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도 한번 겪어봐, 컴퓨터 교육이 중요할까? 독서와 일기가 중요할까.
5학년때 ‘안동컴퓨터 학원’에 다녔다. 조흥은행 광장의 오른쪽에 있는 4층짜리 건물의 꼭대기층에 있는 학원이었다. 아주 가파른 학원이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질수 있지만, 이름난 학교나 구경꺼리는 그 지역을 이름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안동에서 유명한 중학교는 안동중학교, 고등학교는 안동고등학교, 서울도 마찬가지, 부산도 마찬가지 아닌가? 안동고등학교, 서울고등학교, 부산고등학교 아니면 명문이 아니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나는 안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ㅋㅋ) 내가 안동컴퓨터 학원에 다닌 이유는 순전히 ‘안동’컴퓨터 학원이기 때문이다. 학원비를 주시는 아버지께는 ‘컴퓨터 학원 다닐래요~’정도면 됐었고, 어머니께는 ‘학원 갔다올게~’ 정도로 일방적인 통보였다. 그렇지만 정작 나와 많은 시간을 보냈던 할머니께는 ‘할매, 안동컴퓨터 학원이고, 시내있는거고, 4층이야, 친구 원기가 다닌적 있어서 괜찮다 하드라~ 갔다올게~’ 했다. 정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한달 학원비는 3만원정도였던것 같고, 하루 한시간 수업이었다. 수업시작전에 빈 컴퓨터가 있는 방이 있으면 거기가서 미리 컴퓨터를 켜고, 연습을 했고, 끝나고도 한시간은 더 있었던것 같다. (아플때도 갔었다) 컴퓨터 학원에서 나눠준 검정색 학원가방은 너무 좋았다. 정말 좋았다. 별거없는 ‘안동컴퓨터 정보처리학원’ 전화번호 0571-xx-xxxx. 4자리 지역번호와 두자리 중간번호 (흔히 국 번호라고 했다)였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학원 가서 컴퓨터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보려면 114대신 가방을 보면 됐다.
학원에서는 GW 베이직을 배웠다. 일종의 코딩 프로그램인데 학생용이었다. 명령어를 넣으면 화면에 선이 그어지고, 비퍼(beeper)음이긴 하지만, 띠리리리 음도 나오게 만드는 ‘프로그램 언어’였다. 베이직을 배우려면 운영체제인 DOS 공부를 해야했다. Disk Operating System.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나온 도스는 MS DOS였고, 다른 회사도 있었던것 같다. 자연스레 마이크로소프트, 빌게이츠, 당시 애플컴퓨터, 스티브잡스, 워즈니악, IBM 그 이후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등의 이름과 친해졌다. 왜냐하면 학원이 끝나면 학원과 30미터 거리의 서점을 반드시 방문했다. 서점에서 흔히 볼수 있는 컴퓨터 잡지 (마이컴? 학생과 컴퓨터?)를 보면서 호기심을 달랬던 것 같다. 지금도 스티브잡스와 빌게이츠는 나와 친분이 있는 것 같다. 55년생 을미년 양띠인 동갑내기 두사람, 나도 양띠, 내가 12살, 그들은 36살, 그냥 가까이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마음속으론 빌게이츠가 약간 더 친했다. 아마도 한 군데 직장(회사)만 다녔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스티브잡스는 애플과 넥스트 컴퓨터, 다시 애플 뭐 이런 잦은 이직(?)이 있어서 20년차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모습만을 접한 나로서는 ‘이직’은 안되는 일이었다.
컴퓨터 학원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GW베이직과 DOS 공부를 하기 위해선 타이핑이 필수다. 한글보다는 영문이 더 익숙해야했다. 지금도 DOS 명령어 몇가지는 기억난다. CLS (clearing system : 화면 지우기), DIR (directory : 파일 보여주기), DEL (delete : 지우기) 등.
