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살 때도 첫인사가 있습니다

옷과도 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by 위시

환경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우리는 물건을 살 때 어디서 어떻게 왔고 어떤 소재로 이루어져 있는지 체크합니다. 이왕이면 플라스틱보다는 나무로 된 식기를 사거나, 비닐봉지 대신 종이봉투를 사용하고, 비건이 화두가 된 이후부터는 식물성 소재를 선호하지요. 또한 공정무역으로 생산되거나 사회적 약자에 도움을 주는 기업의 제품을 옹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유독 간과하고 있는 것 같은 영역이 있으니, 바로 '옷' 아닐까요.


유튜브에서 우연히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라는 KBS 다큐를 보았습니다. 50분 정도 되는 영상이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단숨에 보았어요. 보는 내내 충격으로 입이 떡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환경오염의 주범이 패스트패션이라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버려진 옷들이 자연을 잠식해 가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하니 비주얼적인 쇼크가 상당했어요. 미처 몰랐던 정보도 몇 가지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옷의 원료로 쓰이는 합성섬유 ‘폴리에스테르’가 우리가 아는 플라스틱 페트병과 같은 소재라는 것이었습니다. PET를 틀에 굳혀 병이 되면 페트병이고, 실로 뽑으면 섬유가 되는 것이지요.


내가 그동안 입고 있었던 게 페트병이라니! 침대에 널브러진 옷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페트병은 철저히 재활용을 해 오면서, 옷은 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경각심 없이 아무렇게나 버려왔던 것이죠. 다큐를 다 본 후 침대 위에 대충 놓은 옷을 정리하다가, 오늘 입었던 가디건의 라벨을 살펴보았습니다. 아크릴 80%에 폴리에스테르 20%. 맙소사! 오늘 저는 플라스틱을 입고 나갔다 온 것이나 다름없던 것입니다.


저는 평소 물건을 살 때 소재도 소재이지만,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꼭 확인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아무리 마음에 쏙 든 물건이라도 밑바닥에 적힌 ‘Made In China’를 발견하면 가차 없이 내려놓지요.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 대부분이 값싼 노동력으로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대량생산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본인만의 철학을 담아 정성껏 만들어진 물건이 아닌, 그저 소비당하기 위해 최대한 많이 똑같은 모습으로 찍어낸 물건인 경우가 많지요. 그런 물건을 들이는 것을 경계하고 싶어 생긴 저의 소비 철칙이자 습관입니다. 문구나 그릇 등은 'Made in Japan'이 적힌 제품들을 왕왕 이용하지만, 옷을 구매할 때는 'Made in Korea'를 가장 우선으로 확인합니다.


하지만 옷의 소재를 확인한 적은 없었습니다. 패션에 대해 박식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소재가 좋고 감촉이 어떻고 환경에 이로운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패션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유로 이제껏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았던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큐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 옷을 살 때 원산지와 더불어 어떤 소재로 이루어져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Made in China'를 보는 순간 등을 돌리던 것처럼, 이제는 ‘폴리에스테르’를 보자마자 옷을 내려놓을 수도 있겠지요. 꼭 필요하다면 함유량이 적은 옷을 택하거나요.


우리는 외국에서 온 낯선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Where are you from?’하고 묻습니다. 그가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가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그의 국적을 알게 된 이후에는 차차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등 그를 이루고 있는 것들에 대해 물으며 그라는 고유한 사람과 가까워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옷을 처음 들일 때도,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과 연을 맺는 것처럼, 옷과도 연을 맺을 수 있습니다. 한철 입고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오래오래 곁에 두고 함께하며 나를 빛내줄 옷과 말입니다. 하물며 타인과도 그가 어디 출신이고 어떤 일상을 일구고 있는지 묻고 답하며 알아가는데, 나의 몸에 직접 닿으며 매일 걸칠 옷에도 그런 질문을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옷이 나를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거나 빛내게 해 주는 도구라는 말은, 옷에 아낌없이 투자하여 잔뜩 뽐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매일 겹치지 않는 패션으로 내가 얼마나 세련되고 잘난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 아닌, 정말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출처와 이야기를 품은 옷을 신중하게 골라 함께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옷을 들이기 전에 그 옷이 어떤 국가에서 어떤 시스템과 노동력을 빌려 여기까지 온 것인지, 또 어떤 소재로 만들어졌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이렇게 생산된 것은 사지 않는다’는 본인만의 규칙을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예요. 내가 사들인 옷의 생산부터 폐기까지의 과정을 책임지는 자세를 길러 보아요.


이제는 옷을 처음 만나면, 이렇게 인사를 건네 볼까요?

“WHERE ARE YOU FROM?”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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