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동하는 물건과 마음이 동하는 물건
좋은 물건은 마음이 동하는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네, 그동안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을 때 ‘아, 갖고 싶다!’ 생각이 드는 것은 마음이 동하는 것이라고요. ‘마음에 들다’라는 표현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좋은 물건에는 마음이 아닌 다른 것이 동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건, 일본민예관에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도쿄에 있는 일본민예관은 사상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일생 동안 수집한 옛 공예품과 민예품을 전시한 공간입니다. 조선의 미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만큼 하나의 방은 오로지 조선에서 가져온 물건으로 채워져 있기도 하지요. 그의 시선이 닿은 옛 물건들을 감상하면서 저는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방정맞은 리액션을 연신코 거듭했습니다. 와 씨, 와 씨, 하고요. 어떻게 당시 민중들은 저렇게 아름다운 형태와 빛깔과 무늬와 질감을 가진 일용품들을 만들었을까 감탄스러웠지요. 케이스 안에 진열되어 있기에 만져볼 수 있을 리 만무한데도, 벌써 상상의 손을 뻗어 물건을 만져보고 그 무게와 촉감을 가늠해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가상의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짜릿한 전율은 덤이었지요. 마치 몇 세기 전 저 도자기를 다듬던 투박하고도 혼이 어린 손길이 그대로 제 손으로 겹쳐 오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이었어요.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일상 속에서 단순히 ‘갖고 싶다’, ‘사고 싶다’라는 마음이 드는 물건은 욕정에 의해 마음이 동하는 것이나, 정말 잘 만들어진 귀한 물건은 손이 먼저 동한다는 것을요. 나의 손, 나의 피부가 저 물건을 타고 싶어 안달을 내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손이 동하는 물건은 주로 이런 물건인 경우가 많습니다. 시각적으로 멋을 부려 시선을 잡아 끄는 물건보다, 생긴 건 다소 밍밍하고 단순하게 생겨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형태와 선이 아름답고 짜임새가 조화로운 물건들 말이에요. 세심한 손길로 그 물건을 조각하고 다듬었을 장인의 모습이 절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눈에 새삼 들어온 사물들이 있으니 바로 의자와 주전자였습니다. 두 사물 모두 기능이 확고하니 연출할 수 있는 형태가 아주 자유롭지는 않으나, 그렇기에 더욱 서로 미묘하게 다른 형태와 선, 빛깔과 질감이 두드러지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물건에서야말로 본질을 챙긴 디자인이 빛을 발하지요.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개성은 넘치는 이러한 물건들을 보며, 마음이 동하여 사들인 물건이 100개 있는 집보다 분명 손이 동하는 물건이 1개 있는 집이 더 근사해 보일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것이 소박의 미학이려나요.
며칠 뒤, 미나미아오야마의 한 주거 맨션 1층 구석진 곳에 자리한 도자 편집숍을 찾았습니다. 땅과 흙을 닮은 그릇들과 가구들이 놓인 가운데, 한 남성이 유리컵 하나를 손에 쥔 채 연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볼 땐 특별해 보일 것 없는 단순하고 투명한 유리컵이었지요. 누군가는 ‘평범하잖아’ 하고 지나칠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이 단순하지만 완벽히 계산된 실루엣과 빛깔을 단번에 알아보고 반해버린 것이겠지요. 세 손가락을 컵의 표면에 조심스레 대어 보고, 부드럽게 감싸 쥐어도 보고, 옆 테이블에 올려놓고서 그릇들 사이에서 발하는 존재감을 확인하는 등 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부단히 시도해 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괜스레 반가워 속으로 외쳤습니다. “당신도 아는군요. 좋은 물건은 자고로 손이 먼저 동한다는 것을!”
제가 공간을 전부 둘러볼 때까지 그는 그 컵이 진열된 찬장에서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어떤 물건을 살지 말지 망설일 때의 제 모습과 닮아 보여 동질감이 들더군요. 과연 그는 저 컵을 살 것인가. 괜히 궁금해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기다려 보았어요. 결국 그는 컵을 제자리에 내려놓고 다시 갈 길을 갔습니다. 서류가방을 들고 덤덤히 맨션을 빠져나가는 그의 발걸음엔 그 물건이 자꾸 눈에 밟혀 다시 사러 올 것만 같은 미련이 묻어 나왔습니다. 손이 먼저 동하여 뻗어버린 물건을 마음으로도 간절히 바라면서 일상에 들일지 말지 신중히 고민하는 누군가의 모습은 생각보다 애틋하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마음이 동한 물건은 잽싸게 낚아채 오지만, 손이 동한 물건에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집니다. 그것이 있을 자리에 대한 존중을 갖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귀한 물건을 내 삶으로 들이는 일이니까요. 그런 물건을 제대로 알아보는 안목을 기르고, 또 그런 물건으로 집 안을 채우고 싶다고 생각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