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 결과에서 젠더 갈등은 정말 중요했나? 나의 잠정적인 결론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30대 남성이 반페미로 결집해 윤석열 당선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전혀 현실과 맞지 않고, 여성이 반페니즘 정치에 경고했다는 주장도 다소 과장돼 있다. 이 두 주장은 객관적 현실보다는 주장하는 이들의 자기 희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20대 남성의 몰표를 받은 오세훈은 반페미였나?
2030 세대의 젠더 갈등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았던 2021년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이번 대선 결과를 비교해보자. 20대 이하 남성들의 72.5%가 오세훈 쪽으로 쏠리면서 세간이 깜짝 놀라고, 젠더의 차이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때 오세훈이 반페미적인 행보를 보였던가? 딱히 그런 적은 없다. 그래도 남성들의 지지율은 윤석열의 지지율보다도 높았다. 여성들의 표도 더 많이 받았다.
2030 남성들은 과연 윤석열 캠프의 반페미 노선에 반응하여 그에게 쏠렸을까? 이 두 결과를 놓고 보면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반페미니즘을 노골적으로 내세운 대선에서 젊은 남성들은 지지를 거두어들였다.(72.5%->58.7%) 심지어 이 수치만 놓고 보면, 반페미 노선은 남성들에게조차 역효과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물론 선거의 종류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며, 맞붙은 후보가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단순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반페미 때문에 젊은 남성들이 윤석열에게 쏠렸다’라는 주장도 지나치게 단순하다.
반페미니즘 성향이 남성들 사이에 폭넓게 퍼져 있으며 특히 젊은 남성에게서 두드러진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반감의 정도는 저마다 다르며, 극성맞은 남초 집단의 주장과 달리 정치적 지지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저마다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졌으며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20대 남성도 그렇고, 20대 여성도 그러하며, 그 어떤 누구라도 그렇다. 세대와 성별, 또는 그 무어라도 어떤 기준으로 사람들을 나누고 갈라 고정된 속성을 부여하는 행위는 대개 실제와는 거리가 멀며, 어떤 마케팅적인 목적이 숨어 있기 쉽다. 이번 경우, 이 마케팅의 수혜자는 이준석이었다.
이준석의 과장광고
이준석은 자기 덕분에 2030 남성들이 윤석열을 많이 지지했고, 그래서 대선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내세우는 듯하다. 천만의 말씀이다. 보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2030 남성들의 지지는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기 전에 이미 존재했다. 그것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났고, 여기에 고무된 국민의힘(의 당원과 지지자들)이 2030이 새로운 지지 세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0선의 이준석을 당대표로 올린다. ‘좀 젊은 사람을 당대표로 세우면, 2030세대들이 계속 우리를 지지해주겠지?’라는 것이 이때 이준석을 민 전통적인 국민의힘 지지층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순서를 헷갈리지 말자.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면서 2030 남성이 국민의힘을 지지한 게 아니다. 정확히 그 반대다. 2030 남성이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이준석이 당대표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2021년 6월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준석 후보가 국민의힘 대표로 당선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60대가 68%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43%로 가장 낮았다. 연령이 높을수록 긍정 평가가 높았다. 이준석은 막상 20~30대에게는 그리 인기가 없다. 그가 2030 남성의 지지율을 국힘으로 끌어왔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무리 좋게 말해도 과장광고고, 나쁘게 말하면, 세우지도 않은 공을 가장하는 사기거나 남의 공을 빼앗은 강탈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부터 이미 20~30대 남성들 사이에서 민주당을 강하게 거부했던 것을 생각하면, 국민의힘이 정권교체론을 내세우고 민주당의 실정만을 공격했어도 지금 받은 정도의 지지를 모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권교체를 원한 다수의 유권자들은 윤석열이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이재명을 이길 수 있는 ‘대통령감’인가를 최우선으로 신경 썼지, 페미니즘에 관한 태도는 부차적이었다.
여성은 결집했지만, 이탈한 여성도 있다
서울시 보궐선거와 비교하면, 여성 표는 확실히 이재명 쪽으로 이동했다. 이건 이준석이 확실히 해낸 일이다. 이재명은 폭력적 이미지와 욕설 논란과 조카 변호 문제 등으로 직전 여론조사까지 여성들의 지지율이 윤석열보다 그리 높지 않았지만, 투표에서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투표 포기나 심상정 투표 사이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여성들이 이재명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시 단순화를 피해야 한다. ‘반페니즘 정치를 심판한’ 여성들이 있지만, 페미니즘 이슈가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는 유보적이다.
