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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클써니 Nov 23. 2022

너는 누구냐?

숨을 크게 쉬어요!

몇 년 전, 

파주에 있는 한 수도원에서 하는 피정에 참여한 적이 있다.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애니어그램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직장인들도 참석할 수 있도록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하여

일요일에 끝나는 일정으로 짜여 있었다.


첫날은 참석자들이 강사 선생님의 리드 하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다.

참석자들의 나이, 직업, 성별 및 종교 등이

어찌나 그렇게 다양한지,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한 날, 한 시, 한 장소에

모여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젊은 직장인들부터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아주머니?),

수녀님, 수사님, 기독교인, 불교신자, 무신론자 등등...

그중 가톨릭신자이며 현직 교사인 나도 있었다.


자기소개라는 것이 뭐 별거던가?

00 성당 소속이며, **고등학교 교사로 영어를 가르친다.

뭐 기타 등등 몇 마디 하면 될 것을...


그날, 자기소개 시간,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냥,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상하게 머리가 아득한 것이

내가 누군지를 모르겠는 것이다.


"너는 누구냐?"

라는 질문에

나는 심각한 수준의 현기증을 느꼈다.

그때의 그 마음을 표현할 만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두려움 같기도 하고,

허무함 같기도 한 그 깊은 어두움은

무엇이었을까?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물만 흘리고 있던 나에게

뒤에 계시던 수녀님이 앉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에 그냥 안심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날의 자기소개 시간에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이

왜 나에게는 단순하고 피상적인 질문으로 들리지 않고,

내 모든 가식과 가면을 다 벗어던지고 난 후의

"너는 진짜 누구냐?"로 들렸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수년이 흐른 지금,

나는 그 질문에 고개를 떨구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가?


뭐 대단하게 답할 것은 없지만,

지금은 눈물을 흘리지는 않을 것 같다.

그냥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나는 초록의 풍경을 좋아합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며,

멍 때리기 선수예요.

계획적인 여행보다 

기웃거리는 여행이 좋아요.

좀 느리고 게으른 것 같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 사랑하는 일에는

열정을 다 할 줄 알아요.

호기심은 많은 데 싫증을 잘 내요.

하지만 인내심과 끈기가 필요한 일에는

참고 견딜 줄도 안답니다.

조급증이 있기 때문에 쉽게 지쳐요.

이 부분을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떻게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크게 내쉬면 됩니다.

나는 지금 쉬는 이 숨에 집중하고

이 순간을 살며,

오늘을 살아가는 게으른 달팽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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