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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삶

오늘의 기본 03

by 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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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가신 안건을 하나 깔끔하게 해결한 정도의 충실한 느낌이 든다.

이런 충실감을 하루에 한 번 반드시 맛볼 수 있다니. 저녁 차리는 건 위대해!"


일드 <어제 뭐 먹었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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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드 <어제 뭐 먹었어>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은 퇴근 후 항상 저녁을 직접 차려먹습니다. 정성껏 밥 한 끼를 차려 먹는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 충실한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필수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충실하다는 건 무엇일까요? 사전에서는 '내용이 알차고 단단함'이라고 말합니다.


내용이 알차고 단단하다는 것은 결국 '과정'이 알차고 단단하다는 것이 아닐까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어느 것에 집중하여, 하나하나씩 차근차근 해 나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사소한 것 하나하나 오롯이 느끼고 즐기는 것. 그러한 삶에서 풍요로움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결국 충실한 삶은 정성이 깃든 삶입니다.



일상을 채우는 순간들


일드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충실감과는 거리가 먼, 왜인지 무엇 하나가 빠져 있고 헐겁게만 느껴지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럴 때 대게 들여다보면 일상에서 무척 사소하지만 실은 소중하거나 필요한 일들을 놓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성껏 차려 먹는 식사, 커피 한 잔을 내리는 여유, 밀리지 않은 빨래와 설거지, 식물에 물 주기, 방 정리 같은 것입니다.


회사의 중요한 업무나 학교 과제, 시험공부 등 더 급하고 중요해 보이는 일에 몰두해 있느라 일상을 진정으로 풍요롭게 채워주는 사소한 단계들을 지나치고 있었던 것이지요.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가? 물음을 던지고, 충실해야 할 영역에 충실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충실한 삶은 일상의 사소한 모든 순간들을 알차고 단단하게 잘 '챙기는' 삶입니다.



준비하는 단계


스크린샷 2021-09-07 오후 11.58.09.png 일드 <츠바키 문구점>


어떤 행위를 하고자 할 때 그 행위로 서서히 스며들듯 시작해 본 적이 있나요? 때로는 적절한 준비운동이 필요한 행동들이 있습니다. 꼭 필수라기보다는, 한층 삶을 충실하고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절차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전에 슬슬 '잘 준비'를 하거나, 편지를 쓰기 전에 필요한 문구를 챙기고 자세와 마음을 가다듬는 것입니다. 허겁지겁 우당탕탕 요리하는 대신, 앞치마를 정갈하게 매고 필요한 식재료를 다듬고 천천히 시작하는 것입니다.


"편지지와 잉크를 고르고, 문장을 생각하고 가다듬고, 맞춤법이 틀리지 않도록 주의를 하면서 쓰는 그 시간에 생각이 정돈됩니다."

마쓰우라 야타로 <일의 기본 100 생활의 기본 100> 中


행동으로 돌진하기 전에, 내 몸과 마음을 준비시키고 알맞은 행동을 곁들이면 단순한 행동이라도 열매가 알알이 맺힌 듯 알차고 튼튼한 행동이 되어 일상에 큰 힘과 활력이 됩니다. 무의식적으로 자고, 먹고, 쓰던 일도 좀 더 의식을 하여 더욱 나답고 정돈되고 풍요롭게 자고 먹고 쓸 수 있게 됩니다. 하루를 그냥 건너가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어떤 단계들로 채워지고 마무리되는지 찬찬히 지켜볼 수 있습니다.



