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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목도리를 두릅니다

나를 위한 한 겹의 의식

by 위시

제가 처음으로 목도리를 산 것은 1년 전쯤의 일입니다. 그전까지는 겨울이 되어도 목도리를 두르고 다니지 않았지요. 목티를 입거나 패딩의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려 잠그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옷 외에 목도리나 장갑 같은 방한 용품을 착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목도리를 두른 부모님의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저 또한 자연스레 그런 것들을 몸에 걸치지 않고서 자라왔거든요.


그러다 스물넷이 다 지나는 겨울이 되어서야 난생처음 목도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우연히 SNS를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목도리를 발견한 것도 있었지만, 늘 속수무책으로 당해만 왔던 서울의 겨울을 어떻게든 준비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습니다. 룩에 포인트를 더해줄 패션템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했는데, 목도리를 직접 두르자 문득 상상하지 못했던 소감이 들었습니다. 왜 지금껏 나를 위해 목도리 하나 선물할 생각을 못했을까 하고요. 저는 남들보다 특히 추위를 많이 타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를 위해 조금 더 따뜻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조치를 진작 취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안해졌습니다. 제가 추위를 많이 타는 걸 알면서도 목도리와 장갑 하나 없이 그동안 엄동설한을 맨몸으로 맞짱 뜨게 한 무심한 자신에게 타박 어린 반성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지금은 겨울이 되면 습관처럼 목도리를 두르고 다닙니다. 이렇게나 따뜻한데 왜 그동안 진즉 두를 생각을 못했을까 매번 감탄하면서요. 1년 사이에 친구로부터 새 목도리도 선물 받아, 요즘은 룩에 따라 목도리를 고르고 나가는 재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한테는 여전히 목도리를 두르는 일은 패션을 위해서라기보다 나를 위한 다정한 수고로움을 한 겹 더하는 행위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사실 여러 겹의 두꺼운 옷을 껴입어야 하는 겨울에, 목도리와 장갑까지 꼼꼼히 착용하는 것은 가끔 번거롭습니다. 하지만 굳이 의식해서 목도리를 한 겹 더 두르고 나가는 것. 그것은 역시 추위에 맞설 자신을 걱정하고 보듬어주는 애정의 표식일 것입니다.


목도리를 두르기 시작하고나서부터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바로 목도리를 단정하게 두른 중년이나 노년의 분들입니다. 본인이 직접 둘렀을 수도 있고 배우자가 애정의 손길로 둘러주었을 수도 있는 그 목도리는 패션템이 아니라 겨울을 나는 자신의 하루하루를 잘 보듬고 신경 쓸 줄 아는 멋진 어른의 명품처럼 보이더군요. 현관이나 욕실의 거울 앞에 서 목도리를 둘렀을 모습이 상상되면서, 몇십 년의 세월 동안 습관처럼 겨울의 외출을 준비해 왔을 그 몇 초간의 의식적인 루틴이 참 꼼꼼하고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또 한 가지, 계절을 오롯이 느끼고 그 시기에만 본인에게 더할 수 있는 일을 충실하고 담담히 챙기는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겨울이 와서 찬바람이 몰아쳐도 날씨가 더워져 땀방울이 흘러도 계절이나 날씨에 별 감흥 없이 사시사철 구분 없는 차림새로 거리를 나서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가 엄마로부터 옷차림에 대해 가장 자주 들은 꾸지람도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건 딱 봐도 여름치마잖아. 딱 보면 구분이 안 가?”. 겨울에도 얇은 치마를 입고, 기모 있는 후드티를 두고 얇은 맨투맨을 입고 본가에 내려오면 그런 말을 듣곤 합니다. ‘옷이니까 겉으로 예뻐 보이기만 하면 되지’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옷이란 단순히 패션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계절에 맞는 차림새, 그 계절에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포인트를 챙기려고 노력합니다.


목도리나 장갑은 그런 일상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소중한 아이템입니다. 수고를 들여 자신을 위한, 계절을 반기는 한 겹을 더하는 의식을 얼마 남지 않는 겨울 동안 부지런히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좋아하는 색과 패턴의 디자인으로 자신만의 취향도 더하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울 것입니다.


어느 겨울, 해방촌 타자기에서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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