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데 아파트라니...
2020.5.13
아파트 연세 계약
( 6월 초에 이사를 해야 한다. 이사 준비 기간은 3주 남짓. )
남편과 함께 아침 일찍 제주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전날 부동산에 연세로 계약할 집을 임장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 *연세 : 1년 치 월세를 미리 지불하는 방식, 월세보다 조금 저렴한 이점이 있다. ]
남편과 나는 몇 달 동안 이사할 집을 찾고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제주에서는 주로 신구간에 이사를 가기 때문인지
매물 자체가 많지 않았고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
[ *신구간 : 제주도 세시풍속 중 음력 정월 초순경을 전후하여 집안의 신들이 천상으로 올라가 비어 있는 기간.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로 보통 일주일이 된다.
이 기간에는 이사나 집수리 등 여러 가지 금지된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 ]
제주 이사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알고 있던 부동산에 전화해 보니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에 올리기 직전의 따끈따끈한 신상 매물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착한(?) 가격에 말이다.
집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없이 나는 무작정 비행기표부터 예매했다.
물론 그 동네 분위기나 아파트 평수 정도는 알고 있었다.
부동산 실장님을 따라서 해당 동호수를 확인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빈 집이라서 부담 없이 안으로 향했는데...
"와우!!!"
이 집은 범섬과 문섬이 파노라마 뷰로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코너 오션뷰를 자랑하는 집이었다.
큰 기대를 갖고 방문한 집이 아니었기에 환상적인 뷰가 주는 감흥은 정말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집 상태도 깔끔했고, 무엇보다 연세 가격이 시세보다 저렴했다. 집주인이 천사인가 싶었다.
나는 두 번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물론 꼼꼼한 성격의 남편은 내 옆구리를 계속 찔러대며 점심 먹으며 천천히 생각해 보자 했지만,
내 손은 이미 도장을 찍고 있었다.
이 집은 집주인이 매도를 위해 노력했으나 잘 되지 않아서 잠시 연세로 내놓은 집이었다.
빈 집이었기 때문에 빠른 이사를 원했다. 우리는 한 달 안에 이사 올 것을 약속했다.
이 말은 한 달 안에 이사 준비를 해야 하고
(육지에서 제주로의 이사는 준비하고 신경 써야 할 것이 만만치 않았다.),
남편의 사업체도 정리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미 조금씩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완전 폐업은 다른 문제였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이 와중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주공항에서 보는 일몰은 한없이 그윽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