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보다는 바르게~ 논리와 상상력~
매년 10월 1일은 국군의 날이다. 10월은 가을의 중간이라 날씨가 참 좋다. 하늘은 높고 푸르다. 할 일이 많다.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고, 국군의 날, 개천절, 한글날 등의 기념일이 있다. 국군의 날 즈음엔 ‘모형항공기 비행' 이벤트가 있었다. 요즘은 어떤가 확인해보는건 어렵지 않다. 학교 생활 ‘알림장' 앱이 있다. 연중 행사를 확인해보니 10월초에 학교가 아닌, 공군 활주로, 연병장 등에서 행사가 있었다. 고무동력기나 글러이더를 직접 만들어 얼마나 오래 공중에 떠 있는지를 경쟁하는 이벤트다.
모형항공기라는 말이 좀 우스꽝스럽긴하지만, 모형이니 달리 붙일 말이 없었나보다. 항공기는 여객 항공기에도 들어가는데, 모형이란 수식어가 붙으니 ‘글라이더와 고무동력기'로 나뉜다. 글라이더는 자체 동력이 없어 2인 1조의 테스트가 진행된다. 둘의 역할은 다르다. 한명은 끈을 잡고 달릴 준비를 하는 소위 경주마 역할이다. 다른 한명은 글라이더 동체 밑에 그 줄을 연결하고 경주마에 의해 글러이더가 바람을 가르고 최대한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잡고 있는 조타수 역할이다. 고무동력기는 혼자서 하는 시합이다. 종이, 대나무살, 플라스틱 연결 힌지, 금속 연결고리 등으로 항공기 동체를 만들고 앞쪽에는 파란색 프로펠러를 달고, 항공기 후미와 고무줄로 연결해준다. 그런 다음 프로렐러를 시계방향으로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바퀴를 감아주면 경주마와 조타수 역할까지 마무리된다. 프로펠러가 풀리지 않게 잡고 있다가 이마 위쪽에서 그냥 놓으면 된다. 던지면 반칙이란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두 손을 놓는 순간 프로펠러가 풀리면서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휘는 것, 놓기가 무섭게 고꾸라지는 것 제각각이다. 동시에 수십대가 출발하면서 엉키는 경우도 있고, 얇은 종이가 항공기 날개 역할을 하는데 첫 비행에 날개가 찢어져 본의아니게 ‘시합종료'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모형항공기 비행 대회의 풍경이다. 내 경우엔 5학년 1학기때가 처음이다. 평소 손재주가 좋은 편이라 생각했지만, 성격이 급했던지라 차분하게 무언가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바르게 보다는 빠르게'가 더 어울리는 성격이었다. 반면, 형은 ‘빠르게 보다는 바르게'가 몸에 벤 사람이었다. 쉽게 지나가는 경우가 없었고 굳이 그렇게까지 융통성없게 해야하나 했지만, 고무동력기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만들어주었다. 5학년보다 4살많은 중학교 3학년이 조립해준 고무동력기는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정교했다. 심지어 형이 만들어준 고무동력기의 재료들은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조립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다 부러뜨린 꼬리 날개살은 대나무를 깎아서 만들어주었다. 대나무를 가늘게 잘라서, 사포로 문질러 이쑤시게 크기로 만들었다. 도끼를 갈아 바늘로 만든다는 마부작침의 고사성어를 알았다면 감탄사로 나올뻔 했다. 맥가이버인줄 알았다. 한지재질의 날개용 종이는 급한 성격때문에 벌써 찢어진 이후였다. 그때 형은 찢어진 종이에 얇은 습자용지 같은걸 덧붙여 봉합술을 성공시켰다. 거기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 팽팽해진 순간, 이건 인류 최초의 심장이식 수술에 성공한 느낌이었다. 죽어가던 고무동력기에 새로운 심장이 생긴 것이다. 어떻게 이럴수 있단 말인가. 고무동력기 재료는 아카데미 과학에서 나온 제품이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2500원짜리였지만, 나는 1500원이었다. 책이 아닌 이상 큰 차이가 없다면 저렴한 것을 사주시는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해 우리 형제는 1500원짜리로 조립을 했어야만 했다. 월요일 오전이 모형항공기 대회였기 때문에 토요일부터 혼자 만들어보려다가 다 망쳤다. 그걸 일요일 오후에 형이 도와준것이다. 망가뜨린 항공기때문에 어머니에게 폭풍짜증을 부렸다. 어머니는 정말 무죄였다. 그럼에도, 부족한 내 손재주를 인정하긴 싫었고, 아버지한테 대들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 일요일 형이 도와줬기 때문에 너덜너덜하긴 했지만, 제법 잘 나는 고무동력기가 완성이 됐다. 울기 직전의 5학년은 4살많은 형의 도움으로 웃음을 되찾았다. (그때 어머니에게 사과하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는 말을 전해드린다.)
