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던 회사생활을 뒤로하고..
나는 고등학교 때 알아주는 농땡이였다.
남들 다 열심히 수능 공부할 때 나는 놀기 바빴다. 가끔 학교 도서관에서 지루함을 떨쳐내기 위해 책을 읽곤 했는데 그때 내 심장을 뛰게 한 '미애와 루이의 318일간의 버스여행'이라는 책을 시작으로 나도 모르는 가슴 한켠에서 세계여행이라는 로망의 싹이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딱히 꿈이 없어서 졸업하고 구미 출신답게(국가산업단지) 공장에나 취직해서 돈 버는 게 가장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희망직업을 적어냈어야 했는데 대기업 공장 취직이라고 적었고 부모님도 동의하셨다. 나는 문과였는데 당시 나의 담임 선생님은 정말 현실적인 분이셨다. 내가 공부에 재능이 없다는 걸 미리 파악하시고는 단번에 “아주 적성에 잘 맞는 길을 선택하였다.” 고 칭찬해 주셨다.
그런데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공장 취직이 그것도 고졸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의미 없는 시간들을 흘러 보내다가 주변 친구들이 내신으로 대학에 지원하는 것을 보고 휩쓸리듯 그들을 따라 했고, 벼락치기에는 실력이 있었던 모양인지 성적이 아주 바닥은 아니었기에 내신으로 전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물론 그 후로는 물 만난 고기처럼 대학 친구들과 미.친.듯.이. 놀았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놀면서도 만취상태로 집에 기어들어가 새벽까지 시험공부를 했고, 좋은 기회가 생겨 나는 정말 기적처럼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2학년 1학기 여름 방학 때 조기취업이 되어버렸다.
희망하던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친구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인생이 잘 풀리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렇게 꿈꾸던 대기업 생활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활발하고 긍정적이고 사람 좋아하던 내 모습은 오간데 없고, 부정적이고 포악하며 아픈 내 모습만이 남아버렸다. 3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참 많이 변해있었다.
그 당시 일기장에서 나는 회사를 이렇게 표현해놨다.
“7시 30분 지옥 들어가는 시간”
“인생이 이렇게 더러운 것인지 너무 일찍 알아버려서 힘들다.” 등등 나는 고통 속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가족과의 관계가 점점 악화되었고 부정맥도 생겼고 탈모도 왔었다.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술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공황장애가 생겨 지나가는 사람들만 봐도 가슴이 쿵쾅거리고 뒷목에서부터 피가 솟구쳐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머릿속은 수신호가 끊겨 지지직거리는 TV처럼 고장나버렸으며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병원이란 병원은 다 찾아다녔는데 호전될 기미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음의 병이었으므로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원인을 제거해야만 했다. 퇴. 사.
그래도 3년이란 시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스스로를 칭찬할 만한 거리가 하나 있는데 사내 야간대 편입을 해서 영어영문학과 학사를 딴 것이다. 낮에는 죽어라 일하고 밤에는 죽어라 수업을 들었다.
현장관리직을 맡고 있었으므로 나는 보통 월말에는 마감하느라 밤을 지새우며 일을 한 적이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마감일과 겹쳤을 때 나는 이틀 연속 잠을 한숨도 못 자고 바쁜 일과 시험공부 그리고 시험을 쳐야만 하는 어마어마한 스케줄을 견뎌냈고 장학금을 받고 꽤나 좋은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나는 졸업만 하면 영어를 엄청 잘할 수 있으리라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내 영어실력은 전과 별 다를 바가 없어서 내 전공을 입 밖으로 꺼내기 조차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번 기회에 퇴사하고 여행과 영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러 떠나자고.
주변인들의 극구 만류와 회사에서 제시하는 달콤한 유혹을 힘들게 뿌리치고 나는 어렵고도 위험한 그리고 또 외롭디 외로운 그 길을 택하기로 했다. 인생 한 번뿐인데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결론은?
퇴사는 내가 한 평생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뒷장에서 서서히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