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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이 품격을 보여줍니다

균형 잡힌 일상으로 가는 한 걸음

by 위시

저는 신발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컬렉션을 수집해 애지중지 아끼며 신는 이른바 신발마니아도 많은 것 같지만, 저는 10만 원 안팎의 흰색 기본 스니커즈를 구입해 몇 년을 그것만 ‘죽이며’ 신는 편에 가까운 편입니다. 그렇다 보니 저에게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차림에서 가장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신발입니다. 그다지 부지런한 성격도 아닌 탓에 금세 신발을 더럽게 만들고 또 별 의식 없이 신고 다니기 일쑤이지요.


엄마는 예전부터 그런 저를 무척 못마땅해했습니다. 오랜만에 본가에 가면 신발 때문에 종종 꾸지람을 듣기도 했지요. 엄마 말을 빌리자면 왜 이렇게 ‘추접스럽게’ 하고 다니냐며, 자고로 사람은 신발이 깨끗해야 하는 법이라고 단호히 일렀습니다. 그러면 저는 괜히 오기가 생겨 ‘누가 굳이 남의 신발을 쳐다봐?’하고 대꾸했는데, 엄마는 더 성을 내며 말했습니다. “너 사람들이 안 보는 것 같지? 다 봐. 아무리 째내면(멋 부리면) 뭐 해? 신발이 더러우면 사람들이 속으로 욕해.” 그러면서 갑자기 어디선가 물티슈를 조달해 와 몸을 수그려 제 신발을 박박 닦던 엄마가 떠오릅니다. 그 당시에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남의 신발을 보고 흉볼 정도로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어디 있대, 하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엄마의 말을 듣고 나니, 그 뒤로는 사람들의 신발만 보였습니다. 지하철에 앉아 있을 때도 정처 없이 눈을 굴리다 꼭 사람들의 신발에 눈이 갔지요. 생각보다 깨끗하게 신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 놀랐고, 또 생각보다 지저분한 신발이 주는 부정적인 인상이 강렬해 놀랐습니다. 아무리 멀끔한 얼굴에 세련된 옷을 입고 있어도 지저분한 신발을 발견하는 순간 전체적인 조화가 단번에 깨지면서 시시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밖에서 멋 낼 줄은 알아도 집에서는 엉망진창으로 지내는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그리고 이내 제가 그동안 그러한 인상을 풍기고 다녔을지도 모른다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되도록 신발을 깨끗하게 신고 다니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알쓸인잡>을 보는데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영화에서 인물을 어떻게 연출해야 할지 헷갈릴 때는 ‘신발’부터 생각해 보면 된다고요. 신발은 그 사람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나이, 성별, 신분, 직업 등의 정체성부터 청결도나 걸음걸이 등의 사소한 습관까지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지요. 우리는 완벽한 화장, 몸에 걸치는 명품 코트와 가방 등이 우리의 품격을 높여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우리에 대해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신발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고급스럽게 멋을 부려도 지저분한 신발을 신으면 무척 깨 보이지만, 눈에 띄지 않는 수수한 차림을 해도 신발이 단정하고 깨끗하면 그 사람의 인품이 세련되어 보이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은 다 밸런스 즉, 균형에서 나옵니다. 신발은 옷차림의 균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템입니다. 나를 품격 있게 보이고 싶다면, 먼저 신발부터 들여다보세요. 여러분의 신발은 여러분의 오늘 옷차림을 조화롭게 서포트해 주고 있나요? 당장 격식 있는 자리에 신고 가야 한대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나요?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부분에 들이는 정성과 디테일이야말로, 일상을 더욱 밸런스 있게 만드는 한 걸음입니다. 이번 주에는 때가 묻은 신발들을 마음먹고 세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깨끗한 신발은 여러분을 더 쾌적한 곳으로 데려가 줄 것입니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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