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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Jan 09. 2022

점심시간 식당 방문기

휴게시간

1) 쪼○국수

  테크노파크 첫 출근 날에 혼자 방문한 식당이다. 가게 규모도 크고 직원 수도 많은 데다 분식 위주의 메뉴를 판매하여 테이블 회전이 빨라 대기시간이 짧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김밥과 국수가 주력 메뉴이고 주방의 절반이 훤히 들여다보여 요즘같이 위생이 중요한 시기에 조리실의 내부 상황을 확인할 수 있어 안심이 되는 식당이다. 주 고객층의 연령대가 젊어 직장 내 근로 환경을 그들만의 생생한 언어로 들을 수 있는데 상세한 내용 설명보다는 비속어가 언어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정황은 파악할 수 없고 가끔 상상만으로 상황을 추론해보곤 한다.    

  

2) 오○국수

  테크노파크 교차로에 위치한 식당이다. 테이블이 네 개밖에 없는 작은 가게라 항상 밖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점심시간보다 몇 분 일찍 나갔다가 운 좋게 대기자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얼른 가게로 들어갔다. 나는 비빔국수를 시켰는데 다른 테이블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주로 칼국수 종류를 선호하는 것 같았다. 한 회사에서 단체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열 명 정도 인파가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갔다. 계산을 신용카드나 현금으로 하지 않고 회사명을 이야기하면서 식권을 몇 장 내야 하는지를 물었다. 식당 직원이 메뉴를 헤아려 계산해 보더니 식권의 개수와 추가로 계산해야 할 금액을 이야기했는데 주문한 음식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몇 번을 다시 계산했다. 손님들은 회사 장부를 이야기하며 남은 것과 합산해달라고 했는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식권과 장부의 합산 계산식이 꽤나 복잡해 보였다. 카운터 직원은 몇 번의 계산 끝에 추가금액의 결제 없이 가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손님들은 모두 가게를 빠져나갔다. 잠시 후 주방에서 가게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카운터로 나왔다. 테이블 위의 그릇과 메뉴를 헤아려 계산을 다시 해 보더니 카운터 직원에게 화를 냈다. 그들이 오늘 식사한 가격이 장부의 잔액과 식권의 합산 금액보다 많기 때문에 현금을 추가로 받았어야 하는데 직원의 계산 실수로 그냥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가게 안에서 손님들은 계속 식사를 하는 와중에 주인이 카운터 직원에게 큰소리로 계속 면박을 주어 민망했다. 식사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해야 하는데 남이 심하게 혼나는 것을 구경하며 밥을 먹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개인적으로 비빔국수의 맛은 상당히 만족스러웠으나 가게 안에서 매우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었고 가게 밖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재촉당하는 기분이 들어 음식을 남긴 채 가게를 빨리 나와야 했다. 나의 소중한 점심식사 시간을 배려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388 순○상회

