터 아빠 때문에 자신이 이런 고생을 하게 되었다고 대로하고 있었다. 이미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태다.


“엄마 이거 좀비처럼 엄마랑 민준이만 감염이 안된 거야?! 나는 아빠한테 좀비처럼 감염된 거잖아!”


듣고 보니 그렇다. 좀비와 마찬가지다. 우선 생존자는 살아남아야 한다. 서준이도 감염됐다면 아무리 돼지파가 아니더라도 나와 민준이도 조심하긴 해야 한다.


“서준아 그래도 치료약이 있잖아. 우선 약을 잘 발라보자.”


“엄마 나 좀비 됐다고 피하는 거는 아니지?”


“당연하지. 그리고 발만 문제니까 안아주고 이런 것은 다 괜찮아.”


서준이는 다소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다음 날 주문한 대로 욕실화와 수건이 도착했다. 우선 제1 감염원인 제이는 기존에 쓰던 수건을 몰아서 쓰게 하고(새 수건 사주기도 아깝다) 현재 감염?된 서준이는 노란색 수건을 쓰게 했다. 욕실화도 노란색으로 주문하여 서준이는 노란색이 되었다. 그리고 생존자인 나와 민준이는 핑크색 수건을 사용하기로 했다. 서준이는 아빠와 수건과 욕실화를 따로 사용하게 되어 다소 안심하는 것 같았다. 욕실 발판도 아예 없애 버렸다가 서준이가 물이 흥건한 상태로 자꾸 나와서 서준이 전용 욕실발판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럼 제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보는 발판을 건너뛰어나와.”


제이는 샤워 후 욕실을 나올 때 서준이 전용 발판을 건너뛰어 자신이 사용한 수건으로 발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다. 욕실을 나올 때 다리를 컴퍼스로 큰 원을 그릴 때처럼 큰 각도를 만들어 뛰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무좀을 끝장내는 데는 하루 이틀로 될 일이 아니다. 장기전이다. 겉으로 수포나 증상이 보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균은 살아있기에 한동안은 계속 발라주어야 한다고 약사는 얘기했다. 매일 저녁 무좀약을 발라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할 일이 많아 깜빡 잊기도 하고 너무 피곤하기도 하여 드러누웠다가 생각이 나기도 했다. 저녁만 되면 빠르게 방전되는 내 체력상 이제 체력이 왕성한 서준이에게 스스로 약을 바르게 했다.       


며칠 후, 서준이가 손이 가렵다고 한다. 손을 보니 수포가 일어났다. 나는 알레르기인가 싶기도 해서 집에 있던 알레르기 약을 먹였다. 보통 약을 먹으면 바로 증상이 완화되는데 서준이는 여전히 가려워했다. 바빠서 이 소식을 듣지 못했던 제이가 이틀쯤 후에 서준이의 손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이거 무좀이야.”


제이는 뭔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뭐? 손에도 무좀이 걸려?”


나는 놀라운 소식에 눈이 커져서 말했다.


“발에 약을 바르다가 옮은 거지.”


“아니 내가 발라줄 때 내 손은 멀쩡했는데.. 그럼 손에도 약을 발라야 해?”


“아니 손은 자주 씻고 공기 중에 노출되어 있으니까 괜찮아. 원래는 수포를 터트려야 해.”


그러면서 본인도 물론 손에 무좀이 생겨봤다며 경험담을 얘기했다. 이런 쪽으로는 아는 것이 없으므로 제이의 말을 듣는 수밖에 없었다. 무좀이 발에서 손으로 옮겨가다니, 충격적인 사실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서준이 스스로 바르는 것을 중단시키고 다시 내가 발라주기로 한다. 나도 이제 조심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면봉을 사용해 약을 발랐다.


서준이는 손이 가렵다고 난리였으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며칠을 지켜보다가 수포를 좀 터트려보기로 했다. 서준이는 수포가 터지는 것이 무서워 미뤘으나 이제 방법이 없다. 이것은 조금 더러워서 더 자세히는 얘기하지 못하겠다. 쓰고 있는데 다시 비위가 상하기 시작했으므로...

사실 무좀 얘기가 이리 길어질 줄은 몰랐다.(가족간에도 무좀의 상도덕을 지켜야한다는 차원에서 너그런 이해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