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크게 쉬어요!
몇 년 전,
파주에 있는 한 수도원에서 하는 피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애니어그램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직장인들도 참석할 수 있도록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하여
일요일에 끝나는 일정으로 짜여 있었다.
첫날은 참석자들이 강사 선생님의 리드 하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참석자들의 나이, 직업, 성별 및 종교 등이
어찌나 그렇게 다양한지,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한 날, 한 시, 한 장소에
모여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젊은 직장인들부터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아주머니?),
수녀님, 수사님, 기독교인, 불교신자, 무신론자 등등...
그중 가톨릭신자이며 현직 교사인 나도 있었다.
자기소개라는 것이 뭐 별거던가?
00 성당 소속이며, **고등학교 교사로 영어를 가르친다.
뭐 기타 등등 몇 마디 하면 될 것을...
그날, 자기소개 시간,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상하게 머리가 아득한 것이
내가 누군지를 모르겠는 것이다.
"너는 누구냐?"
라는 질문에
나는 심각한 수준의 현기증을 느꼈다.
그때의 그 마음을 표현할 만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두려움 같기도 하고,
허무함 같기도 한 그 깊은 어두움은
무엇이었을까?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물만 흘리고 있던 나에게
뒤에 계시던 수녀님이 앉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에 그냥 안심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날의 자기소개 시간에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이
왜 나에게는 단순하고 피상적인 질문으로 들리지 않고,
내 모든 가식과 가면을 다 벗어던지고 난 후의
"너는 진짜 누구냐?"로 들렸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수년이 흐른 지금,
나는 그 질문에 고개를 떨구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가?
뭐 대단하게 답할 것은 없지만,
지금은 눈물을 흘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냥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나는 초록의 풍경을 좋아합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며,
멍 때리기 선수예요.
계획적인 여행보다
기웃거리는 여행이 좋아요.
좀 느리고 게으른 것 같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 사랑하는 일에는
열정을 다 할 줄 알아요.
호기심은 많은 데 싫증을 잘 내요.
하지만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한 일에는
참고 견딜 줄도 안답니다.
조급증이 있기 때문에 쉽게 지쳐요.
이 부분을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떻게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크게 내쉬면 됩니다.
나는 지금 쉬는 이 숨에 집중하고
이 순간을 살며,
오늘을 살아가는 게으른 달팽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