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쿨렐레 01. 30년을 찾아 헤맨 운명의 악기
지금은 사무직 직장인이 되어 매일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지만 한때는 진짜 키보드 건반을 두드리는 음악인이 되고 싶었다. 정식으로 음악을 배운 적은 없지만 돌이켜보면 늘 마음 깊은 곳에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한 나날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과 댄스동아리를 결성해 학교 축제 때마다 공연을 하며 아이돌을 꿈꾸었고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는 현실적으로 아이돌의 꿈은 고이 접었지만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보여주신 뮤지컬 '캣츠'의 화려함에 압도되어 뮤지컬 배우로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누군가의 재능을 보고 '와, 정말 잘한다!' 하는 감탄이 아니라 '어?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데?' 하는 질투가 일어나면 그게 나의 적성이라고 하던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진짜 나는 음악이 적성인 듯하다. 지금도 노래는 웬만한 보통 사람보다는 훨씬 잘해서 학교나 회사 노래 대회에서 줄곧 입상을 하곤 한다.
무엇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다고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지금 내 나이에 갑자기 가수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이 못다 핀 열정은 어찌하면 좋을까. 그래서 열정의 분출구를 찾아 악기로 눈을 돌리게 되었나 보다. 살면서 악기 하나쯤은 능숙하게 연주하고 싶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내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갈 곳 잃은 아쉬운 마음 하나 그럭저럭 달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취업을 하자마자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동네에 있는 작은 피아노 학원이었는데 내 나이의 반도 되지 않는 어린이들 틈에서 홀로 장성한 성인으로 수업을 들었다. 피아노를 처음 배워본 것은 아니다. 많은 90년 대생들이 그렇듯 나 또한 초등학생 때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8살 때부터 11살 때까지 약 4년의 수련이 있었다. 9살 때는 경상남도에서 열린 피아노 콩쿠르대회에 나가 동상도 받았다. 지금도 평균보다 체구가 작은데 그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작았다. 그래서 늘 낮은 도에서 높은 도까지 엄지와 새끼손가락이 한 번에 닿지 않아 손목을 왼쪽, 오른쪽으로 바삐 돌리며 연주를 했다. 콩쿠르 대회에서도 행여나 그 부분에서 다른 건반을 삐끗 누를까 봐 잔뜩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건반을 통통 뛰어다니던 작은 손은 아무 탈 없이 도와 도를 꼭꼭 잘 눌렀다.
언어에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고 어릴 때 배운 운동은 커서도 몸이 기억한다던데, 안타깝게도 내게 피아노는 휘발성이었나 보다. 4년 간의 수련은 온 데 간데없고 악보정도 더듬더듬 겨우 읽는 어른이 되고야 말았다. 그래도 내가 번 돈으로 그동안 바라왔던 자아실현을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잔뜩 신이 났다. 성인 피아노 수업은 보통 연주하고 싶은 곡을 정해서 그 곡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손 힘을 기르기 위한 '하농' 수업을 병행한다. 하농은 동일한 구성의 멜로디를 한 음계 한 음계 올라가는 것을 반복한다. 똑같은 멜로디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아주 지루하기 짝이 없다. 피아노 학원에 가면 꼭 받게 되는 연습 체크표. 매일 하농 연습량 10회를 채우기에 8살 꼬맹이는 나약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잠시 다른 친구들 레슨을 봐주는 틈을 타 체크표의 과일 2개를 슬쩍 색칠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8살 꼬맹이가 나약했던 것이 아니라 하농이 100번 잘못했다. 25살의 나도 하농이 너무 지루한 나머지 2개씩 체크했으니 말이다.
비록 하농이라는 난관은 있었지만 그래도 히사이시조의 Summer를 첫 곡으로 완성했다. 뚱땅 똥땅. 도입부를 마치 물방울이 튀어 오르듯 디용- 디용- 연주하는 것이 관건인데, 연주할 때마다 아침 풀잎에 맺힌 이슬 알알이 떠올라 기분이 좋았다. 피아노 배우는 사람들의 로망 1순위는 공공장소에 놓인 피아노에서 멋들어지게 연주하기 아닐까 싶다. 열정적으로 연주를 끝낸 후 쑥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는 사이 터져 나오는 이름 모를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갈채. 상상만 해도 낭만적이다. (혹시 대문자 E인 나만 이런 로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소 걱정된다.) 나 또한 그런 부푼 꿈이 있었다. 그래서 엄마와 유럽 여행을 가던 날 인천공항 제2 터미널에 있는 피아노로 서툰 솜씨로 Summer를 연주했다. 어찌나 떨리던지,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많이 없어 박수갈채까진 받지 못했지만 괜히 혼자 뿌듯했다.
