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 2,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도시는?

20대 인터뷰 문답집 <Hey,> 5월호

by 위시

[소소위시 인터뷰 문답집 프로젝트 <Hey,>]

Heyday를 살고 있는 20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20대가 가장 고민하고 생각하는 여러 주제들에 대한 사적이고 의미 있는 사유의 대화들을 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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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위시 인터뷰 문답집 <HEY,>
2021년 5월의 질문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도시는?"



윤란 / 울산 거주 / 24

(In 응암 프롬보람)


너는 싱가폴 아닌가.


이미 갔다 왔잖아.


상관 없다. 마음속에 계속 품고 있고 또 가고 싶은 곳 아닌가.


맞긴 한데, 더 다른 게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기억이 안 난다.


몽골은?


몽골은 밤하늘이 보고 싶은 거지 막 ‘드림시티’까진 아니다. 맞다, 캐나다의 ‘캘거리’.


어떤 도시인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아는 언니가 살고 있다. 잔잔한 큰 호수가 있고 조용하고… 영어를 쓴다.


그곳에 대한 정확한 꿈이 있는 건가. 그곳에서 뭘 하고 싶다든가, 살고 싶다든가 하는.


그렇다기 보단, 그냥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서 살고 싶다.


자연 속에 파묻혀서?


눈 내리는 곳에서 코코아 마시면서.(웃음)


아하, 무슨 감성인지 알겠다.


눈 내리는 오두막에 코코아.


나무가 높게 솟아있고, 호수가 펼쳐져 있고…. 나중에 정말 여기서 꼭 지내보고 싶다 하는 현실적인 로망인가 아니면 그냥 막연한 이상인 건가?


난 인생이 맘처럼 되지 않으면 워홀을 떠날 생각이었다. 워홀을 넘어서 이민.


그 정도의 마음이 있었던 건가.


하지만 아직까진 현생이 편하니까. 아직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고.


여기서 아직 하고 싶은게 있으니까?


아직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다 내려놓고 싶을 때 떠나게 될 것 같다. 문제는 워홀을 30살까지만 받아준다는 거다. 한편 여행을 가고 싶어서 마음에 품고 있는 도시는 발리랑, (바다를 좋아해서) 국내에선 부산.


네가 해외에 갈 일 없이 국내에서 살게 된다면, 부산에 정착하고 싶은가.


사적인 얘기지만 남자친구가 부산 사람이라 시댁이 부산이 되어서 안 된다.(웃음) 지금은 울산에 오려고 와있는 건 아니지만, 좋은 점은 되게 바다랑 가깝다는 거다. 전주에서 바다가는 건 힘들지 않나.


갔다 와 본 도시 중 가장 마음에 품고 있는 곳은?


당연히 싱가폴이다.


싱가폴의 어느 점이 가장 좋았나.


엄청 인종이 다양한 것. 힌두교, 불교, 크리스천이 한 군데 있다. 되게 컬러풀하다. 깔끔하고 영어도 쓰고.


아까부터 영어를…(웃음) 영어를 쓰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나.


적응하는 게 어렵지 않을 테니까.


어느 도시든 '적응'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는구나. 되게 현실적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마음 속에 품지도 않는다, 이건가?


그런 건 아닌데, (적응하기) 어려우니까. 그리고 싱가폴의 화려한 스팟들 보다는 변두리가 더 좋았다.


난 네가 싱가폴에 대해 어필할 때 항상 화려한 부분을 언급해서 (그런 면을 더 좋아하는 줄 알았다). 네가 만약 해외에서 일할 기회가 생겨서 몇 년씩 그곳에 머물 수 있다면 어디를 제일 가고 싶나.


싱가폴에 있고 싶다.


캐나다는 정말 ‘다 내려놓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이구나. 온전한 휴식을 위해서. 만약 노년에 네가 갑자기 사라져있으면 캐나다 캘거리에 가서 수소문해 보면 되는 건가.(웃음) 요즘엔 한 달 살기도 유행이다. 정착이라는 거창한 것이 아닌, 한 달 정도 갔다 올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도시를 가고 싶은가.


한 달 ‘살기’가 아닌 한 달 ‘여행’을 하고 싶다. 그냥 일주일, 일주일 오가면서. 한 달 ‘살기’는 관심이 없다. 결국 어쨌거나 현실이니까. 여행을 간다면 발리랑 다합. 다합은 여행자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도시다. 여행으로 갔다가 다들 정착하기 때문에.


어디 있는 도시인가?


이집트.


마음 속에 도시를 하나 품는다는 건, 힘이 들 때마다 굽어보면서 다시 희망을 얻고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안식처를 갖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도시를 생각하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지는 것 같고, 나중에 이 도시를 갈 거라고 꿈꾸는 것만으로도 삶의 희망이 조금 더 생기게 되는 도시가 있는가.


그런 건 없다. 나에겐 도시 자체가 중요하지 않고, '어떤' 장소냐가 중요하다.


너는 ‘요소’가 중요한 거구나. 그럼 네가 마음에 품을 만한 도시가 되려면, 이러한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게 있는가. ‘나의 드림도시는 어떤 것을 갖추어야 한다’ 하는.


깔끔함과 바다? 그리고 음식이 맛있었으면 좋겠다.


깔끔함과 바다, 맛있는 음식. 딱 세 개가 갖춰진 도시!


마음만 먹으면 바다에 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 여행이 좋았다. 숙소에서 조금만 가면 해변이 펼쳐졌다. 그리고 내가 보는 뉴욕 브이로거 중에 LA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이 있는데, ‘오늘 자전거 타고 해변 갔다 와야겠다’ 싶으면 바로 갔다오더라. 되게 즐거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맞다. 그런 걸 원한다.


