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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디김 Oct 08. 2024

한식뷔페의 반전, 세상은 아직 살만 해

아이들과 남은 시간 D-9년 

시계는 정오 가까이 11시 50분을 지나고 있다. 어김없이 오전 틈틈이 점심메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은 새로운 식당으로 코다리 요리를 먹기로 한다. 차로 7분 거리에 있는 코다리 식당으로 향했으나 네비에 도착지점으로 표시된 그 집은 국밥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메뉴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딱히 생각나는 메뉴는 없었으므로 식당가로 가서 마음에 끌리는 대로 먹기로 한다. 


식당가로 향하는 길에 며칠 전에 발견한 깔끔한 돈부리 집이 생각나 그곳을 찾아간다. 간판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도 잠시, 내부는 깜깜했다. 오늘은 월요일. 식당가 휴무가 많은 월요일이었고 이 집도 오늘은 휴업상태였다. 이로써 우리는 두 번째 식당에서도 점심 먹기에 실패한다. 오늘따라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식당가라 식당은 많았으나 마음에 드는 식당도 없거니와 주차할 곳도 많지 않아 식당가를 두 바퀴 채 돌다가 ‘점시 딱 한 끼 7,000원’ 한식뷔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며칠 전에도 눈에 들어온 간판인데(제목이 너무 매력적이지 않은가) 우리는 항상 그 간판을 앞에 두고 그 앞의 돈가스집이나 순두부집을 갔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우주가 우리를 그 간판 앞으로 이끄는 듯했다.      


2층에 위치한 한식 뷔페 집. 우리는 공사장 근처의 함바 집이나 기사식당을 즐겨 찾는다.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메뉴, 한식뷔페에 입문하면 좀처럼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평소 저렴한 가격과 놀라운 가성비를 제공하는 한식뷔페를 자주 찾는 우리지만 이처럼 매력적인 간판을 자랑하는 한식뷔페에 바로 가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에 한식뷔페에 가서 실망을 한 기억 때문이다.      


그곳은 처음 들어섰을 때는 놀랍도록 많은 반찬 수에 눈이 휘둥그레져 기쁜 마음으로 접시의 공간을 계산해 가며 치밀하게 반찬을 담으며 나는 설레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반찬이 접시를 다 덮을 무렵 곧 이성을 찾았고 자리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을 때부터 식당 구석구석의 비위생적인 모습이 눈에 들어와 금세 식욕을 잃고 말았다. 


평균 45세 이상의 아저씨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다들 매우 배가 고픈 상태에서 온 모양인지 정말이지 맛있게 먹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식욕을 잃어갔다. 어찌 됐건 최근에 갔던 한식뷔페에서의 안 좋은 기억으로 인해 요 근래 한식뷔페를 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모든 가게들이 우리가 오는 것을 피하고 이 가게만이 우리가 가야 할 곳이라는 강한 신호를 받았으니 나는 그곳에 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찜찜한 마음으로 차에서 내려 이를 쑤시며 나오는 아저씨들이 나오는 그곳을 뚫고 올라간다. 나이가 들면 치아도 일을 많이 해서 치아와 치아사이가 벌어지는 것인지 중년이상의 남녀가 즐겨 찾는 식당에 서면 하나같이 식후에 이를 쑤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화도 잘 안되는데 길거리에서 이를 쑤실 수밖에 없는 치아상태가 된다니, 밥을 먹는 것도 쉽지 않군.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에서 남녀가 바라보고 이를 쑤실 수 있다니, 슬픈 일이다.(물론 나만이 느끼는 슬픔일 수 있겠다)      


어찌 됐건 나는 그 사이를 뚫고 2층으로 올라간다. 한 할머니가 난간을 붙잡고 조심스레 내려온다. 역시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곳이군, 젊은이들이 찾을 만한 매력적인 식당은 아니지. 그런데. 뭔가 이상한데? 2층 식당 입구에 다다른 나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식당 입구의 와인렉에 와인이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층층이 누워있었다.       


함바 집에 와인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순간 발이 완전히 식당 안으로 들어섰고 나의 동공은 엄청나게 확장되었다. 전체적으로 은은한 주광색 조명에 고급 한정식이나 중국 요리 집에서 볼 수 있는 정갈한 테이블 사이로 매화나무가 우아함을 드러내며 식당 곳곳에 보기 좋게 줄기를 뻗고 있었다. 한가운데 위치한 배식 대 옆으로는 개별공간이 나뉘어 있었는데 방마다 **관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는 좌식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테이블 아래로는 공간이 있어 다리를 펼칠 수 있는 고급 일식집의 의자가.       


