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늘 상승세일 수는 없는 걸까요?
일본에서 연말연초를 맞아 신사에 방문한 기념으로 오미쿠지를 하나 뽑았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뽑으면서도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글자는 ‘흉’이었습니다. 흉은 한자도 어쩜 이렇게 무시무시하게 생겼는지요. 가벼운 마음으로 보는 점괘라는 건 알지만, 흉이 나오니 괜히 기분이 찝찝해졌습니다.
하지만 안 좋은 기분을 질질 끌고 싶진 않아, 금세 생각을 고쳐 먹고 너무 기고만장해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신년이야말로 기고만장해지기 딱 좋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한 해 책도 출간하고 성공적으로 졸전도 마쳤겠다, 무서울 것 없이 기세등등해져 현실을 제대로 못 보고 취업 준비를 하다 큰코다치는 건 아닐까 하고요. 오미쿠지를 자세히 읽어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지혜가 풍부한 사람일수록 아집이 생길 수 있으므로 너무 날 세우거나 타인과 다투지 말고 잘 어우러져라." 앞으로 나쁜 일이 일어날 거라고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는 것이 아닌, 흐름이 이러하니 조심해서 행동하라는 지혜 어린 조언이 담겨 있었지요.
만약 흉 대신 대길 따위가 나왔으면 어땠을까요? "와, 올해 운세 좋네!"하고 자신만만해져 독불장군처럼 걸어가지 않았을까요. 운세만 믿고 설치다가 무심코 실수하는 일도 생겼을지 모릅니다. 흉을 뽑음으로써 돌다리도 한 번 두들겨 보고 건너자는 마음으로 앞으로 다가 올 어떤 일도 신중하게 고민하게 될 테지요. 정신승리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아무렴 어떤가요. 흉은 저주라기보다는 조언을 주는 운세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비단 이번에 뽑은 흉이 아니더라도, 사주를 보면 올해의 운세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올해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20대는 잘 안 풀리는 시기라는 소리도 종종 들었지요. 하지만 그런 말을 들어도 주눅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이 듭니다. 앞으로 자꾸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만 닥쳐도, 내가 특별히 잘못해서가 아니라 인생의 흐름이 그러한 것뿐이구나, 묵묵히 할 일을 하다 보면 또 흐름이 바뀌는 시기도 자연스레 찾아오겠구나 싶어져 덜 조급해집니다. 별로 좋지 않을 거라는 말을 미리 들으니, 일이 잘 안 풀려도 당황하지 않고 한결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흉이 적힌 종이를 접어 묶으면서, 한편으로는 제가 흉을 하나 뽑음으로써 다른 누군가는 흉이 아닌 걸 뽑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그것 또한 나름대로 괜찮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번 연도에는 저는 잠시 쉬어가고 그는 기세 좋게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죠.
그로부터 며칠 후 마음에 들었던 다른 신사에서 눈 딱 감고 하나를 더 뽑아 보았습니다. 결과는 '말길'. 길 중에서도 가장 말단, 말하자면 흉의 바로 위에 해당하는 운세였지요. 하지만 이미 흉을 뽑은 전적이 있어서였을까요? "한 단계 좋아졌네!" 외치며 미소가 절로 지어졌습니다. 뭐, 인생도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겠죠.
그러고 보면 작년은 그럭저럭 잘 풀렸던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인생이 매번 상승세일 수는 없는 법! 오미쿠지의 조언을 받들어, 올해는 조금 속도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성실히 내게 주어진 상황을 헤쳐나가야지 하는 겸허한 다짐을 해 봅니다. 모든 것은 받아들이기 나름이니까요.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