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by 경완

장장 1500페이지를 일주일에 걸쳐 읽었으나 정작 생각나는 것이 많지 않다. 시간이 촉박하여 건너 띄며 읽기도 하고 사실 눈이 아파 아직 끝부분을 다 읽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난 첫 느낌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연민, 안쓰러움이었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을 읽고 나서 느끼는 경건하고 웅장한 느낌이 아니라 인간다운 애잔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챗gpt에 힘을 빌려 읽은 직후( 토론 모임 직후) 두서없이 쓴 감정과 생각, 물음을 요약 정리하게 시켰고 다음과 같다.

이 책의 핵심 정조는 구원이 아니라 '연민'이다. 작가는 선과 악, 정의와 죄, 구원과 타락 같은 이분법에서 벗어나 "인간이란 과연 정의될 수 있는 존재인가?"를 묻고 있다. 구원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삶을 살아내는 인간을 보여준다. 인간의 다양한 군상들을 보여줌으로써 이해보다 연민을 느낄 수 있게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아주 섬세하다. 그래서 읽은 직후에도 내가 느낀 것은 책 속 여러 인물들의 모습을 가진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를 향한 연민이었던 것 같다.


작가가 말하는 신앙은 종교를 위한 종교가 아니다. 종교는 목적이 될 수 없다. 내세에 집중된 교리와 규율을 위한 신앙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신앙, 현세와 단절되지 않은 신앙을 얘기한다. 알료샤를 통해서 인간적인 종교인의 모습, 이상적인 종교의 역할을 그린다.


톨스토이와의 차이점 : 인간을 보는 출발점에서의 차이가 시작된다. 톨스토이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인간이 삶 속에서 어떻게 파멸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성찰을 요구한다. 즉 도덕적 귀결이 비교적 명확하고 인간이 이상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인류적인 보편성, 이상, 교훈성에 무게를 둔다. 이에 반해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은 선과 악으로 규정 불가하며 고통 속에서 흔들리고 무너지는 존재로 그려낸다. 하지만 어떤 가능성을 지닌 존재, 변화하며 실존하는 존재라고 본다. 톨스토이는 풍족한 귀족출신으로 삶의 밑바닥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 사형선고, 유형, 빚과 간질 등 하층민과의 실질적 공존이 있었으므로 고통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더 깊이 고뇌할 수 있고 실제 경험했다. 그리고 종교적 구원을 하나의 나아갈 길로 제시한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그를 대변한다. 알료샤는 그의 이상향이고 드미트리는 그의 충동적 자아, 이반은 이성적, 사유적 자아로 보인다. 스메르자코프는 구원받을 수 없는 하층민, 왜곡된 자유의지(자살)로 그려내고 표도르는 유아적 쾌락만 가진 미성숙한 인간을 나타낸다.


스메르자코프는 왜 자살했나? 가장 불쌍하고 억압된 존재이지만 연민을 일으키지 못하는 인물로 결국 자신의 생명조차 존중하지 못한 비극적인 인간, 구원받지 못한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서


이반은 왜 미쳐가야 했나? 이반은 누구보다 세상과 진리를 이해하려고 했던 냉철한 분석가, 이성주의자이지만, 이 확고한 논리적 신념으로 세계 전체를 설명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이해만을 가지게 되었다. 그 신념이 흔들리면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되는 지경으로 이르게 된다. 지적인 완성은 세계의 완전한 이해를 가져올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하는 행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행복은 자신과 타인, 세상을 향한 이해가 아니었을까, 이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인데, 이 사랑은 감정적인 것이라기보다 고통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필요로 한다.


연민은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일반적인 사고는 이해 => 수용 => 사랑이지만 자신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인간도 연민으로 가능하다. 인간자체,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연민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신앙에 대한 나의 의견 : 신앙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지만 인간 삶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인간은 자기 힘만으로는 버티기 힘들다. 천국 보상을 믿는 문제가 아니라 죽음 이후의 완전한 '무'를 과연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가. 신앙은 결국 신을 위한 것이 아니란 인간을 위한 것이다.


믿음의 중요성 : 믿음이 이해를 확장시킨다. 믿음은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태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세계와 그것을 초월하는 질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신을 인식하는 것은 세상의 부분만을 아는 것이고 신을 믿는 것은 세상 전체를 이해하는 게 가능해진다. 끝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작가는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는 인간, 판단하지 않고 인간을 위한 도덕성, 연민의 필요성과 믿음이 있어야 완성되는 이해를 말하고자 한 것 같다.

신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긍정하는 것이 아니며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믿는 것은 아니다. 신을 긍정하고 믿는 것은 곧 나와 타인, 세계를 긍정하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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