하지만 이런 피아노도 나의 갈증을 완벽히 채워주지 못했다. 바로 '내' 피아노가 없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직장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학생 때 살던 원룸에 계속 살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피아노를 사는 순간 이건 뭐 피아노를 업고 살던지 피아노 위에서 내가 자던지 둘 중 하나였다. 소음이야 요즘은 이어폰을 연결하는 전자 피아노도 많으니 해결할 수 있었으나 안 그래도 좁은 원룸에 피아노까지 들일 수는 없었다. 피아노가 없다 보니 연습을 하려면 무조건 학원을 가야 했지만 나의 게으름은 그리 호락호락한 친구가 아니었다. 어찌어찌 돈은 냈으니 레슨 날엔 가지만 개인 연습을 하러 학원에 간다? 이럴 수가,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떠오르는 장면이 없는 걸 보니 정말 한 번도 안 갔나 보다. 맙소사. 여하튼 아쉽게도 피아노는 내 운명의 악기가 아니었다. 무더운 폭염도 갑자기 한순간 꺾이듯, Summer를 처음이자 마지막 곡으로 피아노를 향한 열정도 결국 풀썩 식어버리고야 말았다.
다음으로 선택한 악기는 기타다. 정말 다행으로 나는 이미 기타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한 번도 안 쳐본 새 기타를 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20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능이 끝나고 잠시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알게 된 친구가 한 명 있다. 대학을 가고 나서 언젠가 한번 페이스북에 '기타 배워보고 싶다'라고 올린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친구가 연락이 와 본인에게 안 쓰는 기타가 있다며 원한다면 서울로 택배를 보내준다고 했다. 무려 통영에서! 지금 같으면 돈을 지불한다던지 하다 못해 밥이라도 샀을 텐데 20살의 나는 정말 넙죽 기타를 받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친구도 엄청난 쿨가이다. 어떻게 이렇게 흔쾌히 줄 수가 있지? 나 좋아했나? 이건 미스터리로 남겨두고.. 그렇게 기타를 받긴 받았는데 기타 줄이 6개 인지도 몰랐던 내가 혼자 독학을 하려니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름 기타 독학으로 유명한 네이버 카페에 가입해 영상도 보고 악보도 보았지만 쩝.. 결과는 예상하는 그대로다.
그렇게 거의 8년을 방 한켠에 인테리어 소품으로 놓여있었다. 바야흐로 피아노 단념 후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기타 가방 위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고 기타를 꺼내니 이미 줄이 다 녹이 슬어있었다. 그래도 내 소유의 악기가 있다는 건 대단한 것이다. 바로 집 근처 기타 집에 가 줄을 교환하고 다음 날 기타 학원까지 등록했다. 퇴근하자마자 떨리는 마음으로 4층 건물 꼭대기에 있는 기타 학원으로 향했다. 진짜 평생 기타만 치셨을 것 같은 단발머리 남자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단발머리가 문제가 아니고 자꾸만 손톱에 눈이 갔다. 왼손은 손톱이 바짝 깎여있고 오른손은 손톱이 아주 길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 뭐지, 왜 손톱이 언밸런스할까. 기타를 배워보니 왼손으로는 코드를 잡고 오른손은 연주를 할 때(특히 아르페지오 연주를 할 때) 기타 줄을 튕겨야 하니 손톱이 필요했다. 하지만 첫 수업 땐 짝짝이 손톱을 보고 여기서 내가 기타를 배우는 것이 과연 잘한 선택이 맞는지 아주 혼란스러웠다.
