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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투맨 기본 영어, 성문 종합 영어

영어 공부는 코치와 멘토를 통한 방향 설정이 우선이다.

by 권호원 Apr 20. 2020

영어 공부 참 많이 했다. 요즘도 YBM인강이라는 곳에서 매일 메일이 온다. 네이버 사전에서도 매일 다섯문제 정도의 영어 문제를 풀곤 한다. YBM인강은 토익 시험 예상문제를 다룬다. 과연 앞으로 토익 시험 성적이 또 필요할꺼란 생각보다는, 언젠가 영어시험 문제 질문 받을때 당황하지 않으려는 심산이다. 용찬이 용채에게 질문 받을수도 있고, 가끔이겠지만 용주와 용재에게 질문받을수도 있다. 우리가족 안동권씨 38대들은 초등학교 2학년, 5학년,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2학년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질문을 받을지 모른다. 남아있는 사회생활에서 토익성적보다는 아이들과 조카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요즘도 영어 공부를 한다. 

영어 공부의 처음 시작은 ‘책받침'이었다. 주로 국민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필기 노트 사이에 넣는 플라스틱으로 된 받침대이다. 연필심의 성능이 좋지 못하거나 연필질을 해야하는 학생의 힘이 지나치면 다음 페이지에 글씨 형태가 그대로 꾹꾹 눌러지는 것을 막아준다. 재질은 주로 플라스틱이거나 코팅 용지 등으로 마무리 된 두툼한 종이다. 유명한 가수나 운동선수 등을 모델로 한 책받침도 있다. 가장자리에는 ‘자'를 대신해주는 센티미터, 밀리미터, 인치 등이 나온 경우도 있다. 책받침의 모델을 놓고 경쟁하기도 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책받침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짝꿍이나 친구들끼리 책받침 싸움도 한다. 엄지와 검지로 책받침을 잡은 다음 친구의 책받침과 칼싸움처럼 서로 휘두른다. 삐쭉한 모서리 선 부분끼리 닿으면 반드시 한쪽 책받침은 재활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다. 절반이 훅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완벽한 재활용 불가능은 아니다. 아주 작지 않은 조각은 구두 주걱 (구두 신을때 양말 뒷굼치에 대고 신발 속에 발을 넣은채 미끄러지듯이 빼주면 꽉 끼는 신발도 쉽게 신을수 있게 하는 보조장치)도 만들수 있고, 화투장만한 크기로 일정하게 몇장을 겹쳐주면 다리를 펼쳤을때 맞지 않는 상다리, 장농이나 문갑 등 크고 작은 가구의 수평을 맞출때 요긴하게 사용된다. 서설이 길었다. 7살때 책받침이 생겼다. 또래 비해서 한글이 좀 늦었다. 한글은 늦었지만, 아버지는 조바심내지 않으셨다. 다만, ‘일기는 꼭 써라'고 하셨다. 한글을 모르는데 일기를 쓰라니.. 이 내용은 ‘아버지의 일기'편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 내가 책받침이 필요한 이유는 일기쓸때 다음 종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내 책받침은  연예인이거나 운동선수는 아니었다. 앞면에는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 그리고 간단한 발음, 뒷면에는 ABC song이 적혀있었다. ‘에이 비 씨 디 이 엪쥐~ 에치아이 제이케이~ 엘엠엔오피~’ 라는 알파벳송. 생애 첫 책받침을 선물받고, 거기서 알파벳을 배웠다. 외웠다. 영어 천재인줄 알았다. 9살 즈음 여름방학때 부산 할아버지댁에 간적이 있다. 그때 ‘우리집의 수재' 기돈이 아재와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다. 알파벳을 어디서 익혔느냐고, 나는 책받침에서 배웠다고 했다. 기돈이 아재에게 의외의 칭찬을 받았다. ‘정말 대단하다, 책받침을 꼼꼼히 보고 기억해내는 아이는 본적이 없다'고 하셨다. 나로서는 엄청난 칭찬이었고, 30년이 훌쩍 지나서도 기억하는 걸 보니 무척 좋았나보다. 천재인지 아닌지 현실적인 평가를 해보자. 6살 7살부터 2~3년을 보고 알파벳을 모르면 글쎄.. 