  점심 메뉴로 순대국밥을 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다른 식당들은 모두 손님으로 가득하여 손님이 없는 가게를 물색하다가 우연히 들어가게 된 식당이다. 순대라는 메뉴가 주는 고정관념인지는 모르겠으나 식당 내부에서 깔끔한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가게 안에서 식사를 하는 두 개의 테이블 이외에 나머지 테이블은 전부 비어 있었고 내가 메뉴를 주문하고 한참 뒤 한 명의 남자 손님이 들어왔다. 한 테이블에서 여자 혼자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뒤늦게 들어온 남자 손님이 아는 척을 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같은 회사 직원인 것 같았다. 여자 손님은 거의 식사를 마친 상태였고 남자는 인사를 한 이후 다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같은 회사인데도 직원 간에 식사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내가 근무하고 있는 기관에서도 나와 다른 직원들의 식사 시간이 다를 때가 많았고, 기관 내에서 대민 업무를 하는 직원들은 순번을 짜서 교대 근무를 하느라 식사 시간이 달랐다. 그들에게서 특이점이 딱히 없다고 느꼈다가도 이용자를 응대하는 공공기관과는 성격이 다른 일반 회사에서 식사 시간이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가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손님이 많지도 않은데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았다. 빨리 먹고 주변 한 바퀴를 걸어야 소화도 되고 춘곤증을 이겨낼 수 있는데 음식 대기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성격이 급해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데 나보다 늦게 온 남자 손님의 음식이 먼저 나왔다. 음식이 나가야 할 순번을 착각했다고 하기에는 손님이 너무 적었다. 남자 손님 옆의 여자 손님이 그 상황을 보더니 황당해했고 남자 손님도 당황해했다. 일단 음식이 나왔으니 남자 손님은 먹기 시작했고 여자 손님은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갔다.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그 이후에도 한참 동안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테이블에서 일어나 서빙 아주머니에게 갔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를 묻자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음식이 금방 나올 거라고 했다. 주방을 살펴보니 화구에 국밥을 올려놓지도 않았다. 아주머니에게 왜 주문 순서대로 음식이 나가야 하는 가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했다. 아주머니는 자신이 착각했다며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 뒤 음식이 나왔고 맛을 보니 짐작대로 돼지 잡내가 심하게 났다. 음식은 먹고 난 이후가 중요한데 화학조미료로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하루 종일 온몸이 퉁퉁 부어 매우 불편했다. 물론 나의 위장이 화학조미료에 예민한 탓도 있기는 하지만 그 후로 이 식당은 재방문하지 않았다.                


4) 더○츠

  테크노파크 근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가게가 작고 위치가 대로변이 아니라 접근성이 떨어져 눈에 띄지 않는 가게다. 하루는 단시간 근로자로 일하시는 두 분께서 나에게 식사를 같이하자고 제안하셨다. 이분들은 나의 부모님과 엇비슷한 세대로 업무 시간이 아님에도 일부러 나와 함께 식사하러 외출을 하신 셈이다. 전화로 상호를 알려주며 거기서 만나자는 지령을 받게 되었는데 아직 테크노파크 주변부까지는 익숙하지 않은 터라 상호만으로 가게를 찾을 수 없었다. 큰길에서 부동산을 찾은 후 그 길 따라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찾을 수 있었다. 가게 외형과 간판이 눈에 띄지 않는 구조라 알고 찾아가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생긴 조그만 가게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메뉴판을 들여다보니 일식 돈가스를 판매하는 것 같았다. 무엇을 먹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가 안심 돈가스를 주문했다. 가게 안 공간이 아담해서 테이블이 몇 개 놓여있지 않았는데 다른 테이블에서도 식사하는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튀김 메뉴를 판매하다 보니 대기 시간이 상당히 길었고 매장 식사보다는 배달 판매에 주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다 문득 배가 고파져 샐러드와 밑반찬을 많이 집어 먹었다. 한참 후 주문한 메뉴가 모두 나왔을 때는 이미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진 상태라 음식을 온전히 먹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고기를 기름에 튀기는 음식인 돈가스는 느끼해서 선호하지 않는 데다가 양이 상당히 푸짐해서 절반 이상을 남겼지만 다음에 돈가스를 먹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다시 가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5) 맛○은 돼지불백

  무언가 새로운 메뉴를 맛보고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몇 명의 사람들이 가게 안에서 혼밥을 하고 있기에 용기를 내서 들어간 가게이다. 뚝배기에 나오는 흔한 돼지불백일거라 생각했는데 구워진 불고기를 쌈 채소에 싸 먹는 형식의 백반이었다. 대부분의 쌈밥집은 일 인분으로 판매를 하지 않아 혼밥을 즐길 수 없는데 이 가게 덕분에 점심에 고기로 영양보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아 고깃집을 잘 가지 않는데 채소에 쌈을 싸 먹는 매력에 이끌려 점심시간에 이 집을 자주 방문하게 되면서 음식에 포함된 영양소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었다. 단백질이 주를 이루는 고기를 먹게 되면 탄수화물과 다르게 치아 사이사이에 잔여물이 많이 껴 시간이 조금만 경과해도 구취를 유발할 수 있는데 일상생활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없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당사자가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과 소화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가스인 트림 현상도 고통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고기와 탄수화물 메뉴의 확연한 차이는 저녁 식사보다는 점심식사를 통해 더욱더 오랜 시간 동안 확인할 수 있다.      


