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 반의 애프터눈 댄스
지금은 오후 3시 반. 방금 전까지 방 안에서 막춤을 추다가 막 자리에 앉았습니다. 차 한 잔 내리고 숨을 고르고 이제 글을 쓰려고 합니다. 단정하고 쾌적한 생활 이야기만 하다가 뜬금없이 웬 막춤 이야기냐고요? 오늘은 잠시 ‘즐겁게 몸을 움직이는 감각’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방금 막춤을 춘 이유는 사실 굉장히 즉흥적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늘어지기만 하는 백수 생활, 시간 관리를 제대로 해 볼 겸 To-do 리스트에 있는 모든 일들을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정도 철저히 계산해 오늘 오후를 지내보려 했습니다. 그렇게 책을 읽고, 점심 식사를 하고, 영어 공부를 했더니 3시 12분. 굉장히 애매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30분 간격으로 딱딱 떨어져야 마음이 편한데 말이지요. 그래서 <라이프마인드> 글을 30분부터 쓰기 시작하자고 다짐하고, 그 사이 뭘 할까 고민했습니다. 아예 이후의 것들을 조금 미루고, 산책이나 다녀올까도 싶었지요. 하지만 1도라 포기, 그렇지 않아도 방 안도 너무 춥고 손이 시려우니 일단 뜨거운 차를 우렸습니다. 산책을 포기했으니 아쉬운 대로 몸이라도 움직이면 좋을 것 같은데, 운동은 재미없고… 그러다 그냥 막춤을 추기로 했습니다.
사실 이렇게 막춤을 추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요. 갑자기 몸을 마구 움직이고 싶을 때나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때 가끔씩 춤을 추곤 합니다. 아이돌 춤을 따라 추거나 굉장한 퍼포먼스를 부리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유튜브로 ‘막춤 플레이리스트’나 기분을 돋우기 좋은 ‘하이틴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두고, 두 평 남짓한 빈 공간에서 막무가내로 몸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리듬을 캐치해 그에 맞게 동작을 취하는 건 소소한 재미이기에 잊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루종일 앉아 있습니다. 앉아 있고 나서는 누워 있지요. 때로는 걷습니다. 온몸을 탈탈 털거나 과격하게 이쪽저쪽 뻗어보는 일은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극히 정적이거나 반복된 행동만을 오랜 시간 유지하지요. 이런 우리의 일상에서 평소 움직이지 않을 법한 부위와 근육을 써 오로지 ‘마음 가는 대로’ 유쾌하게 몸을 움직여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들 알다시피, 영국에는 티타임 문화가 있습니다. 열심히 노동을 하다가도 오후쯤 되면 차 한 잔 하면서 휴식을 갖지요. 세계 2차 대전 때도 전쟁 중 잠깐 멈춰 티타임을 챙겼다고 하니, 일과 중간에 잠시 휴지 시간을 갖고 숨을 고르는 것을 무척 중요한 일로 여기는 듯합니다. 그중 오후 4시쯤 마시는 티를 ‘애프터눈 티’라고도 부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애프터눈 티’가 필요합니다. 여건이 되지 않을 경우 잠시 일을 내려놓고 커피 한 잔 하는 것도 좋지만, 상황이 허락한다면 이때의 기회에 춤을 춰 보는 건 어떤가요? 춤, 그중에서도 특히 막춤은 운동과 다릅니다.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내 몸이 원하는 대로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오로지 나의 직감만을 따르는 것이지요. 매일 정해진 규칙과 지시되는 사항을 따르며 일하는 우리에겐 더더욱 규칙 없이 나만이 컨트롤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니, 컨트롤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무아지경으로, 즐거운 기분을 느끼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렇게 한바탕 몸을 움직여 주면,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 몸도 달아올라 더 이상 춥지 않습니다. 또한 심장을 비롯한 몸 곳곳에 적당히 활력이 돌아 엔도르핀이 솟아나고 머릿속도 한층 상쾌해지지요. 춤추기 전까지 해냈던 일들에 대한 감정도 다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음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몸과 마음은 긴밀한 관계이기에, 막춤을 추며 몸을 확확 뻗고 탈탈 털었던 감각이 고스란히 마음가짐에도 스며드는 법입니다.
더 재미있던 건, 이런 습관이 저에게만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작년 10월, 친구 K 집에서 테이블에 마주 보며 앉아 각자의 일을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할까 할 때, 팝송을 틀고 자연스레 서로 막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있을 때만 은밀히 추는 막춤이었는데, 알고 보니 K도 그러고 있었다는 사실이 반가웠습니다. 둘 다 그리 외향적인 사람이 아닌데도, 함께 추는 막춤은 부끄럽기는커녕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지요. 평소 서로에게서 볼 수 없는 날 것의 모습이었으니까요.
몸치라고 주저할 것 없습니다.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지금 이 순간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뿐이니까요. 가끔씩은 나의 몸에 귀를 기울이고 재미있게 몸을 움직여 봅시다. 나만의 애프터 눈 댄스(Afternoon Dance)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지요.
그럼, Let's Dance!
<오늘의 기본> 2023 연재를 시작합니다
기본은 늘 중요합니다. 나다운 중심을 지키는 오늘의 질서가 되어 줍니다.
일상 속에서 문득 느꼈던 소소한 깨달음과 교훈, 생활의 규칙과 태도 등 삶을 더욱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라이프마인드(Lifemind)'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의 작가 마쓰우라 야타로 씨가 일상에서 느꼈던 생활의 힌트들을 틈틈이 기록한 <생활의 수첩>에서 영감을 받아 연재하는 시리즈입니다. 우리 함께 나다운 기본을 찾아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