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있을때는 부모님, 선생님과 상의해라. 질문할때는 태도를 명확히 해
부모님께서는 공부에 대해서 특별히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셨다. 알아서 했던 부분도 있지만, 나는 스스로 욕심이 좀 있었던것 같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석차가 공개되었을 때, 잘 하고 싶어서 그 석차가 높게 나오는게 좋아서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초등학교 중학교 공부는 예습보다는 복습이면 충분히 좋은 성적이 가능했던 것 같다. 전제는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는 것. 수업시간에 있었던 내용을 잘 기억해 두면 시험이나 평가때 큰 문제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초등학교 산수가 수업시간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하지만, 산수경시대회는 예외다. 지금은 어떤 이름인지 모르지만, 산수 경시대회, 수학경시대회, 올림피아드 대회 정도와 크게 다르지 않을것이다. 초등학교는 산수, 중학교 이후는 수학이라 불리던 산수와 수학은, 선행학습과 비선행학습의 수준차가 극명하게 갈리는 과목이다. 나는 수학을 좋아했다. 특히 중학교때 방정식을 배울때, 피타고라스 정의를 다시 증명할 때,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수업시간이 끝났는데도 정의를 마무리 하지 못한 선생님이 쉬는 시간을 다 소진해도 듣고 있는 것이 너무 좋았다. 수학성적도 괜찮았지만,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선행학습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한 고등학교의 수학성적은 나에게 ‘모욕감’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사춘기와 성적부진은 수학에 대한 흥미와 산수경시대회 출신인 나에게 수학과의 이별을 바라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에 나오는 몬테규가(家)와 카풀렛가(家)의 다툼같았다. 다가가면 돌아서고, 돌아서면 다가오길 바라는…
6학년 1학기 때 일이다. 수업시간에는 간단한 테스트가 있었다. 특정시간, 시계에서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이 나타내는 각도를 표현하는 시험이었다. 수업시간에 논의된 내용이었고, 실제 시계를 생각하면 크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는 실제시계와 문제 속에 나타난 시계가 다를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실제 시계를 보면 두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초침의 움직임에 따라 60초가 지나면, 즉 초침이 12라는 숫자를 지날때, 분침은 1분씩 넘어간다. 대체로 초침의 한바퀴 이후에 분침은 한칸을 움직인다. 문제는 분침과 시침의 관계인데, 분침이 한바퀴를 돌면 시침이 한시간을 움직이는 시계를 본적이 없다. 장난감 시계이외에 실제 시계는 그럴수 없다. 더구나 그 때 당시에 우리 집에 있던 고장난 시계를 붙잡고 분침 끝에 검지손가락을 대고 한바퀴를 돌려보면, 시침은 분침의 움직임에 따라 1/60씩 움직이면서 1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당시 테스트에서는 8시 10분 30초의 ‘시침, 분침, 초침’의 각도를 구하라는 계산 문제였다. 테스트에서 원하는 답은 시침의 미세한 움직임을 제외한 각도문제였다. 내가 적은 답은 정답이 아니라고 했다.하지만, 분침이 움직일때 이미 시침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선생님의 눈빛은 마치 ‘수학의 영재’를 접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얼마뒤 나의 흑역사, 산수경시대회 ‘대비반’이 시작됐다. 사실, 그 때의 칭찬이 수학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잘하진 않아도 당당하게 나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준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참 감사하지만, 다른 테스트를 좀 더 해보고, 경시대회 대비반에 보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은 있다.
