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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eammeow Mar 28. 2023

결혼생활 재봉하기(1) - 처음하는 바느질

완벽한 결혼생활이 아닌 나만의 결혼 생활 재봉 시작기


"난 이 사람이랑 살아야지",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했다.


프러포즈를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평생을 함께 하자며 나에게 내밀던 손 길을 잡는 순간 내가 신데렐라 공주가 된 것만 같았다. 동화 속 왕자님이 잃어버린 유리구두를 찾아줬고, 이제 키스만 하면 해피엔딩일 것만 같았다.



결혼



부정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내게는 긍정적인 단어들이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결혼'이라는 단어도 포함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새 가정을 꾸린 다는 것 자체가 가시밭길인 내 과거와는 정 반대인 미래로 걸어 나갈 수 있는 행복의 길, 긍정의 길이였다.


하지만 동거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결혼에 대한 모든 환상이 깨졌다.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울 때 의지할 수 있던 그 넓은 포옹과 포근하고 따뜻한 그 사람의 모습은 함께 하는 날이 늘어날 수록 왠지 모르게 볼 기회가 적어졌다. 연애가 우리에게 봄, 여름, 가을이었고 같이 사는 이 순간은 겨울이었다. 연애할 때 보이던 단점들은 충분히 장점들에 가려질 만했었다. 내가 슬프고 힘들 때는 언제든 전화해도 좋다던 그는, 내가 왜 슬픈지 이해가 되지 않는 다며 나를 등진 채 컴퓨터만 바라보고 귀를 닫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 연애를 하면 보통 2년 이상을 만났고, 싸워 본 적이 없었다. 충분히 어른스럽게 속상함을 표현할 수 있었고, 상대방이 의도한 행동이 아닐거라  믿고 의심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아무래도 상대방 또한 속상할 수 있으니 굉장히 조심스럽게 예쁘게 포장해서 말하는 사람이였다.

같이 살면서, 정말 노력 많이 했다. 우린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고, 성격도 이렇게나 정 반대니까. 당신도 내가 이해가 안 가니까, 나도 당신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는 거겠지. 그 다름을 이해해야겠지, 이게 현실이고 이게 결혼인 거겠지. 내가 이렇게 글을 읽고, 적고, 노력하는 시간에 당신은 좋아하는 게임 영상을 보는. 우리는 그렇게나 다른 사람. 그렇지만 당신도 당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거겠지?

내가 한 첫 번째 노력은 그 사람의 과거 이해하기였다. 나또한 나도 모르게 입은 과거로부터의 상처 때문에 불안한 사람이 되었고, 내 어두운 내면들을 극복하기 위해선 '내가 왜 그렇게 된 걸까?' 과거로부터 온 질문들에 답을 찾아야 했다. 이제는 그 능력을 이 사람에게 써보기로 했다. 왜 이 사람은 누군가가 '당신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그 말이 상처가 됐어, 이런 행동이 나한테는 상처였어.' 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화가 나고, 감정적으로 공감해 줄 수 없는지. 그 이유는 그의 학창 시절 즈음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부모님은 가게를 하시느라 너무너무 바빴고, 어렸을 때부터 가게일을 도와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시험기간, 시험 끝난 날, 본인의 자유란 없었고 늘 가게일을 도와야 했다고 한다. 성적이 A여도 칭찬해 주는 사람 하나 없었고 맞기도 했다고 한다. 가게 일을 도와주는 것도, 성적을 잘 받아오는 것도 자식으로서 모든 게 당연한 것이었다.

상처받기 싫은 이 사람은 감정의 문을 닫은 것 같았다. 계속 생각하면 힘들기만 하고 슬픈 현실을 생각하지 않기로 말이다. 내 감정을 쳐다보지 않으면 어느새 얕아져 공기 중으로 날아가겠거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사막 같은 이 사람에게도 오아시스가 나타나는 날이 있는데, 그날은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고 슬플 때다. (물론 본인과 관련된 일이 아닐 때). 그래, 그 오아시스, 그리고 이 사막을 내가 아직 사랑해서 떠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같이 1년을 살고 나는 잠시 혼자 한국에 돌아왔다.

