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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번 민낯과 마주합니다

나는 이 모습으로 세상과 승부한다

by 위시

그저께부터 매일 아침마다 둥근 탁상 거울로 제 얼굴, 정확히 말하자면 민낯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세안을 막 하고 나온 터라 마치 보정을 한 듯 유난히 뽀얘 보이는 피부, 며칠간 외출을 하지 않아 정리가 덜 된 눈썹털, 트지 않은 입술, 새로 생긴 뾰루지… 딱히 심취할 것도 없는 얼굴일지 모르지만, 평소 욕실을 들락날락하며 마주하는 얼굴보다 나름 예뻐 보인다고 생각하면서요.


거울을 보며 이런저런 표정을 지어 봅니다. 가장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 표정, 면접 프리패스일 것 같은 자신감 있어 보이는 표정… 욕실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의 칙칙하고 무표정한 얼굴이 아닌, 의도적으로 나의 가장 산뜻하고 기분 좋은 얼굴을 만들어 봅니다. 그러면서 하는 또 하나의 행위가 있는데, 바로 저의 확언 문장을 말해 보는 것입니다. 어느 기업에 꼭 입사하겠다든가, 소설을 써서 몇 만 부를 팔 것이라든가, 몇 억의 자산가가 될 것이라든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직함으로 일을 할 것이라든가… 그 문장들을 꼭, 저의 '민낯'을 마주하고서 읊습니다. 이렇게 해 보기로 다짐한 건 그저께부터였어요.


이 사람, 참 희한한 짓을 하네. 그렇게 생각이 드신다면, 저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거울을 보며, 저의 가장 자연스러운 민낯과 예쁜 표정을 세팅하고, 꿈을 읊조리고 있는 저 자신을 보면 현타도 듭니다. 하지만 거울 속의 저를 보면, ‘아, 그 꿈을 이룰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구나’하며 성공이 예정된 나의 모습을 타인의 입장에서 한번 바라보게 됩니다. 그 시선에서는 거울 속 비치는 저 사람의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불안이나 고민은 보이지 않고, 그저 당당하게 미소 짓고 있는, 정말 무엇이라도 이뤄낼 것만 같은 야침찬 한 사람만이 보입니다. 그 사람의 모습을 제 안에 똑똑히 새기며, 주문을 거는 것입니다. "저 얼굴이, 바로 그 얼굴이야. 꿈을 이룰 얼굴이야. 누구에게라도 인정받고 사랑받을 얼굴이야."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심취해 거울을 오랫동안 들여다볼 일이 좀처럼 없습니다. 어쩌다 마주해도 부정적인 말만 쏟아내지요. 와, 안경 낀 모습 심각하네…, 오늘따라 화장이 이상한데, 또 여드름 났네, 진짜 눈 작네… 어느덧 거울 속엔 비난을 잔뜩 듣고 의기소침해진 자신이 있습니다. 우리의 잔상에 기억된 우리 자신의 민낯은 늘 그러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얼굴로 내가 꾸는 꿈과 발 내디딜 세상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을까요. 화장을 하면 사정이 조금 낫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화장을 할 때만 비로소 만족스러운 나의 모습이라면, 앞으로 원하는 모습을 향해 나아가는 족족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부딪혀 승부하기보다, 나의 부끄러운 면을 끊임없이 숨기거나 꾸며 보여주려는 자신의 모습에 익숙해지겠지요.


나의 얼굴을 보고, ‘이 아이, 무엇이든 해내겠는데?’라는 생각이 처음 든 것은 작년 겨울, ‘시현하다’에서 찍은 저의 사진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형용사와 컬러를 조합하고 자연스러운 미소와 포즈를 취해 가장 이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한 그 사진 속의 저는 상상 이상의 광채를 뿜고 있었습니다. 열정이 생기지 않거나 하는 일에 주눅이 들 때마다 불현듯 이 사진을 종종 마주하면, 스스로 퇴색시키곤 했던 모습과는 달리 그 안에는 바랐던 대학을 성공적으로 졸업하고, 에디터로 글을 쓰고, 꿈을 꾸고 있는 믿음직한 제 자신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안을 하고 마주하는 나의 얼굴은 어쩌면 하루를 갓 시작한 사람의 꾸밈없고, 그날의 일과 감정을 아직 뒤집어쓰지 않고, 오늘 어떤 하루를 보낼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는 순진무구한 날 것의 얼굴입니다. 원래라면 가장 볼품없다 여기며 서둘러 화장으로 감추려 하는 민낯이지요. 그러나 잠시 멈추고, 그런 자신의 얼굴을 한번 지그시 바라봅시다. 꾸며서 만족한 얼굴이 아닌 바로 그 민낯 그대로, 가장 예뻐 보이는 미소도 지어보고 미래의 내 모습도 상상해 봅시다. 그렇게 몇 분을 바라보고 있으면, 평소 습관처럼 불평하곤 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의 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불안과 고민을 품고서도, 어엿하게 세상과 맞서고 있는 든든한 전사의 모습이 보입니다.


매일 아침, 세안을 마치고 나온 자신의 얼굴을 보며 이렇게 주문을 걸어 봅시다. 이 모습으로도 승부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나다움과 자신감을 끌어낼 수 있다. 이 모습 위에 그 어떤 옷을 입히고 어떤 보석을 걸치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자신의 민낯도 마주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떤 모습일지라도 스스럼없이 세상에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꼭 민낯이 아닐지라도, 마음에 드는 자신의 사진을 항상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자주 보며 머릿속에 각인시켜 봅니다. "나는 이 모습으로 승부한다."


그렇게 준비한 오늘 하루, 자신감을 갖고 어디든 나서 보세요. 평소와는 다른 하루가 펼쳐질지 모릅니다.


책상 위에 올려 둔 '시현하다' 사진.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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