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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브 Aug 22. 2022

 데이터의 바다 위에 표류하고 있는 현재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

 ‘데이터’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4차 산업 혁명이 도래하고

뉴스에서 하루가 멀게 빠지지 않는 단어인

‘데이터’


그렇다면 우리는 데이터를 친근하게 느끼고 있을까? 익숙할 뿐 친근하지는 않다. 데이터는 IT산업, 개발직이 전문적으로 다루는 것이라 여겨지며 일상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는 다르게 데이터는 이미 우리 일상에 깊게 스며들어 있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앱을 통해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 포털 사이트에 궁금한 것을 검색하는 것, SNS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는 것.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하는 이 일과들이 모두 데이터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으며 또 이것이 데이터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일상과 밀접함에도 낯설게만 느껴지는 데이터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또 인간은 그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앞으로 이 데이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를 미디어아트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에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는 5가지의 전시실로 구분되어 있다. 각 전시실은 데이터 사회, 디지털 시각성, 동시대 미술관, 글로벌 유동성, 가상과 현실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전시실마다 분위기도 각자 주제에 맞게 조금씩 달랐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실은 제1 전시실 데이터의 바다이었다. 개인적으로 최근 들어 관심 있었던 주제였고 이 주제 대한 고민을 결론 내지 못한 채 유보한 상태였기에 더욱 집중해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1 전시실은 <미션 완료: 벨란시지>, <소셜심>, <태양의 공장>, <야성적 충동>, <이것이 미래다>, <깨진 창문들의 도시>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 중 <미션 완료: 벨란시지>가 가장 눈길이 갔다.

 


 <미션 완료: 벨란시지>는 관람객이 전시실에 들어서고 제일 처음 마주하는 작품이다. 강의 형식의 렉처 퍼포먼스 영상이며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를 매개로 지난 30년간의 정치, 사회, 문화 변동을 고찰했다. 슈타이얼은 발렌시아가 방식을 ‘벨란시지’라는 새로운 용어로 지칭한다. ‘벨란시지’는 소셜 미디어에서 만들어지고 업로드되고 공유되며 일종의 온라인 콘텐츠가 되어 여러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패션 데이터의 독특한 파급 현상을 일컫는다. 이 현상을 설명하며 슈타이얼은 발렌시아가의 가방과 이케아 장바구니의 유사한 모양임에도 큰 가격 차이가 비교되며 사회적인 논란이 되었던 사건을 예시로 든다. 논란이 되었던 가방은 발렌시아가 S/S17 남성 런웨이 쇼에서 선보인 발렌시아가 캐리 쇼퍼백으로 양가죽으로 제작되었으며 국내 판매 가격은 285만 5000원이었다. 또 다른 논란의 주인공인 이케아 FRAKTA 장바구니는 폴리프로필렌으로 제작되었으며 판매 가격은 1000원이다. 물론 재료와 제작 과정에서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이 두 가방은 모양, 색감이 너무나도 유사하며 국내에서도 논란이 되어 뉴스에서도 이 사건을 다뤘다. 슈타이얼은 이 지점을 꼬집는다. 제품의 유사성이 논란이 되며 온라인과 언론에서 이 논란을 다루면 인터넷 사용자들과 뉴스 시청자들은 자연스레 발렌시아가의 캐리 쇼퍼백을 접하게 된다. 이것이 발렌시아가의 방식 ‘벨란시지’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마케팅적 측면에서는 ‘벨란시지’에 대해 우호적인 의견이다. 명품 소비자들은 제품 자체만을 구매하지 않는다. 그들은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도 함께 구매한다. 명품 제품의 가격이 제품력과 브랜드 가치를 고려했을 때 그만한 경제적인 가치를 한다면 망설임 없이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벨란시지’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도 분명 존재한다. 인간의 사치와 허영심을 지적하며 인간이 매기는 가치라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이렇듯 ‘벨란시지’가 발렌시아가의 브랜드 가치를 하락시킬 것이란 의견과 다르게 ‘벨란시지’는 오히려 발렌시아가를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빈도를 높이며 가치를 공고히 한다. 캐리 쇼퍼백을 구매해 메고 다니면 이케아 FRAKTA 장바구니와 비슷한 형태임에도 훨씬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 발렌시아가 캐리 쇼퍼백을 들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과시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명품 소비자가 원하는 바를 완벽히 충족한다. 캐리 쇼퍼백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이를 SNS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 제품은 자연스레 소비자들의 팔로워들에게 노출되며 소비자 스스로 광고를 재생산해낸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 '벨란시지'는 완벽한 마케팅의 일종이다.

 

 반면 ‘벨란시지’를 한 개인으로서는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빅데이터를 통해 우리의 관심사가 간파당하고 알고리즘을 통해 제품 구매에 자연스레 유도된다. 또 SNS에서 타인의 경제적 과시를 보고 동경과 시기를 동시에 느끼며 스스로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인간이 데이터를 활용하며 편의를 느끼는 것을 넘어 데이터에게 지배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데이터 사회에서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주관을 지키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을 통해 전달되는 모든 정보를 무조건 수용하기보단 비판적인 시각으로 성찰하며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데이터의 바다는

새로운 육지를 향한 탐험로일 뿐이다.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는 데이터 사회에서 하나의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하게 만든다. 여태껏 알지 못했던 방대한 빅데이터 수집 방법의 신기술에 놀라기도 하고,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게 만드는 인공지능에 당황스럽기도 하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머신러닝, 알고리즘 등이 낯선 신기술로만 느껴지더라도 이 모든 것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소리 없이 스며들어 있다. 데이터 사회는 먼 미래가 아니며 우린 이미 데이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 사회’. 사회에서 그 무엇보다 사람의 온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우리의 사회가 데이터화 된다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슈타이얼과 같은 예술가들이 다가오는 데이터 사회를 자연스레 대면하고 그 안에서 하나의 개인이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목소리를 내어 준다면 우리는 기술 발전의 편의와 사회의 온기 두 가지의 토끼를 모두 잡는 세상이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이 전시는 하나의 전시에서 동시대적으로 거론되어야 할 많은 이슈를 관람하게 함으로써 관람자들에게 버겁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주제를 시간을 갖고 오래 고민해보는 성향이라 여러 이슈를 하나의 전시에서 짧은 시간에 관람하게 되니 관람 직후 머릿속이 많이 복잡해졌다. 그럼에도 이 전시가 현시대에 꼭 필요한 전시임은 틀림없다. 상위 문화와 하위문화의 경계를 부수고, 인공지능 AI 등 이미 우리 일상과 밀접하지만 낯선 테크놀로지를 관람객들에게 유쾌하게 전달해주며 미디어아트라는 장르를 공고히 하는 전시를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가 아니면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4월 29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전시된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는 9월 18일까지 진행된다. 약 한 달여 정도 남은 짧은 시간 안에 시간을 내서 꼭 관람하길 바란다. 어디서도 이러한 전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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