왜 이렇게 바다를 좋아하는가.


먼 수평선을 보고 있으면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아무 문제 아니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뭔가 이 넓은 세상에서 ‘살아 있다’라는 느낌이 든다. 바다 소리도 좋고, 어두운 바다는 나와 함께 울어주는 것 같다.


너한테 있어서 바다의 존재가 나에겐 산인 것 같다. 나도 산에만 오면 ‘다 무슨 소용이냐, 이게 행복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도시(일본)는 확실하지 않나. 근데 한 번도 ‘산’을 고려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꼭 산이 있어야 한다기 보다는 ‘푸름’을 볼 수 있으면 된다. 난 나무들을 볼 수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다.


네가 평소 하도 말해서 나도 ‘푸름’이 좋아졌다. 초록색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그런 느낌이 뭔지 알 것 같다. 왜 그 장면이 예뻐보일까. 인간은 자연을 보면서 숭고함을 느낀다고 하는데,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궁금하다. 수학적으로 ‘황금비’라는 말이 있지만, 식물에서 황금비를 느끼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아니지 않나.


난 식물이 말이 없어서 좋다. 묵묵해서. 두 번째는 계절에 따라 항상 변하는데 한결같다. 꽃보다 나무를 더 좋아한다고 말한 적 있는데, 꽃은 너무 빨리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빛깔 자체가 주는 평화로움도 있다. 그리고 흔히 ‘평화로운 장면’이라고 하면 항상 나뭇잎이 흔들리는 장면을 떠올리게 되지 않나. 미디어가 끊임없이 그런 이미지를 주입시켜 왔다. 휴양지, 넓은 바다, 푸르른 잎… 그런 이미지가 학습되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식물은 말이 없어서 좋다.






박미나 / 서울 거주 / 24

(In 연남 루모스케이크)


스페인 아닌가?


미나 스페인... 갔을 때 너무 좋았고 음식도 잘 맞았고, 만난 사람도 좋았고. 또 한 번 여유롭게 가고 싶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 번엔 좀 더 현지인을 만나고 싶다. 스페인어 알려주셨던 선생님이 그라나다에 계시는데, 그 분을 찾아뵙고 싶다. 스페인어로 대화하면서 확 그곳에 녹아들고 싶다.


스페인의 정취나 정서가 좋은 건가.


미나 사실 스페인 사람들의 특성은 잘 모르겠다. 좋은 사람도 많았지만 조금 딱딱한 면도 있다고 하더라. 내가 감히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가 보고 싶긴 하지만 막 '꿈의 도시'는 아닌 것 같다.


의외다. 나는 '꿈의 도시'라고 하면 일본이고 그곳에서 살고 싶고 매년 가야 하는 마치 제2의 고장처럼 느끼는데, 너에게 있어서의 그런 도시가 스페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미나 한 번 가봐서 흥미가 떨어진 걸 수도 있겠다. 그거와는 별개로 포르투는 정말 좋았다. 스페인에서는 너무 힘들었다. 도시 하나를 하루에 다 봐야 해서 너무 정신 없었다. 하지만 포르투는 여행 일정이 덜 빡빡했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더 잘해줘서 그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도 했다. 그 와중에 나만의 시간도 틈틈이 가졌는데, 맘에 드는 카페 하나를 찾아서 며칠동안 그곳만 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기가 내 스팟이다' 라는 곳을 찾아서 좋았다. 여기는 다시 오고 싶다고 느꼈다. 그리고 카페 옆에 도오루 강이 흘렀는데, 사람들이 많이 걷고 있었고 정말 로맨틱했다. 평화로웠고 여유로웠다. 나도 걱정 없이 머물렀던 시기였고.


다시 포르투를 간다면, 뭐 해 보고 싶나.


미나 강 위 다리를 다시 걷고 싶다. 노을 질 때의 풍경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 혼자였는데도 정말 로맨틱했고,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사랑하는 사람이랑 꼭 오고 싶다고 느꼈다.


네가 마음 속에 품을 만한 도시가 생기려면, 그 도시는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 제2의 고향, 나의 스팟! 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미나 난 사람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다. 복잡한 것도 싫고. 시골에서 자라서인지 대도시를 향한 선망도 없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인프라가 갖춰져 있으면 좋겠다. 딱 포르투 같은 도시면 좋겠다. 카페도 많고 자연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여유로웠으면 좋겠다.


그냥 앉아서 커피 마시고, 햇빛 쬐고, 대화 나누고... '아, 이 사람이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구나' 하는 게 느껴지는 분위기(를 말하는 거구나).


미나 우리는 밖에서 놀 때 실내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바깥에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어서. 저번에 어느 도시 설계사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벤치와 같은 '휴게 공간'이 정말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실내 공간을 찾게 되고 따라서 카페들이 이렇게나 많아진 거라고. 하지만 유럽 여행 때는 쉴 수 있는 벤치도 많았고, 벤치가 없어도 사람들이 자유롭게 잔디밭에 앉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그냥 드러누웠고. 하지만 여기(한국)에선 그럴 수 없지 않나. 그러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너의 말을 들어 보면, 우리나라에도 분명 하루하루를 여유롭게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하겠지만... 유럽은 말했듯이 그러한 모습이 그대로 '노출'이 되지 않나. 햇빛을 쬐고 있고, 한가로워 보이고... 하지만 한국은 설령 그렇더라도 다 실내에서 그러고 있기 때문에 노출이 안 된다. 남이 행복하고 즐겁고 여유롭게 보내고 있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다고 해야 하나.