다행히 혼란스러움은 한두 번의 레슨 후 오해가 풀리며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꽤나 기타를 잘 연주하는 편이었고 심지어는 선생님이 재능이 있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내 앞 타임 레슨은 중학교 남학생이었는데 그 친구는 내가 레슨을 받을 때 옆 방에 혼자 남아 연습을 하곤 했다. 그리고 한 날은 선생님께 그 '누나' 왜 이렇게 잘해요? 라며 본인 실력에 크게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누나라 불러줘서 너무나 고마웠고 거기에 실력까지 칭찬하는 모습을 보며 이 친구 크게 되겠구나 싶었다. 무튼 이렇게 기타에 흥미를 붙이다 보니 집에 돌아와서도 혼자 딩가딩가 연습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특히 유튜브와 블로그에 어찌나 훌륭하신 분들이 많은지, 내가 연주하고 싶은 곡을 찾기만 하면 악보와 튜토리얼 영상까지 풀 패키지로 제공되었다. 그렇게 혼자 실력을 갈고닦아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는 날이면 마음껏 뽐내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아, 이게 진짜 음악이 주는 낭만이지.
하지만 잘 나가던 기타의 독주도 슬슬 페이스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기타의 크기가 장애물이었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나도 참 이것저것 많이 따지는구나 싶다. 하지만 이건 아주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첫 번째로 기타 울림통이 크다 보니 집에서 연주할 때 옆 집에 민폐를 끼칠까 봐 맘 놓고 칠 수가 없었다. 이건 건물 시공사들의 방음 실력을 탓해야 하는 문제 이긴 하지만 여하튼 이 집에 살고 있는 이상 이웃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있는 힘껏 기타 줄을 긁을 순 없었다. 그렇게 기타 피크는 차마 사용하지도 못하고 손톱이나 손 끝 살로 살살 기타를 쳤는데 소리가 웅얼 웅얼거려 기타 본연의 풍성한 선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어쩌다 한 번씩 피크로 살짝 칠 때면 소리가 너무 좋아서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런 소리를 가둬놓기만 해야 하다니 감질맛만 나고 갈증이 더욱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두 번째로 기타를 바깥에 들고나가는 순간 너무 본격적인 그림이 된다는 단점 아닌 단점이 있다. 뭐든 야외에서 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책도 괜히 한강에서 읽고 싶고 심지어 영화까지도 한강 바람맞으며 감상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기타도 여차하면 둘러메고 나가고 싶은데 문제는 내가 150대의 작은 체구를 가졌다는 점이다. 즉 기타가 정말 나만하다. 홍대에서 나정도 체구의 여자분들이 기타를 메고 걸어가면 그게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는데 내가 내 실력을 스스로 알다 보니 '나 그 정도 아닌데' 하는 머쓱함이 올라왔다. 뭔가 나만한 기타를 메고 나가는 순간 엄청난 연주를 선보여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따라왔다. 그리고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 중 하나로 '해외에서 버스킹 하기'가 있는데.. 기타를 메고 해외여행을 간다? 흠, 이거 이거 좀 오버스러워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타도 운명의 짝이 아니라는 건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이모네 집에서 사촌동생의 장난감 우쿨렐레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운명처럼 만난 핑크색 장난감 우쿨렐레 줄을 몇 번 튕겨보니 소리가 둥실둥실 퍼져나갔다. 아주 귀엽고 장난스러운 소리다. 이거 완전 베짱이 바이브 제대로 난다. 기타가 프라하 까를교 위 거리의 악사를 떠올리게 한다면 우쿨렐레는 하와이 해변에서 훌라춤추는 여인을 연상시킨다. 장난기가 많고 늘 이상한 노래와 춤을 지어내는 내게 필연적으로 우쿨렐레가 더 잘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기타와 악보 보는 방법은 비슷하나 우쿨렐레는 기타보다 줄이 2개나 적다! 이 말인즉슨 연주가 더 쉽다는 말이다. 수많은 기타 꿈나무들을 무릎 꿇게 만들었던 마의 F코드. 우쿨렐레에선 손가락 단 두 개만 있으면 된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었는가? 유레카. 드디어 한참을 찾아 헤맨 운명의 악기를 서른이 되어서야 만나게 된 것이다.
23년 1월, 마침내 생일이 다가왔다. 친구들이 내게 갖고 싶은 선물이 있냐며 물었다. 그렇다. 내 대답은 망설임 없이 우쿨렐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