이렇듯 DOS는 운영체제를 위한 기본적인 명령어를 알려주었다. 코딩언어인 베이직은 ‘나의 명령어’에 의해 소프트웨어가 움직인다는 즐거움을 주었다.(오타가 있으면 실행을 거부한다, 따옴표와 작은따옴표의 구분, 잘 나가던 프로그램이 따옴표 하나 때문에 멎어버리면, 그걸 찾는데 선생님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애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C언어를 익히고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영어 타이핑은 자연스레 한글 타이핑으로 옮겨갔다. 다행히 PC게임은 좋아하지 않아, 모든 친구들이 하던 ‘페르시아 왕자’는 하지 않았다. (안 했다기 보다는 못 했다. 롤플레이이나 아케이드 게임을 하기에는 운동신경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나는 ‘게임 싫어해~’라고 대응했다. 오락실에서 하는 스트리트파이터, 철권 모두 싫어해) 그로부터 5-6년뒤 스타크래프트도 하지 않았다. (어려웠고, 복잡했고, 결정적으로 내가 잘 못했다 ㅋㅋ) 한글 타이핑이 능수능란했고, 재밌었다. 내가 손으로 쓰는 것보다 더 빠르게 글을 써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프로그래밍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잘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자연스레 컴퓨터 학원에 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아파서 빠지고, 다른 일정 때문에 빠지고 (축구였을 것이다), 친구가 안와서 빠지고, 기타 등등 흥미가 떨어지면서 컴퓨터 학원의 기억은 더 이상 없다. 5학년 겨울부터 6학년 여름정도였다. 그 이후 ‘안동컴퓨터학원’의 경쟁상대인 ‘상지콤퓨터학원’에도 한두달 다녔는데, 역시 구관이 명관이고 명불허전이었다. 안동컴퓨터 학원은 정보처리 기사, 기능사 등 자격증 공부위주였다면 상지콤퓨터 학원은 지금의 피씨방이라 할 수 있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상지콤퓨터 학원의 가방은 더 세련되고 수납공간도 더 많았지만, 정이 가질 않았다. (학원비도 월5000원 비쌌다) 6학년 여름방학 이후 인생 첫번째, 그리고 마지막 컴퓨터 학원은 끝났다. 이제 남은건 아버지께 ‘컴퓨터 사달라고 조르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컴퓨터가 많이 필요하진 않았다. 요즘은 컴퓨터가 필수다. 가정마다 컴퓨터가 다 있고, 그것이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TV나 세탁기, 냉장고 만큼 자주 활용하는지는 가정과 사람마다 차이가 크다. 당시 우리집도 그랬다. 나는 컴퓨터가 재밌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전혀, 어머니는 지나가다 한번, 대학생인 누나는 레포트, 형은 무관심이었다. 집에서 컴퓨터를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약간 얼리어답터(early adapter)에 가까운 분이셨다. 약간 지름신도 있는 분이었던것 같고, 관심이 있으신듯 했다. 당시 근무처에서 워드프로세싱 업무를 하셨던 때인데, 전자식 타자기를 사용했다. 여름휴가때는 가끔 전자식 타자기를 가져오셨다. 그걸로 문서작업을 하셨는데, 내가 워드프로세스와 스프레드쉬트에 대해 알려드렸다. 아래아한글은 민간 프로그램이라서 사용할 수 없었고, 정부에서는 ‘훈민정음’이라는 삼성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사용한다고 하셨다. 덕분에 나는 훈민정음과 아래아한글을 동시에 사용할 기회가 있었다. 나의 집요한 구매의지와 아버지의 업무 필요성이 합해져서 드디어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직전,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생겼다. 놀라운 성능의 컴퓨터였다.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는 인텔에서 만든 CPU가 장착되었다. XT가 아닌, AT 소위 286컴퓨터였다. AMD에서 만든 저가가 아니라, 인텔 CPU가 장착된 삼성 알라딘 컴퓨터였다. 모니터는 컬러였다. VGA급을 넘어선 SVGA라고 해서 거의 모든 색을 보여주었다. 해상도도 1024x768이라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다. 하드디스크도 기본 장착되었다. 80메가 바이트의 하드디스크, 그리고 프린터까지. 그야말로 풀세트로 완성됐다. 가격도 무려 200만원이었다. 정말 좋았다. 말할수 없을만큼 좋았다. 굳이 프린터까지? 라고 생각했지만, 프린터가 있어서 많은 문서를 출력했고, 그로 인해 나는 중학교 1,2학년 방학숙제는 프린터로 출력해서 가는 학생이었다. 당시 전세계적인 반도체 집적기술의 발달로 인해, CPU의 성능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고, 그에 따라 개인용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 기기의 가격은 자고 일어나면 떨어진다는 말 그 자체였다. 286, 386, 486, 펜티엄이라고 하는 586까지 286으로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는 고등학생이 되기전에 이미 586이상으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나는 286컴퓨터를 대학생이 될때까지 버리지 못하고 보관했다. 200만원에 대한 보답도 있지만, 너무 편했다. 익숙했다. 간단한 워드프로세싱 작업은 충분했다.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모뎀까지 설치해서 간단한 전화통신은 전혀 지장이 없었다. 지금의 타이핑은 중학교 1학년때 있던 ‘삼성 알라딘’ 덕분이다. 정말 알라딘의 마법같다. 타이핑 실력 덕분에, 군대에서도 비교적 편한 보직으로 선택받았고, 대학교 시절 교수님들의 알바, 직장생활에서 문서 작성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1991년의 200만원이면 상당히 큰 돈이었고, 아버지도 상당한 투자를 했을 터이다. 삼성컴퓨터 대리점 아저씨가 조립해주고, 컴퓨터 책상과 의자까지 갖춰진 컴퓨터를 보고 엄마와 아빠는 조금 다투셨을지도 모른다. 굳이 200만원이나 주고 이런 컴퓨터가 있어야 하는건가, 아니다 앞으로 컴퓨터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되고, 내가 너무 졸랐는게 아닌가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사춘기 중학생은 늘 그렇듯 미안함은 잠시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것저것 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사운드카드를 장착하기도 하고, 게임을 설치하기도 하고, 전화통신(인터넷 이전의 유선통신)으로 채팅을 하기도 했다.
