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림의 도구를 깨끗이 닦습니다

닦는 행위는 수련의 행위

by 위시

저는 잘 쓸고 닦는 사람은 아닙니다. 자취 4년 차가 되었어도 여전히 청소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았어요. 최근에야 정리나 청소에 관심이 생겨 매일 카펫 위의 먼지와 머리카락을 쓸어 줍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살림에 있어 손발이 바지런한 편은 아닙니다. 저에게 있어 데일리 청소 도구라고 하면 미니청소기나 돌돌이뿐. 쓸기보다는 닦기에 더 취약한 타입입니다.


얼마 전 졸업 전시를 끝내고 그동안 엉망이 된 방을 정리하기 위해 한동안 열심히 버리고 쓸고 닦았습니다. 특히 세탁기나 냉장고 등도 닦아보자는 어느 청소 영상을 보고 생애 처음으로 가구나 전자제품의 구석구석도 닦아 보았지요. 손댈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쌓인 창틀 같은 곳도 눈을 질끈 감고 도전해 보았어요. 먼지가 닦여 깨끗해진 자리를 보는 게 점점 재미있어져 평소 눈길조차 주지 않던 바닥과 현관까지 열심히 닦았습니다.


그렇게 집 안 곳곳을 닦다 보니, 의문이라고 해야 할까… 평소 청소를 열심히 할 것 같은 살림 9단도 손대지 않을 법한 구석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굳이 깨끗할 필요 없는 생활용품입니다. 예를 들자면 세제와 섬유유연제 통, 쓰레기통, 락스 통 같은 것입니다. 케이스 표면에 먼지가 쌓이고 얼룩이 져도 세제나 락스는 안에 있는 액체만 잘 나오면 그만, 쓰레기통은 쓰레기를 휙 던져 넣으면 그만이니까요. 자주 손에 닿는 물건도 아니니, 어쩌다 한 번씩 사용하더라도 잠깐 감내하고 말 더러움이라고 넘겨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손에 닿는 더러움은 꽤나 찝찝한 기분을 안겨 줍니다. 때가 탄 섬유유연제 통이나 청소 용품을 쥐려면 '으'하는 소리와 함께 손끝이 오그라들지요. 뚜껑이나 발판에 물때가 잔뜩 낀 욕실 쓰레기통에 웬만하면 손을 대지 않고 휴지를 버리기 위해 미묘한 스킬을 쓰기도 합니다. 설령 직접 손에 닿는 부분은 깨끗할지라도 ‘내가 지금 더러운 것에 손을 대고 있다’는 시각적 확인이 저를 한 발짝 물러나게 만듭니다. 물론 그것들을 사용하는 데 크게 문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표면이 더러워졌다고 해서 기능을 잃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살림의 도구들이 쾌적하지 않으니 손을 뻗기 주저되고, 결과적으로 이는 청소를 더 자주 하지 않게 되는 습관으로 이어집니다.


‘손을 뻗기 망설여지는 것’. 그것은 쾌적한 생활에 있어서 은근히 불편한 걸림돌입니다. 주저 없이 도구들을 잡고 쾌적하게 살림을 해나갈 수 있다면 보다 부드럽고 상쾌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집 안을 둘러봅시다. 평소 더러워 만지기 주저되던 물건들이 있나요? 깨끗할 필요 없다는 생각에 한 번도 닦아 보지 않았던 살림 도구가 보이나요? 그렇다면 이 기회에 그것들을 한번 깨끗이 닦아 보는 건 어떨까요?


'닦는 행위'는 일종의 수련에 가까운 행위입니다. '도를 닦다'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물건들의 빤닥빤닥한 표면을 보면 내 마음의 때도 함께 벗겨낸 것만 같은 기분이 들 것입니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결핍은 때때로 기쁨을 부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