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인터뷰 문답집 <Hey,> 6월호
[소소위시 인터뷰 문답집 프로젝트 <Hey,>]
Heyday를 살고 있는 20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20대가 가장 고민하고 생각하는 여러 주제들에 대한 사적이고 의미 있는 사유의 대화들을 엮다.
소소위시 인터뷰 문답집 <HEY,>
2021년 6월의 질문
"도장깨기 하듯 경험해 보고 싶은 직업은?"
Interview 심가은
In 잔원
가은 처음 취직한 곳이 대기업이었는데 그땐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내가 될 거라는 확신도 없었고 예상보다 너무 어린 나이여서 충분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좋은 곳인데 당연히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에 부랴부랴 입사했다. 어린 나이라 참고 다녔다. 지금이라면 어느 정도 사회 경험을 해 봤으니 이 회사가 괜찮은 건지 아닌지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는 나의 기준이 있었을 텐데 그런 게 전혀 없었으니까. 3년을 기계 부품 같은 느낌으로 다녔는데 모든 회사가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늦게라도 대학에 온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며 이런 회사도 있고 이런 학문도 있고 이런 직업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며 생각이 엄청 확장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직업에 대한 생각도 정말 많아졌다. 그전까진 이렇다 할 꿈이 없었다. 누군가 "너 꿈이 뭐야?" 물어보면 '그냥 직장인인데 왜 물어보지?' 라는 생각이었다. 그때까진 문과하면 사무직이라는 공식이 있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생각이 확 열리면서 일종의 충격이자 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거였다. 4년 밖에 없으니 이 시간 안에 이것저것 다 해 보며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야겠다 하는 생각으로 복수전공도 하고 부전공도 하고 타과 수업도 진짜 많이 들었다.
원 부전공과 복수전공을 각각 뭘로 했나?
가은 부전공은 예술학이었고 복수전공은 법학이었다. 그리고 건축과랑 독문과 수업도 들었다. 사진 동아리도 기웃거렸다가 과 학생회도 잠깐 했다가 대외활동도 하려했고 교내 근로도 오래 했고 국가 근로도 해 봤다. 근데 4학년이 되어도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이제 어느 정도 알았는데 그래서 뭐 할 건데?', '다 조금씩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 뭐 할 건데?' 하면서 뚜렷하게 정의내리지 못했다.
원 오히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으니까 (뭘 해야하는지 정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가은 뭐 하나를 고르기가 어려웠다. 지금이야 무엇을 선택해도 나중에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몰랐으니까.
원 맞다. 지금은 나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다는 걸 아는데, 예전엔 무조건 딱 하나를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은 직진하는 경주마 마냥, '이걸 정하는 순간 끝이야' 하고.
원 쭉 가야해(웃음).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가은 그런 생각을 하던 참에 코로나가 터졌다. 사실 나의 직업관에 있어 가닥을 잡고 싶어서 생각을 정리할 겸 발리에 가려고 했다. 그때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뭐 어떡하지?' 하다가 취직이나 하자 싶어 엄청 가벼운 마음으로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일하면서 자연스레 생각이 정리되었다. 공부와는 달리 '이건 진짜 하기 싫다', '이건 진짜 좋다' 하는 게 분명히 보이더라.
원 나도 (일하면서) 그걸 느낀다.
가은 공부할 때는 그냥 기본적으로 싫지 않은가(웃음) 시험을 보고 억지로 하다 보니. 반면 일은 '이 일은 좀 괜찮네. 재밌다' 싶은 게 있고 '정말 하기 싫어 미치겠다' 싶은 일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하고 찾게 된 것 중 하나는 연구하는 일이었다. 연구를 통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통계도 의외였다. 그동안 '숫자 싫어. 수학 싫어' 인간인 줄 알았는데, 하다 보니 재밌고 (결과값이) 딱 떨어지는 게 너무 짜릿하더라. 그래서 일하면서 '나 이런 거 좋아하네?' 느끼면서, 나는 연구도 좋아하고 사람과 사회에도 관심 많고 통계도 좋아하니 사회학을 공부하면 괜찮겠다 싶었다. 그렇게 해서 급하게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 이후 대학원에 집중하고 싶어 일을 그만두려 했는데... 어쩌다 채용 공고를 또 발견하게 된 거다.
원 애초에 보지 않으면 상관 없는데, 본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이다.
가은 그냥 넘기려 했는데 계속 생각났다. 작은 연구원에 있는 것보다 시에서 운영하는 연구원에서 경력을 쌓는 게 나중에도 더 크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한 번 해보자 싶어 급하게 지원했고, 사실 안 될 거라 생각했다. 채용 조건이 석사 과정에 있거나 학사 학위가 있거나 였는데, 난 석사 과정을 밟고 있긴 하지만 한 학기 밖에 다니지 않았고 학사도 아예 다른 전공을 했고 연구 경력도 없으니까. 근데 웬걸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것까지 말하면 너무 열정충으로 보일 것 같은데, 9월부터 개강이니까 7,8월에 프로그래밍을 배워보려고 신청해 놓았었다. (취직했으니) 못한다고 말은 해두었다. 좀 아쉽지만 프로그래밍을 배울 기회는 또 언제든지 오니까.
원 언니는 분야로 따지면 어떤 분야들을 거친 건가?
가은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땐 회계와 영업 관리(경영 지원)를 했고, 지금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연구일을 하고 있다. 일로만 따지면 세 개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원 아까도 그런 말을 했지 않나. 진로를 결정할 때 오직 딱 하나만을 정해야 하는 줄 알았다고. 하나를 결정하면 쭉 이것으로만 먹고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난 미술이라는 진로를 중3 때 정했다. 사실 중학교 땐 미술에 큰 뜻이 없었고 오히려 경찰이나 작곡가가 되고 싶었는데 엄마가 '미술 한 번 해볼래?'라는 말을 건네는 바람에 '미술 좋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뛰어든 게 지금까지 온 거다. 중3때부터 입시미술을 하고 고등학교에 왔는데 친구들은 이제 막 진로를 탐색하는 중이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아직 꿈을 정하지 못하고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것에 대해 불안해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부러웠다. 아까도 말했듯이, 진로를 이미 정했으니까 이 길로만 가게 되었다는 생각에 '너희들은 아직 뭘 하고 싶은지 좀 더 이것저것 해 볼 수 있지 않나'하는 마음이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디자인과를 전공하면서 당연히 디자인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앞으로 쭉 디자이너로 살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 에디터로 일할 기회가 왔을 때 고민이 되었다. '지금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쌓아도 모자랄 판에 갑자기 글을 쓴다고?' 그런데 그때 내 스스로 물었던 것은 다른 걸 다 떠나 '그래서 너 글 쓰는 거 좋아하냐 안 좋아하냐' 였다. 답은 전자였고, 그래서 그냥 해 보자 한 거다. 그래서 에디터로 일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정말 큰 교훈을 얻었다. 내가 디자인으로만 밥벌이 할 필요는 없다는 것. 디자인도 하다가 에디터도 할 수 있지, 하며 (시야가) 정말 넓어졌다. 지금은 또 다른 일을 하고 있다. 플랫폼 매니저로서 기획하고 콘텐츠 큐레이션하고. 처음엔 제안이 왔었을 땐 또 고민했다. '에디터라는 직업을 6개월 정도 경험하고 다시 디자인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기획을 하라고? 내가 여기서 길을 틀어버리면, 나중에 디자인으로 가고 싶어도 못 가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이 있었다. (이런저런 일은 했지만 결국) '디자인' 경력은 없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 보통 어느 목표를 정하면 그거에만 도움이 될 법한 일만 하려고 하게 되는 것 같다. '이거 할 시간에 저걸 하다니' 하면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스펙들만 쌓으며 지름길로만 가려고 하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 과정 중에 내가 해 보고 싶었던 이런저런 것들을 지나치고 포기하게 되는 게 싫다. 지름길로만 가려하지 말고 이것저것 즐기면서 가자는 생각에 이번 제안도 OK했던 거다. 또 하다 보니, 재밌더라. 그러다 보니 내가 정말 다양한 걸 할 수 있겠다, 또 새로운 직업을 만들 수도 있겠다 생각을 한다.
