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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 Nov 19. 2024

전세난민 경험기

닭장 속에 살고 싶진 않아

전세 계약 만기일 두 달 전. 집주인은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 연장 의지가 없음을 알려왔다. 딸아이가 졸업을 앞두고 있어 내가 사는 곳에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애초에 나도 5평짜리 좁은 원룸에서 벗어나 투룸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1% 정도는 있었기 때문에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문제는 전세난. 2021년 신문기사에서 말한 전세난은 거짓부렁이가 아니라 실제 현상이었다. 부동산 중개업자 말에 따르면 실거주 의무화로 전세가 확실히 줄었다고 했다.


매물이 나왔다 싶으면 위치가 위험했고, 그게 아니라면 방이 너무 작았다. 5평보다도 더 작은 4평짜리 원룸은 충격적이었고, 투룸이라도 10평짜리를 쪼개고 쪼개서 만들었다.


위치와 크기,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매물이 나왔다싶으면 누군가가 바로 채갔다. 매물을 보고난 뒤 부동산 계약을 진행하기 직전 어떤 사람이 집 컨디션을 직접 보지도 않고 계약금을 걸어놨다는 비보를 접했다. 또 다른 매물은 3팀과 함께 집을 보러간 모두 계약을 원한다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단순한 게임에서 졌을 뿐인데 계약 만료 2주일 전까지도 다음 집을 구하지 못했다.


초조해진 나는 분양 완료도 안 된 위험한 신축 오피스텔로 급하게 전세계약을 진행했다. 그렇게 나는 재개발 구역에서 집주인 대신 몸빵을 하는 전세입자가 됐다. 매일 아침 공사 소리에 눈을 떴다. 달고 살던 비염은 더 심해졌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코가 막혀있었다.


급하게 먹은 밥은 체하기 마련. 문제가 계약만료를 앞둔 2년 뒤 드러났다. 집주인이 다음 세입자 들어오기 전까지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쳤다. 나자신이 너무 급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HUG를 가입했던 덕분에 HUG를 통해서 전세금을 돌려받은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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