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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꾸준히 하나씩 해나갑니다

올해엔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by 위시

다소 지났지만 다들 새해는 편안히 맞이하셨나요? 저는 어딘가로부터 홱 내쫓겨 날아와 엉덩방아를 찧고, 이제야 엉금엉금 일어나 보려는 1월의 중순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의 새해맞이는 12월에 들어서자마자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에는 어떤 다짐들을 세울지 설레는 고민을 하며 시작되는데요. 이번 연말에는 정신없이 졸업 전시를 치르고 쉴 틈 없이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해를 건너뛰어 있었지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많은 저는 연말연초만 되면 늘 장대하게 목표들을 나열해 왔습니다. 그렇게 모인 목표들을 보면 대부분 두 가지로 나뉘었어요. 1.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 2. 무언가를 얼마큼 달성하기. 즉, 그동안 없던 새로운 걸 일상에 들이거나 욕심껏 어떤 성과를 채우고 싶다는 각오뿐이었지요. 예를 들면 브이로그를 새로 시작해 본다거나 HSK 5급을 따는 것들 말입니다.


하지만 모두들 경험을 해서 아실 테지요. 새해를 맞아 세웠던 허황된 목표는 끝내 달성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요. 연초 세웠던 열 가지가 넘는 목표 가운데 끝내 겨우 두세 가지 정도만 줄 긋는 아쉬움을 반복해 오다 마침내 이번에는 조금 색다른 새해맞이를 해 보기로 했습니다. 올해는 달성해야 하는 특별한 하나의 목표 대신, 매일 하나씩 해 나가고 싶은 것들의 리스트를 만들기로 한 것이죠. 무언가를 열심히 치달아 반짝하고 해내면 그만인 성과형 목표가 아닌, 매일매일 천천히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쌓여가는 축적형 목표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이런 성격의 다짐에는 언제까지 꼭 얼마큼을 해내야 한다는 기약이나 결승선이 없습니다. 대신 다른 조건을 두었습니다. 바로 ‘매일’이라는 단어를 붙여 보기로 한 것입니다.


동사를 바꾸는 것만으로 똑같은 목표라도 느낌이 사뭇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예전이라면 ‘HSK 5급 따기’라고 설정했을 목표를 ‘매일 중국어 공부 30분씩’으로 바꿔 적어보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여 자격증까지 따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구태여 목표로 두지는 않습니다. 그저 올해는 무언가를 매일 반복하며 쌓아가는 감각에 집중해 보는 것이지요. 이와 비슷하게 ‘책 50권 이상 읽기’와 같은 목표는 ‘매일 30분씩 책 읽기’로 바꿔 봅니다. 올해 끝에 50권이 채워지든 말든 개의치 않는 것이지요. ‘45kg까지 감량하기’ 같은 목표는 ‘매일 30분씩 홈트하기’라고 바꿔 보면 어떨까요?


지금 이 <라이프마인드 2023> 시리즈를 매일 한 편씩 쓰는 것이 제가 세운 올해의 다짐입니다. 매일 한 편씩이라니, 그동안 엄두 나지 않았던 루틴을 일상에 들여 본 것은 매일 습관처럼 무언가를 꾸준히 해 보는 감각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한 편씩이므로 올해의 마지막엔 저절로 365개의 글이 완성되겠지만, 이 프로젝트의 끝만 바라보며 기약에 몫매지는 않습니다. 다다라야 하는 결승선을 생각하지 말고 다만 어제에 이어 오늘, 그리고 내일로 이어지는 눈앞의 소소한 루틴에 집중하기. 이 습관이 제가 올해 길러 보려는 감각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브런치에 새로운 시리즈 3개 이상 연재하여 완성하기’처럼 야심 찬 목표만을 세웠을지 모르는 일이지요.


또한 올해는 전에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습관이나 다짐을 무작정 데려오지도 않기로 했습니다. 다만 원래부터 내 일상에 익숙하게 존재했던 것들을 계속 이어가려고 합니다. <라이프마인드> 시리즈 자체는 처음 새롭게 기획한 것이지만, 늘 변함없이 해 온 ‘글쓰기’라는 분야에 속하는 익숙한 루틴인 것처럼요. 예를 들어 한 번도 도전해 본 적 없는 ‘스페인어 공부하기’와 같이 아예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목표들은 올해는 잠시 미뤄두기로 했답니다.


넘치는 호기심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뭔가를 이뤄내어 어깨뽕을 세우는 감각에 그동안 너무 치중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해를 특별한 이벤트들로 채우는 것도 비교할 수 없이 보람찬 일이지만, 그렇기에 간과하기 쉬운 ‘별 것 아닌 것을 매일 꾸준히 반복해 쌓아 간다’는 일상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여 보고 싶습니다. 전 종종 질보다 양의 힘을 믿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만으로는 사소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열 개 백 개 쌓였을 때 뿜어 나오는 또 다른 힘이 있습니다. 이 <라이프마인드 2023>에 365개의 글이 일렬로 아카이빙 된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분명 지금과는 또 다른 느낌이겠지요.


올해는 ‘무엇을(What)’이 아닌, ‘어떻게(How)’를 고민하는 해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밤하늘에 별을 콩콩 수놓는 듯한 한 해가 아닌, 마크라메를 한 올 한 올 꿰매어 가는 듯한 한 해 말이에요. 숲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나무를 꼬박꼬박 심는 일이 필요합니다. 혹시 모르지요. 예상외로 올해의 마지막 날 뿌듯하게 줄 긋게 될 것들이 평년보다 훨씬 많이 쌓여있을지도요.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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