미나 그리고 실내에 들어가기 위해서 돈을 지불함으로써 '격차'가 생긴다. 유럽에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밖에서 같이 쉬고 와인을 마시지만, 한국에선 내가 어떤 카페를 가느냐 어떤 공간을 가느냐로 (구분지어진다). 이것도 인터뷰에서 본 거지만. 그래서 여유로운 사람은 더욱 호화로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난 빽다방 가는데 저 사람은 스타벅스 가네? 이러한 것도 사회를 반영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더라.


생각해 보니 그렇다.


미나 그래서 누구나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공간이 있는 도시였으면 좋겠다?


미나 맞다. 그리고 멕시코에 가고 싶다.


넌 항상 남미 쪽에 대한 선망이 있지.


미나 새로운 여행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미국, 유럽, 일본은 메카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미나 캐나다에 있을 때 만났던 남미 친구들이 되게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정 많고 친절하고. 쟤네 문화를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기 문화를 정말 사랑하더라. 그리고 그쪽이 '즐기는' 삶으로 유명하지 않나. 쌈바도 그렇고...


열정적이지.


미나 지역 축제도 되게 많다. 입고 다니는 원색적인 스타일도 내 스타일이다. 빨간색, 주황색, 화려한 무늬...


너와 어울린다. 내가 이번 호의 주제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면, 다들 확 마음에 품고 있는 도시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자신의 취향에 맞거나 좋아하는 나라는 하나씩 있지 않나. 근데 그렇게 도시를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도시의 이미지를 갖고 있거나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에 프랑스에서 잠시 지내다 왔고 그래서 파리를 마음에 품고 있는 지인이 있는데, 난 그 사람을 보면 프랑스 파리가 떠오르고 또 누군가는 날 보면 일본이 떠오를 거라고 생각한다.


미나 오, 그렇다. 널 보면 일본의 여름이 생각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어떠한 도시를 마음에 품고 있으면 이미지가 점점 닮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네가 스페인이나 남미를 확 알게 되기 이전에는 너에게서 그러한 느낌이 안 들었는데, 점점 네가 그런 도시들을 좋아하고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스페인어권 친구들을 만나고 멕시코 여행을 꿈꾸면서 너만의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고 느꼈다. 널 생각하면 스페인의 휴양지, 남미의 열정적인 분위기 등이 생각난다. 이 부분이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미나 한편으론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모습들이 있는 반면, 얼마 전에 콜롬비아 친구에게서 시위가 열리고 무력으로 진압 당하고 있다는 상황을 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도 잘 못가는 심각한 상황이고. 만약 그곳에서 태어나 그런 현실을 접한다면 너무 힘들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그곳의 문화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다치는 상황을 마주한다면...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런 면을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런 면까지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 도시를 정말 사랑하고 알고 싶다는 반증인 것 같다. 애초에 그 도시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그런 깊은 부분까지 알아야겠다는 어떠한 사명감(?)도 느끼지 않았을 테니까. 어떤 도시를 내 마음에 품고 싶다고 해서 단순히 난 이 도시의 이런 모습들이 좋아서 좋아, 라고 피상적으로 말한다면 그 도시의 문화를 너무 가볍게 치부하는 태도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도 일본을 생각할 때 나만의 기준을 확실히 가지고 그 나라에 대해 알아가려고 한다. 일본의 이런 점은 정말 좋지만, 이런 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확실하게 존재하니까. 역사적인 부분도 민감하고. 하지만 '이런 면까지 좋아하진 않아'라고 단절짓고 좋아하는 면만 보는 것은 그 나라에 실례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좋아할수록 (좋지 않은 모습까지) 더 들여다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넌 나중에 해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나.


미나 난 6개월 살아봤지 않나. 그때는 여전히 현실적인 부분에 고민하면서도 되게 자유로웠다. 캐나다 갔다 온 후에 확실히 마음가짐이 더욱 긍정적으로 변했다. 그래서 그 이후에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도 내 스케줄을 철저히 관리하고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가치관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거니까, 어떤 상황에도 이것은 지켜야 하겠다라는.


더욱 너답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 너다운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고.


미나 맞다. 하지만 한국에 있고 몇 달이 지나니 다시 현실과 종종 타협하게 되더라. 부모님이 옆에서 간섭하기도 하고.


여기선 얽혀 있는 것이 너무 많다.


미나 부모님은 내가 하려는 걸 지지해주지 않는 면이 있다. 나도 가족에게 나의 일상을 일일히 이야기하지 않고. 그래서 하는 얘기가 똑같다. 가족 내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 문제, 스트레스, 한탄들. 그것들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흔들리지 말아야지 생각해도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결국에는 아, 그냥 대충 살자, 라고 체념하게 된다.


나도 항상 가족의 문제와 맞닿뜨리면 '그래, 뭐 내 분수에...' 라고 의기소침해진다.


미나 나에겐 사치야, 하고.


맞다. 우리는 되게 꿈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우리를 키워준 곳이 너무 작다. 지역적으로도 그렇고. 우리는 자꾸만 바깥으로 뻗어나가고 싶어하는데 자꾸 그 좁은 시골 구석으로 끌어 내려지는 느낌이다.


미나 내가 어떠한 결정을 잘 못하고 고민도 많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너무 신경 쓸 게 많아서다.