가은 멋있다. 직업을 만든다는 것.
원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어느 한 분야에서 유명해져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 꼭 회사에 들어가지 않아도.
가은 네 자신이 기업이 될 수도 있다.
원 '좋아하기에 가능한 것들이 있다' 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게 분명히 있고, 그럼으로써 앞으로 가능한 것들이 있겠다 생각하니 정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난 꼭 아모레퍼시픽 디자이너가 될 거야!' 라고 생각했던 시기보다 미래는 훨씬 불투명해졌지만,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뭐라도 해 볼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가은 확실히 그렇다. 예전의 너에겐 '디자인'이라는 능력치 하나뿐이었는데 지금은 디자인도 하면서 글도 쓸 수 있고, 거기다가 기획도 할 수 있지 않나. 그렇다면 나중에 만약 미래가 안 보이고 일이 갑자기 끊기게 되는 상황이 닥쳐도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세 가지가 있는 거다. 한 분야에서 오래 있는 사람들을 보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고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사람들이 (노력해 온) 시간을 인정해 주는 건지, 그 사람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요즘은 온갖 것에 다 '융합'이란 단어를 붙이지 않나. 투잡, 쓰리잡도 기본이고. 요즘 태어난 아이들은 100살 너머까지 산다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진짜 많다. 여러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재미있다.
원 맞다. 정말 재미있는 삶이 될 거다. 나도 디자이너로 살아야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을 때보다 될 때까지 디자인 해 보다가 그 다음엔 글도 좀 써 보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뭔갈 해 보다가 카페도 차려 보고...이런 식으로 생각하니 갑자기 삶이 재밌게 느껴졌다. 그 사이에 난관들이 분명히 있겠지만. 아까 유퀴즈 이직 편을 다시 한 번 복습했다. 송지헌 경장님은 원래 꿈이 화가였고 한국화를 전공했는데 졸업 후 은행원이 되고 그 후 승무원이 되셨다. 은행원을 하다 때려친 이유가, 미술을 배울 때는 대상의 본질을 찾아 작품으로 구현해 내는 일에 가치를 담았는데, 은행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을 대할 때 '저 사람의 신용 등급은?' 이런 것만 생각하게 되니 본인이 갖고 있던 예술에 대한 가치관이 바랠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외항사 승무원으로 전향한 까닭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해외의 각종 전시를 볼 수 있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된 거였고. 결국 미술을 향한 열망을 여전히 품은 채 직업들을 택한 거다. 댓글에 이런 말이 있더라. "직업을 목표로 한 인생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직업들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그 말마따나 '이런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이루려면 어떤 직업을 해 보면 좋을까?' 고민하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 보고 하는 거다. 난 지금껏 '디자이너'라는 명사형 목표를 가졌는데, 내가 정말 원하는 꿈이 뭔지 찾는다면 그 꿈을 위해서 꼭 그 수단이 디자이너일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은 나 지금 되게 그 말에 감동 받았다.
원 우리는 보통 직업 자체가 목표가 되고, 누군가에게 우릴 소개할 때도 이런 직업의 사람입니다, 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직업이 우리를 전부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다. 지금 시대엔 더더욱. 직업이 얼마든지 바뀔 테니.
가은 최근에 일 외에 각종 연구 공모에 지원했는데, 기쁘게도 경기도에서 진행하는 청년연구공모에 두 가지 주제로 지원해 두 개 다 합격했다. 그래서 다음 주에 수원에 가서 PT를 한다. 근데 그걸 준비하면서 내가 연구를 좋아하고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다곤 하나, 직업이 꼭 연구원일 필요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C언어를 배웠는데 이게 너무 재미있어서 직업으로 삼고 싶어졌다 하더라도, 또 그걸 하면서 동시에 연구도 계속 할 수 있겠다 싶으니까. 일단 통계는 일을 하면서 배울 수 있으니 계속 할 거고, 그 다음엔 대학원 공부에 집중하면서도 사이사이 프로그래밍도 배우고 싶다.
원 1년은 되게 길다. 그 사이에 또 새로운 관심사가 생길 수도 있는 거다.
가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요즘엔 공예 같은 것도 배워 보고 싶다. 비누나 향초 같은. 요즘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이 많아져서 샴푸바, 비누를 찾아보는데 그런 대안제를 직접 만들어 쓰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해 일을 벌리진 않지만,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꿈이다.
원 어떤 한 분야에서 갑자기 다른 분야로 전향한다는 건 사실 쉽지 않고 큰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쏟아왔던 노력과 시간과 돈이 있으므로. 근데 그런 걸 전혀 상관하지 않고 도장깨기 하듯 직업들을 체험해 볼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떤 직업들을 해 보고 싶나.
가은 일단 프로그래밍과 개발자를 해 보고 싶다. 완전 공대 쪽에서 하는 공부를 해 보고 싶다. 예를 들면 화학 같은 것. 난 한 번도 과학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화학 공부를 해서 조향사 같은 것도 해 보고 싶다. 완전 다른 분야라고 한다면 그 정도일 것 같다. 그리고 체력이 받쳐 준다면 경찰 같은 것도 해 보고 싶다. 남자친구의 직업이라 관심이 생긴 걸 수도 있다. 특히 수업시간에 공부를 하다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나 혐오 범죄를 접하다 보면 가슴이 끓어오른다. 경찰이 되면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그런 문제들을 직접 마주칠 수 있다는 게 궁금하다. 시민이자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보이는데 다른 측면에선 또 어떻게 보일까. 형법을 보면 고쳐져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기에 더 관심이 간다.
원 나도 (같은 이유로) 형법 좋아했었다.
가은 그리고 나도 가게 하고 싶다. 특히 요즘 엄마가 가게 하니까. 채식 식당 같은 거 하면 좋을 것 같다. 요리까진 안 되고 샐러드나 비건 빵 같은.
원 나 같은 경우는 경찰이 되고 싶다 하지 않았나. 사실 경찰 이전엔 국과수였다.과학을 좋아하지만 못하는 아이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국과수가 되고 싶었는데 내가 과학과 수학을 못한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고, 바로 이어 경찰을 하고 싶어졌다. 이유는 같다. 난 정의를 되게 중요시 하던 아이였다. 부조리한 사건사고들을 해결하고 싶고 최대한 억울한 사람 없는 정당한 세상을 이끌어 가고 싶었다.
가은 변호사가 되어야 했던 것 아닌가.
원 변호사를 할 순 없었다. 의뢰인이 마땅히 범죄를 저질렀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변호를 하는 것은 내 가치관 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은 검사는?
원 검사는 좀 더 법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 당시엔 법에 그렇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체력도 거지라서 경찰도 불가하다는 걸 깨달은 참에 엄마가 미술 해 보지 않겠냐고 물어 온 거다. 그래서 내가 만약 도장깨기를 할 수 있다면 경찰의 삶이 가장 궁금하다. 그리고 관심은 가지만 실제로는 못할 것 같은 직업 중 하나는 '배우'다. 어떤 작품을 찍는 기간 동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거지 않나. 다른 인생, 다른 이름, 다른 과거, 다른 인간관계를 갖고 그 세계관 안에 들어가는 거다. 되게 신기한 직업이다.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대로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글을 쓰는 에디터도 해 보고 싶고, 출판업도 해 보고 싶고, 이렇게 사람들 인터뷰 하면서 책을 펴내고...
