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더해 줄 사물을 선택하는 법
날이 추워서인지 밖순이인 저도 통 집에서만 지내는 요즘입니다. 그러면 오후쯤이 되어 슬슬 마실 것이 당기는데요. 커피 원두가 다 떨어진 데다가 마침 선물 받은 티백이 생겨 며칠 째 루틴처럼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한때 컵을 컬렉팅했던 사람으로서, 여전히 찬장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컵이 가득합니다. 꼭 차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마실 때면 어떤 컵을 선택할지 즐겁게 고민하곤 하는데요. 차를 마실 때 이제껏 집어 들던 컵들이 몇 개 있습니다. 컵이라기보다는 찻잔일까요. 금색 림에 우아한 곡선의 손잡이가 달린 전형적인 찻잔부터 동양의 미를 물씬 풍기는 도자 소재의 아담한 찻잔까지 구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티 포트가 없는 저로서는 그렇게 작은 잔을 택하면, 다 마실 때마다 여러 번 계속 우려 마셔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어쩌다 한 번 마실 때는 모르지만, 요즘처럼 할 일을 하며 매일 같이 마실 때는 크기가 넉넉한 컵에 한 번에 우려 마시는 게 편해서 다른 컵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육중한 무게감을 자랑하는 둥근 회색 머그컵, 오렌지빛 열매가 그려진 흰색 기본 머그컵… 큰 사이즈의 컵이 없어 두어 개 가운데 번갈아 사용하고 있지만, 요새 가장 찾게 되는 컵은 앙리 마티스의 그림이 그려진, 풍성한 부피의 밑동을 자랑하는 가볍고 투명한 컵입니다. 재작년 생일 때 선물로 받은 컵인데요. 크기도 가장 넉넉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애용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투명해서 차의 빛깔이 그대로 들여다보이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그렇게 빛깔이 진한 차를 마시지 않는 데다가 한 종류만 마셔 왔기 때문에, 차의 빛깔을 감상하는 것은 위에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선물로 받은 4종의 티백을 우려 마시다 보니, 차마다 제각기 다른 빛깔로 우러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더군요. 한 번은 회색 머그컵에 히비스커스 티백을 우렸는데 진한 붉은빛이 우러나서, ‘아, 투명한 컵에 우렸으면 예뻤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빛깔이 매혹적인 차는 투명한 컵에 우려 마시면 더 특별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단 차뿐만 아니라 커피나 주스도 입으로만 맛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향과 빛깔로도 음미할 수 있지요. 그 모든 감각을 어울러 경험할 때 더욱 풍요로운 식음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을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적합한 사물을 고르는 것 또한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지요.
습관처럼 차나 음료를 아무 컵에나 따라 마실 때, 잠시 멈추고 찬장을 훑어보세요. 혹시 투명한 컵이 있나요? 그렇다면 오늘은 투명한 컵에 마시며 음료 본연의 빛깔을 감상하며 마셔 보는 건 어떨까요? 테이블 위의 하나의 산뜻한 오브제가 되어 줄 것입니다.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