아무튼 책받침을 보고 알파벳을 익힌건 사실이다. 가장 저렴한 방식으로 제1외국어의 알파벳을 익힌것이다. 알파벳 이후 영어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나는 스스로 알파벳을 익힌 사람이고, 그런 자신감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충만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국민학교 시절에는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목에도 없었고 필요성도 못느꼈다. 미리 귀뜸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아니, 중학교 1학년이 되기전 겨울방학이었다. 국민학생에서 중학생이 된다는 사실은 ‘부담, 긴장, 기대, 걱정, 희망’의 오감이 뒤섞인 느낌이다. 산수에서 수학으로 바뀌는 과목,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인교육을 받는게 아니라, 과목별 전담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 남녀공학이 아니고, 두발의 자유까지 침해당해야했고, 교복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본격적인 공부 레이스가 시작되므로, 경쟁도 치열할 것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국민학교 출신의 친구들이 한데 모인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는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을 선호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열심히 노는 친구들도 있고 불량한 친구들도 있을것이 분명했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부담, 처음 접해보는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영어와 수학, 잘할 수 있을까라는 기대, 날 괴롭히는 친구는 없을가라는 걱정, 본격적인 청소년기에 접어듦으로서 아는게 많아질 것 같다는 희망이었다. 겨울방학에 누나와 형은 나에게 ‘빨간 기본영어'라는 책을 주었다. 책의 표지가 빨간색이었고, 발음기호부터 시작해서 I my me, you your you, he his him, she her her, we our us, 접속사 1형식, 2형식, 3형식, 단수복수, 과거 과거분사, 미래, 가정법, 도치, 전치사, 강조, 부사, 반어법, 조동사, 생활영어 등으로 이뤄진 문법책이었다. 정말 하나도 몰랐다. 알파벳만 알았지 단어는 전혀 몰랐다. Korea정도 알았던것 같다. 정확히는 대문자로 된 KOREA. 발음기호로 표기하면 koria 정도 되겠다. 알파벳은 알았지만 발음기호는 처음보는 것이었다. 지금도 잘 구분되지 않는 s와 th발음을. 혀를 앞니 윗이빨 뒤쪽 입천장 사이에 대고 ‘스~’하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적응이 안된다. 아무튼 빨간 기본 영어는 나에게 아무런 기본 지식을 알려주지 않은채 지나갔다. 빨간색 표지는 매우 딱딱한 하드보드 재질이었다. 그래서, 제사상에 올라갈 호두 껍질을 벗길때 망치, 호두, 그 아래 빨간기본영어 책이 놓인 신세가 되었다. 누나와 형에게는 영어의 기본을 알려준 빨간 기본 영어는 나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름 영어좀 한다고 하던 시절, 호두까기 망치와 세트가 돼버린 빨간 기본영어를 다시 만났다. 빨간색 표지는 제사상에 올라간 호두의 껍질로 인해 많이 벗겨졌고, 책의 내지는 더욱 더 누런 색이었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에 나오는 아주 오래된 비밀지도가 적힌 종이 색깔로 변했다. 조선왕조 실록도 이보다는 환하리라, 종이가 아주 심한 황달에 걸렸다고 하면 더 적당할 것 같다) 그때야 빨간 기본영어의 간결함이 보였다. 왜 발음기호부터 익혔어야 하는지 이해했다. 단수복수, 과거 과거분사, 전치사를 보는 순간 무릎에 손이 절로 올라갔다. 무릎이 탁 쳐진다는게 바로 이런 느낌이구나. 