가은 또 하나 생각났다. 근로하면서 키운 꿈인데, 원래 사회학과 오기 전에 상담 공부 하고 싶었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는 길이라 어느 정도 돈을 모으고 안정적인 상황이 되었을 때 도전해야 할 것 같다. 근데 어느 기관에 얽매여서 직원으로서 일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와서 치유 받고 갈 수 있는 가게를 차리고 싶다.
원 너무 좋은 생각이다. 나도 아까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찾아 오고 싶은' 가게를 만들고 싶다고 했지 않나. 누군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찾고 싶고, 편지를 쓰고 싶을 때 찾고 싶은 곳. 나도 워낙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고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걸 좋아하니까 위로 받고 싶은 사람이 찾아왔을 때 나와 소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꿈꾼다. 언니도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
가은 그래서 난 (손님들이) 다 혼자 왔으면 좋겠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일단 타인이 옆에 있는 것 자체로 '나'일수 없게 되니까. 그리고 회전율 같은 것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그냥 하루종일 있다 가도 되는 공간, 오늘 왔는데 마음이 다 안 풀리면 다음 날에도 또 올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난 가끔 밑도 끝도 없이 우울해질 때가 있는데, 이 감정을 병으로 정의내리기엔 가볍고 그렇다고 단순한 감정 기복이라 하기엔 깊다고 느낄 때가 있다. 병과 감정기복 사이의 어딘가인 것 같은데, 병원에 가기엔 너무 라이트한 주제고 친구에게 얘기하기엔 너무 딥한. 그래서 딱 그 중간 지점을 느끼는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원 그러한 상태를 언니의 언어로 정의해 볼 수도 있겠다.
가은 그럼 더 좋겠다. 그러기 위해 내가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야겠다.
원 언니가 그러한 카페를 열면 나도 나중에 찾아가야겠다. 케렌시아라는 말 아는가. 투우할 때 소들이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잠시 쉬는 안식처 같은 공간인데, 바쁜 일상 속 처절하게 싸워야 하는 틈에 나만의 안식처 같은 곳을 일컫기도 한다. 약간 그런 것 같다.
가은 내가 이런저런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느끼는 이유는, 나중에 그런 공간을 꾸려가려면 그 사람이 얘기하는 걸 내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우울함을 가진 상태에서 구구절절하게 자신의 처지를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그리고 이런 것도 해 보고 싶다. 더 많은 공부를 해야할 것 같긴 한데, 경찰, 소방관, 군인들이 업무하다 가지게 된 트라우마 같은 것을 치료해 보고 싶다. 그런 것들을 의학적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PTSD를 치료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야 했던 경우가 있었는데, 다 치료적인 시각에서만 접근하더라. 그것을 '치료'라고 명명하는 순간 그 사람은 환자가 되어버리는 거다.
원 그게 부담으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은 '이렇게까지 치료를 받는데 안 나으면?' 이런 불안감도 가질 테고. 아직 정확하겐 모르지만 꼭 '치료'로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엄청 나이가 들고 삶의 지혜가 들었을 때 이런 일을 다뤄 보고 싶다.
원 나는 이번에 이 질문을 주제로 잡았을 때 언니와 대화해 보고 싶었던 이유는 언니가 말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가은 앞으로도 점점 더 늘어날 것 같다.
원 난 내가 디자이너만 해야지 생각했던 시절보다, '당장 뭐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 볼 수 있겠지' 생각하는 지금이 훨씬 자유롭다. 미래에 대해서 '아, 뭐하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인생 정말 기니까 어느날 갑자기 "나 경찰 공무원 준비해"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시 어느 하나를 공부하다 다른 길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엄마가 한때 했던 말이, '하나를 잘해도 인정 받기 어려운데 그렇게 얕게 여러가지를 해서 어떻게 성공하냐' 였다. 그렇듯 우리 사회는 어느 한 분야를 오래 꾸준히 해나가는 것에 아직은 가치를 두는 세상이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분야에서 저 분야로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그 용기를 더 특출나게 잘 낼 수 있는 사람도 있을까?
가은 INFJ.
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은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아야 한다.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기웃거리게 되는 거니까.
원 난 큰 결정을 할 때마다 내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딱 한 가지가, '이거 안 했을 때 후회할 것 같아?'인데, '후회할 것 같다'라는 답이 나오면 아무리 경제적으로 손해여도 전혀 개의치 않고 돌진하는 성격이다. 그런 마인드가 또 필요하려나.
가은 2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속기 학원에 다녔다. 속기사 자격증도 있다. 원래 속기 공무원을 하고 싶었다. 국회나 경찰청 산하 해바라기 센터 두 군데 중 한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알바도 해 봤는데, 조금 안 맞더라.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말을 못하지 않나. 말을 듣고 타이핑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게 답답했다.
원 그러네. 언니에겐 사람들과 티키타카 오가는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 언니처럼 지금까지 되게 이것저것을 해 왔고, 앞으로도 할 거라고 기대되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나도 그렇게 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
가은 난 너를 만나고 나면 한동안 삶이 되게 풍요로워진다. '저 사람은 나랑 같은 나이인데 엄청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해 보이는데 난 왜 이렇게 가진 게 하나도 없지? 어떤 면으로 보나 부족한 것 투성이인 것 같아' 라고 느껴지면서 가끔 우울해질 때가 있는데, 한 번씩 너와 만나고 나면 정말 행복해진다. 그래, 나 정말 잘 살고 있어! 하면서.
원 앞으로 이것도 해 보고 싶고 저것도 해 보고 싶어, 하는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희망이 된다. 나도 나중에 가게도 차려보고 일본도 가야지 생각하면 그냥 마음이 풍족하다.
가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그걸 생각하면 더 열심히 살게 되고.
원 나도 언니의 화려한 과거의 이력을 들으면서 '아, 나도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쨉도 안 되었구나' 느꼈다. 앞으로 더 과감하게 이것저것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난 지금껏 이것저것 한다곤 해도 나의 바운더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들만 해 온 것 같다.
가은 성인이 된 이후의 나의 삶을 되돌아 보면 결국 무언가를 결정할 때 가장 크게 좌우했던 건 '이게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나?' 라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첫 직장을 그만둘 때도 내가 이 회사를 다니는 게 너무 사회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인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연구의 기본 방향은 더 나은 국가나 사람들의 삶을 위해서다. 그래서 그것 자체가 나의 삶의 방향인 것 같다.
원 그리고 동시에 진로관이기도 하고.
가은 내가 지금껏 나열했던 직업들을 보면 그게 연결고리다. 그걸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느꼈다. 그 애는 나와 정말 반대의 사람이다. 그 애는 이성적이고 난 이상적이다. 너와 나는 가치에 중심을 두지만 그 친구는 경제적인 것에 중심을 둔다. 그 애가 나한테 '너 하는 말 들어보면 그냥 대통령 해야 돼.'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그때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그런가? 난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할 뿐인데 정말 그러한가?
원 이러한 진로관을 찾는 게 내가 아까 말했던 댓글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언니의 경우는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목표를 위해 직업들을 활용하는 거다.
가은 모태신앙임에도 불구하고 신앙심도 부족하고 성경도 잘 모르지만, 정말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어라". 그게 진짜 나와 내 삶의 지향점을 잘 설명해 주는 말인 것 같다.
원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 직업들을 (언니가) 이것저것 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가은 아까 열고 싶다던 가게도 '장사'가 아니라 거의 '비영리단체' 수준 아닌가(웃음).