난 네가 캐나다에 갔을 때, '드디어 얘가 있어야 할 곳에 갔구나'하는 느낌을 받았다. 꼭 '캐나다'를 떠나, 바깥에 나가서 너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았다고 느꼈다. 아침 일찍 일어나고, 운동을 하고, 마라톤을 뛰고, 봉사활동을 하고, 이 친구들과 만나 술도 마시고...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드디어 갖출 수 있게 됬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국이 너를 담기에 굉장히 작다고 느꼈다. 규모의 작음이라기 보다는, 너는 네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가꿔나갈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는데 한국에서 너를 옭아매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못하게 막는다. 그래서 한국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미나 뭔 말인지 안다. 나도 느꼈다.


난 네가 기회가 된다면 커리어를 쌓는 과정에서 해외에 나가거나 언젠가 다시 해외에서 살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또 캐나다를 가고 싶은가. 아니면 어떤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은가.


미나 어떤 도시에서 살아 보고 싶냐는 질문을 들으면 걱정되는 것부터 떠오른다. 먼저 가족 문제에 있어서, 내가 해외에 있으면 첫째로서의 역할을 버리고 가게 되는 것 아닌가, 하고.


대체 첫째로서의 역할은 뭔가. 정말 고질적인 문제다. 우린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어떠한 책임을 가지게 된다. 근데 그 책임을 우리가 당연히 져야하는 것이라고 마음 먹는 순간부터 인생을 마음처럼 가꿀 수 없게 되는 거다. 물론 몇 년을 더 살았기 때문에 동생들보다 아는 것이 더 많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겠지만, 그걸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땐 충분히 동생들이 떠맡을 수도 있는 거다.


미나 동생들은 '언니가 첫째로서의 혜택을 다 받았는데 (그 책임을 던지면 어떡하냐)' 라는 말을 한다. 내가 해외도 갔다 왔고...


동생들도 자신들이 그러한 열정을 가지면 된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것은 네가 첫째라서 가진 혜택이 아니라, 박미나라는 사람이 가진 열망이다.


미나 어쨌든 그런 걸 다 자처하고 도시를 고른다면, 사는 건 또 다른 문제 같다. 그쪽의 의료 시스템도 알아봐야 하고. 최저 임금이나 물가, 부동산, 생활비 등도 따져 봐야 한다. 얼마간 해외에서 살아 보면 해외에서 사는 것이 맞는지 안 맞는지 알게 되지 않는가. 내 친구는 5개월간 스페인에서 살아 봤는데 자긴 못 살겠다고 느꼈다고 한다. 반면 나는 캐나다에서 살았을 때 굉장히 잘 맞았다. 인종도 다양하고 이민해 온 사람도 많아서 '이 나이때 이것을 해야 한다'라는 사회적 편견도 적고, 종교에 대한 다양성도 존중해 준다. 또한 무언가를 경험하고 시도해 보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려고 이민 온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웃음)


미나 그런 사람들 옆에 있으니 나도 많은 걸 신경쓰지 않고 '이거 해 볼까?' 하게 되더라.


너는 어떤 도시에서 살고자 할 때 고려하는 것으로 의료 시스템 같은 걸 보지 않나. 나 같은 경우는 어떤 도시가 나에게 많은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지가 큰 요소인 것 같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일주일을 보낼 때와 일본에서 일주일을 보낼 때 똑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어떤 특별한 곳을 가거나 경험을 하지 않아도 나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인사이트가 일본에 있을 때 훨씬 많다. 일단 그곳은 내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가 너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길거리만 돌아다녀도 영감을 얻게 된다. 반면 한국은 내가 익숙한 나라이기 때문도 있고, 아직 덜 발전된 부분도 있고... 그렇지만 미국은 논외다. 음식이 너무 안 맞았다.(웃음) 이렇듯 어떤 도시에 살고자 할 때 고려하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겠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은 '언어'를 가장 고려할 수도 있지만, 나는 (물론 일본어가 되니까 더 편한 것도 있었겠지만) 언어가 1순위는 아니다. 한편 '그 도시가 이러면 절대 못 살겠다' 싶은 요소는, 흐리면 안 된다는 것. 영국이나 북유럽처럼 날씨가 흐린 날이 많고 추운 도시. 그러면 난 절대 못 산다. 무조건 햇빛이 풍부한 도시여야 하고, 쌀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어쨌건 어떤 도시를 마음 속에 품고 있다는 건, 아직 내가 낭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 같기도 하다. 내가 언젠가는 그곳에 가 볼 수 있을 거야, 하는 희망. 난 나중에 내 친구들을 각 도시에 한 명씩 심어놓고 싶은 꿈이 있다. 사는 장소가 바뀌고 그 장소가 그 사람에게 맞으면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에 좋은 시너지를 준다고 생각한다. 정말 쟤답게 사는 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구나, 느껴질 것 같다. 그래서 과연 내 친구들이 각 도시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정말 기대된다. 분명 지금의 모습과는 다르지 않겠는가.


미나 장소와 시너지가 난다는 생각이 되게 신기하다. 확실히 그런 것 같다. 어떤 도시에서 지내느냐에 따라 내가 하는 것들이 분명히 달라진다.


특히 그 도시와 나의 정서가 딱 맞을 때, 시너지가 폭발하는 거다. 그래서 나도 가끔 상상한다. 내가 지금 한국에서 사는 모습과 일본에 넘어가 사는 모습이 다르겠지, 하고.


미나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


꼭 평생이 아니더라도, 1년 또는 몇 년 이렇게 살아 볼 수도 있는 거니까.


미나 그래서 디지털 분야의 직업을 가져야 한다. 어디에 가게 되더라도 일 할 수 있도록.