중학교 1학년 영어는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이미 유치원때 책받침을 통해서 알파벳을 알았기 때문에, ABCD를 알려주는 영어수업은 아주 쉬웠다. 그 다음 이어지는 I am a boy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반 (8반) 선생님은 사회선생님이셨다 (강릉 출신 김정옥 선생님). 옆반 (7반) 선생님은 영어선생님이셨다 (안동 출신 이경희 선생님). 내가 보기에 영어 발음은 우리 반 선생님이 더 좋았다. 역시 영어는 유창한 발음이 전부가 아니란걸 배웠다. 순조롭게 중학교 1학년은 지나갔다. 우리 반에는 상x(이)란 친구와 태x(이)란 친구가 말썽을 부렸다. 역시나 각기 다른 국민학교 출신이지만, 중학교에서 만나 각자의 청소년기 목표와 방향성을 설정한 다음 여름방학이후 등장하지 않았다. 상x(이)란 친구는 추석이 되기전 학교에 나왔지만, 태x는(은) 영영 떠나버렸다. 그때 7반 담임선생님이셨던 이경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태x는(은) 영어에 대해서는 평생 좋은 기억을 갖고 있을거에요. 아마 자신감도 많을 겁니다~” 당시엔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ABCD를 배운지 얼마되지 않고 봤던 1학기 중간고사에서 태x는(은) 영어 과목 성적이 100점이었다. 평균이 80점 이상이었지만, 100점이 아닌 친구들도 있었다. 학교를 그만 둔 태x는(은)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만큼은 자신있었다고 했다. 훗날 길거리에서 태x를(을) 만났다. 시시껄렁한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겪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 많이 컸구나”, “나는 원래 너보다 키는 컸어”, “어디 사느냐”, “부모님은 건강하시냐” 이야기를 나누다 옆반 담임 선생님이 해주신 칭찬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친구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영어? 내가 안해서 그렇지, 영어는 잘하지~ 나 첫번째 시험에서 100점 맞았어. 그 때 영어를 좀 더 공부해둘걸~” 선생님 말씀이 옳았다. 처음 기억은 오래 간다. 성취감이 큰 기억은 아주 신선한 상태로 보존되어 ‘유효기간 = 평생’ 유통된다. 엄청난 예언을 해주신 이경희 선생님과의 인연은 한해 더 이어진다. 1학년 때 옆반 선생님이셨던는데, 2학년 담임 선생님이 되셨다. 2학년 13반. ABCD영어보다는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그때까지 학원을 다니지는 않았다. 맨투맨 기초영어와 맨투맨 기본영어를 봤다. 맨투맨 기본영어는 누나와 형 시절의 필독서였나보다. ‘맨투맨봤어?’ 맨투맨? 농구수비? 맨투맨셔츠? 학생이 알아야할 맨투맨은 농구수비전술도 아니고, 티셔츠도 아닌 ‘영어학습서’였다. 형이 보던 맨투맨 기본영어, 너무 어려웠다. 형은 공부할때 왜이리 밑줄을 많이 긋는지,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부모님께 같은 책을 사 달라 하기 민망해서, 나는 과감히 ‘맨투맨 기초영어’를 구했다. 맨투맨 ‘기초’는 기본과 비교하면 ‘영어 동화책’이었다. 기본을 어려워하는 나같은 학생들을 위한 입문서였고, 큼직큼직한 글씨와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혼자 공부하기엔 딱이다. 영어학원에서도 맨투맨 시리즈는 ‘기본과 종합’, 성문영어는 ‘기본, 핵심, 종합’으로 이뤄졌다. 맨투맨 기초와 성문 기초영어는 강의하는 학원이 없었다. 맨투맨 기초와 성문기초를 혼자익혔다. 국어보다는 영어가 낫고, 과학보다는 영어가 낫기 때문에 영어 성적이 좀 좋았던것 같다. 전반적으로 성적이 나쁘지 않은데다 부반장이었다. 이(李) 선생님은 각 과목별로 성적이 괜찮은 학생들에게 미션을 주셨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 주요과목을 학생들 자체적으로 9시 수업시작전 4시 수업 종료이후에 30분씩 자체학습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1주일에 한번이면 되었고, 매일 한페이지씩 풀이를 담당하라는 것이다. 나는 학원에 다닌적이 없는데, 이런걸 시키다니, 너무했다. 그래서 항명했다. 어려운 것을 학교에서 배우려 하지 않고, 학원에 다닌적없는데 왜 나에게 시키느냐라는 이유의 항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선생님의 화를 돋우셨나보다. 그치만 솔직한 이유가 마음에 드셨는지, 나는 1년 내내 영어학습회의 초대 강사역할을 했다. 강사라기 보다는 풀이할 때 진행을 맡았다. 