원 나는 일상에서 발견한 교훈이나 나의 가치관, 생각들을 콘텐츠로 보여주고 싶다. '나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하고 물어 볼 수 있는 것들. 계속 '나'라는 사람을 공유하고 보여줄 수 있는 채널을 찾아다니는 것 같다. 유튜브도 그렇고 브런치, 블로그도 그렇고. 가게를 열어도 출판과 같이 하고 싶다 하지 않았나. 내가 쓴 책을 공유하기 위함이다. 내가 사소하게 발견한 것들이 누군가의 삶에게 소중한 터닝포인트를 안겨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가은 난 가게를 열면 가게에 찾아 온 손님 모두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다. 모든 사람. 동물까지.
원 그리고 책으로 펴내면 어떤가. 이렇듯 난 항상 콘텐츠로 귀결된다. "뭘 만들어.", "책을 펴내" 하고.(웃음) 난 카페에 찾아 온 사람들과 이런저런 주제로 인터뷰 해 보고 그걸 책으로 펴내고 싶다.
가은 유재석의 최종 꿈이 카페 차리는 거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고 연예인인데 꿈이 정말 소박하게 느껴져서 놀랐다.
원 그런데 지금 유재석의 직업과 그 꿈의 결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타일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고. 난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충격이었다. 우리도 항상 꿈을 꿀 때 직함으로 생각하지 않나. 디자이너 해야지, 경찰 해야지, 하면서. 그런 거 말고 언니가 말했던 것처럼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라고 동사형으로 생각한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아진다.
가은 직업을 여러 개 갖는 과정에서 나의 여러 가지 역량들이 업그레이드 될 것이고, 그게 언젠가 분명히 누군가를 위해 쓰일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원 나도 항상 어떤 것이든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은 아, 나 수어도 배우고 싶다.
원 나도! 항상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그래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어느날 나의 도움이 필요한 농인을 마주쳤을 때, 내가 수어를 할 줄 안다면 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므로 . 모든 사람과 평등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라도 수어를 배워두고 싶다.
가은 그런데 생각보다 배울 수 있는 데가 많지 않다. 문화센터 등에 당연히 있겠지 생각했는데 없더라.
원 그런 것도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인들을 위해 수어를 배워두어야지 생각했을 때 정말 당연하게 접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마련되어있지 않다.
가은 점자 읽는 것도 배워두고 싶다.
원 누군가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
가은 결국 도착지가...(웃음)
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빛과 소금'이 되는(웃음).
가은 공무원 강사 중에 전한길 선생님이 있는데, 그분이 '선한 영향력'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그것도 한동안 내 삶의 목표였다. 근데 난 선한 영향력도 좋은데 그보다는 '긍정적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원 나도 '선한' 영향력과 '긍정적인' 영향력은 다르다고 본다.
가은 축 쳐져 있는데 정말 파이팅 넘치는 애가 옆에 와서 위로해주면 그게 정말 위로가 된다. 그래서 '일 잘한다'라는 칭찬 보다는 '너랑 있으면 정말 기운나' 라는 칭찬을 들을 때 너무 좋고 행복하다.
원 그런 의미에서 '이 사람을 이번 주말에 만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주가 힘이 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언니다.
가은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정말 영광이다.
원 이렇게 인터뷰를 진행할 때, '이번 대화 너무 재밌었다', '이렇게 대화하고 나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라든가, 언니가 말해 준 것 처럼 '너랑 대화하고 나면 마음이 풍족해진다' 라는 말들이 내가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계속 내 생각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원동력). 아까 말했던 '긍정적인' 영향력도, 내가 긍정적으로 살면 내 주변도 자연스레 힘을 받게 되지 않나. 그런 책임감도 느낀다.
Interview 박소민
In 코사이어티
소민 마케터나 기획자.
원 그건 네 전공(국제학부)과 어느 정도 연장선이 있는 직업 아닌가.
소민 그렇지만도 않다. 어쨌든 그게 지금 준비하고 있는 커리어이고, 또 해 보고 싶은 것은 해외를 베이스로 한 뮤직 스튜디오 예를 들면 유니버설 스튜디오나 워너브라더스, 소니 뮤직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해외 콘서트 유치하고 섭외하고 인터뷰 따는 일을 하고 싶다.
원 어떻게 보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결이 비슷한 것 같다.
소민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로망이지만 카페 겸 바를 차리는 것.
원 요즘은 카페나 바라고 해서 단지 커피 팔고 술 파는 공간을 만드는 게 다가 아니다. 콘셉트도 있어야 하고 공간의 스토리나 아이덴티티도 있어야 하는데, 너는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 건가.
소민 문제는 그걸 아직 안 정했다. 하고 싶은 콘셉트가 많다. 스튜디오 느낌 나는 아지트나, 바닷가 근처에서 서핑보드가 늘어선 힙한 공간이나, 모던하고 미니멀한 느낌이라든가.
원 지금 말한 건 다 '분위기'와 관련되어 있지 않나. 분위기 말고 '이 공간은 어떤 공간이다' 라고 설명할 수 있을 만한 그런 건 있나.
소민 그런 건 생각 안 해 봤다. 그냥 로망 같은 거라.
원 너는 패션 관련해서 블로그도 운영하고 인스타그램도 활발히 하고 있는데, 그런 것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건 없나.
소민 블로그 마켓을 열고 싶다.
원 너만의 의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건가.
소민 그렇다. 이런 느낌의 옷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100퍼센트 마음에 드는 옷을 찾기가 힘들다. 영국 파슨스 패션 스쿨 같은 데에 공부하러 가 보고도 싶다. 패션 디자이너 하겠다고 설쳤던 적도 있다.
원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유학도 가고. 보통 우리는 어떤 전공을 하면 그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꼭 전공이 아니더라도 어떤 분야에 발을 담그면 그 분야로만 계속해서 커리어를 쌓아나가야 한다고 느낀다. 갑자기 쌩뚱맞게 다른 걸 하고 깡총깡총 이 분야 저 분야 뛰어다니면서 도장깨기 하듯 쉽게 직업을 바꿀 마음을 먹지 못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부분이 좀 변화될 것 같지 않은가.
소민 그렇다. 충분히 커리어를 휙휙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고 본다. 커리어를 바꿔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있고 바꿔도 잘 될 것 같은 마음이 들면 나도 바꿀 것 같다. 하나의 일만 하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소민 그리고 그래야 시간이 더 늦게 갈 거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다 이미 해 본 것들이라 새롭게 느껴지는 게 없어서라고 한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게 처음이니 상대적으로 느리게 가는 거고.
원 일 리가 있다. 한국에서 하루를 사는 것과, LA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을 비교하면 하루에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다르지 않나. 여기에서는 다 익숙한 것들 뿐이지만, 그곳에 가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새로울 테니. 그 정보들을 다 처리하려면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내가 일본 가고 싶어하는 이유도 그런 거다. 같은 하루를 돌아다녀도 나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것들이 많아서 즐겁다. 그리고 어제 얘기했던 언니에 의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지만 결국 그것들이 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연결고리로 귀결되는 것 같다고 했다.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게 되는 거다. 이번 질문이 유퀴즈 이직 편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클립 영상 댓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직업을 목표로 한 인생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직업들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소민 맞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
원 인생의 목표를 '디자이너가 되겠다', '에디터가 되겠다'라고 잡는 것이 아니라, 동사 형태의 목표를 잡는 거다. 그럼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디자이너여도 상관없고 에디터여도 상관없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넌 네가 이러이러한 걸 하고 싶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
소민 난 내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구체화 해서 구현하는 일들에 꽂히는 것 같다.
