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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판 돈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미니멀라이프와 10,400원의 기쁨

by 위시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언젠가부터 현관에 박스와 책들을 두고 있습니다. 버리거나 팔 물건들이지요. 1일 1비움 프로젝트를 도전하거나 구역별로 정리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집 안을 하나둘씩 비워가고 있는데요. 사실 저에게 있어 가장 비우기 까다로운 것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책입니다.


저는 책을 무척 좋아해, 읽기도 사기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직장 생활을 했던 1년 동안엔 무려 50권 이상을 사기도 했지요. 당시엔 책이란 자고로 종이책으로 읽어야 하는 법이며, 새 책을 소장하고 싶다는 두 가지 고집도 강했던 탓에 자취방의 수납공간이 온통 책으로 채워지곤 했습니다. 퇴사 후 복학을 하고서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다 보니, 자연스레 꼭 새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닫고 지금은 좀처럼 책을 사지 않지만요.


한동안 저의 과제는 이미 방에 있는 책들을 비우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좋아서 몇 번이고 꺼내보는 책부터 읽다 만 책까지 다양했지만, 정말 좋아해 수시로 꺼내 보는 책을 제외하고서 다음의 기준을 세워 알라딘에 팔 책을 골라봤습니다. 첫 번째, 한 번 읽는 것으로 충분한 책. 두 번째, 먼 훗날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당분간 2~3년은 다시 읽어볼 일 없을 책. 세 번째, 내용이 마음에 든 책이라도 언제든지 도서관에서 (늘 재고가 충분해 예약 없이도) 빌려볼 수 있을 법한 책. 그랬더니 주로 소설이 되더군요.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장르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인데도요.


그렇게 어제는 그중 4권만 들고, 조깅을 할 겸 나선 길에 합정 알라딘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얻은 수입은 10,400원! 분명 5만 원가량을 주고 산 것의 1/5 정도 페이백을 받은 셈인데, 공짜 돈을 얻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뜻밖의 수입도 생기고, 물건도 비우고 일석이조였지요.


그리고 이 돈을 어떻게 썼냐고요. 마침 3년 동안 기록하던 영감노트를 다 써서, 합정 교보문고에 가서 눈독 들였던 새로운 영감노트 한 권을 샀습니다. 평범한 1,900원짜리 노트와 디자인이 맘에 드는 9,000원짜리 노트 중에 고민이 되었지만, 마음의 양식을 얻고 되팔아 번 돈으로 다시 마음의 양식을 기록할 물건을 산다고 생각하니 뜻깊은 소비로 느껴져, 가성비 대신 가심비를 택했습니다. 기존의 노트와 비슷한 사이즈에 훨씬 넉넉한 두께라 앞으로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교보문고에 간 김에 서적을 둘러보다 우연히 한 소설가가 <패터슨>이라는 영화를 언급한 대목을 보고 흥미가 생겨, 밤에는 오랜만에 영화를 보았습니다. 네이버 시리즈온으로 1,500원. 알고 보니 넷플릭스에도 있었다는 걸 알고는 괜한 소비를 한 것 같아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비교해 보니 넷플릭스보다 훨씬 선명하고 색감이 좋은 버전의 영상을 볼 수 있어서 값진 소비였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바로 인생영화에 등극할 정도로 뜻깊은 영화였기에, 고작 1,500원으로 이런 훌륭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렇게 어제는 중고책을 팔아 10,400원을 벌고, 10,500원으로 나의 취향과 영감을 넓혀주는 좋은 물건을 사고 좋은 영화를 보았습니다. 물건을 비우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넓히는 것을 넘어 나의 시야를 넓혀 줄 더 다양한 기회를 가져다줍니다. 아직 책장에 꽂힌 책이 많으니, 앞으로도 틈틈이 책을 팔아 나다운 하루나기를 즐겨볼까 합니다.


여러분의 책장을 한 번 둘러보세요. 역시나 비울 책들이 가득한가요? 조만간 한바탕 골라내 알라딘에 방문해 봅시다. 그렇게 얻은 돈으로 나를 위한 소소하고 즐거운 보상과 투자를 해 보는 것입니다. 분명 비운만큼 새로 얻어지는 값진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중고책 팔아 번 돈으로 구매한 새로운 영감노트!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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