연애를 하면서 헤어짐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뒤늦게 생각해 보니 나도 결국 내 마음을 다 열지 못한, 누군가를 의지해본 적 없는, 상처 투성이인 사람이었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뾰족한 가시만 나있는 선인장 둘이 과연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뜯어말리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니, 이 사람을 떠날 용기가 없었던 거 같다. 처음으로 내가 누군가를 의지하게 됐는데, 처음으로 이렇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는데.. 그 마음을 다 비워낼 용기가 없었다. 아차 싶었다.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본 친구가 내게 건네준 책은 "마음 챙김 명상" 책이었다. 남이 내 어깨를 토닥여주고 슬플 때 안아주는 넓은 어깨에 마음을 치유받는 게 아닌, 나 스스로 상처받은 어린 나를 치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내가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 즈음, 농담으로 내가 그에게 건넨 말이 생각났다.



" 내가 만약 헤어지자고 하면, 어떨 거 같아? 너무 슬퍼서 하던 일들도 잘 안되고 그러려나."


" 아니, 사는데 지장 없을 거 같은데 "



".. 그럼 붙잡아보지도 않고? "


" 응 "



그 말이 왠지 모르게 서있는 내 앞에 큰 장벽인 거 같았다. 온 힘을 쏟아서 그 사람을 사랑해주고 싶고, 평생을 불태워 사랑하고 싶다고 외치는 내 마음 앞에 아무리 올려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장벽이 우두커니 서있다. 맑은 하늘이 있는 이 한국으로 돌아왔는데도 매일이 맑은 하늘 보이지 않는 영국에서 돌아오지 못한 느낌이었다. 매일이 답답하고 힘들다. 이게 맞을까?

난 그의 사막에 오아시스도, 꽃도, 아니 바다도 보여주고 싶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세상에 그 다양한 행복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그 사막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이 사람은 나의 무엇까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을까?

내가 나를 사랑하면,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손 내밀어 줘야 하는 것이 맞겠지.
헤어질 수 있는 용기가 사랑보다 커졌을 때, 우리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몇 시간을 울면서 진심을 꾹꾹 담아낸 그 페이지를 읊어 나갔다.


요약하자면,




"

내가 사랑했던 당신, 내가 고마웠던 당신, 내가 미안했던 당신.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그때 내게 헤어져도 아무렇지 않고 사는데 지장 없을 거라고 했던 말처럼,

내 이 마지막 말들이 당신에겐 아무렇지 않겠지?


앞으로도 잘 살겠지, 나를 붙잡고 싶지 않겠지. 나는 헤어지고 싶지 않은데...


난 당신이 평생이고 생각날 거 같고, 헤어지기면 너무 힘들 거고, 당신이 붙잡을 마음만 있다면 다시 노력할 수 있을 정도로 아직 당신을 사랑해.


그렇지만 이젠 내가 좀 지쳐가. 당신의 마음이 그렇지 못하다면 이제는 그만할까 싶어.

"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듣던 그는




"그럼 헤어지지 말자..."




그 뒷마디를 이으지 못한 채 처음으로 엉엉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온 집안이 울릴 정도로 울었다. 그 울림이 9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까지 느껴질 정도로 내게는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 거리도, 밤과 낮도 다른 지구 정 반대에서 부둥켜안아 울었다. 처음으로 그 사람은 나의 어떤 모습에 사랑에 빠졌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었다.


'정말 나를 사랑한 게 맞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지쳐버린 마음은 이제는 이 관계가 나만의 노력으로 지속되기 힘듦을 경고했다. 그는 지친 내 마음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관계 개선에 대해 노력할 의지와 의사를 충분히 표현했다.


진짜 유리구두를 들고 나타난 왕자님이 아닌, 누가 봐도 구두로 보이지 않는 손재주라고는 없는 솜씨로 손수 만든 이 못생긴 유리구두를 들고 온 서투른 가짜 왕자님의 유리구두를 신어 보기로 했다. 내가 그 진가를 알아본 사람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당신도 나도, 아쉽게도 동화 속 왕자님도 공주님도 되지 못했다.

"난 이 사람이랑 살아야지",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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