덕분에,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었고, 비교적 이해가 빠른 편이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신 부모님이 너무너무 감사하다. 풍족하지 않은 외벌이 공무원 가정에서 200만원은 한달 급여이상이었을 것이다. 몇개월을 모아서 막내아들 장난감같은 컴퓨터를 사주신 부모님, 우리집에는 중학교 1학년때 컴퓨터가 있었어요~라고 넘어가기엔 너무 큰 결정을 하신거다. 다른 것을 했더라면 오히려 더 편하게 지내셨을텐데… 6학년때부터 1년여간 졸라서 얻은 컴퓨터가 마흔두살이 된 지금 철들게 하는 것 같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추억과 경험을 동시에 얻은 우리집 컴퓨터, 알라딘. 그 이후에도 많은 컴퓨터를 다뤘고, 지금 컴퓨터의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만약 가정용 컴퓨터의 성능 상승과 가격 하락율을 자동차에 대입하면, 지금 자동차 가격은 자전거 가격이어야 한다. 최초에 컨베이어 벨트에서 만들어진 포드자동차의 성능이 지금 경차보다 좋을리 만무하다. 자동차가 비싸다는 말이 아니고, 그만큼 컴퓨터가 보편화되었다는 말이다. 컴퓨터는 4차 산업혁명의 밑바탕이 되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코딩을 비롯한 컴퓨터와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 요즘 사교육 시장의 핵심이다. 과연 그럴까. 나도 어릴적부터 컴퓨터 환경에 노출되었지만, 반드시 좋은 것 같지 않다. 컴퓨터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PC일 뿐이다. PC 즉 personal computer, 개인용 컴퓨터이다. 타인과의 교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키보드와 마우스 등은 개인용이고 1인용이다. 나 혼자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무 이른 나이의 컴퓨터 활용은 추천하지 않는다. 뒤쳐지지 않을만큼의 활용능력을 갖추면 된다. 컴퓨터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노출이 심한 요즘 아이들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게임과 동영상 등 중독되기 쉬운 도구들이 많다.
과외는 쌍방향 교육이고, 일대일 교육이기 때문에 대부분 효과를 발휘한다. 수학과외, 영어과외, 골프레슨, 수영레슨 등 일대일 교육은 고수들의 가르침이 배우는 사람과의 ‘지식과 감정의 교류’과정으로 인해 빠르게 성장시키기 때문에 효과적이다. 컴퓨터 교육은 쌍방향과 단방향의 중간즈음 된다. 독서는 단방향이라고 한다. 하지만, 상상력을 키우고, 커진 상상력을 통한 창조력은 ‘독서, 컴퓨터, 과외’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방법에 따라 다르고, 활용지침에 따라 다르지만, 독서가 우선이라는 나의 믿음은 강하다. 지금 이 순간도, ‘그 때 책을 좀 더 읽을 걸, PC통신에 보낸 시간에 무협지를 더 읽을 걸, 신문을 더 읽을 걸, 일기를 더 많이 적을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좋았다면 추억이고, 안 좋았으면 ‘경험’이라고 하지만, 많이 읽지 않은 것에 대한 ‘경험’, 많이 적지 않은 것에 대한 ‘경험’은 고등학생이 되고 얼마지나지 않아 밀려들었다. 대학시절과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타이핑 기술과 프로그래밍 흐름을 이해하는 논리적인 재능은 늘어난 반면, 서로 다른 것을 융합하는 ‘창의성’은 그렇게 늘지 않았다는 자평이다. 개인성향이지만, 창의적인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 무척 흥미롭다. 부럽다. 그래서 지금도 ‘긍정은 늘 길을 찾아낸다’는 믿음을 갖고, ‘인간의 모든 지혜는 기다림과 희망’이라는 것을 독서와 일기를 통해 실천하려고 한다. 컴퓨터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와 일기인 이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너희들도 한번 겪어봐’라고 말하고 싶다. 인생의 지름길을 안내하기 보다는 아빠의 경험을 알려주고 싶다.