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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마중하는 나만의 의식을 만듭니다

입춘을 맞이하는 마음

by 위시

오늘은 입춘입니다.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로, 신정과 구정에 이어 세 번째 맞는 한 해의 시작이지요.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어 오늘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는데요, 그 덕에 방 깊숙이 들이치는 주황빛의 동쪽 햇살을 볼 수 있었답니다. 빛이 유난히 부드럽고 화사하다 싶었더니, 다름 아닌 입춘이라니요!


서양식 달력에 익숙해져 하루를 셈하는 우리에게 절기란 종종 생소하게만 느껴집니다. 입춘이나 동지처럼 자주 들어 본 이름 외에는 낯설 뿐이지요. 더군다나 오늘이 입춘이나 동기라고 한들, 절기를 일일이 준비하거나 정해진 풍습을 행하는 일도 드뭅니다. 매달 1일이나 마지막 날은 특별하게 여기며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하는 기준으로 삼지만, 계절의 변화와 자연 풍경을 감각할 수 있는 절기는 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일이 많지요.


물론 각 절기의 뜻이나 풍습이 현대 도시 생활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겨우 봄이 온다는 입춘인데 이렇게 추운 것처럼요. 그러나 입춘을 의식하고 맞이하는 마음만으로, 한 발 앞서 봄을 기대하는 상쾌한 기분이 됩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고 적힌 춘첩을 대문에 걸며,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기도 하지요. 그렇듯 절기는 단순히 계절과 자연을 감각하는 것을 넘어, 계절을 마중하고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날입니다.


꼭 전통적으로 전승된 풍습이나 정해진 의식이 아닌, 절기마다 행하는 자신만의 소소한 의식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지금 누군가 불과 몇 분 전에 업로드 한 ‘입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생일 때 선물로 받은 쟈스민 꽃차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창문에는 한지에 붓펜으로 춘첩을 써서 붙여 두었고요. 책상 위에는 절기의 흐름과 차, 그리고 다과를 그림과 글로 엮은 책이 놓여 있습니다. 봄을 맞는 마음으로 또 무얼 하면 좋을까요?


입춘은 흔히 착각하기 쉽지만 ‘들 입’이 아닌 ‘설 립’이라는 한자를 씁니다. 봄이 들어온다는 뜻이 아닌 스스로 선다는 뜻에 가깝지요.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생명이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때, 그것이 입춘에 깃든 자연의 풍경이자 생의 원리입니다. 그런 의미를 해석하고 우리 개개인의 일상에 적용해 소소한 리추얼을 만들어 본다면, 더욱 풍요로운 계절과 한 해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봄처럼 산뜻한 마음이 스스로 선다는 뜻에 주목해, 웅크린 몸을 깨우는 요가를 하거나, 흐지부지 되었던 새해 다짐에 다시 도전해 보거나, 달래와 같은 이른 봄나물로 직접 요리를 해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 특별한 이벤트를 즐기기 위해 기념일을 만듭니다. 곧 다가오는 발렌타인데이가 그중 하나인 것처럼요. 연인에게 초콜릿을 주며 마음을 고백하는 날이지요. 이렇게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권태로움을 환기시키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이벤트와 그런 날에 행하는 의식들을 통해 우리는 나다운 일상을 축적해 나갑니다. 그런 귀중한 시간을 절기 날에도 즐길 수 있다면, 1년에 뜻깊은 하루가 무려 스물네 번이나 더 생길 테지요.


오늘 하루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따뜻한 하루를 보내보면 어떨까요?그럼 모두, 다가오는 날들이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立春大吉 建陽多慶).


절기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고, 꽃차를 마시며, 춘첩을 써 붙입니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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