원 나는 자기계발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공무원은 못하겠다. 업무의 프로세스가 매일 달라지지 않으니까.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디자이너나 에디터 같은 경우는 이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른 프로젝트를 하면서 항상 새로운 것을 접하게 된다. 지금 일을 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창작을 하는 건 정말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나를 설레게 하는 것도 없다. 난 앞으로도 창작하는 삶을 살 것 같다. 뭔가를 자꾸 만들어내고 글을 쓰고 디자인도 하고. 그리고 항상 뭔가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 같다. 뭔가를 해도 '야, 그걸로 책 펴내' 라고 말한다든가.
소민 그게 좋은 것 같다. 남는 게 있으니까. 나중에 스펙으로 활용할 수도 있고.
원 네가 초반에 말한 마케터나 기획자는 기회가 오면 현실적으로 할 수 있을 법한 직업이다. 반면 이번 생에는 전혀 못 할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이 직업 재밌겠다, 하고 느끼는 직업은 무엇인가.
소민 우주비행사. 난 정말 기회 되면 우주에 갈 거다. 진짜로. 나사 직원도 하고 싶다. 머리가 안 되서 못하지만.
원 우주나 과학에 관심이 있는 건가.
소민 그렇다. 다만 머리가 도와주지 않는다. 음모론이나 UFO 이런 것들 찾아보는 걸 좋아한다. 나사 51구역 이런 것들(웃음).
원 난 경찰의 삶도 궁금하고 국과수도 되고 싶었다.
소민 나도 국과수. 그리고 FBI. 인터폴 이런 것. 추격전 하고(웃음). 해외에서 협조하면서. CIA, 비밀 요원... 이런 것 멋지지 않나. 하지만 어떤 임무를 하다 죽게 되어도 '이런 임무를 하다가 죽었다' 하고 알리지 못하고 비밀에 부쳐야 하는 건 싫다.
원 거기까지 생각한 건가(웃음).
소민 내가 목숨 걸고 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원 그러고 보면 이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결국 네가 어떤 것을 했다는 게 '너'의 결과물로 남았으면 하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MADE BY 소민.
소민 사진 에세이도 내고 싶다.
원 낼 수 있다. 그렇게 작가가 되는 거다. 요즘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한 권 내는 순간 작가라는 호칭을 받는 거다. 난 출판업도 해 보고 싶어서, 1인 출판사를 차릴 거다. 내 책도 출간하고 주변인들의 책도 출간해 주고. 앞으로도 쭉 뭔가를 계속 써 가면서 발간할 거다. 유명세를 타든 아니든 상관 없다. 난 나중에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상황에 자리하냐에 따라 어쩔 땐 디자이너로 불리고, 소설가가 되고, 에디터가 되고, 기획자나 매니저가 되고, 작가님이 되며 다양하게 불리고 싶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그냥 '소원'이라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 요즘 '무과수'나 그런 분도 있지 않나.
소민 맞다. 책 <인디펜던트워커> 봤다. 난 그 분이 베를린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여행한 기록을 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게 너무 좋았다. 내가 여행 에세이를 쓰겠다고 마음 먹은 계기도 그것 덕분이었다. 1년 동안 유럽에 가서 한 달 마다 다른 도시의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생활을 하는 게 나의 로망이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원 어떤 직업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것. 이 사람이 글을 써도 되고,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해도 되는데 그것들이 다 '그 사람'으로 엮이게 되는 것. 그게 나의 워너비다.
Interview 박시현
In 근린커피
시현 딱 생각난 게 두 가지 있는데, 옛날에 정말 해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파티시에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교 중반까지. 파티시에 중에서도 쇼콜라티에를 엄청 하고 싶었다.
원 근데 그걸 막 드러내고 다녔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왜냐면 내게 그러한 기억이 별로 없다.
시현 파티시에를 하고 싶어 찾아보다가 초콜릿으로 공예하는 직업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생활의 달인 같은 프로그램에서 판에 초코를 촥 뿌려놓고 숟가락 같은 걸로 지익 하면서 케이크 위에 초콜릿 올리는 장면을 봤는데, 너무 재밌어 보였다. 어린 마음에 재밌어 보인다는 이유로 엄청 (그 일을) 하고 싶었다. 작년 말쯤에는 수제 사탕을 만드는 게 유튜브 알고리즘에 떴는데 새벽 내내 그걸 보면서 체험이라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같이 사는 친구한테 그 영상 보여주면서, 여자도 할 수 있는 직업이면 진짜 해보고 싶다고 말하며 새벽 내내 고민했다. 사탕을 땡기고 늘리고 벌려서 총총총 썰고 김밥처럼 말고... 무조건 힘을 요하는 작업이었다. 일하는 영상을 봤는데 다 남자밖에 없었다. '오, 해 볼만 하겠는데?' 싶었는데, 그 사람이 훅 같은 것에 사탕을 척 걸더니 땡기고 말아서 다시 척 거는 장면을 보고 너무 무거워보였다. 누가 봐도 근육을 엄청 쓰고 있었었다. 근육이라도 키워서 한 번 해볼까 싶었는데 또 평생 직장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쇼콜라티에는 방송 작가를 꿈꾼 이후로는 아예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데, 이번에 사탕 영상을 보고 (그 일이) 하고 싶어지는 걸 느끼면서 기회가 있으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요즘 레터링 케이크를 보면서도 재밌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원 약간 디저트류에 관심이 있구나. 난 요즘 네가 카페 알바 하면서 마들렌이나 디저트류 만들면서 뿌듯하고 재밌다는 뉘앙스로 스토리에 올린 걸 보면서 처음에 되게 의외라고 생각했다. 얘가 베이킹에 관심이 있었나? 싶었다. 이정도로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다.
시현 사실 카페에서 하는 것들은 엄청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다. 알바에선 모든 일이 다 '맡겨지는' 일들 아닌가. 하지만 그 맡겨지는 일 중에서 그나마 흥미가 있는 것 같다. 일이라는 생각이 별로 안 든다.
원 그럼 초등학교 때부터 쇼콜라티에의 꿈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너에게 로망을 심어준 것. 혹시 꿈빛파티시엘?
시현 아니다. 그 애니를 보진 않았다. 근데 너무 옛날이라 기억 안 난다. 그거 기억하나.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으로 '초코쿠키'라 쓴 거.
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직도 기억난다. 난 거기에 현모양처라고 썼다.
시현 정말 세계관 최강자들이다.
원 어느 누구도 정상적인 사람이 없다.
시현 꿈이 초코쿠키인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래도 자기 명함 만드는 거였는데, (그렇게 따지면) 내가 맞게 쓴 거 아닌가. 나는 꿈이 그런 쿠키 가게를 여는 거였다.
원 그러니까 너는 초코쿠키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지.
시현 냔 회사 이름을 쓴 거다. 내가 CEO였던 거다. 애들이 번갈아가며 놀렸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이 초코쿠키는 뭐냐면서. 넌 초코쿠키가 되고 싶은 거냐며.(웃음) 그때 별명도 한창 초코쿠키였다. 어쨌든 초 6때면 벌써 11년이나 지난 건데, 너무 어렸을 때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원 하긴. 나도 유치원 때 맨 처음 가진 꿈이 화가였다. 근데 어쩌다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는지 전혀 기억 안 난다.
시현 그 때도 난 단 거를 엄청 좋아했다. 그런 취향이 반영된 것 같다. 그리고 생활의 달인이 영향을 많이 준 것 같다. 케이크는 지금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만들고 싶다.
원 동기 중에 레터링 케이크 알바를 하다 너무 재미있어서 그걸로 독립출판을 해 책을 낸 사람이 있다. <요식업 디자인 노동자>라고, 요리와 디자인을 같이 하는 일에 대해 에세이처럼 쓴 책이다. 케이크 레터링하는 게 자신의 전공만큼이나 의미 있게 다가와서 그걸로 책을 썼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디자인이 요리와도 접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 같다.
