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과사자 Aug 16. 2021

흐르는 강물처럼

콜로라도 Cache la Poudre River

놀이터에서 만난 두 명의 다른 사람들


8월인 지금 콜로라도 전역은 산불 연기에 덮여 있다. 우리가 푸더 강으로 캠핑을 갔던 6월에는 평범한 콜로라도의 여름 하늘이 계속되었다.


하늘색이 뭔지 제대로 보여주는 파란 하늘에 비슷한 듯 다른 구름들이 매일같이 떠다녔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몰랐던 곳으로 계곡 캠핑을 가기로 했다.


집에서 한 시간 이십 분 정도로 부담 없는 거리였기에 아이들을 생각해서 가는 길에도 오는 길에도 놀이터를 일정에 넣었다.




꽃과 사자는 캠핑을 즐기는 듯 지금도 캠핑이라는 말을 자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항상 놀이터를 찾는다.


포트 콜린스라는 좀 큰 도시에 리뷰가 좋은 놀이터가 꽤 있었고 그중에서도 최고라는 곳은 마침 우리가 가는 길에 위치해 있었다.


가보니 과연 모든 연령대를 위한 놀이기구가 인체공학적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꽃과 사자는 모자만 겨우 눌러쓰고 놀이터로 달려갔다.


꽃을 보고 있는 동안 어떤 여자 아이가 갑자기 따라붙었다. 6,7세로 예상되는 덩치 큰 아이로 보통 아이들과 느낌이 달랐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대체로 다정한 편인 꽃은 그 여자 아이가 너무 붙으려고 하니 부담스러워했다. (가끔 다른 아이한테 꽃이 그러면 내가 떼어 놓는다.)


꽃이 계속 혼자 노니까 그 여자 아이는 내게 이것저것 말을 걸었고 나는 짧게 대꾸를 해주었다. 그런데 나중에 미끄럼 틀을 타는데 보니 팬티를 입지 않고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내 머리는 일시정지. 처음엔 지적 장애가 있나 싶었다. 그러기엔 문장 구사력이 평범한 듯? 집에서 방치된 아이는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조심스럽게 속옷에 대해 물어봐야 하는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그냥 꽃을 따라갔더니 그 아이도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남편한테 말하니까 남편은 속옷에 실수를 해서 벗고 있었던 게 아닐까 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 낮에 그런 실수를 할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렇게 남다른 아이가 우리에게 다가와 같이 놀고 싶어 했을 때 나는 어땠는지 돌아보았다. 코비드로 인한 사회적 거리를 지키고 싶은 심정을 넘어선 불편함이 먼저였다.


꽃의 다름으로 인해 따가운 시선을 받고 뼈아픈 말을 들은 적이 분명히 있었기에 꽃의 엄마인 나는 누군가에게 조금 더 넉넉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 잠깐 동안의 다름조차 거북하게 여기는 나를 직면하니 조금 씁쓸했다.


캠핑 가는 길에 들렀던 놀이터




캠핑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다른 놀이터를 들렀다. 공룡 화석을 테마로 꾸민 곳이라 해서 기대를 너무 했는지 놀이터보다 산책로가 더 좋은 곳이었다.


주차장에 내리면 바로 놀이터가 있을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우리가 공원 반대편에 세운 듯했다. 꽃과 사자는 계속 플레이 그라운드를 외치며 열심히 걸어갔다.


웨건에 타기는 싫고 이것저것 구경하고 싶은 아이들 걸음으로는 가도 가도 그 자리. 분수대에서 조금 놀기로 했다. 낮게 솟구치는 물이 어린아이들 놀기에 딱이었다.


그러다 다시 놀이터를 향해 길을 나서는 순간 저기서부터 누군가가 휠체어에 앉은 남자를 밀며 오고 있었다.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상황이었다.


그 남자가 다가올수록 나도 모르게 어떤 장애인지 궁금했다. 뭔지 몰라도 중증 장애인이라 불리는 건 확실했다.


그런데 내 아이도 장애인이라는 구실로 다른 사람의 장애에 대해 쉽게 호기심을 가지는 건 실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장애아라도 아이일 뿐이듯 중증 장애인이라도 사람일 뿐인데 코앞에 지나가는 사람을 가장 자연스럽게 대하는 방법을 되새겨 보았다.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꽃과 사자는 손을 흔들며 뛰어갔다. 그리고 그것이 휠체어라는 걸 알아차린 듯했고 일반 의자와 다르다는 거에 놀란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아이들은 hi라고 하며 휠체어를 가리켰다. 사회복지사로 보이는 여자는 웃으며 휠체어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 남자는 기분이 좋았는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키가 아주 크고 균형을 잘 잡지 못 하는 그는 바로 저지를 당해 자리에 앉았다. 꽃과 사자는 bye라고 외치고 다시 놀이터를 향해 뛰어갔다.