난 대학 졸업 후 바로 일본에 갈 생각인데 가장 고민이 되는 건 거기서 수입을 어떻게 벌까 하는 거다. 그래서 두 가지 계획을 짰다. 첫 번째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거고, 두 번째는 일본에서 내가 좋은 공간을 찾아다니면서 얻은 영감과 인사이트를 뉴스레터로 만들어 공유해 보는 것. 분명 일본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수요가 있지 않을까.


미나 좋은 생각이다.






이권미 / 전주 거주 / 24

(In 원 자취방)


권미 바르셀로나.


의외다. 너에게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도시다.


권미 학교에서 아일랜드로 어학 연수 프로그램 갔을 때 짬을 내서 갔다 왔다. 겨울이었는데도 완전 따뜻했다. 해도 유독 쨍쨍하고, 빛도 따숩고. 날씨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가우디 투어를 했는데, 그 중에서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이 정말 좋았다. 글을 못 배워 성경을 못 읽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성경의 구절을 하나하나 조각해 성당 주위에 빙 둘러 장식했는데, 조각이 정말 섬세하고 그 취지도 정말 좋았다. 하지만 일요일에 가서 성당 내부를 볼 수 없었다. 내부도 스테인드글라스로 되어 있어 정말 예쁘다더라. 아직 미완성이라 계속 짓고 있는데, 완공된 후 다시 꼭 가 보고 싶다. 같이 갔던 친구와 '우리 완공되서 꼭 다시 가자'고 약속했다.


그럼 그 도시를 품고 있는 가장 큰 요소는 그 성당인 거구나. 도시 자체의 특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권미 도시도 좋았다. 일단 햇빛이 정말 좋았고, 둘째 날에 야경을 보았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아일랜드에서는 해 지는 광경을 본 기억이 없다. 항상 흐리고 순식간에 해가 져서. 그러나 그곳에선 서서히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말 로맨틱했고 사람들도 자유롭게 걸터 앉아서 그 광경을 보고, 음식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가 여행 다녔던 도시들에서 다 좋은 경험을 했을 텐데, 그 중에서도 스페인의 바로셀로나가 너에게 주는 더욱 특별한 의미는 무엇인가.


권미 가장 즉흥적이고 촉박하게 떠난 여행이었는데 가장 여유로웠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고 가지 않아서 서치도 열심히 안 하고, 누군가에게 좋다고 들은 장소들을 느슨하게 돌아다닐 뿐이었다. 근데 가는 곳마다 너무 좋았고 오히려 미리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 가고 싶어', '여기도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안 생겨서 더 여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해가 질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게 정말 마음에 들었다.


햇빛이 쨍쨍하고 해가 질 수 있는 모습을 봐서 좋다고 했는데, 그럼 그럴 수만 있다면 꼭 스페인이 아니어도 되는 건가.


권미 그렇다.


그럼 바르셀로나가 가지고 있는 도시적인, 문화적인 특징이 너를 사로잡았다기 보다는 날씨적인 타이밍과 (그곳에서의) 경험인 거구나.


권미 그곳에서의 추억이 마음에 드는 거다.


나중에 여행이 아닌 오랫동안 살아 보고 싶은 도시가 있나.


권미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럼 '내가 정착하고 싶은 도시는 적어도 이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 있나.


권미 '산'이 있어야 한다.


누구는 바다가 꼭 있어야 한다고 그랬는데.(웃음)


권미 산이 있어야 하지만 너무 시골은 아니어야 한다. 그리고 시장이 가까웠으면 좋겠다. 산이 가장 중요하다. 네가 살고 있는 동네 뒤에 산이 있으면 좋겠다.


지금도 네가 살고 있는 동네 뒤에 산이 있지 않은가. 자주 올라가는가.


권미 자주는 못 간다. 그냥 뒤에 산이 있다는 것만으로 '난 언제든 산에 갈 수 있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좋다.


그렇다면, 만약 다른 조건이 정말 다 맘에 드는데 산이 없다. 그럼 탈락인가.


권미 어, 안 된다. 산이 꼭 있어야 한다. 큰 산일 필요 없고 언덕이어도 좋다. 자연을 느낄만한 숲이면 된다.


내가 이번 질문을 기획할 때 포착했던 지점이기도 한데, 어떤 사람이 어떤 도시를 마치 제2의 고향처럼 마음 속에 품고 있으면 그 도시와 분위기가 닮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왠지 난 널 보면 항상 LA가 생각났다. 하지만 확고한 연결고리가 있는 건 아니라, 네가 '왜 나를 보면 LA가 생각나?'하고 묻는다면 마땅한 답을 할 수는 없다.


권미 혹시 내가 한참 영화 <라라랜드>에 열광해서 그런 거 아닌가. <라라랜드> 보고 나서 항상 LA 가고 싶다, 그러고 다녔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관심이) 식은 지 오래다. 나는 어떤 도시나 나라를 가고 싶다는 마음이 꾸준하지 않은 것 같다. 항상 새로운 자극이 올 때마다 바뀐다.


물론 꼭 그러한(꾸준히 마음 속에 품는) 도시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애초에 그러한 도시가 있어서 이런 질문을 처음에 떠올린 건데, 생각보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보니) 그러한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 좀 가볍게, 한 달 살기 정도로 생각한다면 어떤 도시를 가 보고 싶나.


권미 치앙마이.


나도!


권미 가고 싶어서 항공권, 숙박 다 끊어놓았는데 코로나가 터져서 못 갔다.


치앙마이에서 한 달 동안이나 살아보고 싶게 만들었던 그 요소는 무엇이었나.


권미 치앙마이도 '햇살'이었다. 내겐 햇빛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아까 내가 (정착하고 싶은 도시는 어떤 조건을 꼭 갖춰야 하냐고) 물었을 땐, 햇빛을 언급하지 않았다.


