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남은 시간 D-9년
서준이가 어제부터 오른쪽 눈이 가렵다고 한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빨개졌다. 전문 안과는 근처에 없었으나 소아과, 내과, 안과, 정형외과, 피부과를 모두 한 곳에서 진료가 가능한 의원이 있어 찾아갔다.
병원은 2층에 위치해 있었다. 처음 왔기에 인적사항을 적고 잠시 기다렸다. 먼저 온 사람들이 대략 6~7명 정도 있었다. 모두들 병원에 온 사람들 답게 모두 아픈 기색이 역력하다.
갑자기 괄괄한 목소리의 원장님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3명씩 사람들을 불러서 진료실 앞 대기석에 앉혔다. 40대로 보이는 남자 원장님은 활기가 넘쳐 보였다. 큰 목소리로 짧게 짧게 외친다. 3명의 대기 인원은 원장님의 지휘 아래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병원을 많이 다녔지만 이런 분위기의 원장님은 처음이다. 원장님은 대개 진료실에 앉아 있고 접수원 분들이 이름을 부른 후 진료실 앞에 앉는 게 당연한 그림이었는데 여기 원장님은 수시로 튀어나왔다.
진료실에서 괄괄한 목소리로 웃는 소리가 접수데스크까지 들려왔다. 의사 선생님이라기보다는 군대에 더 어울리는 우렁차고 활기찬 목소리다. 원장님은 거의 매번 한 사람 진료를 보고 튀어나와 사람들을 점검하거나 접수직원과 큰 소리로 대화를 했다.
졸음 방지로 저렇게 움직이시는 건가, 아님 운동부족을 방지하기 위한 것? 나는 신기한 장면에 감탄하고 있었다. 아, 이런 종류의 의사 선생님도 있구나. 꼭 명랑만화에 나올 법한 분이다.
“서준이 들어와라, 어머님도 같이 오세요.”
드디어 우리가 호명되었다. 진료실에서 만난 원장님은 자신의 공간에서 더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서준이 어디가 아파서 왔어?”
“서준이가 어제부터 오른쪽 눈이 계속 간지럽고 가렵다고 해서요.”
“어디 보자.”
서준이 눈을 불빛으로 비춰 들여다보고는 얘기했다.
“아 알레르기 반응이에요. 이거는 약 먹으면 금방 가라앉아요.”
그리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서준이 몇 학년이야?”
“3학년이요.”
“어디 학교에 다녀? 공부 잘하고 있어?”
선생님은 마치 알고 지내던 이웃처럼 친근하게 말을 시켰다. 그런데 어딘가 시장에서 장사 잘하시는 사장님 같은 시원시원한 말투다.
그동안 내가 경험한 진료는 오랜 시간의 대기, 5분 안에 끝나는 짤만한 처방이 대부분이다. 이런 종류의 친근함과 웃음이 있는 진료는 처음이라 낯설고 신기했다. 특히 말투가 너무 인상적이다. 발성 연습을 충분히 한 연극배우 같다. 목소리가 매우 크고 잘 들린다.
약국으로 들어갔다. 약사님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여자분이셨다. 이 여자 약사님도 친절하게 약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며칠 전에 근처 다른 약국을 갔을 때도 해열제의 종류에 대해 꽤나 자세히 설명해 주고 표시까지 해주셨는데 이 약국 역시 친절하다.
제이는 병원 앞에서 차를 대고 나와 서준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차 문을 열고 흥분하여 얘기했다.
“여보, 이 병원 원장님 정말 특이해. 아니 나쁜 쪽으로 특이한 게 아니라 좋은 쪽으로. 엄청 에너지 넘치고 활기차. 무슨 개그맨 같은 느낌이야.”
그리고는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병원 후기를 찾아보았다. ‘원장님이 재미있어요.’ 란 후기가 눈에 띄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이것 봐. 후기도 좋네. 그리고 이 동네는 약사들도 모두 친절해. 이상한 동네 같아.”
나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동네가 다 똑같지.”
제이는 웃음을 띠며 얘기했다.
“아냐 이 동네는 새로 생긴 동네라서 그런지 그동안 살던 데랑 분위기가 약간 다른 것 같아. 새로 오픈 한 빽다방 알바생도 엄청 친절했잖아.”
“네가 친절한 사람을 하도 못 봐서 그래. 친절함이 신기함으로 다가온 거지.”
“그런가? 아무튼 신기한 동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