시현 레터링 케이크가 왜 재미있어 보이냐면 케이크 위에 상상하는 것들을 구현하는 게 신기하다. 작은 걸 좋아해서 빵 만드는 것보다 초콜릿 만드는 거에 더 관심이 갔고, 레터링 케이크는 더 아기자기해서 관심이 간다. 근데 손재주가 너무 안 좋아 포기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이돌을 너무 해 보고 싶다.
원 난 네가 이 말 할 줄 알았다.
시현 지금도 하고 싶다. 지금 당장 데뷔시켜 준다면 할 수 있다.
원 아이돌이 된 너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 있을 것 아닌가. 어떤 장면을 상상할 때 가장 짜릿한가.
시현 관심 받는 거(웃음).
원 나도 상상해 본 적 있다. 막 '아이돌이 되고 싶다'히거 바란 것 까진 아니지만, 아이돌이 된 나의 모습 정도는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는 것 같다고 느낀다. 나도 관심 받는 게 가장 좋다.
시현 무엇보다도 춤추고 노래하는 걸 진짜 좋아하는데 그걸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 내가 지금 정말 좋아하는 취미 Top 2인데 이걸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관심 받는 것도 좋은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보고 싶다. 한 사람에게 말고 여러 사람에게.
원 난 관심 받는 게 왜 좋냐면, 내가 뭘 해도 영향력이 생긴다는 것 때문이다. 내가 책 하나를 추천해도 그게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어떤 사건을 조명해달라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고. 그리고 정말 갖고 싶은 브랜드,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을 때 일반인이면 전혀 닿을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 누구와 일할 기회, 만날 기회... 연예인이라는 지위로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는 게 좋다.
시현 돈 버는 건 일반인과 똑같지만, 우리는 돈 버는 걸로 끝인데 연예인은 돈 벌면서 이런 사람들도 만나고, 저런 것도 하고. 확실히 일반인보다는 기회가 많은 것 같다.
원 그리고 호시가 기부를 자주 하는데, 난 아무리 통 크게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돈이 없어서 잘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어떠한 뜻을 품었을 때 비교적 쉽게 할 수 있게 되는 게 좋다. 많은 사람에게 자꾸 영향을 끼치고 싶다.
시현 넌 약간 아이돌이라는 직업보다 그걸로 할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이 있구나. 난 노래하고 춤추는 그 자체가 좋다. 그게 일상이라는 게. 그리고 아이돌들은 항상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말하지만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원 이번 호 질문이 유퀴즈 이직 편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거기 나왔던 사람이 정말 다른 분야처럼 보이는 일들을 겪어왔다. 미대를 졸업했는데 은행원을 하고, 외항사 승무원을 했다가 돌아와서 변호사를 하고 지금은 경찰이 된 분이다. 하지만 분야는 달라도, (변호사와 경찰을 제외하고) 앞쪽 직업들은 미술에 대한 꿈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택한 직업들이었다. 그걸 보면서, 어떤 삶의 목표가 있을 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 직업을 해 봐도 좋고 저 직업을 해 봐도 좋겠다, 싶어질 수도 있겠다는 걸 느꼈다.
시현 중심을 두고 도는 거구나. 괜찮다.
원 나도 예전에는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디자인을 하는 게 내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 않나. 내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게 뭐고 영향을 끼치고 싶은 게 뭘까 생각했을 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꼭 디자이너일 필요는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에디터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게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해 볼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시현 좋다. 나도 생각해 봐야겠다.
원 너도 지금 전공을 글로 하고 있고 진로도 방송작가로 생각하고는 있지만, 방송을 위한 글을 쓰는 게 네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 않은가. 네가 인생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고 싶은지 명사가 아니라 동사형으로 생각을 해 본 후에 그걸 이룰 수 있는 직업이 뭔지 생각해 본다면, 좀 더 이것저것을 해 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현 진짜 좋다. 방금 약간 뎅-하는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어? 그렇게 살면 되겠다" 이런 느낌. 사실 뭐가 제일 좋은지 모르겠다. 쉬는 게 가장 좋다. 시간을 의미없이 보내는 게 제일 좋다. 그래도 확실히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건 방송작가인 것 같다.
원 네가 가장 하고 싶어하는 게 지금 네가 이미 밟고 있는 진로인 건 정말 행운인 것 같다.
시현 중3 때부터 하고 싶었다.
원 계기가 뭔가.
시현 방송 쪽을 두루뭉실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권미랑 MBC 어떤 방송 아카데미도 다녔던 거다. 방송이라고 하면 PD도 있는데 왜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냐 하면, PD는 공채시험을 봐야된다는데 시험을 보기 싫었다. 방송 일을 하는데 시험을 안 봐도 되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작가밖에 없었다. 국문학과를 간 건 내 취향이었는데, 학교를 수도권으로 쓴 건 방송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무조건 위로 가야 될 것 같아서. 인맥 싸움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원 난 네가 방송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네가 원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해서 방송작가를 꿈꾸게 된 게 아니라 방송작가라는 꿈을 가지고 나서부터 오히려 책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 보였다.
시현 맞는 것 같다.
원 물론 책도 원래 좋아했으니까 방송작가에도 관심을 가졌겠지만, 그 이후로 더 책을 많이 읽게 된 것처럼 보였다.
시현 사실 책 읽는 거랑 방송 일이랑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책을 원래 좋아하진 않았다. 중학교 때까지 필독서도 안 읽는 사람이었다. 방송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갈 수 있는 과가 뭐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다른 건 너무 거창했다. 애매하다고 느낀 와중에 '그래도 국문과 가면 맞을 것 같긴 해' 라는 생각으로 신방과 아님 국문과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신방과 갈 성적이 안 됐다. 그래서 국문과를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그때부터 (책을) 많이 읽게 됐다. 그리고 원래 문학을 좋아하긴 했다. 소설 말고 시를 더 좋아했다. 많이 쓰기도 했고.
원 그때 시 쓰는 모임이 있다하지 않았나.
시현 모임은 아니고 친구랑 둘이 쓰는 카페를 열어서, 자기가 쓴 시를 올리곤 했다. 몇 달 전에 발견했는데 18살 때 쓴 거니까 6년 되었나.
원 문학 소녀였구나.
시현 글 보면서 "뭘 이딴 걸 썼지?"라는 생각이 든다. 마침 최근에 친구랑 얘기했는데 그 친구가 너무 싫다고 한 게 그 친구의 과거의 글에 있었다. 내 글에도 있고.
원 그만큼 성장했다는 거 아닌가. 나도 소설을 13살 때부터 써서 10년이 넘었다. 그때 글이 아직도 있는데, 지금 보면 다 불태워버리고 싶다. 댓글도 달려있다. 공책에 연재하고 댓글 란을 그리면 애들이 댓글을 써 줬다. 원래 글은 불과 한 달 전에 쓴 것도 오글거리는 법이다. 지금 쓰고 있는 것도 '결국 다 갈아 엎겠구나'하는 심정으로 쓴다. 지금 쓰고 있는 건 1년 반째 쓰고 있는데, 1년 반 전에 썼던 그 도입부 부분이 얼마나 거지 같겠는가. 암튼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 직업을 묘사한 드라마나 책을 더 찾아보고 싶어지게 되는 것 같다. 그중 방송작가를 다룬 게 별로 없었는데 <멜로가 체질>이 있지 않았나. 그거 보고 어땠나.
시현 주인공의 직업이 방송작가라서 더 재밌게 본 것 같다. 다른 직업이었어도 재밌었을 테지만. 근데 내가 하고 싶은 쪽은 드라마 작가가 아니어서...
원 예능?