그렇게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쾌적한 곳에서 산책할 수 있는 그의 삶을 불쌍하게 여길 필요는 없었다. 꽃도 그렇고 왜 고칠 수 없는 장애라는 게 존재해야 하는지 그 자체가 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집 오는 길에 들렀던 놀이터


흐르는 강물처럼


아이들과 콜로라도 탐험을 시작한 건 코비드 때문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시국은 우리에게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보석을 발견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


6월 20일 우리는 계곡 캠핑을 떠났다. 캐시 라 푸더 강에 있는 엔셀 와트러스 캠핑장. 우리에겐 이름조차 어려웠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숨은 명소였다.

 

주변 산에서 흔히 보이는 깎아지른듯한 절벽이 아니라 대체로 완만한 바위 능선이 강을 따라 이어졌고  흐름이 좋아서 래프팅의 천국이었다.


캠핑장은 푸더 강을 따라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래서 모든 캠핑객이 강 전망을 가질 수 있었고 물소리가 커서 서로의 소음을 들을 일도 없었다.


남편이 텐트 치는 동안 꽃과 사자를 데리고 강으로 내려 가보았다. 적당한 크기의 프라이빗 해변이 있어서 아이들은 흙을 파고 강에 손발을 담그며 놀았다. 30분이 멀다 하고 래프팅 하는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다.


이번 캠핑에서 아이들은 두 가지 사고를 쳤다. 첫 번째는 캠핑 감성을 느끼고 싶어서 준비해 간 스트링 라이트를 끊어 버린 것이다.


내 자식이지만 너무 하다 싶었다. 뭘 먹고 이렇게 별난 아이들을 낳고는 캠핑을 다닐 생각을 한 건지 나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진정하라는 듯 스트링 라이트는 한쪽이 끊긴 채로도 불을 밝혔다. 이걸로 아이들을 그렇게 미워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결국 집 데크에 걸어놓은 라이트를 아이들은 절반으로 끊었고 그럼에도 아직도 불이 들어와서 사용 중이다.)


두 번째 사고는 꽃이 양칫물을 뱉게 된 것이다. 나도 꽃을 통해 알게 된 사실, 다운증후군 아이들은 로 머슬 톤 때문에 먹는 건 물론 뱉는 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사자는 두 돌이 되기도 전부터 이미 양칫물을 뱉었다. 굳이 시키지는 않고 내가 칫솔로 닦아 주었는데 캠핑장에서 생수통으로 하다 보니 뱉는 재미가 들렸다.


그걸 본 꽃이 질투심을 느꼈는지 자기도 그렇게 하겠단다. 내가 “먹지 말고 뱉어!”라고 하니까 사자가 옆에서 “누나, 우물우물 패!”라고 했다. 꽃은 그 말을 듣고 우물우물 뱉는 데 성공해 버렸다.


벌써 세 번째 캠핑객이 된 꽃과 사자는 모닥불 붙이는 것도 도우려고 했다. 어릴 적 내가 하던 식으로 신문지로 불게 했더니 진지하게 신문지를 흔들었다. 그러다 연기가 다 아이들 쪽으로 가서 컥컥거렸지만 캠프 파이어의 묘미를 포기할 순 없지. 이번에도 스모어는 성공이었다.


활활 타오는 장작불 뒤로 비치는 바위산을 보며 우레 같은 강소리를 듣고 있으니 처음 콜로라도에 와서 갔던 엘도라도 캐년이 떠올랐다.


그때 우린 지금보다 7년이나 젊었고 시간도 많았는데 오히려 아이들이 태어나서야 콜로라도를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이 웃겼다.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영화도 생각났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사랑할 수는 있다는 말. 우리 가족을 이보다 완벽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5년이 지나도 걷어내지 못한 의문, 왜 꽃은 다운증후군이어야 했는지 또 왜 남편과 나는 이렇게 미국에서 오롯이 둘이서만 특별한 육아를 감당하도록 흘러 왔는지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가족으로서 우리의 삶을 사랑하다 보면 그 모든 것들이 합쳐져 어떤 강을 이루는 날이 오겠지?


We can love completely what we can not completely undestand.


엔셀 와트러스 캠핑장
작가의 이전글 말이 씨가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