6) 그○위치

  써브웨이나 이삭토스트를 먹고 싶어 인근에 파는 곳이 없는지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모두 부천시청 인근까지 가야 먹을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비슷한 샌드위치라도 먹어볼까 싶어 찾게 된 곳이다. 후기를 참고해 메뉴를 골라보려 배달 앱을 찾아보았다. 후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악평은 없었다. 대표 메뉴가 무난할 것 같아 음료와 같이 먹을 수 있는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주방 옆 좁은 공간에 테이블들이 일렬로 자리 잡고 있어 옆자리 손님들은 물론이고 나란히 앉은 사람들의 모든 대화 소리를 들으며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는 구조였다. 

  가게를 방문한 시기는 도서관에서 내가 처음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을 한참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옆 테이블에 회사 단체복으로 보이는 점퍼를 입은 두 명의 남성이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한 명은 중년 이상의 연배로 보였고 한 명은 젊은 남성이었다. 단순히 직장 선후배나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일 거라 생각했는데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갑자기 뭔 바람이 불었는지 엄마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관람하러 덕수궁에 간다며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아버지와 한참 동안 어머니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시기에 내가 도서관에서 해당 전시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둘의 대화에 순간 몰입하여 열심히 듣게 되었다. 회사 대표로 보이는 아버지와 같은 회사에 소속된 직원으로 추정되는 아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혈연을 기반으로 하는 것처럼 중소기업 역시 형태와 규모는 다르지만 유사한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서관이라는 낯선 업무 환경 속에서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걱정이 알게 모르게 나를 압박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듣게 된 옆 테이블에 잠시 머물다가 간 낯선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7) 장○님 순두부

  큰길에서 얼핏 살펴본 가게 풍경으로는 혼자 식사하러 선뜻 들어가기 쉽지 않아 보였다. 회사 동료들과 삼삼오오 무리 지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직장인이 점심 메뉴로 가장 선호하는 찌개백반이 주력 메뉴라 항상 사람이 많았다. 네이버에서 테크노파크 맛 집을 검색해보니 멀리서도 찾아올 정도로 유명한 가게라고 하는데 수많은 동행들이 섞인 곳에 혼자 밥을 먹으러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밥, 국수 등의 분식 메뉴가 질리기도 했고 몸에서 새로운 영양분을 필요로 했다. 대기시간이 길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용기를 내서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종업원이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해주어 빠르게 앉을 수 있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미리 봐 둔 메뉴인 섞어 순두부를 주문하고 내부를 둘러봤다. 가게 안에는 혼자 식사를 하는 중년 남성들이 드물게 보였다. 주문이 밀려있어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소요되었지만 푸짐한 한상차림을 보니 사람들이 왜 많이 찾는 가게인지 알 것 같았다. 1인 상임에도 여러 가지 반찬이 푸짐하게 나왔고 찌개 안에 내용물을 보니 식재료를 아끼지 않고 여러 종류를 섞어 풍부해 보이게 넣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위가 작아 많은 양의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보니 단순히 음식의 양이 많은 것보다는 좋은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을 선호한다. 이것저것 섞다 보니 양이 늘어난 식재료들이 뚝배기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고 맛도 서로 어울리지 못한 채 겉도는 과한 느낌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손님들은 이러한 푸짐한 정에 이끌려 이 식당을 찾을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 음식에 대한 평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고 느꼈다. 