다음날, 오전 내 고무동력기는 놀림의 대상이다. 1500원짜리와 2500원짜리가 다른점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고무동력의 원천인 고무줄부터 달랐다. 나는 그저 노란색 고무줄이었지만, 2500원짜리는 고무줄의 길이가 1.5배는 길어보였고 탄력감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고무줄이 짧아 동력이 적은 1500원짜리, 게다가 한쪽 날개는 다른 종이로 덧붙였지만 왠지 내가 이길것 같았다. 그냥 근거없는 자신감이자 육감인것 같았다. 실제로 (형이 만들어준) 내 고무동력기는 15초를 날았다. 20개 정도 되는 것중에 2등이었다. 1등은 6학년 진삼이 형이었다. 평소 과학그리기 대회, 발명 대회 등에도 참석하는 소위 우리학교 에이스였다. 1등의 체공기간은 40초가 넘었다. 예상했다시피 1등과 2등의 실력차이는 엄청났고 나머지는 ‘도토리 키재기'였다. 나로 인해 3등으로 밀린 친구들은 대부분 2500원짜리였다. 예선대회 2등으로 학교 대표가 되었다. (아마 5등까지 시대회에 나갔던 것이다)
시대회는 ‘우리형’찬스를 쓸수 없었다. 학교 대표였으므로 학교에서 2500원짜리 제품을 사주었지만 나의 조립솜씨 덕분에 우리 학교 2등 대표인 나는, 우리 학교 선수들 가운데 꼴찌를 했다. 출발하자마자 오른쪽으로 휘더니 고꾸라져, 심사위원 시계 1초가 흐르기전 끝났다. 한두가지 추가정비를 하고 한두번 더 시도했지만, 시대회에서 이렇다할 성적은 없었다. 그 후 기억도 없다. 자장면 먹고 헤어졌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 와중 자장면은 맛있었고, 진삼이 형은 두각을 보여 도대회까지 참석했다. 진삼이형은 가장 좋은 성적을 냈고, 같이 주목받았던 나는 이렇다할 성적이 없었다. 그 형은 전학년이 모인 운동장 조회시간에 상장과 표창장을 받았다. 무덤덤하다고 생각했지만, 예민한 성격이었으니 ‘시 대회까지 나간게 어디야'라는 위로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냥 머쓱했다. 형이 만들어준 고무동력기는 좋은 실력을 발휘했지만, 내가 만든건 그렇지 못했다. 모형항공기 대회는 타인이 제작한 고무동력기를 대신 날려주는 역할을 평가하는 대회가 아니다. 두가지 모두 잘해야하고, 특히 제작기술에 신경을 써야했다.
모형 항공기 경진 대회는 왜 열리는걸까? 거기까지 생각은 못했다. 국군의 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난감을 갖고노는 것은 아니다. 대신 만들어준 비행기를 날리는 것도 아니다. 이런 본질적인 ‘왜'를 이해하지 못한 나는 형에게 제작을 의뢰했고, 나는 형이 만들어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빠르게 보다는 바르게'해야 하고, 대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나간 일에 대해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적용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만은, ‘만약' 내가 항공기 제작 연습을 좀 더 했더라면, ‘만약' 미리 준비과정을 좀 더 오래 했더라면, 그 과정을 이해못할 성급한 성격이지만, ‘만약' 나의 조급함을 기다려주었다면.. 역사에서 ‘만약'은 효용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사에서 ‘만약'은 현재와 미래를 대비하는 ‘처방전' 역할을 한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 이면에 있는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1992년도에 ‘논리야 놀자'는 책이 나왔다. 인문학이 유행하기전 화두는 ‘논리'였다. 논리는 원인과 결과, 인과관계를 중요시한다. 인과관계를 따지는 재능이 필요하다. 잘못된 기초정보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예상된다. 정보통신이나 과학기술에서 컴퓨터의 논리 프로세스를 표현하는 말 중에 Garbage in Garbage out이 있다. 전제에 결함이 있으면 논증은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컴퓨터의 성능과 처리 능력이 발전될수록 정확한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본질의 파악'이 중요하다. 4학년 혼자 만들기 버거운 모형항공기, 거기에 동참한 형과 누나, 그로인한 온가족의 즐거운 시간, 대신 만들어주기 없음이라는 제한조건, 시 대회 참석, 자장면, 그리고 30년이 지난 오늘의 추억담. 이것은 인과관계와 무관한 ‘주변요소'들이다. 주변요소들을 지적하고, 파악하려면 ‘통찰력'이 필요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 완전히 다른 요소들의 결합, 가능성의 융합, 다양한 가능성을 제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논리학' 다음은 ‘인문학'이다. 집에 가만히 내버려둬야하는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상상은 누가했을까? 전화기의 기능에 몰두한다면 통화연결이나 품질 정도에 심취했겠지만, ‘가족, 친구들과 언제 어디서건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것이 ‘휴대전화'라는 생각을 한다. 각종 휴대용 기기가 태어난 원인은 아마 과학기술과는 별개인 ‘인문학적 상상력'일 것이다.
성급하게 판단하려 하지 말고, 왜 그런지를 생각하는 습관을 갖자. (‘왜?’의 중요성은 ‘쪽지시험'에 자세히 언급돼 있다) 실천이 다소 더뎌지지만,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까지는 믿고 기다려줄수 있다. 느려도 좋다. (지금의 나는 기다려 주는 훈련을 하는 중이다. 육아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주는 것이란 믿음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익혀야 하는 것은 빠른 처리, 빠른 계산이 아니라, 원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원리 파악과 함께, 상상하는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들이 가끔 행동이 느리다는 오해를 하는데, 만약 ‘원리 파악과 상상'이라는 훈련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그 오해는 금새 사라진다. 배달음식이나 서비스업에서 ‘신속정확'이라는 단어를 자주 볼수 있다. 양립하기 어려운 두 단어가 어색하지 않게 자리잡고 있다. 학교생활이나 가정생활, 사회생활에서 ‘신속정확'이라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호기심을 갖고 상상해보기 바란다. ‘왜'라는 의문은 트집을 잡기 위한것이 아니다. 상대를 기분나쁘게 하는 말 조차 아니다. 가슴속에 품고 다니면 사건 사물 본질 파악할 때 유용하다. 꼭 활용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