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로 이끄는 '존중'의 첫걸음
"너 미니멀라이프 뜻이 뭔지는 아는 거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싶다고 선언했을 때, 저의 가장 오랜 친구 S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말마따나 저는 오랜 세월 맥시멀리스트로 살아왔고, 한때는 미니멀리즘에 열광하는 시대의 흐름에 거슬러 뚝심을 지키는 자세에 자부심마저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어질러진 방에 대해 아무리 꾸지람을 들어도 "이래 보여도 이 안에 나만의 규칙이 있는 거야!"하고 의기양양하게 배짱을 부렸지요. 실제로도 당시 저는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방에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손끝이 야무지지 않아도 물건을 조금 제자리에 두지 않아도 티가 나지 않았으니까요. 모든 물건이 어쨌든 내가 놓은 자리에 충성껏 놓여 있는 것. 그것이 또 다른 의미의 질서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물건을 줄이고 방을 보다 깔끔하게 정리하고자 마음먹게 된 것은, 언젠가부터 방 안에 있으면 온갖 물건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듯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방대한 양의 물건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모습에 눈이 피로해졌으며, 잡동사니가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는 곳곳이 금방이라도 저를 와르르 덮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안 그래도 일상도 머릿속도 복잡한데 머무는 공간마저 소란스러우니, 도무지 하루하루가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제 일상의 '군더더기'를 하나둘씩 덜어내고 싶은 욕구가 들기 시작했어요. 마음의 군더더기도, 공간의 군더더기도 말이에요.
하지만 약 스무 해 동안 자타공인 맥시멀리스트로 살아왔던 만큼, 막상 물건을 버리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유명한 곤도 마리에의 영상과 미니멀라이프 다큐멘터리를 모두 섭렵하고, 일본의 미니멀리스트 유튜버 몇 분을 구독해 여러 가지 팁을 수집했는데도 말이에요. '물건을 비우는 것을 도와주는 17개의 질문들'이라는 제목의 영상에 나온 질문 리스트를 수첩에 적어 두고 시도해 보기도 했답니다. 실제로 그 과정은 무척 도움이 되어 예전보다는 수월하게 물건들을 하나둘씩 비워갈 수 있게 되었으나, 그 질문들로도 도저히 버리기 어려운 물건들이 여전히 있었지요. 하지만 1일 1비움 챌린지까지 도전하며 차차 미니멀라이프로 가는 여정 속에서, 마침내 저에게 가장 효과적인 '물건을 비우는 마법의 질문' 한 가지를 스스로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Serve'라는 영어 단어였지요. 즉, 이 물건이 나를 Serve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Serve라는 단어를 보면 자동적으로 서비스(Service)라는 단어가 생각날 것입니다. 맞습니다. 레스토랑이나 호텔 등에서 서비스를 받는 장면을 상상해 봅시다. 웨이터나 직원이 정중한 태도로 다가와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딱 맞는 역할과 쓰임을 발휘해 기분을 쾌적하게 만들어 줍니다. Serve는 단순히 무언가를 해 주는 행위를 넘어, 공손히 대접하고 섬기는 행위를 내포합니다. 바로 물건이, 이 웨이터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내가 물건에 휘둘리는 게 아닌, 물건이 내가 필요로 하는 정도에 따라 딱 알맞은 정도의 서비스를 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자아와 삶의 모습에 도움이 되어 주고, 곁에 둘 만한 가치를 지녀야 하고, 일상을 함께하는 반려인이자 주인인 나를 존중해야 하지요. 나의 발목을 잡고, 과거에 붙잡아 두려고 하고, 조금이라도 찝찝한 기분을 들게 하고, 자리만 차지할 뿐 올바른 역할과 쓰임을 하지 않는 배짱 좋은 녀석은 나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반려물건으로서 불합격입니다.
그 어떤 질문에도 망설여지던 물건이, '이 물건이 진정 나를 serve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의외로 간단히 정리되었습니다. 아까워서 버릴 수 없었던 물건은 '하지만 계속 보관해 둬도 아무런 쓰임을 하지 않고, 나에게 어떤 좋은 가치도 더해주지 않아'라는 생각으로 버릴 수 있게 되고, 초등학생 때 첫 우정 반지나 뜻깊은 사람에게 받았던 선물 등 추억이 서려 간직하고 싶은 물건도 '하지만 그래 봤자 지금 또는 미래의 나의 생활에 어떠한 유용한 도움도 줄 수 없잖아'라고 생각하니 미련이 덜어집니다. 마음에 쏙 들지는 않지만 놔두면 쓸 데가 있을 것 같아 일단 보류하고 마는 물건도 '하지만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지 않잖아'라는 생각이 들면 홀가분히 처분할 수 있게 됩니다. 그야말로 물건을 비우는 데 있어서 'serve'는 마법의 단어인 셈입니다. 내 삶에 진정으로 가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물건을 남기는 것, 그것이 미니멀라이프를 쉽고 기분 좋게 시작하는 첫걸음입니다.
물건이 나를 섬겨야 하는 것이지, 내가 물건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물건 또는 물건을 향한 욕망에 끌려다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야말로 갑과 을이 바뀐 꼴입니다. 과거의 나도, 허황된 언젠가의 나도 아닌, 지금 이 순간 성실하게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나에게 충성하는 물건을 곁에 두도록 합시다. 물론 갑과 을이나 주인과 웨이터의 관계보다 물건도 나를 존중하고, 나 또한 물건을 존중하며 사용하는 태도가 가장 이상적일 테지요. 그러니 주객을 바꿔, 이번엔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져 봅시다. 방 안을 빙 둘러보아요. 나도 이 많은 물건들을 제대로 serve하고 있나요? 올바른 쓰임을 부여하고 잘 활용해 본래의 가치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존중하고 있나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여 존재감을 돋보이게 할 때, 물건의 개수와는 관계없이 나다운 미니멀라이프가 시작됩니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