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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런치 봉작가 Aug 15. 2021

체리농장을 위한 땅을 찾아, 그 기록

체리농장을 짓겠다는 생각부터 부지를 찾으러 다녔다.


돈은 없지만,

당시에 토지를 담보로 감정을 통해 최대 70% 정도까지 대출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무작정 체리나무를 심을 땅을 찾으러 다녔다.


온라인 일간지에서 매물들을 뽑아,

매주 주말 부동산 업체를 찾아가 토지를 직접 찾아갔다.


계속 다니다 보니, 토지 주소만 알면, 내비게이션처럼 정확하게 찾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모 업체에서 "당장, 오늘 3시까지 결정해야,

구입할 수 있다. 너무도 싸고 좋은 땅이 나왔다."

말하 급하게 권하였다.


서둘러 말한 주소에 갔다.

어깨까지 덮인 풀을 헤치고 현장을 확인했다.

부지는 기대 이하였다.

차에 돌아왔는데, 발목 부위 느낌이 이상하다.

진드기가 발목 위에서 피를 쪽쪽 빨고 있었다. 당시 살인 진드기가 유행이었다.

뉴스에서는 치사율이 높다고 치료방법도 없다고 했다.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별일은 없이, 무사히 살았다.  

다만, 그 부위는 항상 간지럽고,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 흉터로 남아 있다.


지나 생각해 보니, 초짜인 나에게,  

안 팔리는 땅을 서두르게 하여 팔아보려는 심산이었는 듯하다.


생각하는 농장부지의 조건은

해가 오랫동안 잘 들것, 물 빠짐이 잘 되어야 했고, 차량으로 진입이 가능해야 했고,  

어느 정도 넓이가 있어야 했고,

마지막 중요한 건 가격이 싸야 했다.


부동산 업체에 이러한 조건을 말하면, 연락을 주겠다고는 연락이 없었다.

아마, 당시의 시세라는 게 있고, 그런 좋은 토지는 내 차례까지 올 확률상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수개월을 하였다.


그러다. 우연히 눈을 돌린 것은 부동산 경매였다.

친구에 말에 간혹 경매에도 쓸만한 물건이 나오기도 한다고...

이번엔 인터넷 경매지를 분석하였다.  

경매물건에는 해당 주소까지 나와 있었고, 전문가의 감정평가서도 있었다.

문제는 경매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러다 한 시골에 '맹지'를 경매지에서 발견하였다.

사실 상식적으로 '맹지'는 투자하지 말하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토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길'이다. 맹지는 지적도상 길이 없는 땅이다.

사람이 날아갈 수도 없고...

그런데 길 있는 맹지가 있다. 지적도에는 도로가 없고 현황도로가 있는 땅이다.

다만, 맹지는 '현황도로'가 있더라도, 토지 사용 승낙서를 받지 않는 이상 집을 지을 수 없다.  

농사를 짓는 것이 목적이었다. 나무를 심는 것. 부동산 땅 투기가 아닌,

수십 년 동안 나무를 키울 땅이 필요했다.

오로지 체리나무만 잘 키울 수 있는 땅이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맹지'에 갔다. 토지에 들어가 확인 할 수 없었다.

수십 년간 농사를 짓지 않아, 가시 넝쿨이 우거져 사람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황폐화되고 엉망이었다.

뱀이 나올 것 같았다. 무덤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인 방법이 없었다.

낙찰 후 토지 정비 후 알았다. 토지의 끝부분에 무덤이 하나 있었다.

토지의 한 면은 절벽이었다.

다만, 서향의 햇살이 저녁 늦게까지 

막힘 없이 들어오는 것이 나무 농사에는 딱이라는 생각이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의 시세의 3분의1 정도의 가격이 였다. 이유는 맹지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 지적도 상에는 길이 없지만, 차량이 이동 가능한 농로가 있었다.


일단 저질러 보기로 했다. 운명에 따르기로...

그렇게 경매 초짜는 1차 경매에서 감정가의 딱 100만 원을 더 적었다. 올인이었다.  

단독 낙찰. 경쟁자 없는 낙찰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시골 구석의 집도 지을 수 없는 맹지 토지에 올인하는 사람은 없었다. 

때론, 바보 같은 무모함도 필요하다. 


다행히 낙찰된 토지를 담보로 대출이 가능했고, 은행에 임대료를 낸다는 생각으로

체리농장을 위한 첫 단계를 시작 할 수 있었다.

  

잔금을 치르고, 우거진 가시 덩쿨을 없애고, 돌을 골라내고, 땅을 뒤엎어 땅을 만들어 갔다.

이때 가족은 고생스럽지만 힘을 합쳤다.  


그렇게 만들어진 땅 위에, 

식목일이 있는 봄이 아닌 추운 겨울 직전에  손가락 굵기의 묘목을 심었다.

겨울 직전에 심은 나무는 모든 에너지를 뿌리에 집중해, 뿌리 활착과 생존율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였다.

초기 체리나무 묘목을 심은 모습들


몇 년 뒤 어린 묘목은 가족의 땀으로 체리 숲을 이루었다.

그렇게 서투른 체리농사가 시작되었다.


황량했던 땅은, 매년 가족들의 땀과 피로 가꾸어 졌고, 그 노고에 보답하듯 예뻐졌다.  

그리고 체리 숲이 되었다.  


처음에 위협적으로 느껴지던 분위기의 낭터러지의 땅은  

농장에 들어서며 하는 첫마디는 "와~ "하는 탄성을 자아 냈다.

왜냐면, 사람들에게 알프스 같은 탁 트인 느낌을 주었다.


버려진 땅은, 가족의 땀과 피로

황무지에서 체리숲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가족은 체리농사를 시작했고, 그 기록의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By 브런치 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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