물론, 학교수업에 진행된 내용이라면 잘 풀어냈지만, 선행학습 내용이나 사전에 나오지 않는 내용이면 내가 풀이를 해낼 재간이 없었고, 형이 늦게 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꼼짝없이 얼버무리고 말았다. 내가 얼버무리는 횟수가 늘어나고,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했던 친구들이 늘어나고, 진짜 공부잘하는 친구들 (김준형, 김영수 등)이 나의 풀이를 듣지 않자, 선생님께서는 과목을 바꿔주셨다. 티나지 않게 모두를 교체시켰다. 내각의 교체라고 해야하나, 과목별 풀이 담당이 모두 바뀌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경희 선생님이 가장 젊고, 최근에 교생실습 이후 임용되었으며, 신혼이고, 새댁이고, 교육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충문하셨다. 새로운 이론을 실제에 접목시키려 부단히 애쓰셨던 분이다. 사실, 아침저녁으로 조회대에 서서 문제풀이하는게 쉽지는 않았다. 덕분에 준비하는 과정에서 실력과 참을성이 커졌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지만 선생님은 발음보단 문법과 독해에 특화되신것 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여러 시험이 시작되는 시기. (갑자기 예고없이 시작된다. 중학교 1학년은 국민학교 생활의 연장선에 가깝지만, 2학년은 3학년과 고등학교 공부에 가깝다.) 내신성적도 중요하다. 한창 과학고와 외국어고등학교가 붐이었다. 학교마다 각 고등학교에 지원할 수 있는 비율이 주어졌다. 나도 서울에 있는 명덕외고에 지원했지만, 중학교 2학년때 음악과목 ‘우’가 있어서 서류에서 떨어졌다. (나머지는 전부 ‘수’였다) 정시 지원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있지만, 안동중학교에서 안동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덕분에 호되게 영어공부를 하였고, 학원을 다녀야하는 필요성을 느꼈다. 예나 지금이나 학원 선택이 중요하다. ‘학원편 - 지산학원’에서 다루겠지만, 내 인생 첫번째 정규수업에 관한 학원은 지산학원이다. (처음컴퓨터가 생겼을때에 등장하는 컴퓨터학원은 첫번째 컴퓨터 학원이고, 인생 첫번째 학원은 국민학교 3학년때 주산학원 한달이다. 한달만에 7급 인정을 받고, 시시함을 느끼고 스스로 졸업해버렸다) 지산학원은 좀 독특했다. 영어와 수학을 알려주었는데, 영어 선생님이 원장 선생님이고 서울 경기권에서 꽤 화려한 이력을 갖춘 ‘할아버지’셨다. 연세가 상당했지만, 한눈에 봐도 깔끔하고 젊잖고, 슬램덩크 북산고교의 안선생 같은 느낌이었다. (훨씬 날씬하다) 엄청난 내공을 가진 분이다. 수업역시 3-4명의 학생 뿐이다. 당시 수강생이었던 원기의 소개로 들어갈 수있는 곳이었다. 국민학교 때 안동컴퓨터 학원을 소개해준 그 친구다. 예전에 그랬듯 원기는 나보다 먼저 그 학원을 그만두었다. 동네 다른 학원이 있었나보다. (안동컴퓨터 학원도 그랬다). 원장 선생님은 that, which, that is, which is 등 주격대명사의 생략과 관계대명사와 be동사의 생략을 상당히 강조하셨다. 언어로서의 영어와 학습 영어의 차이라고 하셨다. 세련된 영어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했다. 더불어 기본동사의 사용과 현재완료, 과거와 현재완료의 차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 능동태, 수동태, 그리고 고급 단어 (ausible, visible, crucial 등)를 알려주셨고, 동사화, 부사화, 명사화 시키는 수업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여태 많은 수업과 강의를 접했지만, 그때 감흥은 아직 잊을수 없다. 교재는 맨투맨이거나 성문영어가 아닌, 고등하교에서 사용하는 영어교재였던것 같다. 외고, 과학고 기출문제를 가지고 풀이해주셨다. 학교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수업과는 거리가 있었다. 또, 멀었다. 수강생 가운데 원기가 떠난 이후 친구가 없었다. 자연히 지산학원은 종료, 다른 학원으로 등록했다. 성문 기본영어와 종합영어 사이, 성문 핵심을 알려주는 학원이었다. 먼저 맨투맨 기본을 맛보기로 알려주었는데, 여름방학 2주만에 맨투맨 종합영어를 마무리지었다. 목성교 근처에 있는 학원이었는데, 방학 1개월 포함 2개월 이내 맨투맨과 성문종합영어를 마무리하는 ‘진도’위주의 학원이었다. 놀랍게도 수강생은 서른명이 넘었고, 친구들도 있었다. 지산학원과는 다른 방식의 수업이지만, 시험문제 답을 찾아내는 데는 꽤나 유명한 소위 ‘쪽집개’강사였다. 그러면서 중학교 영어수업은 끝났다. 중3때 손수락 선생님이 계셨는데, 밑줄긋기와 문법에 천부적 소질을 가진 분이셨다. 역시 감사한 분이다. 

