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가까운 생활을 합니다

어쩌면 노스탤지어의 감각일지도

by 위시

발을 땅에 딛고 살아가는 감각. 이는 생활 속에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어쩌면 경시하면서까지 살아가는 감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듯 고층 아파트에서 살아왔고, 어른이 된 지금도 대부분의 현대인이 집에서나 일터에서 입식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아파트는 선망의 대상이며, 작은 원룸 하나 구할 때도 이왕이면 더 높은 층을 고집하곤 하지요. 두 번째 자취방을 구할 때 3층과 16층에 각각 방 하나씩이 나와 선택만 하면 되었을 때, 엄마는 강력히 3층을 주장했습니다. 16층은 너무 높다며, 자고로 땅과 가까이 살아야 하는 법이라고 말했죠. 그렇게 얻은 3층 집은 가을이 되면 창밖으로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무척 운치 있었답니다.


저는 지금 입식으로 생활하고 있고 방 안의 가구도 입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실은 저는 언젠가부터 남몰래 땅에 가까운 생활에 대한 동경을 품어 왔습니다. 이유를 말하라면 망설여집니다. 단지 시야가 낮은 생활에 더욱 정이 가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의자에 앉는 대신 러그 위에 앉거나 드러눕고 싶고, 침대도 프레임 없이 낮은 매트리스만 두어 바닥과의 격차를 최소한으로 하고 싶어요. 집 안의 마룻바닥이 그저 걸어 다니는 '통행의 공간’이 아닌, 스스럼없이 앉고 눕고 물건을 두기도 하는 ‘생활의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런 생활을 ‘좌식 생활’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으로는 영 피부에 와닿지 않는 느낌이라, 저는 멋대로 ‘땅에 가까운 생활’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어요. 아무래도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과 동작의 반경이 바닥과 가까울수록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입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엄마가 말했던 ‘자고로 땅과 가까이 살아야 하는 법’과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가 아닐지요.


땅에 가까운 생활이란 들여다보면 노스탤지어적인 감성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릴 적 여름방학에 할머니댁에 가면, 마땅히 책상이 없어 늘 거실 한가운데 스케치북이나 일기장을 늘어놓고 엎드려 색칠공부를 하거나 글씨를 쓰곤 했던 기억이 소록소록 납니다. 그 옆엔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꽃무늬 플라스틱 쟁반에 수박 따위의 과일이 포크와 함께 놓여 있었고요. 바닥은 금세 과일에서 떨어진 물로 끈적해지고, 주스 컵에 맺힌 물방울은 바닥에 얼룩을 남겼지요. 하다 못해 식사 때도 둥근 앉은뱅이 탁상에서 모두가 엉덩이를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대고 밥을 먹었으니까요. 적당히 서늘한 바닥이 배에 든든하게 닿는 느낌, 엎드렸던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우고 밖을 내다보면 딱 알맞게 시야에 담기곤 했던 화단의 풍경… 제가 몸으로 기억하는 땅에 가까운 생활이라는 건 이런 추억이 깃든 유년의 생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야가 낮은 생활에 대한 애틋함도, 어쩌면 어릴 적 키에 맞춰진 생활에 대한 그리움일런지요.


얼마 전 일본 여행에 갔을 때, 마지막 날에 다다미가 깔린 일본식 목조 가옥의 단칸방에서 묵었습니다. 낮은 탁자와 등받이가 있는 방석이 전부인 소박한 방을 보자마자 땅에 가까운 생활에 대한 동경이 다시금 꿈틀거렸답니다. 오시이레(붙박이식 벽장)를 열고 두툼한 이불을 꺼내어 깔고 그 위에 눕는 것도 번거롭지 않았어요. 발바닥에 와닿는 건조한 다다미의 감촉도 좋았고, 바닥에 물건들을 늘어놓아 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었습니다. 욕실에도 전반적으로 낮게 설치된 수도와 샤워기, 보일러 버튼 그리고 거울까지. 늘 상상하곤 했던 땅에 가까운 생활을 잠시나마 체험해 볼 수 있었던 하루였어요.


물론 막상 좌식이 중심인 생활이 일상 전반에 들어오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첫 번째 자취방에서 그랬던 것처럼요. 그러나 그때는 협소한 방의 크기에 타협하듯 내몰린 좌식 생활이었으니, 언젠가 훨씬 쾌적한 조건의 방에서 다시 땅에 가까운 생활을 꾸려 보는 기회가 오면 또 다른 느낌이지 않을까 벌써 기대가 됩니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오늘의 중심을 지키는 나다운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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