애쓰는 삶이 아니라 정성을 쏟는 삶


IMG_3648.PNG 영화 <정성을 다해 요리첩>


충실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결국 사소하게 넘길 일도 부단히 애를 써야 할 것만 같다고요. 얼핏 보면 꾸준히 의식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삶엔 평소보다 많은 노력과 수고가 들어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애를 쓰는 것과 정성을 쏟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애쓰다'의 정의를 살펴보면,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입니다. 애쓰는 것은 수고를 발휘하는 마음과 힘이 아닌, 그것들을 소모하고 활용하여 이루고자 하는 어떠한 '목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무언가를 이뤄내기 위해, 바라는 결과에 닿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성'은 '온갖 힘을 다하려는 참되고 성실한 마음'입니다. 이 뜻의 어디에도 '목적'은 없습니다. 그냥 참되고 성실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는 것, 그 자체를 바라봅니다. 한 마디로 '애쓰는 것'은 '결과'를 충족하기 위한 행동이며 '정성을 쏟는 것'은 '과정'에 집중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충실한 삶을 이루는 것에는 꼭 달성해야만 하는 목표나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하루를 찬찬히 살펴보고, 돌다리를 두드리듯 차근차근 건너가고, 풍요로운 일들과 감정을 쏙쏙 채우는 일입니다. 평소 우리는 결과나 성과를 내야만 하는 일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발걸음을 내딛는 모든 길은 경쟁의 밭이며, 힘겹게 들이는 모든 땀과 시간은 바라는 목적지로 가기 위한 거름으로 쓰일 뿐이지요. 그것이 '애쓰는' 삶입니다. 정성을 들이는 삶은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거름으로 만드는 삶이 아니라, 그 자체로 결실 즉 탐스럽고 맛있는 열매로 바라보는 삶입니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지루할 틈이 없어집니다. 예를 들면 잼을 만들 때, 재료를 잘 씻어 준비하고 보글보글 끓이는 그 시간이 즐거움입니다. 요리만이 아닙니다. 얼마나 많은 재미가 시간과 노력 안에 감추어져 있는지 보물 찾기를 해봅시다."

마쓰우라 야타로 <일의 기본 100 생활의 기본 100> 中



충실하게 쉰다는 것


IMG_6275.JPG 일드 <산의 톰씨>


쉴 때는 어떻게 쉬면 좋을까요? 쉴 때마저 하나하나 준비하고 정성을 쏟을 수는 없지요. 하지만 마음껏 늘어져 휴식을 취한다고 해도 왜인지 이상하게 공허한 마음만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알차게'는 아니더라도 '잘' 쉬었다는 풍족감을 느끼려면 어떻게 쉬어야 할까요?


일단 나에게 진정한 휴식과 행복감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내 하루에 적당한 여백과 속도를 두고 채워 넣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이 진정 나에게 힐링을 주고 위로와 힘이 되는지 모르는 채로, 무의식적으로 뒹굴거리고 알고리즘에 뜨는 영상들을 보고 가벼운 가십거리를 훑는 것은 단지 '편안한 게으름'입니다. 그것은 단기적인 환기가 될 수는 있지만 결국 제대로 일하지도 쉬지도 못했다는 찝찝함과 공허함을 남기게 됩니다. 게으름이 아닌 휴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진정한 '풍족감'을 주는 힐링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쉼 이후에도 잃어버린 듯하거나 뒤쳐졌다는 느낌이 아닌, 오히려 더 채워지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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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의 일상을 제안합니다 : 충실한 삶


1. 매일 꼭 놓치고 싶지 않은 일을 정해봅시다. 일상에 작은 풍족감을 안겨주는 사소한 일들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식물에 물 주기, 직접 마트에서 장 보고 요리해 먹기, 샤워 후 달달한 음료 마시며 좋아하는 노래 듣기 등 일상의 밀도를 높여주는 일들을 하나하나 실천해 봅시다.


2. 자기 전에 '잘 준비'를 서서히 해봅시다. 이제 곧 있으면 잠자리에 들 거라고 몸과 마음에 미리 신호를 주는 것입니다. 조명을 어둡게 하고 잔잔한 노래를 틀고, 따뜻한 물을 마시거나 스트레칭을 해 봅니다. 하루를 갈무리하며 신경 쓰지 못했던 일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아도 좋고, 침대에 기대어 책 몇 페이지를 읽다 누워도 좋습니다.


3. 여유가 되는대로 자신만의 주기를 정해 직접 정성스레 요리해 먹는 시간을 가집시다.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세 번 또는 주말만큼이라도 사 먹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먹지 않고 직접 손질한 식재료로 시간을 들여 요리한 정성 어린 한 끼를 먹습니다. '먹는 것이 곧 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손으로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일궈낸 양식은 나의 몸과 마음의 일부가 됩니다.




스크린샷 2021-09-08 오전 12.16.08.png 일드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기본의 영감을 제안합니다 :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4부작으로 이루어진 일본 드라마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일본 특유의 잔잔하고 따스한 감성을 전하는 힐링 드라마입니다. 출판사로 일하던 주인공 아키코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가게를 이어받아 자신만의 스타일로 단장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소박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듭니다. 고양이와 주변 사람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고, 정성스레 빵과 스프로 이루어진 한 끼 식사를 선물하는 그녀의 일상에는 소소한 행복과 풍요로움이 가득 녹아있습니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ost - はるかな時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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