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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Kim Jul 20. 2020

작별

고마운 꼬마 선생들

눈칫밥 먹으면서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하다 보니 또 적응을 하게 된다.

매일 9시간씩 살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게 되더라. 

어느 순간 선생님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내 입도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았다.


사실 유치원 일은 막노동이라고 해도 될 만큼 체력 소모가 크다.

놀아주고, 손 씻기고, 야외놀이 시간에는 일일이 선크림도 발라주고, 특히 호주는 햇볕이 너무 강하니까 모자도 필수다. 그런 다음, 밥 먹이고 밥 먹은 거 치우고, 잠잘 준비하고, 아이들 개인 간이 베드가 다 있어서 일일이 인원수만큼 다 펼쳐야 한다. 그리고 대망의 잠재우기는 보통 일이 아니다. 

엄마들은 이해하겠지... 


그런데 내게 맡겨진 임무는 애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란 사실을 잊지 말라규^_^


아이들은 한 방에 각자 자는 곳이 따로 지정되어 있다. 

소등을 하고 나면,  잘 자는 애들은 혼자서도 잘 자는데 안 자는 애들은 정말 내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한다.

자장자장해주며 등이나 가슴을 살살 토닥여주는데 몇 십분씩해도 안자는 애들이 있다.

손목 나갈뻔^^


특히 잠투정이 많은 아이들은 소리 지르고 울면서 잘 자고 있는 애들까지 다 깨우기 십상이다. 

그럴 때면 진짜 꿀밤을 한대 콱 때리고 싶다. 


'좋은 말할때 자라.....'


참을 忍 


하지만 그렇게 미운 짓 하다가도 울다 지쳐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잠든 모습을 보면 천사가 따로 없다. 

엄마 미소가 절로 나온다.


이렇게 일이 힘들 때도 많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면 그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한국에서 더럽혀진 내 영혼을 정화시켜주고 치유해 주는 것 같았다.


어느덧 실습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아이들이 평소 나한테 무관심한 줄만 알았는데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It's your last day! I already miss you ㅠㅠ"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며 내가 그리울 거라고 눈물을 글썽거린다. 우는 아이도 있었다. 너무 사랑스럽잖아.. 

한 명씩 다가와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듯 꼬옥 끌어 안아주었다. 내 눈시울도 함께 붉어졌다. 

누군가에게 이런 조건없는 사랑을 받아본 게 언제였던가.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슬프면 슬프다, 화나면 화난다 등 자기 감정표현에 충실한 아이들.  나도 그렇게 살고싶다.



지난 한 달간 그들은 나의 선생님이었다. 


나에게 인내하는 법 뿐만 아니라 영어도 가르쳐줬고, 사랑하는 법, 사랑받는 법을 가르쳐 준.. 너무나도 고마운 어린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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