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디김 Oct 05. 2024

자궁이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아이들과 남은 시간 D-9년

2년마다 돌아오는 건강검진, 어느새 또 2년이 흘렀다. 건강검진 중에 있는 자궁경부암 검사. 2년 전 자궁경부암 검사 때 자궁경부염 치료를 하며 자궁근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근종은 30~40대에 흔한 것으로 별다른 증상이 없을 경우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 근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뭔가 큰 병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 같았고 나이 들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앉는 횟수가 지나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그 의자에 앉아서 치마를 걷어 올렸다. 그러자 배 위에 세워두는 미니 간이 커튼이 세워졌다. 커튼이 나의 배를 닿는 것과 동시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많은 사람을 검사하는 건강검진이기에 일일이 얼굴을 대하지 않고 바로 검사를 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아무래도 남자가 검사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배 위에 커튼을 치고 얼굴을 보지 않고 진료를 보는 것인지도.       


“근종이 있는 거 아시죠? 4cm 정도로 보이네요.” 모니터를 보고 의사는 말했다.


“4cm라고요? 2년 전에는 2cm였는데.. 그 사이에 2배 가까이 자랐네요.”


나는 고개를 어디로 해야 될지 몰라 잠시 고민하다 아래로 시선을 돌리니 커튼 위로 의사 선생님의 머리가 보였다. 의사 선생님은 더 자세한 크기를 재기 위해 모니터상의 자로 재어보고 말했다.  


“3.8cm라고 합시다.”


합시다, 뭔가 협상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아니 나는 누워있지만)것 같다. 의사 선생님은 약간 로봇에 빙의된 듯하다. 하도 많은 사람들의 질을 검사해 온 탓이리라.  


“몇 cm정도 되어야 수술이 필요할까요?”


주변에서 절제수술이나 자궁근종에 대한 수술을 많이 해서 물어본 말이다.  


“자궁근종은 길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아기는 낳으셨나요?”


“네.”


“몇 명 낳았나요?”


“두 명이요.”


“더 낳으실 건가요?”


“아니요.”


“그럼 자궁이 필요 없겠네요. 자궁은 기능을 다 하였다면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


“필요가 없으니 근종이 재발하거나 너무 커지면 제거하시면 됩니다.”


자궁은 필요 없으면 그냥 제거하면 되는구나. 자궁은 여자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생각했는데 그냥 아기 낳는 기능을 다하면 없어도 되는 거였구나. 그러면 호르몬이나 그런 거에는 상관이 없을까? 갑자기 여자가 아닌 그냥 껍데기만 남는 기분이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생리량이 많거나 빈혈이 있으시거나 다른 증상이 있습니까?”


질 초음파를 하는 와중에 의사와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대화를 하기에는 불편한 자세지만 배 위로 귀여운 간이 커튼이 쳐져 있어서 의사의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전화 통화를 하는 기분이다. 목소리로는 적어도 50살은 넘어 보인다.   


“아니요. 별 다른 증상은 없어요.”      


사실 나는 ‘배가 나오고 있어요. 배가 나오는 것도 근종의 증상인가요?’를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 질 속으로 뭔가가 들어가 있고 그것을 사이에 두고 이런 종류의 질문을 한다는 것이 뭔가 이상해 보여서 더 이상 질문은 하지 않았다. 돌아온 답이 그건 ‘단순한 살입니다.’ 일 수도. 이런 꼴로 누워서 그런 답을 듣는다면 집에 맨 정신으로 돌아갈 수 없을 듯싶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나는 자궁과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근종이 2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은 나에게는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자궁근종은 무럭무럭 잘 자라나고 있었다. 내가 근종이 자라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궁을 없애다니. 주변에 나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사람들은 그럴 경우를 많이 봤는데 내가 벌써 그런 것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도 근종 때문에 이미 40대에 자궁을 드러냈어.”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엄마가 40대라면 내가 고등학생 때쯤일까? 엄마도 나와 같은 이런 오만가지 생각의 교차,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었구나. 그나마 나는 얘기를 들어줄 남편이라도 있다. 하지만 엄마는 이혼을 앞두고 있었고 생계를 책임지느라 이런 것들은 깊이 고민할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결혼생활의 실패, 나이 들어가는 몸,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 무거운 짐. 그것 앞에 자신의 자궁근종은 얼마나 작은 일이 되어버렸을까? 나를 시작으로 사춘기 자녀들이 셋이나 있었고 우리들은 우리만의 불행의 세계만 생각했다. 엄마의 자궁의 상황 따위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말에 생각이 너무 많아졌고 그대로 힘이 풀려버렸다. 엄마 몸속에 자궁이 없다는 사실을 20년 만에 안 나의 무관심함에 온몸이 부끄러움을 느꼈다. 엄마에게 자세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충 아이 밥을 챙겨줘야 한다고 얘기하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는 20년 만에 엄마의 자궁에 대해, 여자로서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이전 01화 이사, 전학 첫날, 두 번의 전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