시현 그렇다. 사실 저번에 면접을 봤는데 그때 면접관이 이런 걸 물었다. "방송작가를 한다는 건 글을 쓴다고 생각해요, 방송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 말에 방송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들은 것도 있고 내 친구가 일하는 걸 보면 글 쓰는 건 아닌 것처럼 보였어서. 그렇게 얘기했더니, 글을 쓴다고 생각하고 (방송작가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길래 그 질문을 던져봤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글은 안 쓴다고 한다. 내 친구가 하는 일도 정말 타자를 두드리는 일이라고 하면 자막을 쓰는 게 전부다. '촬구'라고, 촬영구성안을 쓸 때 조금 오래 쓰는 것 같은데 그것조차도 '글'을 쓰는 느낌은 아니다. 어쨌든 (방송작가는) 글 쓰는 직업은 아닌 것 같다. 근데 난 글을 쓰고 싶어서 방송작가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고, 글을 쓰는 건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다.
원 직업은 방송작가를 하고 싶다고 하지만, 살면서 글 한 편은 써 보고 싶다 하지 않았나. 그런 식으로 '언젠가 해 보고 싶다' 하는 꿈들이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을 잇는 연결고리는 뭐라고 생각하나.
시현 되돌아 본다고 해야하나. 내면에 있는 것들을 끌어낼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내재되어있는 가능성을 발현하는...?
원 내재되어있는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겠다. 최대한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바깥으로 발산하고 싶은 건가?
시현 약간 느낌이 다른데, 일단 글을 쓰고 싶은 건 나를 들여다 보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혼자 나를 돌이켜 보면서 조용히 하고 싶은 것. 반면 방송 일은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다. 이건 어때요? 저건 어때요? 하면서. 그래서 하고 싶은 것마다 다 다른 것 같다.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은 것도 있고 혼자서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원 근데 글을 쓸 때 나를 들여다 본다는 것도, 결국 끊임없이 나와 소통하는 것 아닌가. 넌 결국 그냥 어떤 대상과 계속해서 티키타카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시현 그런 걸 수도 있다. 맞다.
원 아이돌도 크게 보자면 너와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애정의 티키타카 아니겠는가.
Interview 성은지
In 소장식물전
은지 첫 번째로 떠오른 건 피아니스트. 어렸을 때 피아노를 했었다. 학원이 이사해서 그만두게 생겼는데, 선생님이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었다.
원 되게 총애를 받았던 학생이었구나. 잘 쳤나 보다. 피아노를 (진로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있나?
은지 못 했던 것 같다. 피아노 학원을 그만둔 후 엄마가 바로 종합학원에 보냈는데 거기서 적응을 잘 했다. 엄마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지만 예체능으로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예체능 관련한 취미를 가지고 있는 것 보니 그런 부분에 미련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원 그러면 흥미가 있는 다른 예체능 분야에는 어떤 것이 있나.
은지 얼마 전 도자기 공예를 했는데, 생각보다 되게 힘이 많이 들었다. 균형이 안 맞으면 바로 비뚤어진다. 아무리 빨라도 매일매일 2개월을 해야 중심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만지작거리는 걸 해 보고 싶어서 다이소 지점토 공예를 해 봤는데 손에 안 맞아서 때려쳤다. 이번 클래스를 하면서도 '아, 나는 흙은 아니구나' 다시 한 번 느꼈다. 다시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다른 것 또 하고 싶은 건 나무 공예다. 스툴 만드는 것. 강의가 열려서 신청했는데 코로나가 터져서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가 보려 하는데 꽤 멀다.
원 그런 것들은 직업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은지 직업이라고 한다면, 조용한 공방을 운영하면서 뭔가를 깨작깨작 만들어 보고 싶은 꿈이 있다. 또 뭐가 있을까. 중학교 2학년 땐 과학자를 하고 싶었다. 식물을 정말 좋아했다. 식물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발달해서 사진을 찍으면 (정보가) 다 나온다. 일부러라도 멈춰서 찾아보려고 한다. 그때 당시 하고 싶었던 건, 뭔가 돔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생활하게 된다면 그 안에서 공기정화도 되고 식물을 자유롭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보고 싶다는 거였다.
원 새로운 주거환경을 제안하는 건가, 더 나아가 도시의 형태를 제안하는 것. 오, 흥미롭다. 초등학교 때 SF 과학 그리기 대회 같은 것 있지 않았나. 그때 항상 모든 아이들의 그림이 해저도시나 돔... 막 이랬지 않나. 그때는 그런 게 정말 판타지였는데, 지금은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지금 코로나도 터지고 기후위기나 미세먼지도 그렇고... 공기나 하늘과 직접 마주하는 것 자체가 불편한 일상이 되었는데, 여기에 투명한 돔을 세워 그 안을 멸균 상태로 만들고 미세먼지도 조절하고 식물 생장 조건도 맞춰서 마치 스노우볼처럼 이상적인 세계 하나를 만들어 준다면 (재밌을 것 같다).
은지 그게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도 나온다. 돔 밖을 나가면 헬멧을 쓰지 않고서는 절대 숨을 쉴 수 없어 몇 분 후에 죽는 미래 세계의 이야기다.
원 우린 아직 그정도는 아니라도, 돔 밖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코로나에 걸리게 되고 미세먼지에 노출되고... (그렇게 대입해 볼 수 있겠다). 실현되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 직업 얘기를 하다가 이런 얘기를 하게 될 줄이야.
은지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서 컴퓨터공학과 오기 전에는 자연대를 가고 싶었다. 근데 식물을 하려면 연구 쪽으로 가야하는데, 생물을 못했다. 그때 꿈을 접었다. 난 컴공 밖에 염두 안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꿈도 있었네...
원 난 경찰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은지 맞다. 너에게서 들은 적 있다. 나도 있다.
원 주변 사람이 내가 경찰이 되고 싶었다는 얘기는 종종 들어봤을 거다. 그 이전에는 국과수였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도 좋고 수수께끼가 딱 풀리는 순간이 좋았다.
은지 명탐정 코난 같은 건가.
원 맞다. 딱 그거였다. 그리고 난 시체 같은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법의학 쪽으로 가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과적인 자질이 없었다. 그래도 생물에는 관심이 있어서 교등학교 때는 문과에서 유일하게 100점 맞은 적도 있었다. 딱 한 번. 근데 지금은 과학과 먼 삶을 살고 있다.(웃음)
은지 나도 이과인데도 수학을 잘 안 한다. 인공지능이나 게임 쪽 아니면 수학을 할 일이 별로 없다.
원 그나저나 너도 경찰을 꿈꿨다던 이야기는 뭔가.
은지 사실 위패트롤(전북사대부고 순찰/지도 봉사활동)이 컸다.
원 헐, 위패트롤... 맞다, 순찰대였다.
은지 내가 무슨 행동을 해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여기서 폭만 넓히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원 어떤 기준을 마련하고 제시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일.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도 하지 않나. 그때는 사대부고의 지팡이였던 셈이다. 맨날 돌아다니면서 화장 잡고 담배 잡고(웃음). 위패트롤이 '밥패트롤'이라는 별명으로(급식 시간에 밥과 반찬을 담아주는 봉사도 해서) 많은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지만, 선도부와는 또 다른 역할을 해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선도부는 중앙에 서서 '야, 너 이리 와' 느낌이었다면 위패트롤은 좀 더 '순찰대' 같은 느낌이었다.
은지 지금 생각해 보면, '아, 그 시간에 공부했으면 재수를 안 했을 텐데...(웃음)' 싶다. 그때는 공부 말고 다른 걸 해 보고 싶었고, 어떤 목표를 위해 동기부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원 보통 문과는 감성적이고 이과는 논리적인 이미지라는 편견이 있지 않나. 게다가 너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무던하고 쿨한 아이였다. 그래서 난 네가 딱 어느 한 분야에 몸을 담그면 다른 분야에는 딱히 관심을 둘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정말 다양한 것에 관심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해가 갈수록 새롭게 깨닫는다.