우여곡절끝에 2-3주간의 산수경시대회 대비반에 들어갔다. 6학년 산수경시대회 문제 수준은, 내가 여태 접해본적 없는 문제들이었다.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럴수 있을까 하는 문제들, 루트와 제곱근, 함수와 집합이라는 기호들만 없었지, 그냥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런 문제를 손도 댈수 없을까는 자괴감. ‘한 량의 길이가 20미터인 기차 8량이 시속 50km의 속도로 길이 1300미터의 터널을 통과하려고 한다. 기차가 통과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인가?’ 이 문제만이 내가 붙잡을수 있는 유일한 문제였다. ‘빗방울의 크기는 oo이다. 지구상에 빗방울의 지면에 닿기전에 oo%는 소실된다. 대한민국에 떨어지는 빗물의 총량은 얼마인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대비반에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나의 걱정은 커지고, 식욕도 떨어지고, 말수도 줄었다. 할머니가 걱정하셨다. 무슨 일 있냐고. 하지만 내가 아는 가장 현명한 1920년대생 어른인 할머니에게 ‘기차 통과시간, 빗물의 총량’을 설명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냐 싶어, 그냥 입맛이 없다고만 했다. 옆반 친구인 성문이는 날이 갈수록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대비반의 에이스로 성장하고 있었다. ‘나보다 못하는 친구인데, 어쩜 저렇게…’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산수경시대회에 참가했고, 나는 15문제 가운데 3문제? 4문제? 정도밖에 못 풀어낸, 그나마 정답을 적어낸 것은 한두문제였고 나머지는 과정을 잘 기술해서 정답처리된 것이다. 반면 다른 친구들 대부분은 좋은 성적을 거뒀고, 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교의 성적은 다른 학교보다 좀 좋았다. 나는 좀 미안했고, 그래서인지 대회 이후 식사 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것 같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좀 뭐랄까, 가기 싫었다.
주중에는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와 같이 지낸 나에게 기쁨은 ‘공부잘하는 아이, 축구 잘하는 아이’정도였는데, 산수경시대회 이후에는 공부는 물론, 축구도 그냥 그런 아이가 되었다. 스스로 쭈글쭈글 해진것이었다. 그렇게 산수경시대회가 기억에서 잊혀질즈음, 우연히 서점을 들렀다. 가끔 누나와 형을 따라 가본적 있는 교학사, 스쿨서점이었다. 안동에 있는 서점의 양대산맥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스쿨서점을 다녔다. 만화책이 많고, 그러니까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조용한 교학사가 좀 더 좋았다. 서가를 지나고 있던 그때, ‘산수경시대회 출전문제’, ‘산수경시대회 경향파악’, ‘산수경시대회 대비’ 등등 산수경시대회 코너를 보았다. 그것도 다양한 종류의 책과 문제집, 풀이집, 심지어 부모님과 학생들의 인터뷰까지 고스란히 나온 책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구표면에 떨어진 물방울의 총량 같은 문제는 풀어내는 공식이 아주 잘 적혀있더라. 기차건 비행기건, 자동차건 모든 이동하는 물체의 이동속도를 알아내는 문제는 아주 식은죽 먹기였다. 나는 혼자 끙끙 앓았던 것이다.
내가 ‘산수경시대회 기출문제집, 풀이집’을 한번이라도 봤더라면, 물어봤더라면, 어쩌면 내 인생이 달라질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때 나의 고민을 나 혼자 이겨내려고 했을까. 고등학생 대학생이었던 형과 누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왜 못했을까. 아버지에게는 왜 물어보지 못했을까. 엄마와 할머니에게는 왜.. 아마, 초등학교 졸업의 어머니, 학교 근처에도 못 가보신 할머니가 모를거라 생각했나보다. 아버지는 책의 존재를 알았어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 세상 다 아는 것처럼 지냈던 것이다.
질문을 하고, 도움을 요청할때는 태도가 중요하다. 분위기도 중요하다. 매너도 중요하다. 말투는 더더구나 말할 필요도 없다. (여기에 복장까지 잘 갖춘다면 더할 나위없지만, 학생다운 복장 그대로면 된다) 무엇보다 태도가 중요하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상대방의 입으로부터 얻어낼 때는 상대로 하여금 신뢰를 줄수 있는 태도를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받는 존재란다. 그리고 상대방은 이미 나를 도와줄 준비가 돼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명심하자.
산수경시대회의 흑역사는 해프닝처럼 끝났지만, 별거 아닌 별거가 할 일 많은 6학년 생활에 적잖은 영향을 줬네~ 고민이 있으면 부모님, 그리고 선생님과 꼭 상의하길 바란다. 상의하고 질문할때는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