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너와 즐겁게 놀 준비가 되어 있어
돈이 부족해지면서 가장 크게 절약을 하고 있는 분야는 식비입니다. 처음에는 식비를 줄이기 위해 시작한 요리였지만, 하다 보니 재미가 들어 지금은 어느덧 2년째 거의 모든 끼니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고 있습니다. 또 절약을 위한 측면이 크다 보니 별로 비싸지 않고 최대한 여러 차례 활용해 먹을 수 있는 식재료 위주로 구하고, 또 비교적 단출한 메뉴를 만들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한 달 식비를 10만 원 이내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 꽤나 만족스럽지요.
절약을 위해 소비를 대폭 줄인 지금, 제가 가장 많이 지출하는 비용은 '유흥비'입니다. 저에게 있어 유흥비란 거의 친구를 만나서 쓰는 비용입니다. 기본적으로 친구를 만나는 날에만 외식을 하기에, 그때 드는 식비는 친구를 만나 놀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이므로 유흥비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친구와 만나 식사를 하고 카페에 가거나 술을 한 잔 하는 비용까지 일일이 따지며 어떻게든 저렴하게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막 대학에 입학했을 새내기 시절에는 저의 형편을 방패 삼아 습관처럼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최대한 저렴한 데서 먹자", "둘 중 더 싼 데로 가자". 하지만 점차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는 더 좋은 걸 먹을 수도 있는데 매번 나를 만날 때마다 차선의 선택지를 골라야 한다면, 과연 나와 만나는 시간이 즐거울까? 그 이후로 친구와 외식을 할 때는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는 조금 편안히 지갑을 열자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끼 식사에 드는 비용에 대한 의미도 달리 느껴졌습니다.
가령 만 원짜리 음식을 먹을 때, 예전에는 그 만 원을 오롯이 음식에만 할애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만 원에는 넓은 의미로 지금 이렇게 친구와 마주하고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커피 한 잔을 시켰을 때 이는 단순히 커피에 대한 비용이 아닌 2시간 정도 편안히 머물 수 있는 자리를 확보하는 비용까지 포함된 것이라고 생각하듯이요.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부담스러운 가격대의 식당에 가도 이 친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쓰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친구가 만나자고 했을 때 흔쾌한 마음으로 응하는 것은, '너와 즐겁게 놀 준비가 되어 있어'하고 알리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너와 만나는 그날 몇 시간 정도는 시간이든 재정적 여유든 오롯이 너와의 만남을 위해 할애할 수 있다고 약속하는 것과 같지요. 그러니 한 번 만남에 응했으면, 기쁜 마음으로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 돈 없어', '최대한 싼 거 먹자'라고 말할 정도로 궁핍하다면, 애초에 놀고 싶은 욕구를 절제하고 약속을 미뤄야 하는 것이죠. 또는 나의 형편에 맞게 한 달에 친구를 약속을 잡는 빈도를 조정하거나요. 어리광처럼 들이미는 나의 형편을 친구가 책임져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형편껏 차선을 선택하는 부담은 스스로 져야 할 몫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식비를 최대한 절약하되, 친구를 만나기로 정한 날 만큼은 허리띠를 졸라매고서 일일이 가격을 따지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인슈페너 먹을 것을 라떼로 결정하는 등 나의 메뉴 안에서의 타협은 조금이나마 있지만요.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골라 즐겁게 즐기는 것. 이는 친구와 만나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존중과 감사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물론 가격이 너무 부담스럽다면 솔직히 말하도록 합시다. 다만 싼 걸로 먹자고 투정 부리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 상황이 이러하니 이 정도 선에서 식당을 정해보자고 제안하는 등으로요. 매번 가랑이가 찢어질 만큼 무리해서 만나야 한다면 그 친구와는 점점 멀어지고 말지 모르니까요.
친구를 만날 때는 딱 하나, 친구와 나 둘 중 누구도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즐겁게 노는 것만을 마음에 둡니다. 만날 때마다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그 누가 만나는 걸 마다할까요. 이 단순한 마음가짐이 오래오래 친구와 편안히 연을 이어갈 수 있는 소소한 비결입니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