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곶자왈 도립공원 탐방
곶자왈이라는 단어 들어보셨나요.
제주에만 있는 특이한 지형인 곶자왈이라는 숲이 있습니다. 화산 분출이 남긴 흔적인데요, 용암의 점도가 낮아 물렁한 용암은 멀리 흘러 용암동굴을 형성하고, 반면 점도가 높아 딱딱한 용암은 멀리 흐르지 못한 채 주변에서 굳어집니다.
이 용암이 굳어지면서 갈라지고 돌 무더기 땅을 만드는데, 이 사이를 식물이 비집고 차지해 숲을 이룬 모습을 곶자왈이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지역주민이 이곳에서 숲이나 땔감용으로 벌채해오다 전기가 들어오는 등 생활환경이 바뀌며 버려진 땅(?)이 됐고, 그렇게 무성하게 숲을 이뤄 지금의 곶자왈 모습이 탄생된 거죠.
제주의 곶자왈은 '조천-함덕', '구좌-성산', '한경-안덕', '애월' 등 크게 4곳으로 나누며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이 위치한 '한경-안덕'지역은 상록활엽수가 울창한 곳입니다.
한경-안덕곶자왈은 높이 10미터 내외의 종가시나무가 높은 밀도로 서식하고 있으며, 녹나무 등 상록수가 서식해 늘 푸름을 간직한 곳입니다. 총 41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해 있으며, 벌깨냉이 등 6종류의 특산식물과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인 개가시나무와 솔잎란 분포지로 확인됐다고 합니다. 제주에 분포한 개가시나무 680여 그루 중 98%인 668그루가 한경-안덕곶자왈에 분포해 있다고 하니 도립공원을 걸으실 때 유심히 살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해요.
보성리에서 들어가는 입구서 구억으로 넘어가는 가시낭길(1.1km), 한바퀴 돌아볼 수 있는 한수기길(0.9km), 오찬이길(1.5km), 가운데로 가로지르는 빌레길(1.5km) 등 5갈래의 길로 구성돼 있으며, 테우리길로 시작해 한수기길, 오찬이길을 잇는 외각코스는 제 걸음으로 2시간 반 정도 소요되더군요.
빌레는 평평하고 넓은 바위, 테우리는 말몰이꾼, 가시낭은 가시나무...한수기와 오찬이는 어떤 유래로 이름 붙여졌을까 궁금해 인터넷을 아무리 찾아봐도 정보를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오찬이 궤에서 따온 오찬이길의 유래만 추측해볼 수 있었는데, 예전 이 지역에 오찬이라는 사람이 살았답니다.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참지 못하고 마을의 소를 훔쳐먹고는 달아나 궤에서 살았다고 해 오찬이궤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를 테마 삼아 만든 듯합니다. (아참 궤는 제주어로 굴이라는 뜻이에요 )
길이 생각보다 좁습니다.
아마 지형을 파괴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인 듯한데요, 둘이 걷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몸을 피해야 하니 좀 답답한 느낌이 들더군요.
제가 방문했을 때는 여름으로 들어서는 비 오는 날이라 곶자왈 안은 엄청 습하고 더웠습니다. 꼭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여름보다 겨울에 오면 정말 좋겠구나 생각했답니다.
주변에 펼쳐진 나무에 이름표를 달아놓아 어떤 나무인지 맞춰보는 잔재미도 제공합니다. 다만 내구성이 약해 개장한지 며칠안지났건만 벌써 파손된 안내판이... ㅠㅠ
보행약자를 위해 입구부터 테우리길까지 데크 설치, 안될까?
곶자왈 안쪽으로 들어서니 나무데크가 눈에 들어옵니다. 보행자를 위함이라기보다 땅 아래의 생명 때문인듯 합니다만 만들어 놓은 데크를 보니 아쉽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보행이 불편해 휠체어 등을 이용하는 분들 대부분이 곶자왈을 경험할 수 없어요. 나무뿌리에 울퉁불퉁 돌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나마 선흘 1리의 동백동산서 먼물깍까지 구간, 청수곶자왈 입구까지의 구간은 평탄해 그나마 간접 체험할 수 있으나 곶자왈의 참 매력을 느끼기에는 한참 부족해 늘 아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거든요.
어떤 연유로 입구부터 데크를 설치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입구부터 테우리길까지만이라도 데크를 설치해놓는다면 더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이 남더군요.
한참을 더 걸으니 일부러 만들어 놓은 곳인가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나옵니다.
누가 더 빨리 걷느냐 경쟁하듯 걸으러 오신 게 아니라면 이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잠시 쉼을 가지며 몸과 마음을 다스려보는 곳도 좋을 듯합니다. (물론 숲 속 한가운데 설치된 의자와 탁자가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지만요)
돌담을 중심으로 종가시낭을 태워 팔았던 숯가마터를 지나면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여름에는 차가운 바람이 나온다는 숨골의 흔적도 볼 수 있고, 4.3의 상흔도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시 마을 주민과 유격대가 쌓아놓은 석축과 참호 등을 발견할 수 있는데 4.3 초기 한림과 대정지역 유격대들이 이쪽에서 은거했다고 하네요. 영화 '지슬'의 한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찡해옵니다.
20m 높이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곶자왈도립공원의 모습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합니다.
바로 앞에는 소와 말들이 목을 축였던 우마급수장이, 멀리로 한라산과 산방산이 안개 속에서 아주 잠깐씩 고개를 내밀었다 감추고 있네요.
이렇게 두 시간을 걷고 센터를 들러보는데 헉!!!
새로 만든 센터 건물 내 장애인화장실 문고리가 없습니다. 문고리를 잡고 용변을 보라는 뜻인지, 장애인화장실을 이용하는 이들은 아무나 밖에서 문을 열어도 상관없으니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건지, 이도 저도 생각 없이 만들어놓은 건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시정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