  이후 식당을 몇 번 더 가게 되어 제육덮밥과 오징어덮밥을 맛볼 수 있었는데 내 입맛에 잘 맞았다. 특히나 제육덮밥은 식당에서 지금까지 사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 간판에 순두부를 내걸었기에 순두부 이외의 다른 메뉴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동네에서 나름 유명한 식당이라면 주력 메뉴 이외의 다른 음식도 먹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8) 두○만두

  네이버에 삼정동 맛집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제시되는 결과물이 이 집이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이후 유명해져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고서는 먹기 힘든 가게가 되었다고 도서관에서 같이 일하시는 단시간 근로자 선생님께 들었다. 직장인 점심은 시간이 고정되어 있어 한 시간 안에 식당까지 이동해서 식사까지 모두 해결이 되어야지만 방문이 가능하다. 이동 시간과 식사 시간을 고려해보니 대기시간이 길어진다면 식사를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점심으로 김밥을 먹은 날에는 여유 시간이 많이 남아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하곤 했는데 가게를 지나칠 때 자세히 관찰해보니 1시 이후에는 대부분의 손님이 빠져나가는 듯 보였다. 테크노파크와 인접한 곳에 위치해있어 손님의 대부분이 직장인이라 그런지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 손님이 몰리는 것 같았다. 교대 근무로 점심시간이 한 시부터 두 시까지인 날에 방문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차고같이 생긴 현관을 지나 가게로 들어가니 신발장이 보였다. 산 지 며칠 되지 않은 비싼 새 운동화를 벗어 놓고 들어가야 해서 조금 찝찝했지만 나와 같은 모델의 운동화가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가정집을 개조한 듯이 내부는 마치 문 없는 방처럼 나누어져 있었고 공간마다 좌식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손님이 빠져나가 한산한 가게에는 나처럼 혼자 온 손님이 드물게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만둣국을 주문했다. 시제품이 아닌 손으로 빚은 만두를 주문과 동시에 조리하는 방식이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배추김치와 깍두기를 먹을 만큼 덜어 세팅하고 음식을 기다리며 가게 내부를 천천히 훑어봤다. 도배를 새로 한 것처럼 보였는데도 내부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만둣국이 나오자마자 만두의 개수를 세어보았다. 5개가 들어있었다. 식힐 겸 얼른 접시에 덜어놓고 국물을 떠서 맛을 보았다. 맑은 사골국에 소금간이 되어 있지 않아 전체적으로 맛이 심심했는데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지 않는 나와 잘 맞았다. 평소에 평양냉면을 즐겨 먹지 않는데 평양냉면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몰랐는데 나중에 이 가게 만두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황해도식 이북 만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은 것처럼 보이는 만두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만두 속이 채 다 식지 않아 입천장을 데었다. 입안에 허물이 전체적으로 벗겨져 음식물 섭취가 힘들었지만 언제 또 이 집을 다시 오게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기약이 없어 참고 먹었다. 뜨거운 만두에 딱딱한 깍두기를 씹어 먹으니 입 안 통증이 점점 심해졌고 맛도 느낄 수 없었다. 만두의 크기가 커서 4개만 먹어도 배가 불러왔지만 남기지 않고 모두 먹었다. 

  만두를 완전히 식히지 않은 탓도 있지만 매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아 영양이 부족해진 데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 면역체계가 떨어진 것까지 합쳐져 몸으로 나타난 것 같다. 평소 건강한 상태였다면 아무 문제없었을 만두의 잔열로 나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볼 수 있다는 것에서 인체의 신비를 느꼈다.      


9) 명○왕돈까스&냉면

  테크노파크에서 신흥시장 쪽으로 가다 보면 빨간 간판의 분식집 느낌이 나는 돈가스 가게가 있다. 알고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가게이다. IT 강국의 장점을 활용하여 도서관 인근의 맛 집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식당이다. 

