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줌마의 브런치 작가 합격수기
나는 왜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었나
브런치가 뭐야? 어느 인스타 지인이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했다. 공모전에 당선되기도 한 그 작가의 글은 꽤 수준 있었다. 나와는 먼 세계 같아서 소식 올라오면 읽어보기만 하는 걸로 관심 끝이었다.
얼마 후 다른 지인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단다. 몇 안 되는 지인 중에 두 명이나? 그땐 조금 더 적극적으로 그 지인은 물론 다른 작가의 글도 읽어 보았다.
브런치 작가의 세계는 다양했다. 우리 일상 속 소재를 자기만의 목소리로 다루는 글이 많이 보였다. 지난번보다는 브런치에 대해 조금 더 아는 수준으로 지나갔다.
그 당시 난 엄청난 육아 스트레스를 겪고 있었다. 거기다 여러 사정으로 대인 관계 기피증으로 판단되는 증상까지 와서 사람 만날 일이 별로 없는데도 사람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지나간 일로 화가 나기도 했다.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요가도 해보고 강연도 들었지만 몸에서 짜증이 솟구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기가 아주 길게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붓글씨 연습 책을 사게 되었고 책상에 앉은 김에 필사를 하게 되었다.
필사. 손을 움직이며 문장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어떤 기운이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릴 때 좋아했던 글쓰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며칠에 한 번 필사하는 동안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아이들 키우면서 오는 감정들을 털어내고 싶어도 그러지 못 한채 쌓아 온 나날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100세 시대에 이렇게 살다 30년이 지났을 때도 글솜씨가 지금과 같다면 그건 정말 슬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연습을 해야겠는데 2년째 접었던 블로그에 다시 쓰는 것보다는 새로운 곳이 나을 것 같았다. 사진보다는 글 위주인 플랫폼이 뭐가 있을까? 그렇게 브런치 작가가 떠올랐다.
나는 왜 네 번이나 떨어졌을까
떨어지면 창피하니 아무도 모르게 글 두 편으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7월 15일 첫 탈락 이메일을 받았다. 이유는 [보내주신 신청 내용만으로는 브런치에서 좋은 활동을 보여주시리라 판단하기 어려워]란다.
내 블로그엔 글이 없었고 인스타는 비공개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쓴 내 글 두 편이 별로라고만 생각했다. 다시 읽어보니 내가 봐도 인정. 안 될 글은 사용하지 않는 게 낫다는 누군가의 가르침에 따라 삭제했다.
이번에는 남편한테 상황을 얘기하고 두 번째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글을 네 편 쓰고 작가 소개와 활동 계획도 바꿨다.
7월 19일에 두 번째 탈락 이메일을 받았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하는 말과 달리 떨어진 이유가 달랐다. [실질적으로 심사에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적어 향후 작가님의 브런치 활동을 예상하기 어려운 탓]이란다.
남편 붙들고 내 나름의 해석을 해보았다. 블로그에 아무 글도 없는데 네 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 아닐까? 지난번과 이유가 다르다는 건 몇 편 더 보여주면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아니었다.)
글을 너무 줄줄이 쓴 것 같아 문단 나누기를 하고 에피소드를 늘려서 세 번째 도전했다. 7월 22일에 같은 이유로 탈락 이메일을 받았다.
연달아 안타깝게도 모실 수 없다고 하니 화보다는 ㅋㅋㅋ느낌의 웃음이 났다. 쓴 글을 아예 다 지우고 같은 주제에 다른 스타일로 여섯 편을 써서 네 번째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7월 29일에 [브런치 작가 신청 결과 안내드립니다.]란 제목으로 도착한 이메일. 한 달 동안 이 정도 했으면 됐지 어떻게 더 잘 쓰란 말이야! 그래도 독자인 브런치가 보기에 아니라니 다시 써보기로 했다.
주제는 여전히 같았다. 콘텐츠를 바꾸고 제목도 조금 더 흥미롭게 지었다. 방향에 자신이 생기자 활동 계획은 쉽게 떠올랐다. 한 편의 글로 다섯 번째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그런데 신청 도중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 소개를 하고 활동 계획을 적고 작가의 서랍에서 보여줄 글을 클릭해야 한다는 걸 이번에야 알게 된 것이다. 이때까지 나는 작가의 서랍에 있는 모든 글을 브런치팀이 자동으로 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8월 4일에 합격 이메일을 받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수생은 그렇게 브런치에서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붙었는데도 야호! 보다는 ㅋㅋㅋ 느낌의 웃음이 튀어나왔다. 지난 네 번의 도전에서 안 된 이유가 내 글 때문이 아니라 아무 글도 보이지 않는 내 신청서 때문이었다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물론 정말 그 글로 도전했어도 떨어졌을 수도 있다. 확실한 건 그래서 내가 글 연습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신청할 때마다 이것보다 더 잘 쓸 수는 없을 것 같았지만 떨어질 때마다 글을 아예 뜯어고치고 있던 나님, 최고다!
나는 왜 다섯 번이나 다시 도전했나
처음엔 붙을 때까지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계속 떨어지면 도전한 것조차 비밀로 하려다가 남편한테 공개한 이유는 다시 도전할 용기가 안 생길까 봐였다.
나란 사람. 당연히 다양한 면모가 있고 한 마디로 나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내가 아는 나 중 한 명은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신나게 놀다가 수업 시간에 늦으면 같이 놀던 내 친구는 숨이 턱까지 찰만큼 열심히 뛰어가는데 나는 그 숨찬 게 싫어서 조금 뛰다가 그냥 포기하는 스타일이었다.
몇 번 붙었던 글짓기 대회에서 몇 번 떨어졌다고 아 몰라하고 내던진 사람. 글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지지 않아도 글 잘 써서 나쁠 일은 하나도 없는 걸 그땐 모르고 쉽게 포기했다.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면서도 그렇게 될까 봐 남편한테 말하고 이왕 내뱉었으니 되돌릴 수 없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떨어져도 또 하고 떨어져도 또 하고. 한 달 동안 실망했다기보다는 좀 미친 것 같고 재밌었다.
아이들 재워놓고 어두운 방 안에 드러누워 핸드폰만 하던 지난날의 나보다는 나은 것 같아 지금은 만족한다. (핸드폰으로 글 쓰는 내가 똑같이 핸드폰 많이 하는 건 안 비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