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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노랑 Apr 07. 2024

실직한 아빠와 매일의 등산

아무것도 모르던 꼬맹이가 아빠를 위로하는 청소년이 되었다

3월 독서 모임에서 리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을 함께 읽었다. 함께 토론하던 중 '만약 우리가 걷기의 인문학을 쓴다면 서론에 적고 싶은 길'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나에게 서론이 될 수 있는 길,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길은 어디일까.


번뜩 떠오른 곳이 있다. 바로 본가 뒤편에 있는 미륵산 등산로다.


초등학생 때부터 소풍으로 늘 가던 곳이다. 등산로 중간에 '띠밭등'이라 부르는 넓은 평지가 있어 그곳에서 도시락도 까먹고 수건 돌리기도 하며 즐겁게 뛰어놀았다. 나는 그중 보물 찾기를 가장 좋아했는데 쨍한 햇볕 아래 쉴 새 없이 나무를 헤집고 다닌 기억이 난다. 나뭇잎 사이로 슬쩍 보이는 쪽지를 찾으면 진귀한 금은보화라도 발견한냥 꽥 소리를 질렀다.


중학생이 되고서는 아무래도 여중으로 진학한 터라 소풍으로 미륵산 등산은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내 인생에 서론이 될 길에 이곳이 떠오른 이유는 바로 아빠와의 기억 때문이다.


중학교 겨울방학, 그 당시 아빠는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지며 부득이하게 실직 상태였다. 엄마는 회사에 가고, 동생은 놀이터에 가고, 집엔 주로 나와 아빠만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학원에 다녀오면 아빠는 등산 갈 채비를 마치고 미륵산으로 향했다. 그럼 나는 혼자 집에 남아 컴퓨터 게임 삼매경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함께 등산을 가자고 제안했다. 오랜만에 소풍 가던 곳에 갈 생각에 들떠 흔쾌히 따라나섰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는 성큼성큼 뛰어 올라가던 곳이 어찌나 힘든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 중간중간 계속 쉬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고를 때 아빠가 입에 넣어주던 차가운 귤이 정말 달고 맛있었다. 그 귤 맛에 중독되어 그 이후로 아빠와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등산을 갔다. 김밥도 싸가고 정상에서 바다도 보고 그 어느 게임보다 더 다채로웠다.


처음과 달리 체력도 많이 올라와 쉬는 빈도도 확연히 줄었다.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장한 것은 체력뿐만이 아니었다. 인격의 성숙도 함께였다.


내가 처음으로 한 번도 쉬지 않고 정상에 오른 그날은 참 축축한 겨울이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흐리고 습한 날씨였는데 자주색 벨벳 트레이닝복에 습기가 묻어 반질반질했다. 그날따라 아빠와 나 둘 다 유독 아무 말없이 산 길에 올랐다. 그 순간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그저 마음을 통해 깨달음이 다가왔다.


'아빠가 많이 힘들겠구나.'


그러고선 아빠가 '아빠'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 당시 나에게 아빠는 아빠였다. 늘 커다랗고 든든한 존재. 하지만 축축한 침묵 속에서 만큼은 나란히 발맞춰 걷고 있는 이 사람이 단순히 '아빠'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40대 초반의 나이. 와이프와 중학생 딸 하나, 초등학생 아들 하나.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잃게 된 직장. 가장의 무게가 어깨에 고스란히 내려앉았을 것이다. 함께 걷는 길 위에서 어렴풋이 그 무게를 나눠 들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나이였지만 그저 곁을 지켜주며 아빠에게 큰 위로가 되고 싶었다.


겨울방학이 끝날 때까지 우리의 등산은 계속되었다. 하루는 엄청 큰 까마귀가 아빠 등 뒤로 날아와 귤을 채갔던 일도 있었다. 둘만 아는 추억을 엄마에게 풀어놓으며 오늘 하루도 아빠는 무탈하게 잘 있었음을 넌지시 드러냈다. 다행히 그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아빠도 새 직장을 찾았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성장했다. 띠밭등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놀던 어린아이가 어느새 아빠를 위로할 줄 아는 청소년으로 한 뼘 자란 것이다. 문득 그 후 또 어떤 길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을지 생각해 본다. 재수 시절, 학원에서 자습을 끝내고 고시원으로 걸어가던 길에서 혼자서도 단단히 서는 용기를 배웠다. 유학 시절, 기숙사에서 자전거를 타고 북경대 동문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낯선 환경에서도 악착같이 적응하는 생존력을 배웠다. (심지어 이때 오른쪽 얼굴이 안면마비인 채로 유학길에 올랐다.) 요즘 매일 다니는 출근길에서는 또 어떤 사람으로 성장 중일까.


그간 걸어온 길이 차곡차곡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있다. 길들이 어떤 의미로 남았을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빠를 말없이 위로하던 그 청소년은 여전히 누군가를 위로할 줄 아는 어른으로 남아있기 바라본다.


여전히 미륵산에 오르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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