권미 그렇네. 그럼 '좋은 날씨의 산'(웃음) 물론 물안개 낀 산도 분위기 있지만, 맨날 흐리다면 우울할 거다.


그래서 나도 절대 정착하지 못하는 나라가 영국과 북유럽이다. 나도 햇살이 가장 중요하다. 그나저나 치앙마이에서 한 달 동안 뭘 하고 싶었나.


권미 아무 것도 안하고 요양하고 싶었다.


요양이라 해도, 하루종일 누워만 있을 건 아니지 않나. 네가 (상상 속에) 그렸던 그림이나 장면들이 있었을 텐데.


권미 산책하고, 햇빛 쬐면서 책 읽고... 커피는 안 마시지만 카페 찾아다니고.(웃음)


어떤 도시를 마음에 품고 좋아한다는 건, 그 도시에서는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어떤 도시나 문화별로 가지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이 있지 않은가. 포틀랜드, LA...생각하면 어떤 라이프스타일이 떠오르듯이. 그런 의미에서 너는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싶나.


권미 그냥 여유를 즐기면서 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결이 비슷한데, 치앙마이와 영화 <콜미바이유어네임>에 나왔던 곳 어디지.


이탈리아의 크레마. 나도 크레마에서 한 달 살기 하고 싶었다. 내가 얼마 전에 알게 된 이탈리아어가 있는데 'Dolce far niante'라고, 영어로 풀이하면 'The sweetness of doing nothing'이라는 뜻이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의 즐거움. 지인들과 느긋하게 점심 먹고, 와인도 곁들이고, 산책하고 햇볕 좋은 날에 잔디밭에서 뒹굴거리고...


권미 악기 연주 하고, 수영하고 놀고, 그림 그리고...


이탈리아가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나. 그 라이프스타일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내가 한 달 살기 하고 싶은 도시는 치앙마이와 크레마인데, 두 곳 다 그런 이유 때문이다.


권미 나도.


치앙마이 가면 파릇파릇한 나무 사이로 산책하고 카페 가서 한가롭게 책 읽고, 이런저런 소품샵도 구경하고, 잔디밭에 앉아서 햇볕 쬐고... 이탈리아 크레마 가서는 영화 속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수영하고 맛있는 거 먹고 낮잠자고 탱자탱자 놀고 자전거 타고... 그러고 싶다.


권미 난 밥 먹는 속도가 느려서 친구들과 같이 먹으면 '벌써 다 먹었어? 나도 빨리 먹어야겠다' 이러면서 먹는데, 그런 데 가서는 내 속도대로 느릿느릿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일본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데, 생각해 보면 그런 라이프스타일과는 또 다른 결인 것 같다.


권미 일본도 여유롭긴 한데, 그 안에 약간 뭔가 많은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 소박하고 정갈하지만, 그 소박하고 정갈함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규칙이나 노력이 존재한다. 세심하게 정성을 쏟아야 하는. 하지만 이탈리아 같은 경우는 다 내려놓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느낌이다. 어쨌든 내가 언젠가 해외에 나가 살고 싶은 이유는, 한국에서는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진정으로 즐기며 살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 내가 한국에서 정착을 한다면 '남양주'를 고르고 싶다. 마음만 먹으면 수도권에 들어올 수 있으면서 조금은 시골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고. 뒤에 산을 지고 조용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이말산이 가깝다는 것이다.


권미 산 대신 공원도 괜찮겠다 싶을 때도 있는데 역시 아니다. 산이 훨씬 좋다.






양정빈, 정혜수 / 전주 거주 / 24

(In 전주 도란도란)


난 정빈이 하면 영국이 생각 난다. 그래서 영국에 관한 얘기를 물어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땐 네가 영국에 대한 사랑을 엄청 어필하지 않았나. 근데 요즘은 영국에 관한 얘기를 자주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네가 지금 마음에 품고 있는 도시는 어딘지. 아직도 영국인가.


정빈 내가 아침에 준비를 하면서, 원이의 질문을 곱씹어 봤는데 딱 그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때 영국이 멋있어 보였던 이유는 셜록 좋아하고 건물 멋있고, 영어의 근원지이고...


네가 영국을 좋아한 지 되게 오래되지 않았나. 언제부터였나.


정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는데 되게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유럽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영국에 갔는데, 품고 있던 로망만큼 좋았긴 했으나 여행으로 간 게 아니고 유도관에서 간 거라 맘껏 즐기진 못했다. 그래도 버킷리스트 한 줄 그었다는 느낌이라 영국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다. 그리고 국제학부로서 이것저것 배우다 보니, 영국이 정말 (검열 : 역사적으로 안 좋은 면모가 많은) 나라였다. 절대 신사의 나라가 아니다. 그런 면을 알면서 영국에 대한 로망이 깨졌다. 한편 엄마랑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갔을 때, 거기서 정말 노숙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그래서 지금 '마음에 품고 있는' 도시라고 하면, 잘츠부르크인 것 같고 가장 가 보고 싶은 도시라고 하면 모로코다.


모로코?


정빈 인간이 태어나서 사하라 사막은 한 번 가봐야 하지 않나. 하는 느낌. 사하라 사막에서 샌드 보딩을 하는 게 내 버킷리스트다.


외국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든가, 아님 우리가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시점에서 외국계 회사 다니면서 한국 외의 도시에 정착하고 싶다든가 하는 상상을 하게 되지 않나. 너는 해외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진지한 꿈이 있나.


정빈 그렇다.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은 생각에 대학원을 가고 싶은데, 미국 쪽을 생각하고 있다.