고등학교 영어는 수능시험이라는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순 암기는 안된다.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수학능력을 테스트한다는 막연한 걱정을 가졌지만, 결국 고등학교 생활 모든 영어 수업은 읽고, 문제 풀고, 또 읽고, 문제 풀고, 틀린것 찾아내는 수업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내내 많은 시간동안 영어공부를 했다. 심지어 듣기 평가도 잘했다. 공식처럼 외웠다. 외국인에게 길을 물을때,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키워드를 기억해서 몇번째에서 꺾으면 그곳에 ‘소방서firestation, 편의점convenient store’가 있는지를 알아내는 문제였다. 단어도 많이 외웠다. 수능성적도 좋았다. 98학번이 수능을 볼때는 언어영역 (120점 - 국어, 문학, 작문), 수리탐구영역 (80점 - 인문계는 수학I, 자연계는 수학II, 흔히 문과와 이과), 수리탐구II영역 (120점 -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국사, 세계사, 정치경제, 사회문화 등), 외국어영역 (80점 - 영어) 합해서 400점 만점이었다. 외국어영역은 80점을 맞았다. 1997년에 응시한 수학능력시험은 그 전해에 비해 쉬웠다고 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중학교 1학년때 학교를 그만 둔 태x(이)가 생각났다. 중학교 1학년, 그것도 1학기 첫번째 시험이 인생의 첫 영어 시험에서 거둔 작은 성공이 ‘나는 영어에 소질이 있어’라는 자신감을 가진 친구였다. 수능시험에서 운좋게 만점이지만, 영어 실력은 그렇게 뛰어나진 않다. 고등학교 이후 영어는 대학 교양과목에서 영어, 카츄사 입대를 준비하기 위해 잠깐 준비한 토플시험 (카츄사는 지원하지 않았고, 한국군 병장 전역이다), 졸업논문을 대체한 토익시험, 취업을 위한 토익 900점 등을 위한 ‘목적지향형’공부가 전부였다. 영어 일기는 물론, 영어 말하기는 없었다. 아니 나로선 불가능한 영역이다. 빨간기본영어, 맨투맨 기초, 기본, 종합, 성문 기초, 기본, 종합, 김대균 토익, Voca22000, Grammar in use 등 다양한 영어를 접했지만, 나는 지금 영어 단어 조금 많이 아는 수준이다. 그러나, 제2외국어 독일어, 대학가서 접한 일본어는 전혀, 중국이 대세라고 해서 회사에서 가끔 듣는 중국어 강의, 그냥 ‘나는 영어를 잘하니까 안해도 된다’라 생각하고 이내 덮어버린다. 

