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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때때로 기쁨을 부풀립니다

그래, 기다려왔던 바로 이 맛이지!

by 위시

오늘은 새로 이사한 친구 집에 놀러 갔습니다. 평소 자주 가곤 한다는 바지락 칼국수 집에서 만두까지 곁들여 식사를 했지요. 사실 바지락칼국수는 본가에서 자랄 때 어려서부터 엄마랑 자주 먹으러 가던 저의 오랜 소울푸드인데요. 서울에 산 지 어느덧 6년이 되었지만, 칼국수 한 번 먹어본 적 없더군요. 고향을 떠나온 곳에서 오랜만에 마주하는 푸짐하고 짭조름한 바지락칼국수가 무척 먹음직스러워 친구들과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만나는 날 외에 일절 외식을 하지 않습니다. 포장이나 배달도 시켜 먹지 않지요. 믿기지 않겠지만 그 흔한 배달앱조차 깔려 있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끼니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습니다. 원래는 식비를 아끼고자 들인 규칙이지만, 이제는 조촐하게나마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즐겁고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이 미더워 무리 없이 이런 식생활을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한 달에 외식을 하는 날이 얼마나 될까요? 하루 두 끼, 한 달에 60끼니라고 하면 10끼가 채 될까요. 그러니 맛있게 차려진 근사한 메뉴를 먹는 일은 저에게 희귀한 행복입니다. 한 입 먹는 순간, 집에서는 낼 수 없는 식당만의 불맛, 감칠맛 나는 조미료(?), 완벽한 비율의 양념… 그야말로 ‘외식의 맛’이 입 안에서 휘몰아칠 때면 눈물이 찔끔 날 정도의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그래, 이 맛이지!” 이런 심정이랄까요. 그러니 친구의 얼굴을 보는 것도 좋지만 무엇을 먹을지 기다려지는 마음도 듭니다.


한때는 외식으로만 끼니를 때워야 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주방이 갖춰져 있지 않은 대학교 기숙사에서 지낼 때였는데요. 매끼를 사 먹어야 한다는 경제적인 부담도 있었지만, 실은 점점 그 외식의 맛에 싫증이 나 더 이상 어떤 메뉴를 먹어도 환상적인 만족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사 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모든 끼니를 외식으로만 해결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입이 물리는 법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의도치 않게 금욕적인 식생활을 하다가 한 번씩 맛집을 찾으면, 눈앞에 차려진 이 한 상이, 하나의 플레이트가 얼마나 호화스러워 보이는지 모릅니다. 평소 먹을 수 없던 고기 메뉴나, 장인이 만든 라멘, 신선한 재료를 아낌없이 버무린 이색 파스타 등… 먹는 것의 행복을 새삼스레 다시 곱씹게 되지요.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절로 우러납니다.


“이렇게 자주 못 먹으니까, 이 한 끼가 정말 소중해.” 칼국수를 먹다가 감동에 겨워 이렇게 말하니, 친구 E가 “좋은 마음가짐이야.”하고 말해 줬습니다. 이렇게 일상 속의 적당한 결핍과 금욕은, 원하는 행복이 다가왔을 때 더욱 오롯이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이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껴두고 특별한 날에만 꺼내는 옷이나 물건이 그날의 기쁨을 배로 가져다주거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날 때 더 반가운 것처럼, 적당한 절제는 때로 기쁨을 풍선처럼 부풀려 줍니다. ‘아낄수록 아껴두자’라는 마음일까요. 다른 예로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는 카레를 너무 좋아해 일부러 특별한 날 아니면 카레를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친구와의 약속을 드물게 잡으면 그 만남 하나하나가 소중해, 기다리는 내내 설레고 마침내 그 친구를 만났을 때 너무 기쁘다고도 하네요.


물론 마음 가는 대로 호화를 누릴 수 있는 형편이 되는데도 더한 쾌락을 위해 억지로 참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처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사정이 되지 않아 어떤 것을 타협하거나 절제할 수밖에 없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손에 잡힌 기쁨의 순간들을 주저 말고 반기고 사랑하고 즐겨 보자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금욕의 기간이 ‘행복을 부풀리는 준비 기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것은 화로인가 칼국수인가...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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