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만나 습관이 된 카페들
저는 지금 본가에 내려와 집 앞 어느 카페에 앉아 있습니다. 탁 트인 창의 블라인드로 오후의 햇빛이 쏟아지고, 녹색 접시엔 바닐라 마들렌이 그리고 어느덧 다 마셔가는 라떼가 있습니다. 이곳은 저에게 있어 무척 특별한 카페입니다. 휴학하고서 내려와 있을 때,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며 한창 소설을 집필했던 저의 작업의 유람이자 온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에 제가 쓴 소설을 읽다 보면 구절마다 시시각각 조금씩 다른 이 카페의 장면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 기억이 녹아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소설을 쓸 때면 꼭 이곳에 와야만 술술 써질 듯한 기분이 들지요.
분위기 좋은 공간을 찾아다니는 취미가 있는 저로서는, 실은 어느 특정 카페를 고집하기보다는 매일매일 다른 카페를 도장깨기 하듯 다니는 것이 일상인 편입니다. 그러면 기분 전환도 되어,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작업도 한결 새로운 기분으로 할 수 있지요. 그렇게 지도 앱에 하트 표시로 기록해 둔 곳만 어느덧 400곳이 넘어갑니다. 그러나 그런 방대한 컬렉션 중에서도 이따금 이렇게 운명처럼 다가와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린 카페들이 아주 드물게 있는데요. 저만의 은밀한 작업실이자 아지트가 된 카페 두 곳입니다. 모두 본가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어 휴학 시절 매일 출근하다시피 발걸음 한 공간들이지요. 지금도 몇 개월에 한 번씩 본가에 내려가면 루틴처럼 두 곳의 카페를 방문하고서 추억에 잠깁니다. 본가에까지 들고 온 업무나 작업도 이곳에서 전부 해결하지요. 어느 날엔 "오랜만에 오셨네요?"라는 인사를 듣고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니!'하고 속으로 매우 감동을 받은 적도 있답니다.
두 곳의 카페를 그토록 애정하는 이유는 이곳에서의 기억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언제 방문해도 늘 한결같다는 점입니다. 흘러나오는 음악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의 구성도, 음료와 디저트의 맛도, 계절마다 빛이 들어와 한데 어우러지는 분위기도, 커피를 내리는 사람도. 서울에 사는 지금은 고작해야 몇 개월에 한 번씩 방문하게 되는데도, 언제 불쑥 발걸음해도 늘 그때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꼭 언제 갑자기 내려가도 한결같이 포근하게 맞이해 주는 본가처럼요. 그래서인지 고향에 내려갈 때면 집도 그렇지만, 집 앞의 이 두 곳의 카페도 변함없이 나를 맞아주는 것 같아 더욱 반가운 기분이 듭니다. 잊지 않고 들리는 것이 습관 같기도 하고 약속 같기도 하지요.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만 같은, 저의 소중한 아지트 두 곳은 그러한 믿음을 줍니다.
매일매일 새롭게 다른 곳을 방문하는 것도 무척 즐거운 일이지만, 그럴수록 때로는 마음에 드는 한 두 곳을 정해 습관처럼 드나들어 보는 것도 어떨까 싶습니다. 그곳에서의 기억이 하루하루 쌓이다 보면, 어느새 그 시절만 떠올리면 또는 그곳에서 한창 진행했던 작업이나 읽던 책을 떠올리면 그곳의 풍경이 영원히 머릿속에 남아 그립고 특별한 아카이브가 되겠지요. 그러면 또 비슷한 작업을 해야 할 때 습관처럼 그곳을 다시 찾게 되고, 영감도 얻고 의욕도 솟아나는 경험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비단 연이란 사람하고만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닐 테지요. 언제 어떻게 방문해도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줄 공간을 컬렉팅해두는 일. 그것은 단순히 나만의 아지트를 만드는 것을 넘어 나의 일부가 되는 농밀한 조각들을 수집하고 조각하는 일, 더 나아가 언제든 돌아갈 곳을 만들어 두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간혹 이러한 상상도 해 봅니다. 앞으로 집필할 소설마다 각각 다른 카페를 아지트로 두어, 훗날 그 소설을 읽을 때면 그 소설을 집필했던 카페가 함께 떠올라 마치 페어링 된 패키지를 만나는 듯한 기분에 휩싸여 보는 건 어떨지도 하고요. 하지만 어쩌면 그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운명처럼 습관처럼, 지금 애정하는 이 두 공간을 잊지 못하고 찾아오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몇 권의 소설을 더 집필하는 그날까지, 언제까지고 변함없이 남아주기를 바라봅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 이곳엔 조명이 켜졌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셔서, 나의 오늘이 되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