지금 우리 가족은 가끔 해외에 간다. 괌, 사이판, 태국, 필리핀, 하와이, 일본, 중국 등 한국어가 아닌 영어가 필요한 나라에 가지만, 영어를 접할 일이 없다. 더더구나 패키지 여행이므로 더욱 필요가 없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엄마는 또래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해도 내가 보기에 상당히 어려운 내용이다. 용찬이는 ITC라는 interpreter 형식의 수업을 듣는다. 빠르게 말하고, 빠르게 해석하는 수업이다. 초등학교 영어라고 믿고싶지 않을 정도다. 믿을수 없다. 주제의 다양성이나 어휘의 수준으로 봐선 수능 모의고사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채도 영어 수업을 한다. ‘플브’라고 하는 영어 학원인데, 나에게는 무척 정겹다. Play가 좀 강한 영어학원인듯하다. 쪽지 시험을 보는 것 같고,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시킨다. 칭찬이 확실하다. 가끔씩은 부모님을 모시고, 피드백 시간을 갖는다. 나중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개인 개인마다 다르듯, 직업이나 적성도 달라질 것이다. 영어 역시 전부가 아닌 흥미와 적성에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분명한건 선택지가 넓어지는 건 맞다. 다행히, 어릴적부터 말하기보다 읽고 옮기고 파악하는 것에 소질이 있었던 터라, 대학시절에는 과외나 당구장 알바보다는 ‘번역’알바를 많이 했다. 물론 초벌번역이었다. 간단한 매뉴얼 번역을 했다. 독일의 상용차 MAN 덤프트럭의 차량내부 비치용 매뉴얼 번역을 했었고, 일본 카오디오 Clarion 카오디오의 사용 설명서를 번역했다. 현실적인 도움이었다. 용돈외 부수입이었다. 아니 주수입이었다. 한페이지당 1만원 가량이었다. 대학 졸업시에도 졸업논문이 아닌, 토익 성적표를 제출하면서 졸업했으니 편리하긴 했지만, 정치학을 전공한 내게 학사 논문이 없다. 눈 앞의 도움으로 인해 나는 학사논문없는 (토익 성적표는 있지만) 학위 보유자인 셈이다. (졸업 논문 패스 기준은 800점이었고, 당연히 졸업논문파와 토익파가 나뉘었다. 대체로, 친한 선배들은 모두 졸업논문파였다. 논문파는 영어는 등한시했다. 그냥 사람이 좋았고, 전공수업이 좋았다고 한다. 915점짜리 토익성적표를 제출하고 나서, 논문파들과 어울릴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취업 준비를 했어야 하기에, 하지만 논문파 영준이형, 민호형, 명규형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동정일수도 있었지만 나는 논문도 쓰고 싶었다. 요즘 민호형 명규형에게 가끔 이야기한다. 그때는 토익으로 졸업하는 내가 잘하는 줄 알았는데, 영어성적표 한장보다 귀한 ‘졸업논문’을 가진  형들이 부럽다고…)

영어 공부에서 인생이 느껴진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하는 것이 한국 영어 공부의 현실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 역시 나쁘다고만 볼수 없다. 흥미(재미)와 지적 호기심, 그리고 현실의 필요라는 3박자가 딱 맞으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행운이고, 취미꺼리가 아닌 직업은 다르다. 상상속의 일이고, 부러운 일이고, 그렇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는 ‘희망사항’이다. 그런데, 주변에 그런 ‘희망사항’을 실천한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꽤 있다. 그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아닌, 그 일 자체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소질과 적성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보다는, 열심히 하는 사람, 그보다는 일을 즐기면서 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것보다는, 웃다보니 즐거운 일이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당연한 소리 말고 다른 것도 있다.

물이 얼음이 되려면, 반대로 물이 따뜻해지고 뜨거워져서 끓을때까지를 생각해보라. 여간해서 물이 얼지 않는다. 물이 끓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한 분야의 숙련가와 전문가가 되는데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은 섭씨 100도에 끓는다. 그런데, 99도의 물과 10도의 물은 외관상 구분되지 않는다. 손을 넣어보면 차이 ‘앗 차가워’ ‘화상입었어’의 차이지만, 보글보글 끓기 전까지는 모른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한 공부에서도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반드시, 그 과정이 이어진다. 지금이 10도인지, 30도인지, 90도인지, 99도인지 당사자는 모른다. 누군가의 코칭과 멘토가 필요하다. 물이 끓는지 아닌지 뚜껑을 자주 열어보면 끓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그걸 막자고 그냥 잠자코 기다리기만 하라는건 너무 가혹하다. 끓는줄도 모르고 지나갈수도 있고, 물의 양이 모자라는지 체크해줘야 한다. 21세기는 물만 끓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물은 왜 끓이는가? 커피나 차를 마시기 위한 단순한 목적인지, 찌개나 라면을 조리하기 위한 육수와의 콤비 플레이가 필요한 것인지, 수시로 점검하는 것이 옳다. 목적에 맞게끔 방향을 설정하고, 과정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어를 포함한 학교 공부 과목 대부분과 업무가 비슷하다. 대학교 전공수업 역시, 큰 그림, 작은 그림 순서로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작은 그림 이후에 큰 그림도 도움된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자~!’

방향성을 잃은 채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이 길이 아닌가보다’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나저나, 중학교 1학년때 우리 반을 떠난 태x(는)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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