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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ca Kim Jul 17. 2020

잃어버린 나를 되찾다.

모든 질병의 근원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대다수가 대학교에서 단체로 온 친구들이었고, 그 외에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가 그만두고 온 20대 후반, 30대 초반 언니들도 있었다.

나는 졸업반 대학생 친구들과 나이가 한 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지만 몇 년간에 걸친 회사 생활 덕분에 인생의 쓰고 매운맛을 조금 일찍 알아버려서 언니들과 공감대 형성이 더 쉽게 이루어졌다.


이곳에서는 회사에서처럼 나이나 직급 따위가 나를 억압할 수는 없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로움이다. 

더 이상 남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수 있고, 그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고등학교 시절, 신설학교의 1기 졸업생이었으므로 선배가 없는 편안한 학교생활을 했다. 

대학 시절은 나이와 관계없이 대부분 같은 학번이면 친구로 지냈다. 

또 내가 나온 대학의 해당 학과는 꽤나 자유분방해서 2학년 선배의 터치가 전혀 없었다. 

원래 타고난 내 자유의 영혼은 그때 당시 거의 외국인 수준이었는데, 그 자유분방함은 입사와 동시에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입사 동기 언니들에게 나는 늘 그래왔듯이 자연스럽게 반말을 했다.

(존댓말을 씀과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크게 형성되는 것 같아 내 나름대로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기 위한 노하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는 그런 관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걸 당시 사회 초년생이였던 나는 몰랐다.)

이미 일을 하고 있던 선배 언니들과 동갑내기들에게 새파란 신입의 개념 없는 그 모습이 엄청 거슬렸나 보다. 내가 그들의 세계에 오랫동안 전해내려오는 족보를 꼬이게 만든 장본인이었을 테니.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지만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할 수는 없었다.

나는 솔직하고 사차원적인 캐릭터를 가진 사람으로 이미 입사 전부터 회사에 유명 인사였다. (면접 볼 때 마지막으로 들어갔는데 오래 기다린 끝에 배가 너무 고파 면접이고 뭐고 면접관에게 밥을 사달라고 하는 대범함을 보였고 과장님들이 황당해하시며 나 같은 지원자는 처음 본다고 엄청 웃으셨다. 그 후로 긴장감이 완전히 사라졌고, 나는 무슨 개그맨 면접이라도 보러 온 것 마냥 그들을 웃기고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는 합격이었다.)

가식을 떠는 게 죽는 것보다 싫었다. 그래서 그냥 나대로 살려고 하다 보니 더욱 힘들고 외로워졌고 나중에는 결국 내 자아를 보이지 않는 낡은 골방에 숨겨야만 했다.


고분고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싫은 사람 앞에서 억지웃음을 짓고, 당시 억울한 일이 상당히 많았는데 그때마다 혼자 화장실에 가서 엉엉 울곤 했다. 가끔 회의 중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운 적도 몇 번 있었는데 그 때문에 찔찔 짜는 울보라고 불렸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사무실에서 제일 어리고 만만한 여자 직원인 내게 수많은 화살들이 이곳저곳에서 날라왔고 그것들은 어린 내 가슴에 그대로 비수처럼 꽂혔다. 그곳은 전쟁터와 흡사했다. 

다른 부서와 거래 업체는 적군이었다. 서로를 물고 뜯어야 했고 결국엔 목소리 크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라는 평을 받으며 조금 일찍 높은 위치에 설 수 있었다. 


나는 일을 정~말 못했다. 

내게 늘 잘해주시던 아버지뻘 되는 업체 부장님에게 업무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큰 소리를 치며 나쁜 소리를 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분의 입장을 이해하며 얼마나 힘드실까 걱정했다. 

다른 부서에 새로 오신 천사 같던 대리님은 사이코패스 같은 상사 밑에서 하루가 멀다하게 갈굼 당하다가 어느 순간 그 상사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아버렸다. 그 후 나를 매번 무시하며 괴롭히는 그들을 보면서도 연민을 느꼈다.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뻔치좋게 밥 사주세요! 하고 말할 수 있는 그 위풍당당한 내가 아니었고 회사에서 크게 존재감 없는 '꼭두각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 바기오에서는 외롭고 무서운 골방에 숨어지내야만 했던 그 아이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비록 영어라는 목적을 가지고 오게 되었지만, 시작과 동시에 내겐 이미 절반은 건진 셈이다. 

죽은 줄만 알았던 내 자아가 여전히 내면에 살아 꿈틀대고 있었고, 오랜만에 고개를 내밀었다. 

너무 반가웠다. 그간 오랫동안 속 썩이던 병이 다 나은 것만 같다. 

모든 질병의 근원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말이 백 번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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