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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랑 Mar 13. 2024

저 사실.. 회사에서 우쿨렐레 쳐요

회색 빌딩을 물들이는 하와이안 감성

째깍째깍. 여기 11시가 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아직 점심시간은 1시간이나 남았을뿐더러 다들 한창 일할 시간에 이 사람은 왜 시계만 힐끔대고 있는 것일까.


11시 정각.

드디어 때가 된 듯 벌떡 일어난다.


"저 클래스 다녀오겠습니다."


그렇다. 매주 화요일 점심시간 나는 회사에서 우쿨렐레를 친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쿨렐레 클래스를 듣고 있다. 11시에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11시 30분까지 동호회실로 향한다. 방과 후 직장인은 아니지만 일과 중 직장인도 아닌 모호한 경계에서 회색 자아가 다시 알록달록 채워짐을 느낀다.

우쿨렐레 초급반 인원은 6명. (무려 입문반 수료생들!) 대부분 내 또래의 2030 여자 직원들이지만 50대 남자 부장님도 계신다. 세대가 꽤 차이나다 보니 어떤 노래는 부장님만 알고 우린 모를 때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코드만 있다면 어떤 노래든 연주할 수 있다.


오늘 선생님이 가져온 악보는 '쿨-아로하'.

6명 모두가 알고 좋아하는 노래라 악보를 받자마자 신이 나서 미리 코드를 짚어본다. 오, 꽤나 할만한데?라고 생각했지만 이 곡은 우쿨렐레 연주법 중 '브러시' 기술이 필요해 코드는 쉽지만 조금 난이도가 있다.

그래도 내가 누구? 3개월 기타 학원을 다니며 기본기는 빠삭하게 갖췄을 뿐만 아니라 요즘엔 우쿨렐레에 푹 빠져 하루에 1시간은 꼭 치는 우쿨렐레 광인이다. 내가 바로 우친자. 선생님이 브러시 어려우면 기본 8박자 리듬으로 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과감하게 브러시를 곁들인 칼립소 리듬으로 연주했다.


회사 안에 있지만 잠시 머리 아픈 업무는 잊고 악보와 우쿨렐레 소리에만 집중하는 지금,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다들 쑥스러워 크게 부르지는 못하지만 작은 목소리로 합창하는 모습에 웃음도 퍼진다. 이러니 일주일 내내 이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회사 속 작지만 아주 깊은 나만의 오아시스.


우쿨렐레 클래스를 듣기 전에는 혼자 유튜브를 보며 독학을 하기도 했다. 그땐 몇 번 치다가 같이 노래할 사람도 없고 어디 보여줄 곳도 없어 금세 흥미를 잃었는데 함께 배우니 자꾸만 더 욕심이 난다. 주 1회 1시간이지만 이 소중한 시간을 더 좋은 소리로 채우고 싶어서 인 듯하다.


업무를 하다보면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속상할 때도 있고 내 역량이 그만큼 따라주지 않아 자괴감을 느낄 때도 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너덜해진 마음을 이끌고 동호회실로 간다. 잠시 짬을 내어 우쿨렐레를 치는 시간이 마음을 토닥이는 연고이자 남은 일주일의 예방주사인 셈이다. 화요일, 월요일보다 조금 나은 정도이지만 그래서 자꾸 기다려지나보다.


우리 모두 지친 마음을 잠시 달랠 수 있는 오아시스가 하나쯤 있을 것이다. 상처받고 위로받고 또 상처받고 위로받고. 지겹겠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 그러하다.


만약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면 이 참에 한번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팍팍한 세상살이로부터 날 지켜주는 믿음직한 보호막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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