이건 뭐지? 


내 평생 이런 함바 집, 한식 뷔페는 본 적이 없다. 카드가격이 8,000원인데 현금을 내면 7,000원이다. 나와 남편은 합쳐 14,000원을 입금했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미모의 젊은 알바생 마저 이 세상 미소가 아닌 듯 한없이 온화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으며 “현금으로 하시면 7,000원이에요.”라고 얘기한다. 그 미소에 홀려 계좌이체를 한다. 뭔가 다른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접시에 음식을 담는다. 눈을 들어 멀리 배식대의 마지막 지점을 확인하고는 신중하게 반찬 놓을 공간을 배치한다. 그럼에도 공간이 부족하다. 나는 스타트 지점에서 너무 많은 양의 반찬을 올려놓은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마지막 지점에 다다랐고 공간이 부족하여 반찬 위쪽으로 2층을 만들어 반찬을 올려놓았다. 완만한 피라미드 모양처럼 음식이 쌓였다.      


사람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우아하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배식대 한가운데 위치한 가장 큰 매화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하얀색의 매화꽃이 실물 버금가게 단아한 매력을 자랑하는 나무아래 앉으니 이곳이 7,000원의 한식뷔페가 맞는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 많은 메뉴를 담았는지 궁금하여 주변을 살펴본다. 


이런,, 사람들은 접시 두 개를 사용했다. 나는 너무 저렴한 가격에 접시 두 개를 사용하는 것은 죄악이라 생각하여 한 접시에 신중하게 담았는데 사람들은 과감하게 두 개의 접시 가득 음식을 담았다. 이쯤 되니 내가 주인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주변을 더 둘러보니 저쪽에 계란이 여러 판 쌓여있고 그 앞으로 프라이팬이 버너 위에 놓여있었다.      


‘셀프 계란프라이 존’


나는 다시 놀라 눈이 한 차례 더 휘둥그레졌다. 그런데 그 옆에 수북이 쌓인 라면까지 보인다. 이제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라면까지 끓여 먹을 수 있다고! 이럴 수가..       


나는 요즘, 더 이상 세상에 놀라운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는 냉소를 갖고 지내왔다. 젊을 때에는 가질레야 가질 수 없었던 우울증도 살짝 겪고 있다. 얼마 전 건강검진 결과 몸에 자궁근종도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무기력이 더욱 커졌고 별것 아니라는데도 혼자 큰 병이라도 앓고 있는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 어떤 일에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여행이고 쇼핑이고 다 재미가 없어졌다.(물론 그럴 돈도 없음 때문이겠다) 그런데 근래 들어 가장 놀라고 다양한 감정을 바로 이곳에서 느꼈다. 요즘 눈 뜰 힘도 없는데 이곳에서 눈이 몇 차례나 최대 크기로 커졌는지 모르겠다.      


나는 놀란 마음을 가지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제야 우아한 음악소리가 들린다. 클래식은 아닌데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이다. 음악이 있는 함바 집이라.. 이곳은 역시 뭔가 특별하군. 사장님께서 철학이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은 아직 살만하고 이렇게 철학을 가지고 식당을 운영하는 분도 있구나, 하며 또 생각한다. 


계란 프라이도 주지 않고 라면도 주지 않으면 더 많이 남겠지, 가격이 천 원 더 비싸더라고 더 남을 것이고, 그렇게 해도 여전히 사람들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을 만하다. 그렇지만 사장님은 덜 남기는 길을 선택한 것 같다.(물론 잡생각이 원체 많은 나는 쓸데없이 깊은 생각을 한 것이겠지만) 


물가가 한없이 올라 생각 없이 외식을 하다가 카드 값이 날라 오면 밥 먹은 것을 후회하고, 경건하게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결심을 하는 요즘, 이 식당은 밥 한 끼로 후회가 아닌 기쁨을 주는 곳이다. 오늘 점심은 무료한 나의 일상에 굉장히 임팩트 있는 경험으로 다가왔다. 세상은 아직도 놀랄 만한 일이 많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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