그럼 미국은 커리어 상 또는 학습을 위해서 고려하는 도시인 건가. 그렇다면 정말 이 도시에 살아 보고 싶다, 하는 로망을 가진 도시가 있다면.


정빈 미국에서 살아 보고도 싶다. 미국 중에서도 따뜻한 지역.


지금 앞에 3명 정도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어떤 사람이 한 도시를 간절히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이라든가 분위기와 그 사람의 스타일이 닮아가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고등학교 때 정빈이를 생각하면 영국 국기가 그려진 담요라든가...


정빈 맞다.(웃음) 유니언잭 정말 좋아했다.


원디렉션도 좋아하고. 영국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영어 실력도 갖추고 있고. 그래서 정빈이를 생각하면 영국적인 무드가 생각났는데, 또 이번에 오스트리아라고 하니 또 그런 이미지로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정빈 나도 그 생각을 했는데, 너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까 신기하다.


그래서 도시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게, 단순히 그 도시의 풍경이 좋다거나 하는 것을 넘어서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살아가는 모습과 다른 곳에 가서 살아가는 모습이 다를 텐데, 그 도시에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어서 인 것 같다. 내가 일본에 가고 싶어 하는 것도 일본에서는 정말 나답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어서다. 그래서 박미나와도 왜 스페인이나 남미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야외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는데, 바로 그러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싶어서 더욱 마음이 가지 않았나 싶다.


정빈 지금 생각을 해 보았는데, 내가 마음에 품고 있고 살고 싶은 도시라 하면 지금의 나에겐 미국이 맞는 것 같다. 잘츠부르크는 기억이 좋았던 거고.


정빈이가 미국에 가서 몇 년 정도 살게 되면, 또 스타일이나 무드가 달라져 있을 것 같다. 기대되지 않는가. 미국에서 살고 있는 정빈이의 모습.


정빈 네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정말 재밌다. 그런 김에 너희들에게 내가 어제 친구가 알려준 사이트 링크를 하나 보내주겠다. (드라이빙하듯 원하는 도시를 구경할 수 있는 사이트) 이번 주제를 듣고 생각이 났다.


어떤 도시를 네 마음 속에 품으려면, 그 도시가 갖춰야 하는 조건은 무엇이 있나. '내가 사랑할 만한 도시는 이러이러해야 한다.' 하는 것.


혜수 일단 공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자연인데 너무 대자연이 아니라 미국의 센트럴파크 같은. 울산 여행을 갔을 때도 태화강 공원이 정말 예쁘게 잘 되어 있었다. 그렇듯 도시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고, 강아지도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광장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반대로 '이러면 안 된다' 하는 것은?


정빈 난 여유가 없는 건 싫다. 공간이든 심리적 여유든. 어느 정도의 스페이스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빈 옛날에는 무조건 서울에 살고 싶었는데, 요즘은 전주가 너무 좋다. 전주가 대전 위치에만 있어도 정말 좋겠다.


정말로! 난 전주가 경기도 위치에 있었다면 우리나라에서 최상의 도시였을 거라고 자부한다. 좋은 도시다. 그런 의미에서 혜수랑 대화하고 싶었던 주제는, 저번에 영화 <레이디버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면서 그 영화의 주인공이 '새크라멘토'라는 시골 동네에 살면서 뉴욕을 마음에 품고 있지 않나. 그래서 뉴욕에 가긴 가지만 결국 자신을 온전히 품어주고 성장시켜준 도시는 새크라멘토였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도 전주에서 살 땐 이곳을 마냥 벗어나고 싶고 서울에 가고 싶어 했지만, 막상 지금 생각해 보면 전주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서울에 가고 나서야 전주가 얼마나 좋은 도시였는지 깨달았다.


혜수 내가 <레이디버드>를 봤을 때가 딱 21살이었다. 스무살을 정신없이 보내고 난 지점에, 내가 지나왔던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 이 시간들이 명확하게 정리되면서 나에게도 이게 이런 의미였구나 하는 게 다가왔다. 한창 그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는 모른다. 이 감정이 뭔지 정확히 정의를 내리지 못하다가 나중에 어느 정도 지나고 내 감정을 짚어 줄 수 있는 영화나 창작물들을 만났을 때 '아, 내가 느꼈던 게 바로 이런 거였구나'하고 이해를 하게 되는데, 스물한 살 때 <레이디버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근데 지금은 또 다르다. 전주에서 재밌고 평화롭게 잘 살고 있지만, 내가 앞으로도 이 도시에서 보내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학창시절에 무조건 인서울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서울을 마음에 품었다기 보다는 내가 전주에 있는 대학에 가서 전주에서 취직을 하면 정말 평생 전주에서만 살게 될 것 같은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혜수가 앞으로 꿈꾸고 있는 도시는?


혜수 서울 같은 대도시는 아니고, 어디로 가든 공원이 있고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도시였으면 좋겠다. 예쁜 성당이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소박하고 예쁜 성당이 있으면 마음에 평안이 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전주는 예쁜 성당도 가지고 있네. 우리가 그래도 전주에 20년 이상 살았다. 너희에게 있어서 전주란 어떤 느낌인가.


혜수 뭔 '힐링캠프'인가.


나는 줄곧 천변 근처에서 살아서인지 전주하면 천변이 먼저 떠오른다. 천변 걸으면 송천동이 한 눈에 보이는데, 그럴 때마다 '와, 정말 이 만한 동네가 없다'고 느낀다. 여기에서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전주가 이런 장면을 가진 도시라는 걸 잘 모를 것 아닌가. 다들 한옥마을만 보다 가지. (천변에서 바라다 보이는 송천동을 보며) 내가 여기에서 자랐다니, 나의 학창시절이 다 그곳에 있다니, 하며 새삼 감동을 받는다.