  학창 시절 자주 방문하던 도서관의 휴관일마다 인근의 여러 도서관을 방문했었는데 익숙하지 않은 동네이다 보니 점심을 먹기 위해 그 근처 식당을 검색해보곤 했었다. 그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도서관 인근의 식당들을 검색해보게 된다.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은 검색해도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작기 때문에 도서관 명으로는 아무것도 검색할 수가 없고 테크노파크와 행정동 위주로 검색을 해야만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이 식당은 테크노파크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어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은 갈 일이 전혀 없는 곳이다. 알고 찾아가는데도 가게 규모가 작다 보니 조금 헤맸지만 블로그 사진에서 본 대로 빨간 간판을 찾다 보니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가게 내부 인테리어가 경양식집이라기보다는 분식집에 가까워 오히려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여럿이서 방문했다면 다양한 메뉴를 주문해서 맛을 보았겠지만 혼자이다 보니 한 번에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명동정식을 주문했다. 돈가스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최근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인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자주 등장하는 메뉴라 먹고 싶던 차에 방문하게 되어 백종원의 평가와 솔루션의 관점에서 가게를 바라보게 되었다. 

  가게는 부부가 운영하는 것 같았다. 주방에는 여자 사장님이 음식을 만들고 있었고 홀에는 남자 사장님이 서빙과 배달을 담당하는 듯했다. 홀에는 나처럼 혼자 식사를 하러 온 손님이 한 명 있었고 대부분은 배달 주문으로 밀린 배달 음식을 주방에서 바쁘게 조리하고 있었다. 홀에 있던 손님이 계산할 때 남자 사장님과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니 인근에서 자영업을 하시는 분인 것 같았다. 가게 분위기를 보니 앞으로도 종종 혼자 방문해서 식사해도 좋을 것 같았다.

  한참 뒤 식전 수프가 나왔다. 익숙한 맛이었다. 가게에서 직접 만든 수제 수프는 아닌 것 같았고 시중에 판매되는 오뚜기 3분 수프 맛이라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식사량이 적은 편이라 쓸데없이 수프로 배를 채우면 정작 중요한 메인 메뉴를 많이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금 기다리니 등심가스, 생선가스, 함박스테이크가 나란히 놓여 있는 명동정식이 나왔고 반찬으로 피클이 아닌 깍두기와 된장국이 나왔다. 경양식 돈가스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이 집 돈가스는 먹어볼 만하다고 느낀 것이 수제 돈가스 튀김이 너무 깔끔하게 잘 되어 있었다. 코로나임에도 장사가 잘되다 보니 식재료 소진이 빨라 매일매일 신선한 재료로 조리를 하는 것 같았다. 깍두기도 직접 담갔는데 백반집에서 나오는 것보다 맛있었다. 곁들여 나온 국물은 조미료 맛이 강한 것으로 보아 가게에서 직접 국물을 낸 것 같지 않았다.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었던 건 돈가스에 곁들여 나온 모닝빵이다. 어릴 때 경양식집에 가면 빵과 밥 중 하나를 선택해서 주문했던 것 같은데 이 집은 두 개가 함께 나온다. 밥은 흰쌀밥이 아닌 잡곡밥이 나오고 모닝빵은 겉면에 설탕물을 입혀 한 번 구워서 나오는데 빵 안에 함박스테이크를 넣어 먹으면 햄버거보다 훨씬 자극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점심 한 끼에 8,000원이면 인근 식당 백반 가격에 비해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맛이 있으니 먹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빨리 끝마쳐야 인근 공원을 한 바퀴 산책할 수 있어 서둘러 식사를 한 뒤 가게를 나왔다. 과식했더니 배가 살살 아파왔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사무실 의자에 앉았는데 속이 좋지 않아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너무 빨리 먹은 탓이라 생각하고 다음번 방문 시에는 적당량만 섭취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재방문했고 또 속이 좋지 않았다. 평소 자극적인 음식을 즐겨 먹지 않다가 기름에 튀기고 다량의 설탕이 함유된 음식을 섭취하니 위장이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아무리 자극적인 음식이라도 위에 통증이 오래가는 편은 아닌데 이 집 음식은 유난히 자극적인 요소들이 많은 것 같아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재방문했고 식사를 할 때마다 위통을 경험해야 했다. 통증이 유난히 심해 식은땀이 난 이후로는 가지 않지만 요즘도 가끔 생각이 날 정도로 맛있는 가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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