은지 그렇구나. 일부러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한 가지 일만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얼마 전에도 내가 개발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다.
원 사실 "개발자를 할 수 있을까?" 라기 보다는 "개발자'만'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지 않았을까.
은지 좋아서 하는 걸까? 이게 내 거라서 하는 걸까? 하는 질문으로 혼란스럽다.
원 직업을 "이게 내 천직이야" 하면서 하면 좋겠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사람이나 직업에 자기 정체성이나 자기계발이라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도 있지 않나. 그래도 나는 아직도 낭만주의자인 건지, 이왕 일을 할거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은지 나도 그 사이를 계속 오간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남겨둬야 하나, 그래도 같이 하면 좋지 않을까? 하며.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원 타일러가 꿈은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으로 꿔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 '과학자가 되어야겠다'가 아니라 내가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은지 생각하고 그걸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직업을 취하는 거다. 애초에 이번 호 질문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유퀴즈 이직 편을 보고 나서였다. 이런저런 분야로 전향하며 이직했던 사람들을 다룬 편이다. 그 영상의 댓글에 "(저 사람들은) 직업을 목표로 하는게 아니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직업들을 활용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었다. 나도 이전까지는 아모레퍼시픽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했지만 사실 디자이너를 해야겠다는 게 인생에 있어서 목표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 영상을 통해) 좀 더 본질적인 걸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아까 네가 그랬지 않나. 내가 평소에 해 준 말들이 가끔씩 생각나면서 그때마다 좋은 영향을 받는다고. 그런 식으로 내 일상이나 시선을 공유함으로써 각 사람들에게 인사이트나 영감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런 역할을 디자이너를 하면서 할 수도 있고 에디터를 하면서 할 수도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면 폭이 되게 넓어진다는 느낌이다. 앞으로 인생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라는 꿈을 이뤄가기 위해 디자이너도 해 보고 에디터도 해 보고 뭐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은지 그렇게 생각하니 되게 마음이 편해졌다. 정말 좋은 말이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원 '직업'이라고 생각하니까 시험도 봐야할 것 같고 면접도 보고 합격도 해야 할 것 같고... 어떤 '단계적인' 것들이 생각나기 마련인데 "난 세상에 영감과 인사이트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벽이 없어진 것 같고 안도감이 느껴지면서 그럼 당장 블로그에 글을 써 봐도 되지, 하고 마음 먹게 된다.
은지 소소하게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방대하고 거창하게 생각하면 못 다가가니까. 어렸을 땐 겁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진다. 아는 게 많을 수록 무서운 것도 많아진다.
원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내가 어떤 직업을 가졌을 때 그 직업을 활용해서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어제 만났던 친구는 체험해 보고 싶은 직업으로 아이돌을 꼽았다.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노래부르고 춤추는 건데, 그걸로 돈을 버는 게 좋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게 좋다고. 반면 내가 아이돌이 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연예인이라는 명성과 지위로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내가 선한 일을 하면 그걸로 마음이 동해서 움직일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 지금 일반인으로서 어떤 행동을 해봤자 영향력이 별로 없지 않나. 하지만 연예인으로서 "여러분, 저와 함께 동참해주세요" 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고, 연예인으로서 벌어들인 큰 돈이 있으니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통 큰 기부도 할 수 있는 게 좋아 보였다. 그런 의미에선 나는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이 결국 종착점은 "영향력을 주고 싶다"라는 걸 깨달았다.
은지 나도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니, 개발자로 가는 길이 엄청 어려울 것 같다는 걱정이 좀 줄어들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 우리는 지금 사회인으로 가는 길목에 있으니까 어떤 직업을 가져야겠다 생각하면 그 직업을 가지기까지의 과정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본질적인 건 그 직업으로 네가 뭘 하고 싶은지다. 그걸 생각해 보면 좀 더 명쾌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은지 행복의 기준과도 같은 것 같다. 내가 뭘 했을 때 가치있다고 느끼는가. 평소에 그런 것들을 잘 생각해 보려 하지 않지 않나. 닥친 일을 하고 빨리 과제해야하고... 이런 것만 생각하니.
원 내가 한창 아모레퍼시픽 디자이너를 목표로 했을 때 아무래도 취업의 길목에 서 있는 나이인만큼, 아모레퍼시픽 디자이너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게 우선인데, 그 이전 단계부터 주목하게 되더라. 아모레퍼시픽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할 것. 거쳐야 할 것에만 눈이 팔린다. 그래서 결국 그 직위를 얻었을 때 뭘 할건지는 잠시 간과하게 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중심을 잡는게 중요한 것 같다. 뭘 해 보고 싶은 건지. 그리고 결국 답이 나왔다고 했을 때, 꼭 아모레퍼시픽 디자이너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길 트는 것도 좀 더 수월해질 수 있겠다.
은지 얼마 전에 조교님께 "저 뭐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고 또 한탄 했다. 어떻게 해야 개발자가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걱정이 들었다). 개발자가 가져야 할 자질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는 마음가짐과 그럴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런 걸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를 깊게 배우는 걸 더 좋아한다. 물론 개발자는 깊고 많은 것을 요구하지만(웃음).
원 네 인생의 목표를 개발자로 잡는 게 아니라, 네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한 스텝 중의 하나로 개발자가 될 수도 있는 거다. 몇 년 하다가 다른 걸 할 수도 있는 거고.
은지 요즘엔 개발자로서의 경력을 끝내면 다음엔 어떤 분야로 가 보면 좋을지 가끔 생각한다.
원 그래서 난 오히려 설레기도 한다. 당장 지금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디자이너로 살다가 다음엔 뭐해 볼까 생각하면 설렌다.
은지 행복지수가 되게 높겠다. 삶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거니까. 내가 이번에 간 회사 면접 질문 중 하나가 "앞으로 3년 뒤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라는 거였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행복을 느끼는 게 어떤 것인지를 리스트로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개발자로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물어봐서 개발자는 팀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이니까 의사소통을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했다. 근데 계속 그 전에 했던 대답이 오래 맴돌았다.
원 되게 흥미롭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을 리스트로 적어본다면 그 리스트에서 인생의 해답이 나올 수도 있겠다. 오히려 그 리스트를 보면서 "어? 내가 이 직업을 해 봐도 좋겠다"라는 힌트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 그럼 지금 당장의 너는 리스트에 뭘 넣어 볼 수 있을 것 같나.
은지 공원 나가서 아이들 보고 강아지 뛰어다니는 거 보는 거. 우리 학교 앞 바닷가에서 애기 하나가 아장아장 걸어가는데 모든 사람이 다 쳐다보더라. 그걸 보니 새삼 얼마나 아이를 보기 힘든지 느꼈다.
원 행복의 리스트를 추상적인 게 아니라 방금 너의 대답처럼 일상의 장면들로 채워넣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들을 모아봤을 때 정말 예쁜 리스트가 탄생할 것 같다. 내가 리스트에 넣고 싶은 장면은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것. 아니면 지금처럼 친구끼리 대화하는 거다.
OUTCOME
(위의 질문들에 한 번 대답을 고민해 보세요!)
Insight
1. 꿈은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으로.
2. 직업을 목표로 한 인생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직업들을 활용하는 것.
3. 어떤 직업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브랜드가 되는 것. 이 사람이 무엇을 하든 전부 '그 사람'으로 엮이게 되는 것.
4. 하고 싶은 것들을 모아보면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5. 같은 직업을 꿈꾸더라도 왜 그 직업을 하고 싶은지, 그 직업으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관점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