먼저, 다시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비교하면, 윤석열의 남성 지지율 감소폭이 여성 지지율 감소폭보다 크다. 20대 이하 남성은 72.5%->58.7%로 14%가량이 감소했는데, 여성은 절반인 7%가량만이 감소했다. 윤석열의 반페니즘 전략이 보궐선거 당시 기타 후보를 택한 여성들을 이재명으로 쏠리게 만든 건 분명해 보이지만, 그것이 윤석열 여성 지지층을 그리 이탈시키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19대 대선과 21대 총선과 비교해보면, 막판에 이재명 쪽으로 결집했다고 해도 여성 표는 이미 많이 지지를 옮겨간 상태다.
반페미니즘 심판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윤석열을 지지했다고 해야 할까, 반페미니즘 심판 때문에 그나마 덜 지지하게 됐다고 해야 할까? 보다시피 19대 대선부터 꾸준히 2030대 여성들의 보수정당 지지는 증가해왔다. 시작점과 정도가 다를 뿐, 흐름의 양상은 2030 남성들과 비슷하다. 반페미니즘 심판에 따른 결집은, 전반적인 민심 이반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 것이어서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고 본다.
단일한 해석을 피해서
민심 이반의 기점은 2020년 21대 총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1대 총선까지는 문재인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대부분은 민주당을 계속 지지해주었다. 그때까진 아직 탄핵 이후 탄생한 민주당 정권에 대한 희망이 있었던 것 같다. 탄핵당한 정권이 다시 집권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지지에 힘입어, 민주당은 180석이라는 엄청난 의석을 얻는다. 그게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 후로도 국정 운영은 검찰과의 다툼으로 점철되고, 부동산 문제는 악화되면서, 급격히 민심이 이반된다. 20대 이하 남성은 이미 일부가 총선 이전부터 이탈을 시작했고, 총선 이후엔 다른 이들도 그 뒤를 따른다.
이들 중 일부는 투표를 하지 않음으로써 선거 자체에서 이탈하는 쪽을 택했다. 40대는 19대 대선에 비해 투표율이 4%p가, 50대는 3%p가 하락했다. 20대와 30대는 더 심했는데, 20대는 무려 10%p가 30대는 5%p가 감소했다. 문재인정권에 걸었던 기대가 얼마나 실망으로 바뀌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대로 60대 이상은 투표율이 올랐으니, 정권교체를 바라던 이들이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도 짐작해볼 수 있다.
투표 성향만을 놓고 보면 60대 이상과 40대와 50대는 사실 그리 입장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이재명 지지가 가장 높았던 것은 반페미니즘 심판으로 결집했다는 2030 여성이 아니라, 40대 남성과 40대 여성이었다. 또한 50대 남성이 30대 여성보다도 이재명을 더 많이 지지했다. 민심 이반의 강한 흐름 속에서도 40~50대는 굳건히 민주당을 지지했다. 심지어 문재인을 지지했을 때보다 더 많이 이재명을 지지했다.
왜 이들은 민심 이반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지지를 바꾸지 않고, 오히려 더 밀어주었을까? 반페니즘 전략에 대한 반발 때문일까? 물론 그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차마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는 꼴을 볼 수 없는 역사적 경험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윤석열의 능력을 불신하거나 검찰 출신 대통령을 거부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냥 원래 나이가 들면 입장이 잘 안 바뀌어서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한 가지만으로 이유를 설명하는 건 위험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복합적인 존재다.
(갤럽은 대선 이후 투표자들에 대한 전화면접을 통해 왜 그 후보를 택했으며, 상대 후보를 택하지 않았는지 조사했다. 윤석열에게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은 ‘경험 부족’ 18%, ‘무능/무지’ 13%, ‘검찰 권력/검찰 공화국’ 6%, ‘가족 비리’ 5%, ‘비호감’ 5% 순으로 답했다. ‘여가부 폐지’는 2%였다)
우리는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건을 설명하려 할 때는 단순한 해석 쪽으로 기울곤 한다. 쉽게 설명하려는 의도에서일 수도 있고, 자신의 바람이 그 해석에 담겨서일 수도 있다. 반페미니즘과 젠더 갈등으로 선거 결과를 설명하려는 양쪽의 태도에서도 그런 바람이 어느 정도 느껴진다. 어찌 되었건 원인에 대한 그런 단순한 해석은 한 번 언어화되면 굳어지기 쉽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여러 원인들 사이에서 과잉 대표된다. 그러니 해석을 경계할지니. 쉽게 규정하지 말고, 찬찬히 살펴보자.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요약하기를 좋아하고, 단순화하기를 좋아한다. 한마디로 인간은 환원시키기를 좋아한다. (…) 이야기 짓기의 오류는 연쇄적 사실들을 억지 설명이나 논리적 연결고리, 즉 화살표에서 벗어나서 바라보지 못하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가리킨다. 설명은 사실들을 엮는 작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보다 기억하기가 용이해지며, 납득하기가 용이해진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해했다는 느낌이 증폭되는 그 순간, 이러한 습성은 과녁을 빗나간다.”(블랙스완, 1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