정빈 난 세상이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걸 전주를 보면서 실감한다. 그동안 너무 익숙해서 별 의미가 없었는데, 요즘 '어디 좋다' 해서 가 보면 정말 전혀 몰랐던 모습들 가득이다. 몇 년만 떠나 있다가 돌아오면 못 알아 볼 것 같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좋은 카페를 찾아 다니겠다고 찾아다니는데, 정말 전주가 면적 대비 소도시치고 정말 좋은 카페들이 많은 편이다. 아직도 내 마음에 진정으로 드는 좋은 카페는 서울에 하나도 없다. 많이 가봤는데도 전주에 있는 카페가 더 좋다. 혜수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을 너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 없는가.


혜수 없다. 난 무조건 한국에서 살 거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 보긴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외국에 나가 살면 너무 힘들고 외로울 것 같다.


정빈 평생 어디서 살래, 물으면 나도 한국을 뽑을 것 같다.


나는 예전엔 친구들이 '너는 나중에 정말 일본에서 살고 있을 것 같다'라고 할 때, 오히려 난 아니었다. 거기에서 취직할 생각도 없고, 정착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말 한국이 내가 '거쳐가는' 곳으로만 느껴진다. 내가 최종적으로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그래도 만약 한국에서 정착하게 되면 살고 싶은 동네는 남양주다.


정빈 혹시...(호시의 고향이라서)?


맞다. 그런 것도 있다.(웃음) 마음만 먹으면 서울로 들어올 수 있는데, 시골스러운 모습도 있고. 좀만 외곽으로 빠져도 논밭이 있고. 약간 전주 같은 도시다. 또 남양주에서 자란 지인이 있는데, 자기가 자란 동네가 정말 좋다고 하더라. 그래서 한 번도 가 보지 않았지만 이미 애착이 있다. 사실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준 도시는 20년 간 살아온 전주지만, 앞으로는 전주보다 더욱 오래 살게 되는 도시가 생길 텐데. 그래서 내가 전주보다 길게 애착을 가지고 살 수 있을 만한 도시가 어디인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만약 갑자기 판교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해서 판교를 나의 도시라고 받아들이며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남양주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키워 준 도시라고 생각하니 좀 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정빈 이 주제 정말 좋은 것 같다. 아까 네가 말한 것처럼, 어떤 지역에서 또 새로운 나의 아이덴티티가 생길 수 있지 않나. 그게 너무 궁금해졌다.


맞다. 정빈이가 미국에서 몇 년 살다 왔는데 '헉, 정빈아!!' 하게 될 수도 있다.


정빈 막 태닝하고, 입술 '듀' 하고.(웃음)


혜수 근데 정말 외국에선 못 살 것 같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거나 외국에서 사는 삶도 미래의 후보로 두었는데, 근데 외국에 여러 번 가봤더니 어느 도시든 내가 100% 완벽하게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흡수되기는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어디까지나 이방인이다.


혜수 몇 십 년씩 살아도 이방인으로서의 한계가 느껴질 것 같다. 나에겐 그게 되게 크게 다가온다. 난 어느 사회에서 살든 주류이고 싶은 욕구가 크다. 지역 사회에서 인정 받고 싶고. 그러려면 이방인으로서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언어의 한계도 있을 테고.


나중에 혜수가 어디에 정착할지 되게 궁금하다.


정빈 원이는 일본인가.


당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거기서 정착하게 될 수도 있겠다고.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그러고 보니 박미나와 이런 얘기를 했다. 남미가 무척 좋지만 그 도시를 마음 속에 품었다 내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단순히 그 나라의 좋은 측면만 알아도 되는 걸까, 하고. 남미 친구들을 만나면서 남미가 가지고 있는 아픔이나 역사, 경제적 부분 등 마음 아픈 부분까지도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한다고. 자기가 그 도시를 좋아할수록 그 도시의 외면하고 싶은 부분들까지 들여다 봐야 하고, 또 그럴 거라고.


정빈 멋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도 할 말이 많다. 내가 일본을 가고 싶어하고 마음 속에 품고 있다는 말이 역사적으로 예민한 문제도 있고 참 곡해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칼 같다. 이런 부분은 좋지만 이런 부분은 아니라는 나만의 확고한 기준도 있다. 그래서 앞으로 진짜 내가 일본을 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내가 한국인으로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일본어를 할 수 있고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만약 나중에 일본에 살고 있는데 이상한 일본인이 와서 조센징 어찌고저찌고 한다면, 내가 만약 일본어를 할 줄 모르면 내가 욕을 먹고 있는지도 모르고 반박도 못한 채 바보처럼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한국에 대한 사실적인 정보와 어떠한 정당성을 어필할 수 있을 거다. 그렇듯 내가 한국인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좀 더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중국어도 배워두면 중국이 우리 문화에 대해 자기 것이라 주장할 때 앉아서 불평과 비난만 하기 보다는 대외에 나가 한국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고, 그만큼 목소리가 커지는 거다.




OUT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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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질문들에 한 번 대답을 고민해 보세요!)


Insight


1. 어떤 도시를 마음 속에 품으면, 그 사람의 무드가 그 도시와 닮아간다.

2. 나다운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도시를 마음 속에 품게 된다.

3. 어떤 도시의 좋은 모습만 마음 속에 품을 수 있을까? 외면하고 싶은 부분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4. 마음에 드는 도시의 필수조건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자연이다. (Ex. 바다, 산, 공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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